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빌게이츠는 챗GPT라는 AI를 극찬했습니다. 생성형 AI는 현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혁신이라고 말하면서 챗GPT의 탄생이 인터넷 발명만큼 중대한 사건이 될 것이라고 역설하죠.
잠시 설명해 드리면 생성형 AI란 독창적인 콘텐츠와 이미지를 창조하는 AI를 말합니다. 빌게이츠가 챗GPT를 혁신이라고 표현한 건 단순히 읽고 쓰는 것만 가능했던 AI가 이제는 사람의 말을 깊게 이해하고 퀄리티 높은 글을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챗GPT는 오픈한 지 두 달 만에 월 사용자 1억 명을 돌파했어요.
같은 수치에 도달하는 데 인스타그램이 30개월 정도 걸린 걸 보면 정말 놀라운 성장세죠. 챗GPT를 써보면 알겠지만 몇 가지 키워드를 입력하고 질문하면 AI가 상세한 답변을 제공합니다. 퀄리티도 예상외로 높아요. 사람들은 AI의 발전을 경탄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동시에 우려도 나타내고 있습니다.
과연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직업은 안전한가? 이런 걱정이 불쑥 튀어나오는 거죠. 첨단기술이 이제 막 득세할 때는 고등지식을 갖춘 인간을 뛰어넘지 못할 거라는 장밋빛 전망도 나옵니다. 알파고가 첫선을 보일 때 이세돌 9단의 승리를 점치는 사람도 많았죠. 결과는 이세돌 9단이 단 한 판밖에 이기지 못했죠.
중국 바둑 1인자의 커제는 더 향상된 알파고에 완패당했습니다. 분해서 눈물까지 흘렸죠.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바둑을 압도적으로 잘 두는 것이 기정사실입니다. 그러면 바둑 같은 게 무의미해졌을 것 같지만 바둑은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현재 세계 최고인 신진서 9단은 AI를 활용해서 더욱 막강해졌죠.
사람과 AI가 공존하게 된 겁니다. 급변하는 기술은 사람들의 두려움을 불러일으킵니다. 세상에 자동차가 처음 등장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마차를 몰던 마부는 자동차로 인해서 사라졌지만, 말을 몰던 사람은 차를 모는 드라이버로 변해 갔습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죠. 거시적인 관점으로 바라볼 때 모든 것에는 흥망성쇠가 있습니다.
거대한 제국도 몇백 년을 주기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합니다. 하지만 인류사를 길게 바라보면 결국은 발전하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어요. 새로운 기술이 탄생하면 사람은 처음에는 거북함을 느끼지만, 어느 순간부터 공생의 길을 걷습니다.
자동차가 인류 최강인 우사인 볼트보다 빠르다고 사람들이 열등감을 느끼지 않아요. 단지 시간을 줄여주는 효율적인 교통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죠. 인간은 날개가 없고 비행기는 창공을 훨훨 난다고 인간이 자괴감을 느끼지도 않습니다.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면 인간은 어떻게든 적응하기 마련이에요. 하지만 냉정하게 말씀드리면 모든 사람이 적응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본질을 모르고 근시안적인 안목과 한계 있는 프레임을 갖추면 언제라도 도태되죠. 변하는 상황에 맞춰가면서 인류사에서 변함없던 진리에 초점을 맞춰야만 합니다.
저는 강의를 통해서 항상 본질을 강조하기에 어떤 상황과 조건에서도 더욱 강해지는 특급 인재를 양성하고 있습니다. 제가 수만 번 강조해도 질리지 않는 본질이 있어요. 인간은 누구나 고도의 집중과 몰입 상태로 태어나서 고도의 집중과 몰입 상태를 원하고 고도의 집중과 몰입 상태가 반드시 된다.
이건 고도의 지능을 갖춘 모든 인간에게 있는 특성입니다. 저는 이 점을 깊게 이해했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을 고도의 집중과 몰입 상태로 만들 수 있는지만 고심해 왔어요.
그러면 어떻게 제가 시시각각 변하는 외부 환경에 적응했는지 알려 드릴게요. 저는 28살 때부터 기숙 학원에서 아주 열심히 교육했습니다. 잠도 거의 자지 않았고 바이크로 날아다니면서 열강을 했죠. 저의 미칠 듯한 노력과는 별개로 어느 시점부터 해를 거듭할수록 전체 기숙학원의 학생 숫자가 조금씩 줄어들었어요.
