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의학의 역사는 상처 치료의 역사입니다. 현대사회가 사실 밝고 바닥도 탄탄하고 음식을 먹기 위해서 사냥하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폭력을 수반하는 어떤 다툼의 빈도가 줄었죠. 이게 중세 시대만 해도 장갑 벗어던지면 칼 뽑아서 나가 싸워야 하고 결투도 있고 살벌한 세상이었죠.
그리고 땅이 넓은 나라일수록 주먹이 법보다 가깝죠. 괜히 중국소설에서 ‘관과 무림은 상호불가침이다’라는 얘기가 나오는 게 아니에요. 실제로 중국에서는 관의 영향력이 제한적이었습니다. 현대사회에서는 다쳐서 병원에 오면 소독하죠. 그리고 어디를 얼마나 다쳤는지 확인하죠.
물론 더 많이 다친 경우에는 기도, 순환, 호흡을 확인해서 챙겨야 하지만 상처에 집중하자면 일단 어디를 얼마나 다쳤는지 보고 소독을 하는 과정이 있죠. 그래서 응급실 가면 인턴들이 그렇게 막 벌려봐요. 계속 씻어내면서 안에 얼마나 다쳤는지 보는 거죠. 생리식염수를 계속 짜요. 냅다 색깔 있는 소독약으로 하지 않는 게 어디를 얼마나 다쳤는지 보는 건데, 이게 기본이잖아요.
안타깝게도 관찰이라는 행위가 본격적으로 언급이 되기 시작한 건 19세기말입니다. 언급됐을 뿐이고 실제로 진짜 관찰하게 된 건 20세기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1차 세계대전이죠. 그전까지는 지혈이 가장 시급했어요.
피는 고대로부터 곧 생명인데 이게 흘러나오니까 멈춰야죠. 그래서 만만한 거를 쑤셔 박았어요. 나뭇잎 같은 거요. 작은 출혈이면 눌러서 멈추면 되는데 그게 아니면 이 환자는 통증도 더 느끼고 나뭇잎에 있는 균과도 싸워야 하는 악조건이죠. 대부분은 의미가 없었던 게 나뭇잎 치료는 구전으로 내려올 뿐이고 문서가 없었어요.
그래서 이게 의미가 생기는 건 이집트죠. 사실 이집트는 굉장히 평화로운 제국이었습니다. 로마에 의해서 망하기 전까지 3천 년 정도가 유지되거든요. 그렇지만 크고 작은 전투는 있었겠죠. 그러니까 싸우면서 상처를 많이 봤어요. 그리고 이집트 제국은 어마어마하게 문명이 발달했기 때문에 불을 잘 사용합니다.
우연히 불로 상처를 지져봤더니 피가 멈춘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근데 문제가 그때는 정밀한 기구가 있지 않았죠. 전기가 통해서 Bipolar 같은 건 핀셋처럼 생긴 걸로 피 나는 부분만 지지는 건데 그땐 그런 게 없으니 직접 지졌었고요. 그러면 피는 여기만 났는데 이만큼 화상을 입죠. 그럼, 감염으로 죽어요.
사실 화상도 이 피부 장벽을 붕괴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균이 병변으로 들어가요. 근데 이집트인들은 바보가 아니죠. 횃불로 하면 안 되고 쇠를 달구자고 생각해서 인두 같은 걸 만들게 됩니다. 사실 이게 불로 지지는 낙인이나 고문 같은 것들이 상처 치료의 과정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사람을 괴롭히려고 지진 게 아니고 인두를 만들어서 지져봤더니 얘가 막 자지러지는 거죠. ‘이게 누군가를 아프게 할 때 지지는 게 장난이 아니구나’ 해서 그때부터 이제 고문에 사용됐다는 기록이 있고요.
근데 이게 문제가 사실 지져서 하려면 엄청 고온으로 하지 않으면 상처가 잘 타지 않아서 피가 더 나요. 그리고 많이 죽고 심각해지게 되는데 다행히 이집트가 다른 문명에 비해서 압도적으로 발전한 게 하나 있어요. 붕대죠. 물론 멸균이 되진 않지만, 아마포로 감아두는 게 도움이 돼요. 근데 지체가 높은 사람들일수록 오히려 더 죽었어요. 이집트에선 녹색이 곧 생명입니다. 아주 영롱하게 빛나는 녹색이 있거든요.
