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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말을 들어도 내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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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지금 공덕에서 환자분들을 진료하고 있는 정신과 전문의 김총기라고 합니다. 상대방 기분 생각하지 못하고 막말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죠. 이런 사람들의 특징에 대해 알아볼게요. 일단 기본적으로 세 가지 정도 분류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첫 번째는 상대가 상처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의도적으로 상대를 공격하는 사람 혹은 내가 지금 하는 말 때문에 상처를 받을 거라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으면서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자기 생각이나 감정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그냥 거르지 않고 배려 없이 이야기하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막말러들이죠. 세 번째는 정말 이게 상대방에게 상처가 될 거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실언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정신과에 내원하시는 환자분들을 보기 때문에 막말을 주로 해서 오시는 분들보다는 막말을 들어서 오시는 분들이 많거든요. 그분들이 항상 ‘저 사람이 나한테 왜 저런 막말을 했을까? 진짜 나 엿 먹으라고 저런 말을 했나? 아니면 진짜로 나를 위해서 한 말인데 내가 상처를 받은 건가?’ 고민하시죠. 그래서 어떤 건지 알아내려고 항상 마음고생을 많이 하시는데 사실 그거를 구분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긴 합니다.

중요한 건 저 말이 막말이든 아니든 내가 상처를 받았다는 겁니다. 내가 상처받았으면 그건 나한테는 막말인 거예요. 그래서 저는 항상 환자분들한테도 이야기하고 이 주제를 하면서도 이야기해 드리고 싶은 핵심은 상대방이 어떤 의도로 이야기했는지를 고민하기보다 내가 그 말 때문에 상처받았다는 것을 좀 더 들여다볼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환자분들께서 그러거든요. ‘저 사람이 왜 나한테 저렇게 막말하지? 진짜 그 사람이 못된 사람일까? 아니면 별말 아닌데 내가 자존감이 낮아서 이렇게 막말로 받아들이는 건가?’ 이렇게 생각하면서 사실은 그 생각을 끌어안고 점점 더 한 번 들었던 막말을 스스로 안에서 곱씹고 되새기면서 상처를 반복하게 되거든요.

저는 그 과정이 막말 앞에서 무너져 가는 단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중요한 건 막말이 아니라 내가 받은 상처라는 점을 먼저 이야기해 드리고 싶습니다. 만약에 상대방이 나에게 막말하고 나에게 상처 되는 이야기했다면 대부분의 경우는 그 상대방을 본인 스스로가 처리하기 어려운 불편한 감정을 나한테 던진 거로 생각하는 게 맞습니다.

그렇다면 상대가 화가 났거나 아니면 상대가 본인이 자격지심을 느꼈거나 아니면 상대가 억울하거나 다른 일 때문에 예민하거나 해서 나한테 막말이나 상처가 되는 이야기했다면 그거는 본인이 이 감정을 어떻게 처리할지를 몰라서 대신 느끼라고 이야기하는 거죠.

그래서 내가 화가 났는데 이 화를 상대방한테 쏟아내고 나면 상대가 그 분노 때문에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무의식적으로 자기 분노가 어느 정도 해소되는 것 같은 느낌을 느끼게 될 수 있다는 거죠. 다시 말하면 상대의 분노를 내가 대신 처리해 주고 있는 거라고 볼 수 있겠죠.

상대가 어떤 이야기를 했을 때 내가 굉장히 불편하고 힘들다면 이게 내 안에서 온 건지 상대 때문에 온 건지를 구분하는 게 필요하고 그러려면 상대의 의도를 생각할 것이 아니라 지금 나의 감정이 어떠한가를 들여다보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겁니다. 일단 아프다, 상처받았다고 인지하는 게 그 첫 번째가 되겠죠.

자신의 감정을 적절하게 다루거나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막말에 끌려가게 되는 거로 생각합니다. 책임을 따진다고 한다면 막말을 한 사람이 책임이 있죠. 내가 상처받았으니까 때린 사람 잘못한 거지 맞은 사람이 잘못한 건 아닙니다.

