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뉴 SM7│2011-2014]
그 사이 국내 준대형차 시장은 분위기가 크게 달라졌습니다. 기아 K7, GM대우 알페온이 가세했고 여기에 그랜저까지 풀체인지를 거치면서 볼륨이 상당히 커졌죠. SM7의 후속 모델을 준비해야 했던 르노삼성의 부담감도 나날이 커져만 갔습니다. 여기에 새로운 SM5와 SM7이 닛산 아닌 르노 차량을 베이스로 만들어진다는 이야기가 전해졌고 소비자들은 슬슬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프랑스 르노는 소형차와 상용차 그리고 디젤 엔진 분야에서는 여느 유럽 메이커보다 뛰어났지만, 중·대형 세단에 대한 평가는 상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이었죠. 실제로도 먼저 출시된 3세대 SM5가 빙과류(죠스바)에 비유되면서 기대 이하의 성과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2세대 SM7은 2011년 3월, 서울모터쇼를 통해 선보인 컨셉트카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양산형 모델을 기반으로 꾸며진 ‘쇼카’에 가까웠는데 전작 뉴아트에서는 어딘가 부자연스러웠던 곡선미를 제대로 살리면서도 준대형차의 웅장함이 돋보이는 빼어난 디자인이었죠. 수입차 시장이 빠르게 확장되면서 ‘유러피언 디자인’이 익숙해진 소비자에게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모습이었어요.
르노 베이스에 대한 소비자의 불안감도 일정 부분 해소됐고, 준대형차 시장에서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라는 전망 속에 소비자의 기대감은 잔뜩 높아졌습니다. 그런데 얼마 뒤 SM7의 양산형 모델이 카탈로그 촬영 중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합니다. 사진 속에는 신형 그랜저를 씹어 먹고 준대형차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킬 새로운 SM7의 모습이 아닌 갓 잡힌 숭어 한 마리가 펄떡이고 있었죠. 이를 본 소비자는 제네시스처럼 테스트용 프로토타입일 거라며, ‘스파이샷이 예쁜 차는 역사상 많지 않았다’며 애써 한 줄기 희망을 가졌지만 결국 그해 8월에 제대로 공개된 양산형 모델은 유출된 사진과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비록 컨셉트카가 높은 기대감에 부응하지는 못했지만, 구석구석 살펴본 2세대 ‘올 뉴 SM7‘은 나름의 매력이 돋보였습니다. 일단 컨셉트카에서도 드러났던 거대한 차체는 그대로 유지해서 5m에 달하는 전장은 동급 그랜저와 K7을 압도할 정도로 컸습니다. 한 등급 위로 분류되던 제네시스보다도 길었습니다. 전작에서 지적받던 좁은 전폭도 크게 늘려 플래그십에 걸맞은 풍채를 자랑했죠. 휠 베이스도 크게 늘려 SM5의 고급형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도 지워냈고요.
넓은 면적의 그릴 디자인 / 사이즈를 줄인 램프 / 부드럽게 떨어지는 루프라인 등 당시 트렌드를 반영한 외관은 과한 장식을 제거하면서 전작과 느낌이 크게 달라졌습니다. 하지만 전작 뉴아트의 디테일을 일부 이식해 후속이라는 느낌을 전달했습니다. 스티어링 휠 방향에 따라 움직이는 ‘어댑티드 프로젝션 헤드램프’, 바람개비 형태의 18인치 휠, 국산 차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듀얼 트윈 머플러’를 적용했습니다. 각이 살아 있던 전작의 경직되고 보수적인 느낌에서 탈피해 신세대의 유연함을 전달한 디자인이었죠.
다만 긴 프론트 오버행은 여전했고 컨셉트카에서 가로로 길게 이어져 안정감을 줬던 LED 리어램프는 끝부분만 살려 다소 옹졸해졌습니다.
특히 양옆으로 떡 벌어진 디자인으로 공격적인 인상을 만들어냈던 전면 범퍼가 흔하디흔한 모양으로 바뀌면서 가벼운 인상이 된 것이 가장 큰 아쉬움이었죠. 그게 너무 컸던 나머지, 출시 초 동호회와 애프터마켓에서 에어댐을 새로 제작해 컨셉트카의 디자인을 재현하려고 시도하기도 했어요. 실내는 이전 수평 기조의 대칭형 구조에서 운전자 중심의 구조로 바뀌었습니다. 계기판과 인포테인먼트 모니터를 벤츠 S클래스 등에서 사용하던 더블 패널 형태로 구성하면서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했고, 번쩍이던 우드 그레인 활용을 최대한 절제하여 도시 느낌을 강하게 주었죠.