구리가 산화가 되면 청록색이 돼요. 산화된 구리로 상처를 바르고 붕대를 감은 거죠. 근데 산화된 구리는 중금속이에요. 그래서 귀족들이 많이 죽고 오히려 못 사는 사람들은 꿀이나 기름 같은 걸로 대충 바르고 붕대를 해서 이 사람들이 오히려 더 살았어요.
그래서 이렇게 이집트 시대가 지나가고 그리스 시대가 열리죠. 이집트 역사의 마지막이 되면 그리스가 지중해 연안을 다스리는 시대가 오죠. 이때는 히포크라테스라는 위대한 의사가 있는데, 이 양반이 기록도 많이 했어요. 케이스 리포트를 하나 써놨습니다. 지금도 쓰는 거죠. 이게 엄청나게 도움이 돼요.
목수 하나가 도끼를 휘두르다가 그걸로 발을 찍어서 피가 많이 났어요. 우린 사실 그러면 다친 부위보다 조금 더 심장과 가까운 곳을 동여매서 일단 지혈하고 물로 닦아서 봐야 할 것 같은데, 그 당시엔 머리가 좋아요. 발을 위로 올립니다. 그럼, 이제 중력의 영향으로 피가 덜 나겠다고 생각한 거죠. 그리고 무화과나무 수액을 적신 양모를 상처에 쑤셔 박습니다. 왜냐면 무화과나무 수액이 우유를 굳혀요.
근데 지금 와서 해보니까 피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됩니다. 그리고 양모가 때가 많이 탔죠. 감염의 위험이 좀 있습니다. 근데 그나마 다행인 건 적포도주로 적신 붕대를 감았어요. 적포도주에는 알코올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겠죠. 여기까지만 보면 잘했어요.
이래 놓고 반대편 발을 째서 피를 흘립니다. 히포크라테스의 기록을 보면 이게 말이 되나 싶은데, 어떤 출혈은 사람을 죽이지만 어떤 출혈은 도움이 된다고 했어요. 우연히 다쳐서 생기는 출혈은 사람을 죽이는데 의사가 만든 출혈은 사람을 살린다는 믿음이 있었어요. 이쪽 다리를 지혈하고 반대편 다리에서 피를 내요.
그래서 지혈을 잘해놓고 사람을 죽이는 건데, 실제로 이게 너무 적혈구 수치가 올라가는 병들이 있어요. 그러면 사실 사혈법이라고 피를 좀 빼주는 게 좋아요. 왜냐하면 적혈구가 너무 올라가도 피의 점도가 올라가서 막히는 뇌졸중이나 이런 것들이 생길 수 있으니까요.
근데 이때 지혈은 잘 못했던 거 같은데 농양에 대한 치료는 고대 그리스가 굉장히 잘했습니다. 놀랍게도 당시에는 주사기를 사용해서 뽑았어요. 근데 그리스가 망하면서 이 방법이 잊혀집니다. 로마 시대에는 또 빠지지 않는 사람, 갈렌! 그러니까 역사에 남은 사람은 이것저것 안 건드리는 게 없어요. 지혈대에 대한 언급이 있어요.
당시에는 심장에서 피가 온다는 걸 몰랐어요. 혈관에 대한 개념이 약했으니까요. 그러니까 피가 있긴 있는데 여기서 피가 나고 있으면 여기서 피가 만들어지는 게 없어진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래서 상처가 나는 데를 너무 꽉 묶으면 여기에 피가 생성되면서 계속 몰리니까 피가 더 나서 적당히 묶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러면 더 쉽게 죽죠. 동맥은 막고 정맥은 열어놓았으니까요. 하여튼 그러다가 이제 중세 시대가 오는데 중세 시대를 우리가 ‘암흑기’라고 부르잖아요. 왜 암흑기라고 하는지 이런 걸 보면 알 수가 있어요. 여기서 더 퇴보해 버려요.