그런데 이야기하는 게 소송을 하기 위한 건 아니잖아요. 그렇다면 어떻게 갈등을 해결할 것인가를 고민할 때는 내가 받은 상처를 내가 어떻게 지금 다루고 있는가가 더 중요한데 그거를 잘하지 못할 때 이런 굴레에 들어간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사실 누가 나한테 막말을 했어요. 그러면 상처가 됩니다. 때리면 아픈 건 굉장히 당연해요.

그런데 막말을 들어서 상처받는 순간은 그렇게 길지 않아요. 보통은 한순간에 지나가고 만약에 상사가 나를 불러 놓고 집요하게 막말하면서 꾸중한다고 하더라도 몇 시간을 내리 막말하는 경우는 사실 흔치 않습니다.

그런데 그 막말에 대해서 계속 생각하고 들여다보고 하면서 그것이 다시 더 상처가 되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은 끊임이 없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조금 더 빨리 인지하고 알아차리지 못하게 될수록 그 감정이 더 끌려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상처가 되는 말을 들으면 분명히 부정적인 감정이 치솟거든요.

그리고 그런 감정은 대부분 모멸감, 수치심, 모욕감 등의 감정들을 많이 느끼게 되죠. 억울함이나 부담감 같은 것들요. 제가 열거한 대부분의 부정적인 감정들은 모두 사실 분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런 분노 혹은 다른 부정적인 감정들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빨리 인지하고 알아차리지 못하면 그 감정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조종하게 됩니다.

내가 그 감정에 지배당하게 되는 거죠. 내가 알아차리지 못한다고 감정이 사라지는 건 절대 아니에요. 오히려 감정은 내가 그 감정을 인지하고 알아차릴수록 손아귀에 들어옵니다.

그럼, 그 분노에 조종당하면 분노에 휩싸이면 상대방에게 어떻게 복수할까 혹은 내가 받은 이 상처를 어떻게 돌려줄까라고 생각하면서 점점 더 스스로 지치게 되죠. 혹은 상대방에게 분풀이하지 못하니까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 가서 화풀이하는 것처럼 다른 엄한 사람한테 상처를 또 전달해 주게 될 수도 있습니다. 혹은 내가 화가 났다는 사실조차도 인지하지 못하고 다른 어떤 신체적인 증상이나 공황 발작, 불안이라는 다른 형태의 감정으로 드러나게 될 수도 있고요.

아니면 아예 방향을 바꿔서 나를 향한 자책과 분노로 돌아오게 될 수도 있습니다. ‘역시 나는 진짜 문제가 있는 사람이구나. 저런 말을 들을 정도로 형편없는 사람이구나.’라고 하면서 자책하는 경우도 있죠. 근데 사실 결국은 이 모든 형태가 그 상처로 인해서 발생한 부정적 감정을 내가 제대로 다루지 못했기 때문에 조종당하고 지배당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가끔 이 감정을 인지하지 못하는 이유는 감정을 느끼는 것과 그 감정대로 따라서 행동하는 것의 차이를 잘 인식하지 못하거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즉, 화가 나는 것과 화를 내는 것은 분명히 다릅니다.

예를 들어서 화를 낼 수 없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교수님이나 직장 상사나 내 마음대로 화를 낼 수 없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한테 화가 날 수는 있거든요. 그리고 화가 난다고 믿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죠. 예를 들어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나 가족이라면 그 사람한테 화가 난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고 화를 내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내가 어떻게 하고 싶은지에 따라서 자신의 감정을 받아들이게 되거든요. 나는 화를 내고 싶지 않으니까, 화가 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당연한 분노를 알아차리지 못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저는 항상 먼저 말씀드리는 거는 어떤 감정이 치솟거나 발생하는 거는 우리 의도나 노력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겁니다.

내가 화내고 싶지 않다고 해서 화가 나지 않는 게 아니에요. 그러면 분노를 느끼는 것과 그 분노에 지배당해서 행동하는 것의 차이를 분리할 수 있어야 감정을 인지하게 되는 거로 생각해요. 이 감정을 찾아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나 자신의 감정을 한번 표현해 보려고 하는 겁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불편하다, 찝찝하다, 불쾌하다, 짜증난다 같은 지금 내 상태에 대한 호불호는 쉽게 캐치합니다. 그거는 어렵지 않아요. 그런데 그런 호불호가 느껴질 때 이게 어떤 감정 때문인지를 들여다보려고 노력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누구랑 대화했는데 기분이 나쁘면 어떤 점 때문에 기분이 나쁜지 혹은 어떤 부정적인 감정이 느껴진 건지를 확인하는 거죠.

