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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지방 흡입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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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신기한 역사가 있어요. 이거 보고 너무 깜짝 놀랐는데 정말 생각도 못 했어요. 지방 절제술의 역사입니다. 지방 절제라고도 하고 흡입이라고도 하죠. 뭐가 됐든 간에 바디 실루엣을 리모델링하려는 시도를 뜻하는 거예요. 그렇다면 이게 최초로 이루어진 게 언제쯤부터일까요?

그런데 사실은 이걸 알아보기 전에 먼저 확인해야 할 게 있어요. 비만에 대한 인식이 언제부터 부정적이었을까요? 명확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우리나라는 굉장히 오랫동안, 굉장히 최근까지 살집이 있는 사람, 비만 인구에 대해서 인식이 좋았어요. 게으르다기보다는 사회적으로 힘이 있고 지위가 있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었죠.

실제로 풍채가 큰 사람을 높은 사람으로 인식해요. 지금도 실험을 해보면 생각보다 마른 사람과 살집이 있는 사람을 보여주고 누가 더 직급이 높을 것 같냐고 하면 보통은 풍채가 있는 사람을 고릅니다. 그래서 우리 같은 소설가들은 캐릭터를 조형할 때 나이가 있고 살집이 있는 사람을 써놓으면 딱히 설명이 없어도 높은 사람으로 그냥 써먹을 수가 있어요.

그런데 서양은 어땠을까? 고대 유럽을 봐야 해요. 고대 유럽의 리즈 시절, 그리스로마 시대가 있죠. 그리스는 도시 국가, 폴리스예요. 사실 로마랑 비교하기에는 로마가 좀 기분이 상해요. 로마는 제국이거든요. 여러 나라와 여러 민족을 다스리고 있는 나라를 제국이라고 해요.

연합이 아니라 정말 점령해서 내 강역 안에 여러 나라가 있는 거죠. 최초의 제국은 페르시아가 있었습니다. 근데 페르시아는 기원전 6~7세기고 로마는 기원후의 제국이죠. 그래서 항해술도 많이 발전했고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도 있죠. 이 사람들이 제국 각지에서 생산되는 물품을 계속 로마로 유입시켜요.

로마가 너무 부유해져요. 상상도 못 할 정도로 부유해집니다. 로마를 다룬 미드나 영화 같은 거 보면 되게 퇴폐적이잖아요. 다 맞는 건 아니겠지만 기록을 보면 먹는 부분에 있어서 진짜 너무 퇴폐적이에요. 실제로 그런 기록이 있습니다. 씹다가 단물만 삼키고 뱉어요. 그런데 사실 삼키는 것도 재미있는 거거든요.

그러면 배가 부르다고 배를 치면 노예가 양동이를 들고 와요. 그럼, 테이블에 엎드립니다. 그럼, 목구멍 안쪽을, 전문 노예가 있어요. 불편하지 않게 긁어서 Gag reflex를 일으켜요. 그래서 음식을 양동이에 게워 냅니다. 그다음에 가져가서 버리면 다음 요리가 나와요.

근데 이 당시에 어떤 걸 먹었냐면 구운 기린의 목, 속 재료를 채운 코끼리 코 요리, 돼지 자궁 구이, 돌고래 미트볼, 사슴의 뇌, 공작새의 혀를 넣은 파이 등 이게 맛보다는 나 이렇게 잘 산다, 나 이렇게 구하기 힘든 동물도 가지고 요리할 수 있다는 걸 자랑하는 거죠. 식문화가 어마어마하게 발전하다 보니까 비만한 사람들이 로마에 많습니다.

그중에 소 아프로니우스 카이시아누스라는 사람이 있어요. 되게 전형적인 로마 귀족이에요. 먹는 거 진짜 좋아해요. 이 사람의 아버지 대아프로니우스는 변경백입니다. 로마 제국 강역의 변경에서 군사 사령관이에요. 전공도 진짜 많이 세웠고 이 사람이 로마에 올 때 개선식까지 열릴 정도예요. 대단한 귀족입니다.

그래서 아빠는 체격이 완전 전사 그 자체인데 아들은 뚱뚱해요. 먹는 것만 좋아해요. 그러니까 지금 같으면 ‘운동도 좀 하고 좀 덜 먹고 이렇게 해야 하지 않겠니?’ 하겠지만 이때는 대화가 아니고 아빠의 의견이 사실 전부죠. 아들은 아빠가 빼라 그러면 빼야 해요. 단기간에 빼기 힘들죠. 나도 노력하는데 안 빠지죠.

원래 비만이 빼기 힘든 거예요. 그 당시에는 더 빼기 힘들죠. 운동 원리나 식단에 대한 이해가 없으니까요. 그래서 아버지가 이거 한번 수술해 보자고 해요. 배에 있는 지방을 한번 제거를 해보자고요. 그런데 아들부터 하면 안 되니까, 하다가 잘못되면 안 되니까, 노예들을 시켜요. 마른 상태에서 하면 안 되니까 먹여요. 그다음에 했다는 기록도 있어요.