사각지대 경고 장치 / 아이나비 순정 내비게이션 그리고 대형차에서나 볼 수 있었던 인포테인먼트 조그 다이얼 / 운전석 마사지 시트를 장착해 안전성과 편의성을 높였습니다. 당시 트렌드였던 ‘웰빙’ 키워드에 맞춰 새로운 나파 가죽 시트 / 항공기형 헤드 레스트 / 차량 내장형 방향제 ‘퍼퓸 디퓨저’를 최초로 선보여 감성 품질을 높인 것도 ‘감성 브랜드’ 르노삼성다운 부분이었습니다. 다만 기어 레버가 P에 놓여 있으면 손이 들어갈 공간이 부족해 공조 장치를 조작하기가 매우 불편했는데요. 써보고 만든 건가 싶은 정도였어요.
커진 차체만큼이나 실내 공간도 훨씬 쾌적해졌습니다. 특히 뒷좌석이 크게 넓어졌고 전작의 전동식 리클라이닝 시트와 후방 블라인드, 여기에 뒷좌석만 별도로 조절할 수 있는 독립식 공조 장치까지 추가되면서 편의성도 유지했죠. 이제 쇼퍼 드리븐으로 써도 무리 없는 수준이 되었습니다. 파노라마 썬루프를 더해 개방감도 높였지만 뒷좌석 모니터는 빼버렸어요.
전반적으로 3세대 SM5가 베이스 모델인 ‘라구나’의 인테리어를 거의 그대로 이식하면서 수평 기조를 유지한 것과 완벽하게 차별화된 모습이었는데요. 전작의 인테리어가 워낙 뛰어나서인지 신형으로 오면서 딱히 좋아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특히 신형 SM5의 수출용 모델 ‘르노 래티튜드’의 유럽 사양에 동일한 인테리어를 사용한다는 게 알려지면서 기껏 만들어 놓은 SM5와의 차별화 이미지를 일부 깎아 먹기도 했죠.
파워트레인은 출력을 개선한 VQ 2.5L, 3.5L 가솔린과 6단 자동 변속기를 맞물렸고, 여전히 6기통을 유지해 4기통 엔진을 주력으로 밀던 경쟁차에 비해 ‘주행 감성’면에서 앞섰습니다. 올 뉴 SM7 역시 3세대 SM5 마찬가지로 라구나 베이스에 새로 개발된 차체를 썼는데요. 중형차의 안락한 승차감을 만들어 내기에 오리지널 라구나의 ‘토션빔 후륜 구조’는 불리했기 때문에 라구나 차체에 ‘티아나의 멀티 링크 후미’를 이어 붙인 독특한 혼종 구조였죠.
그 덕분에 1세대보다 더 부드러워진 승차감은 르노삼성 특유의 정숙성과 부드러운 질감, 뛰어난 NVH와 궁합을 이루면서 안락한 패밀리카를 찾던 중장년 소비자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죠. 다만 수입차 시장이 확대되면서 독일 차 중심의 탄탄함에 물들어가던 일부 소비자들에게는 호불호가 갈리기도 했습니다. 오히려 전작이 가지고 있던 ‘젊은 감각’, ‘탄탄한 스포츠 세단’의 이미지는 K7이 이어버렸고 아버지 차 이미지만 덩그러니 남아버린 셈이었어요.
한편 준대형 최초로 ‘패들 쉬프트’가 적용되기도 했는데요. 차량의 성격과 세팅 자체가 스포츠 드라이빙과 동떨어진 것은 물론, 스튜어링 휠 뒤에 더듬이처럼 뻗어 나온 모양새 때문에 놀림감이 되기도 했습니다. 탑기어 코리아에 출연한 김진표 선수가 패들 쉬프트에 대해 지적하면서 ‘나 여기 있어요! 하는 것 같다’ 말했던 그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도네요.
올 뉴 SM7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역시 뜨뜻미지근했습니다. 사전 계약 한 달간 4000여 대, 첫 달 판매량 3,200대를 넘기면서 순조롭게 출발하는 듯했으나, 이후 지속적인 판매량 하락으로 결국 1천대 미만의 실적을 보이면서 사실상 실패하고 말았죠. 차량을 구매해 타 보고 마음에 안 들면 전액 환불 가능하다는 파격 마케팅까지 동원했는데도 판매량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어요.
여담으로 해외에는 ‘르노 탈리스만’이라는 이름으로 수출되어 중국과 중동 시장에 르노삼성 얼굴마담으로 출시됐는데요. 인기가 없는 건 국내와 마찬가지였습니다. ‘탈리스만’이라는 이름 익숙하시죠? 훗날 SM6가 이어받게 됩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에서는 구형 탈리스만과 신형 탈리스만이 몇 년 동안 같이 팔린 셈이네요.
심각한 결함은 없었지만 브레이크 디스크에 ‘열변형’이 주기적으로 일어났습니다. 또한 고속 주행 환경에서 제동 시 스티어링 휠이 덜덜 떨리는 증세가 발생하거나, 전기 유압식 스티어링 시스템 중 파워 펌프의 고장으로 핸들이 급격하게 무거워지는 등 자잘한 고장이 발생해 대부분의 오너가 불편을 겪기도 했습니다. 중고차 사실 분은 참고하시면 되겠네요.