일단 고름이 있으면 쨌었잖아요. 다 사장되고 상처가 썩는 건 치료의 일환이라고 생각해요. 포도상구균이 있으면 냄새가 나거든요. 우리는 약간 죽음의 냄새라고 생각하는데 회복되는 과정으로 여겨요. 그렇게 환자를 방치하다가 환자 죽을 거 같으면 자릅니다. 그리고 피가 나면 끓는 기름을 부어요. 피가 멈추긴 하겠지만 어마어마한 화상과 감염의 위험이 있는 거죠.
결국 다 죽는데 이게 개선이 되는 게 16세기입니다. 앞선 방법은 다 말이 안 되고 드디어 어떤 관에서 피가 나는 거 같으니 거길 묶어보자고 생각해요. 16세기에 프랑스 군의관이 부상 당한 병사를 보니까 상처에 구더기가 생긴 거예요. 나중에 보니까 오히려 구더기가 썩은 살만 먹고 생살은 남겨줘서 산 거예요.
이걸 Debride라 하거든요. 죽은 조직을 걷어내는 걸 Debride라고 해요. 이걸 기록을 남기는데 대부분의 주류 의학계에선 믿어주지 않아서 사장돼요. 뭔가 하긴 해야 할 거 같아서 10% 알코올을 붓고 산화구리와 산화납을 섞어서 그걸 발라주자고 해요. 파상풍이 늘어나면서 절단술이 발전했어요.
자르는 빈도가 너무 늘어나서 진짜 조그마한 상처가 생겨도 나중에 자르게 됩니다. 남북전쟁까지도 이어졌는데 상처가 발생했을 때 이 상처가 찰과상, 어디에 긁힌 상처 등을 포함해서 총탄이나 파편이 박힌 상처가 났을 때 30% 정도가 잘리게 됩니다. 셋 중의 하나는 자르는 거죠.
그렇게 되다가 19세기말이 돼요. 제멜 바이스는 당대에 손 씻기 개념을 만들었고, 실제로 실천도 했지만, 그 사람이 이제 매도가 되면서, 어느 정도 매장이 된 부분이 있죠. 그 이후 조지프 리스터라는 사람이 등장해서 손 말고 상처도 씻어야 한다는 소독의 개념을 들고 옵니다. 근데도 도시에 있는 병원에선 도입되지 않아요.
소독이 실제로 도입되는 건 러시아-튀르크 전쟁 때죠. 러시아 군의관이 미군을 치료했다가 사망률이 준다는 걸 확인했고 더 확실시되는 건 크림전쟁입니다.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이 지금까지 있었던 위생과 소독의 개념을 실제로 도입했다고 보입니다.
나이팅게일이 개입하기 전에 부상병의 사망률이 40%예요. 야전병원에 가면 둘 중의 한 명은 죽는 거죠. 살아남는 사람도 팔이나 다리가 없어요. 왜냐하면 감염이 그 안에서 더 일어나죠. 따닥따닥 붙여놓고 소독도 안 하고 아무것도 안 하고 지켜보니까요. 근데 나이팅게일이 손 씻고 소독해야 한다고 말하자마자 사망률이 무려 2%로 내려갑니다.
그래서 여기서 진짜 드라마틱한 발전이 생기고 1차 세계대전에서 드디어 죽은 조직을 없애는 방법이 시작돼요. 주변에 죽은 조직이 오히려 감염원이 되거든요. 그래서 그때부터 제대로 된 소독과 데브리먼트의 중요성을 알게 돼요. 그 이후 할스타드 박사님이 장갑을 만들죠. 그리고 멸균 거즈가 나오는 게 2차 세계대전 이후입니다.
결국 우리가 지금 병원에 가면 당연하게 하는 치료들은 숱하게 많은 사람의 손, 발을 잘라가면서 얻은 방법인 거죠. 집에서 소독하고 연고 발라서 대일밴드 붙이는 게 엄청나게 진보한 치료인 거예요. 앞으로도 더 유익하고 재밌는 의학의 역사로 찾아뵙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