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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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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챗 GPT가 나온 이후로 시대에 많은 흐름의 변화가 생겨나는 것 같아요. 참 빠른 속도죠. 2014년인가 러시아의 유진 구스토만이 설계한 챗봇이 나와요. 챗봇이 튜링 테스트를 최초로 통과했다고요. 튜링이 앨런 튜링을 얘기하는 거거든요.

앨런 튜링은 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 암호 생성기 ‘이니그마’를 해독한 사람이고 인간의 힘으로 절대로 수천만 년 지나도 해독 못 한다는 것을 자기의 연인의 이름을 딴 ‘크리스토퍼’라고 하는 튜링 머신으로 해독했죠. 2차 세계대전의 결과가 그 사람 때문에 바뀌었다고 봐도 무방한데 그 앨런 튜링의 이름을 따서 튜링 테스트, 사람이 기계랑 대화하는데 상대방이 기계인지도 모를 정도인 거죠.

심지어 요즘은 그래서 튜링 테스트는 비주얼 튜링 테스트라고 해서 VR 장비로 했을 때 정말 현실이랑 구분이 안 된다면 비주얼 튜링 테스트 통과라고 부를 정도죠. 물론 AI를 판단하는 것에는 다른 몇 가지가 더 있기는 하지만 가장 대표적인 테스트가 튜링 테스트죠. 제일 중요한 건 오늘 계속 그 얘기를 드릴 텐데요. 답을 내는 능력보다 질문하는 능력이 얼마나 중요해지는가죠.

올해 제가 챗GPT와 관련된 포럼이나 세미나를 정말 많이 다녔어요. 거기서 컴퓨터 전공 교수님부터 심지어 언어 전공 교수님까지 정말 많은 연구자와 회의를 해보면 한결같은 결론은 그거죠. 예전에는 기계를 똑똑하게 만드는 질문과 사람을 똑똑하게 만드는 질문이 달랐어요. 이제는 기계를 똑똑하게 만드는 질문과 사람을 똑똑하게 만드는 질문이 같아진 거죠.

그래서 질문이 가장 중요한 거예요. 어떤 질문을 하느냐에 따라 다르죠. 챗GPT에 바보 같은 질문을 하면 바보 같은 대답이 나오고 좋은 질문을 하면 상당히 좋은 대답이 나오죠. 물론 없는 대답은 못 하고요. 챗GPT를 역설계하는 방식으로 검토해 본 연구자들이 많이 하는 얘기가 사실 모른다는 대답은 디폴트로 이 질문에는 모른다고 대답하라고 설계해 놓은 것 외에는 아는 것처럼 다 대답하죠.

그래서 너무 환상적으로 정리와 요약이 잘 된 것도 있지만 정말 말도 안 되는 헛소리들도 아직 많아요. 그런데 우리 인간은 깨끗하게 모른다고 인정하죠. 모른다는 것을 진짜 모른다고 허심탄회하게 얘기하는 것과 질문을 하는 것이 인간이 가져야 하는 가장 중요한 특징이 된 거죠.

질문 같지 않은 질문이 있죠. 알고 있는지 모르는지 확인하는 거나 이해했는지 확인하는 거죠. 이건 상대방에게 이해의 책임을 떠미는 거죠. 그런데 이런 질문이 아직도 챗GPT한테는 되게 어려운 거예요. ‘여기서 부족한 게 뭐가 있을까?’ 이건 아직도 되게 어려워요.

그 질문 속에 들어가서 타겟팅하고 있는 대상에 대한 평균적인 것들을 만들어 내서 주는 건 인간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똑똑한 거죠. 그런데 독특한 자아의 마음을 잡을 수 있는 건 기존에 없던 것이죠. 기존에 없는 걸 대답할 수 없잖아요. 그러니까 기존에 없는 것들을 보게 만드는 질문, 자기 의견, 그런 것들을 끌어낼 수 있는 질문은 정말 좋죠.

예를 들어서 기존에 없는 방식으로 뭔가를 생각하거나 말하면 다 똑같은 거예요. 스마트 폰도 사실은 기존에 있는 것을 기존에 없는 방식으로 설명한 것뿐이에요. 그때 당시의 PDA에 오로지 폰이 들어간 것뿐이에요. PDA에 전화기 기능까지 추가된 건 혁신이 아니죠. 그런데 이걸 폰이라고 빡빡 우긴다는 거예요. 그럼 폰에 여러 가지의 기능이 들어가서 혁신이죠.