그런데 정사는 플리니우스가 대단한 사람이거든요. 최초의 백과사전을 쓴 사람이에요. 기원후 78년에 발표한 박물지에 소 아프로니우스가 받은 수술이 나옵니다. 지방 조직에 대해서도 말해요. ‘지방 조직은 아무 감각이 없고 혈관도 거의 없기에 이 수술이 가능하다.’ 이를 통해서 손 쓸 수 없던 체중 문제가 해결됐다는 기록이 남아있어요.

실제로 그 이후에도 아들의 행적이 나오는데 그 이후에 드라마틱하게 바뀝니다. 이 사람이 군인이 돼요. 이런 수술이 빈번하게는 아니더라도 여러 차례 이루어집니다. 더 자세한 기록이 나와요. 로마의 강역이 유대 지방도 있잖아요. 유대 지방엔 랍비들, 성경을 가르치는 사람들은 완전 상류층이거든요. 그 사람 중에 되게 뚱뚱한 사람이 있었나 봐요.

엘르아잘이라는 사람이 ‘나도 수술받아야 하겠네?’라고 해서 대리석 방에서 복부를 개방하고 지방을 여러 양동이 분량만큼 제거했다고 해요. 그다음에 엘르아잘의 복부가 크게 줄어들었고 판단을 내릴 때 직감에 의지하는 일이 줄고 분별력이 좋아졌대요. 성행위도 더 빈번하게 했던 것 같다는 기록이 있어요.

그러고 나서 몇 개월 뒤에 사망하긴 했는데 기록에는 이게 배를 다 연 건지는 알 수 없어요. 기록을 보면 당시에 로마인들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던 히포크라테스가 복부를 절개하면 죽는다, 그런데 복강을 열면 진짜로 죽는다고 말을 합니다. 사실 복강을 여는 건 아마 금기였을 거예요.

그리고 배 안은 굉장히 미지의 영역입니다. 배 안이 어떻게 돼 있는지 사실 사람들이 잘 몰라요. 그러니까 아마도 피하지방을 제거하는 것과 복부지방 제거술이었을 것이라는 추정이 있어요. 그런데 이게 더 발전을 못 해요. 효과가 굉장히 좋았지만요. 소 아프로니우스는 아프리카 원정군 사령관이 돼요. 집정관까지 해요.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보면 아프리카 갔으니까, 로마처럼 먹지 못했겠죠. 한 번 제거한 지방이 생활 습관까지 개선이 되니까 건강해져서 승승장구한 거예요. 그런데 이 이후에 로마가 망한 다음에 중세 시대가 열리죠. 이때부터는 먹고살기가 힘들어요. 그리고 의학 수준도 떨어집니다.

로마는 그래도 포도주로 닦고 나름대로 소독도 하고 했어요. 그런데 중세 시대는 썩히잖아요. 배 열면 바로 죽어요. 그리고 아사 사건만 하면 중세 시대에 유명한 기근만 해도 어마어마하게 많고 심지어 이제는 정설이 된 12세기쯤에 지구에 조금 약한 빙하기가 왔었던 것 같다고 하죠. 몽고족이 당시에 원나라를 세웠잖아요. 그때 그 사람들이 있던 고비 사막이 초원이 됐어요.

지구가 시원해지니까 초원이 된 거죠. 그래서 그 당시에 말이 한 10~15배가 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전 세계를 휩쓸었을 수 있었다는 건데 그런 이유로 그 당시에 기근이 너무 많아요. 비만에 대해서는 딱히 안 좋게 볼 이유가 없어요. 물론 기독교에서 과식에 대한 경계는 있습니다. 죄의식이 있어요. 너무 탐하지 말라고요. 그런데 날씬해야 한다는 강박은 없었어요. 눈앞에서 꼴 보기 싫게 너무 많이 먹지만 말라는 정도죠.

오히려 영주 같은 경우에는 연회 열었을 때 내가 지금 되게 건재하고 나 아직도 힘세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많이 먹어야 하는 경우가 더 많았어요. 부하들이 보면서 저 양반 아직 잘 먹는다며 더 충성해야겠다고 생각하게요.

그렇기 때문에 비만에 대해서 문제 의식이 전혀 없다가 19세기부터 인식이 변합니다. 특히 미국이 그랬어요. 미국은 정말 축복받은 땅인 게 씨를 뿌리면 그냥 막 자라요. 아무것도 안 했는데 막 자라요. 심지어 이런 기록도 있더라고요. 추수하고 집에 가는 길에 좀 흘렸더니 그다음에 보면 내가 지나갔던 길이 밭이 돼 있고 그렇대요.