[SM7 노바│2014-2020]
2014년에는 외관 디자인을 수정하고 상품성을 높인 페이스리프트 모델 ‘SM7 노바’가 출시됐습니다. 전면부의 변화가 두드러졌는데, 가로로 길게 배치된 LED 주간 주행등(DRL) 덕분에 잊고 있었던 컨셉트카와 이제서야 느낌이 비슷해졌습니다. 여기에 새로운 외장 컬러와 불판 형태의 18인치 휠을 적용해 약간의 가벼움이 느껴졌던 이전 모델에 비해 대형차다운 중후함이 더해졌죠. 실내 역시 변화는 크지 않았지만 1열 통풍 시트가 추가되었습니다. 기존의 아이나비 순정 내비게이션을 T-Map으로 교체, ‘어라운드 뷰’를 악세사리로 제공하는 등 소비자 요구를 반영해 상품성을 높였습니다.
디젤이 추가될 것이라 기대했던 소비자들의 예상과는 달리 파워트레인은 변함이 없었고, 대신 1년 후 2015년 2.0L LPe 모델이 추가됐습니다. 프리미엄 마케팅을 이끌던 르노삼성의 이미지를 떠올리면 꽤 뜬금없는 염가형 모델의 등장이었어요. 부진한 자가용 수요를 영업용으로 메우겠다는 눈물겨운 방향 전환이었고, 다행히 경쟁차의 고배기량 LPG 모델과 비교했을 때 나름의 가성비가 돋보이면서 판매량을 소폭 끌어올리기도 했죠.
이후 택시까지 전격 출시하면서 고급 세단의 이미지를 내려놓고 완전한 보급형 준대형 세단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이때만 해도 르노삼성만의 특장점이었던 ‘도넛형 LPG 봄베’를 장착해 트렁크 공간을 온전히 쓸 수 있는 것도 꽤 돋보이는 장점이었어요.
2세대 SM7은 한국 소비자의 입맛을 많이 반영했으며, 모기업의 차를 받아다가 포장만 바꿔 판다는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 모델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르노삼성만의 오리지널리티가 확실히 드러났던 모델이었습니다. 여러모로 의미가 컸죠. 어른들의 사정에 의해 르노 노선을 택한 것이 종국에는 잘못된 길이었다는 게 결과로 드러나면서 소비자의 기억 속에 전편보다 못한 속편으로 남아버리고 말았습니다. 먹어본 사람이 맛을 안다고, 확실히 세단도 만들던 사람들이 만들어야 잘 만드는 거죠.
그 사이 소비자의 입맛은 높아져만 갔고, SM7은 세대를 거듭할수록 상품성이 눈에 띄게 상승하는 경쟁 모델에 비해 빠르게 뒤처져 버렸습니다. 애초에 본사가 관심을 두지 않았던 차급이었던 데다 판매량도 적어 지속적인 개발과 지원이 이루어질 리도 만무했죠. 국소 메이커인 르노삼성 입장에서도 소비자의 지속적인 요구를 빠르게 반영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결국 15년 동안 르노삼성의 플래그십으로 군림해온 SM7은 함께 죽 쑤던 SM5와 함께 실질적인 SM5의 후속이자 고급 중형차를 표방한 SM6에 자리를 넘기고 2020년 쓸쓸히 단종됐습니다. 차종은 다르지만, 르노의 고급형 MPV ‘에스파스’가 이 자리를 대신할 거라는 예측이 있었는데 이 역시 보기 좋게 빗나가버렸죠.
지금까지 등장과 함께 그랜저를 위협하면서 국내 준대형차 시장에 새바람을 일으켰던 르노삼성 SM7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국내 4개 회사가 참전해 중형 세단 못지않게 선택지가 충만했던 준대형차 시장이 지금은 많이 협소해진 것 같아 아쉬움이 남네요.
전편보다 나은 속편을 보여 주지 못했던 SM7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같은 회사의 SUV ‘QM6’는 전편을 뛰어넘는 속편을 선보였으니 르노삼성 입장에서는 그나마 위안이 됐겠네요. 한국 닛산이 철수한 지금, 다시금 닛산의 세단을 베이스로 한국 소비자의 입맛에 맞는 새로운 준대형차가 나와도 재밌을 것 같아요. 물론 가능성은 거의 없겠지만 고객의 입장에서는 선택지가 하나라도 늘어나는 편이 좋으니까요.
이제 무거운 삼성의 이름을 내려놓고 ‘르노’ 브랜드로 새롭게 시작한다고 하죠. 앞으로 어떤 차가 르노의 로고를 달고 우리나라 도로 위를 달릴지 기대되네요. 과연 르노 브랜드로 출시될 새로운 준대형 세단을 만나 볼 수 있을까요? 다음에도 흥미로운 이야기로 찾아오겠습니다. ‘사소하지만 궁금한 자동차 이야기’ 멜론머스크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