그러니까 세상의 1%도 안 들고 다니던 PDA가 세상 사람들이 다 들고 다니는 물건이 돼서 다 들고 다니니까 그걸 통해서 세상이 바뀐 거죠. 네트워크도 거기를 통해서 물리게 돼 있는 거고요. 그러니까 무언가를 새로운 방식으로 재규정하는 건 오히려 AI가 가장 겁내는 일일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재규정하는 것이 어떤 물건 봤을 때 자기 정의가 있어야 해요. 자기 정의라고 하는 건 대단히 어려운 것처럼 보이지만 거기에 대해서 용도라든가 아니면 그걸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이라든가 그것만 보는 게 아니라 그걸 보고 난 다음에 대화를 누군가랑 해야 해요. 근데 그걸 기계랑 하기 어렵죠. 사람이랑 얘기해야죠.

예를 들어서 세탁기는 의류를 세탁해 주는 기계, 그렇게 정의 내려버리면 일반 사람들과 같은 정의죠. 그런데 세탁기는 냄새를 빨아준다는 자기 정의를 가지고 있으면 거기에 맞는 디바이스가 새로 생기는 거죠. 그래서 아예 새로운 종류의 물건이 생겼죠.

그다음에 TV는 보는 게가 아니라 TV는 나의 분신이라고 다시 정의를 내리면 바퀴가 달릴 수도 있는 거죠. 이 지구상에는 모든 데이터를 다 정리해서 평균점을 만들어 주는 것은 AI를 이길 수도 없고 이제 이기려고 생각해도 안 되겠죠. 그래서 그런 것을 평균적인 자아에 있어서 이제 우리는 이길 수 없어요.

하지만 독특한 자아가 새로운 걸 만들어 내거든요. 그래서 그 독특한 자아는 평균으로부터 이탈돼 있으면서도 우리는 아주 쉽게 인식이 가능해요. 즉, 각자 가는 길이 다르다는 거예요. 존재의 목적 자체가 다르다는 겁니다. 가장 정확한 답은 전수를 다 보면 되죠. 지금까지 인간 사회에서 불가능했죠.

그런데 이제는 네트워크상에서 전수를 보는 것까지도 스피드와 용량으로 가능해지는 시대가 왔으니까, 우리가 일반적으로 얘기하는 답을 찾는 것, 정해진 답을 찾는 것 혹은 근사값이 존재하고 많이 알아낼수록 더 답이 잘 다듬어지는, 좋은 답이 나오는 것들은 기계에게 물려주라는 뜻이죠.

그래서 이런 표현을 많이 했습니다. ‘501호 사는 분은 유토피아로 출근하고 502호 사는 분은 디스토피아로 출근하겠구나.’ 이런 생각이 드는 게 물론 AI의 윤리적인 측면이라든가 악용되는 사례와 관련해서는 분명히 경계감을 가지고 있어야 하죠.

얘가 나를 어시스트하게 하고 AI의 역사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것이 한 사람의 전문가를 완전히 대체하기 위해서 나온 디바이스나 시스템이나 프로그램들은 대부분 실패했고요. 그 사람을 잘 어시스트하기 위한 시스템이나 프로그램들이 대부분 대박 성공을 했거든요.

그러니까 AI한테 나는 무슨 어시스트를 받을지, 얘네들이 나를 어떻게 돕게 할지 생각하면서 얘가 다 했다는 뜻이 아니라 얘가 나를 뭘 하게 도와준다고 생각하시라는 거죠. 아주 요긴한 아이디어를 내게, 혹은 내가 아주 신박한 결과물을 내도록 AI가 나를 돕게 하는 걸 개인적으로 그 상세 과정을 많이 써놓으셔야 해요.

인지심리학자들은 창의적 인재라는 말을 잘 안 쓰죠. 나를 창의적으로 만드는 상황이 존재한다는 표현을 훨씬 더 강하게 쓰죠. 어떤 특정 분야에 대한 예민함, 민감도, 이런 건 타고나는 경우가 많죠. 아주 귀가 좋다든가 아주 혀가 변별력이 높다든가 눈이 아주 다르다든가 이런 건 있지만 창의적이라는 것에 있어서는 ‘창의성이 없는 게 아니라 꺼내질 못하는 거다’라고 생각해요.

창의적인 상황이 훨씬 더 세요. 나를 창의적으로 만드는 상황을 잘 적어놓으시면 돼요. 사람의 뇌가 참으로 상황에 민감한 게 저 같은 경우는 논문은 집에서 죽어도 안 써집니다. 칼럼은 연구실에서 절대 안 써져요.

연구실에 들어가서 이런저런 다른 사람의 연구나 이런 것을 2, 3편 읽고 난 다음에 아이디어가 정리돼요. 연구실에서 재미있는 건 딱 그 정도의 분위기에서 논문을 쓰면 한 시간 작업하면 상당한 양의 논문이 돼요. 칼럼은 절대 그렇게 안 써져요. 칼럼은 에세이보다는 좀 더 잘 구성화돼 있지만 논문보다는 조금 더 허심탄회하죠. 독자들도 다르고요.