수많은 기숙학원에서 강의했기에 이런 현상을 피부로 느꼈죠. 돌이킬 수 없는 추세였습니다. 이때 제가 스스로를 기숙학원 선생님으로만 인식했다면 무너지는 타이타닉호에서 같이 침몰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본질을 이해하는 최면전문가라는 더 포괄적인 자아상이 있어요.
기숙학원 원장님들이 거스를 수 없는 환경만 탓하면서 한숨 푹푹 쉴 때 저는 과감하게 변신했습니다. 분당에 센터를 대대적으로 오픈했고 성인 대상으로 수업을 시작했어요. 애초에 제가 가르치는 본질적인 지식은 누구나 알아야 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더 잘 됐던 겁니다.
인생은 내 분야에서 고도의 집중과 몰입 상태를 더 잘 만들어 내는 과정이다. 이런 확고부동한 프레임이 있었기 때문에 남들이 급변하는 환경만 탓하면서 수동적으로 반응할 때 저는 능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었죠. 저는 원래 기숙학원 제자들한테 유튜브 하지 말라고 했어요. 그딴 건 거들떠보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그랬던 제가 2019년도부터 유튜브를 시작했고 꾸준하게 하고 있죠.
분명히 초창기에는 유튜브가 지금보다 더 오락적이었어요.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각 분야 끝판왕이 대거 등판했습니다. 저는 유튜브가 무의미하다는 프레임을 수정하고 온라인에서 고도의 집중과 몰입 상태를 더 잘 만들어 내겠다는 결심을 한 거예요. 본질에 집중하면 어떤 첨단기술이 개발돼도 떨 필요가 없습니다.
인스타그램도 그 해부터 꾸준히 해서 2,000개 넘는 게시물을 올렸고 2만 명이 넘는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죠. 저는 단순히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 적응한 게 아닙니다. 본질에 초점을 맞춰서 자연스럽게 적응해 왔던 거죠. 2019년 12월 정도 코로나가 터지고 많은 사람들이 공포에 떨었어요. 불안한 목소리로 언택트 시대를 부르짖었죠.
절체절명의 위기가 도래한 것처럼 위기감은 날로 고조됐습니다. 하지만 저는 똑같이 침착했어요. 침착함의 근거는 사람의 본질이 불변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반드시 고도의 집중과 몰입 상태가 된다. 이 강력한 진리 아래 저는 하던 일을 즐겁게 할 수 있었어요.
게다가 인간은 완전히 언택트가 될 수 없습니다. 누군가와 아무런 만남을 가지지 않는 건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심각한 고통이에요. 심지어 코로나가 창궐할 때도 잘 나가던 사람들은 잘 나갔습니다. 엄밀히 말해서 선택 대면의 시대였던 거죠. 내가 만나기 싫은 사람, 혹은 가치가 없는 만남은 코로나를 빌미로 거절했을 뿐이에요.
코로나가 심해서 만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이런 말을 한 번쯤 꺼내봤을 겁니다. 하지만 기필코 보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마스크를 10겹 쓰더라도 만나러 갔을 거예요. 그저 누구를 만날지 깐깐하게 고른 거죠.
저는 코로나 시국에 방역을 꼼꼼히 잘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센터로 계속 찾아주셨습니다. 그분들도 코로나를 조금 우려했을 수 있겠지만 수업의 가치가 코로나에 대한 두려움을 압도한 거죠. 본질에 집중하면 두려움 따위는 가볍게 사라집니다. 그리고 남들은 언택트 시대라고 우왕좌왕할 때 저는 바로 새로운 시도를 했어요. 클래스101, 클래스유 같은 다양한 플랫폼에 영상을 오픈했습니다. 이게 대박 나서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는 계기가 됐던 겁니다.
위기는 위협이 아니에요. 위기는 위대한 사람이 되는 기회입니다. 위기가 찾아오면 약자들은 쓰러지게 되고 강자만이 서 있게 돼요. 본질만 알면 누구나 강자로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챗GPT를 필두로 한 AI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삶의 많은 부분이 바뀌겠죠. 과거에 있던 직업 중 일부는 사라지고 새로운 직업이 탄생할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건 인간은 고도의 집중과 몰입 상태를 원하고 반드시 된다는 진리예요. 이 진리에 굳건히 서 있으면 폭풍의 눈에 있는 것처럼 명경지수의 자세로 복잡해 보이는 세상을 꿰뚫어 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