땅이 너무 비옥하고 게다가 동물도 다 크게 자라고 다 잘 자라요. 많이 먹을 수 있게 된 거예요. 신문에서도 비만에 대한 약이 나옵니다. 다 사기꾼이에요. 광고가 나오기 시작한 게 1890년이에요. 너무 잘 먹고 잘살아서요. 그리고 공용 체중계가 놓이기 시작한 게 1891년이고 가정용 체중계가 팔리기 시작한 게 1913년이죠.

그러니까 딱 19세기말부터 ‘아, 우리가 너무 살이 찌면 안 되겠다.’ 비만에 대해서 경계심이 생긴 거예요. 이걸 더 가속화시킨 게 1차 세계대전입니다. 전쟁이 나서 다 힘들어요. 근데 살집이 있으면 우리 전쟁 나서 다 힘든데 혼자 뭐 숨겨 놓고 먹는다며 시선이 안 좋아요. 그러니까 비만인들의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져요.

그래서 1921년부터 비만에 대한 치료가 시도가 되거든요. 환자가 원래 댄서였어요. 무게가 늘어서 힘든 거죠. 그래서 다리에 지방을 제거해 주겠다는 의사가 나타나요. 양쪽 종아리 부분에 세로로 길게 절개선을 쭉 넣습니다. 다리는 사실, 특히 종아리는 지방 제거에 유리한 조직이 아니에요. 종아리는 근육이 대부분이거든요.

지방 비율이 적은데 이걸 잘 몰라서 그냥 째 버렸어요. 이게 일단 첫 번째 실수예요. 그리고 두 번째 실수는 지방을 절제해야 하는데 피부도 같이 들어냅니다. 명확한 기록은 안 나오는데 이후에도 동일한 실수를 하는 거 보면 이 당시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이비인후과에서 두경부암 수술을 하면 재건술을 하거든요. 허벅지나 팔뚝에서 피부를 떼서 재건을 해주는데 여기서 피부가 제거되면 이 피부가 당기는 장력이 엄청나게 강해져서 이걸 어떻게든 예방하는 게 관건이에요. 안 그러면 눌려서 컴파트먼트 신드롬이 옵니다. 그러면 안쪽이 괴사 하거든요.

이 환자의 경우에는 전혀 숙달되지 않은 의사가 연습도 한 번도 안 해본 상태에서 종아리를 절개하고 피부를 같이 절제했어요. 그래서 너무 강력한 힘으로 당겨서 꿰매야 됐었어요. 여기에 컴파트먼트 신드롬이 생겨서 이 환자는 결국 괴사가 진행되고 양쪽 다리를 절단합니다.

그래서 주류 의학계에서는 ‘야, 이거 하면 안 되는 수술이다.’라는 인식이 팽배해지지만, 이 사이에도 당연히 피부를 동반한 절제술이 배나 허벅지에서 시도가 계속됩니다. 결과는 사망 또는 절단. 이러다가 새로운 시도가 이루어지게 되는 게 50년 지나고 나서죠.

1972년, 50년이 지난 후에 독일 의사 슈르데가 새로운 걸 고안해요. 자꾸 칼로 째서 절개를 하니까 위험한 것 같다며 배에 구멍을 내고 큐렛을 넣고 긁어내는 기구를 넣고 지방을 막 긁어냅니다. 지방은 확실히 혈관이 적기는 해요. 그런데 없진 않아요.

열어서 하면 모든 걸 보고 하니까 오히려 이런 면에서는 안전했는데 구멍을 넣고 내시경도 없고 아무것도 없이 막 긁으면 마취는 했지만, 너무 오래 걸리고 지방색전도 생기고 출혈도 생기고 사망하거나 합병증이 생기는 거예요. 그런데 이게 그래도 전에 하던 절제보다는 확실히 낫거든요. 개선을 좀 해 보자고 해서 1976년에 카셀링이라는 의사가 저전력 흡입기에 연결된 이중 블레이드 큐렛을 도입합니다.

이걸 딱 넣으니까 훨씬 빨라요. 근데 끝이 날카로워요. 하다 보면 구멍이 나는 경우도 있고, 여전히 혈관 같은 거 건드리면 출혈이나 이런 게 생기는 거예요. 여전히 합병증은 되게 많아요. 이게 결정적으로 발달하게 된 게 이 말단지방에 식염수나 히알루로니다아제, 수압으로 이 아래랑 지방이랑 딱 분리하는 거예요. 그러면 물에 의해서 지방층의 혈관 다발들이 딱 보여요. 훨씬 잘 보여요. 이렇게 해서 수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죠.

원래는 절제술이었다가 이때부터 흡입하는 거예요. 절제술이었다가 이제는 개념이 바뀌어서 진공 펌프를 이용해서 흡입하고 주사기를 이용해서 지방 흡입도 하고 초음파랑 같이 하기도 하고 레이저를 쓰기도 하고 지금의 안전한 지방 흡입술이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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