칼럼은 집에 와서 저녁 먹고 제 가족이랑 흉보고 뒷담화하고 난 다음에 잘 써져요. 그러니까 뇌가 어떤 일을 창의적으로 하기 전에 굉장히 까탈스럽게도 그 앞에 있는 상황들이 있어요.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의식 같은 걸 치르는 예술가들도 많고 브레인스토밍 직전에도 앞뒤로 같이 뭘 붙여서 하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그러니까 다 기록해 놔야 해요. 창의적인 사람은 나를 창의적으로 만드는 상황을 아주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죠. ‘맨인블랙’ 최종회에서 외계인들이 지구를 멸망시키기 직전인데 갑자기 파이를 먹으러 갑니다. 윌 스미스가 지구가 망하게 생긴 순간에 파이를 먹는 게 말이 되느냐고 했는데 그 주인공이 ‘내가 창의적으로 되기 위해서 그전에 아무런 연관 근거가 없는 것 같지만 이걸 해야 한다’라는 거죠.

상당한 근거가 있는 거예요. 문제로부터 떨어지면서 뭔가 다른 것들을 하는 거죠. 물론 파이가 모든 사람을 창의적으로 만들지는 않죠. 이런 종류의 창의적인 일을 하기 전에 그전 상황 몇 개가 받쳐줘야 해요.

그러니까 내가 챗GPT의 어시스트를 받아서 창의적으로 뭔가를 했다면 그걸 적어 보면 나의 유니크함이 보인다니까요. 나의 독특함이 거기서 보여요. 거기서 일반적인 규칙들이 나와요. 그러니까 내가 아주 독특하면서도 차별화된 사고 구조를 가질 수 있는지 오히려 알아갈 수 있는 아주 좋은 앞선 사전 요인이 될 수 있는 게 바로 챗GPT인 거죠.

그렇게 활용하시면 제일 좋은 활용법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는 맥락이 없는 다른 일을 하고 창의적인 일을 해야 하느냐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관점을 봐야 하느냐 이렇게 생각하는데 그 사전에 다른 정황, 요건이 또 있어야 하냐 여러 가지를 따로 떼어내서 생각하시기 좋은데요.

창의적인 관점을 만들어 내기 전에는 항상 여러 가지 다른 거리로 그 현상을 봐야 해요. 현상을 집중해서 보느냐 관망하느냐의 차이죠. 그러니까 맥락에 상관없는 짓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본질은 창의적인 생각이나 혁신적인 아이디어, 신박한 묘수 모두 관점을 여러 개 취하는 거잖아요.

가까운 관점, 먼 관점, 위에서 보는 관점, 아래에서 보는 관점, 관점이 여러 가지죠. 그런데 그 관점을 여러 가지를 가지고 있는데 관점을 여러 가지로 취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사전의 행동들이 있어요. 그게 창의적인 결과물을 만드는 데 포함된 영역에 따라 다르다는 거예요. 게다가 나에 따라 다르고요.

사후적으로 알고 있는 경우는 많아요. 칼럼을 쓸 때 제가 왜 집에서 잘 쓰이냐면 칼럼은 좀 더 보편적인 사람들한테 얘기해야 하니 아무래도 보편적인 사람들과 대화를, 가족들과의 대화 이후에 좀 더 말이 제대로 나오겠죠. 연구물, 논문은 보편적인 분들이 아니라 전문가들끼리 또 빈틈없이 써야 하니까 학교에서 잘 써지겠죠. 하지만 이건 여전히 저의 추정일 뿐이에요.

무엇과 무엇이 연결된 이유는 그게 원래부터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인 경우도 많아요. 그러니까 그걸 찾는 방법밖에 없어요. 이건 사람마다 연결 강도가 다르기 때문에 알아 가는 거예요. 그리고 스스로 그게 필요할 때마다 그 상황에 나를 넣을 수 있으면 굉장히 강한 사람이 되는 거죠.

맥락이 없어 보일 뿐 사전에 정교하게 세팅하는 거죠. 뇌에 암시 주는 거예요. 마지막으로 항상 새로운 시대나 새로운 큰 변화가 오면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요. 두려움이나 외면이나.

그런데 좋은 방법은 인간인 나를 어떻게 보조할 것인가, 내가 좀 더 주도성을 가지고 살펴보면 너무 의존하거나 아니면 외면해서 시대에 너무 뒤처지는 모든 것들을 잘 막았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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