감정에는 이름들이 다 많이 있거든요. 분노, 모멸감, 우울, 서운함 등 여러 가지 감정들이 있는데 지금 느끼는 감정이 어떤 감정인지를 생각해 보는 게 그거를 알아차리고 인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한테 직접적으로 상처가 되는 말을 들었다고 해도 그 상처에 대해 생각하거나 그 말의 내용에 대해 생각하기에 앞서서 지금 내가 느끼는 고통에 대해서 한번 들여다봐야 한다는 겁니다. 어떤 감정 때문에 아플까를 들여다봐야 그다음 스텝으로 넘어갈 수 있는 거죠. 감정을 인지했다면 그다음에 내가 어떻게 이 감정에 따라 행동할지를 선택하고 생각해 볼 여유가 생긴 거로 생각합니다.

사실은 감정에서 한 발짝 떨어져 나왔다는 거죠. 떨어져 나와야 바라볼 수 있어요. 그다음에 감정에 따른 행동을 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는 건 물론 조금 어려울 수 있습니다.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났지만, 화를 표현하지 말자고 노력하는 것도 물론 쉽지 않을 수 있지만 화를 느끼지 않으려고 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가능한 부분이라는 이야기를 드리는 겁니다.

가능함과 불가능함, 어려움과 쉬움은 아주 다른 문제거든요. 감정을 느끼지 않고 감정을 삭제하거나 배제하는 건 가능, 불가능의 영역이에요. 저는 그게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하는 거고요. 불가능한 것을 위해서 노력하기 시작하면 결국 지칠 수밖에 없습니다.

감정을 인지하고 파악했을 때 그 감정에 따라 행동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건 쉽냐, 어렵냐의 문제입니다. 그러면 내가 무언가를 위해서 노력할 수 있는 에너지가 있다면 가능한 것에 노력하는 것이 더 낫죠. 사실 그 부분은 어느 정도의 훈련과 연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자기감정에 따라서 휘둘리지 않고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예를 들어서 지금 잠깐 심장을 멈춰 보실 수 있나요? 아니면 꼬르륵 소리 나게 해 보실 수 있나요? 불가능하죠. 그거는 우리가 무언가를 결정하고 판단하는 영역이 위장과 내장을 담당하는 신경을 담당하는 영역과 이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거든요.

마찬가지로 어떤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고 하거나 어떤 감정을 사라지게 하려고 애를 쓰는 거는 심장을 멈추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감정을 인지하고 나면 어떤 행동을 할 건지는 가능하다고 했잖아요. 그러면 어떤 행동을 할지에 대해서 감정이 주도적으로 활성화가 되면 생각을 담당하는 뇌가 혈류량이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생각이 행동을 조절하는 힘은 약해지고 감정이 모든 것을 지배해 버리는 거죠.

그렇지만 내가 감정을 인지하기 시작하면 그다음부터는 반대로 혈류량이 역전되어서 이 감정을 담당하는 뇌의 활성이 점점 떨어지기 시작해요. 그러면 내가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에 대한 주도권과 통제권을 조금씩 가져올 수 있게 되는 거죠.

어떻게 행동할 건지를 결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상대방과의 관계가 그렇게 의미 있지 않다면 굳이 크게 노력할 필요가 없죠. 그런데 상대방이 나에게 상처를 줬을 때 내가 어떻게 행동하는지가 중요한 관계라면 그 관계에 대해서 들여다볼 수 있겠죠.관계의 의미와 나의 행동이 불러올 결과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거죠.

그럼, 조금 더 행동에 통제권을 가져올 수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아까 상처를 주는 사람은 자신이 해결하지 못하는 감정을 던지는 거라고 했잖아요. 던지면 아플 수밖에 없습니다. 근데 아플 때 상대방이 던진 그 감정을 내가 끙끙거리면서 들고 있을 것인가 아프지만 내려놓을 것인가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거죠.

막말하는 사람이 있을 때 분노가 치밀어 오르지만 멋지게 우아하게 웃으면서 돌려주고 싶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세요. 저는 일단 무례하게 구는 상대방에게 왜 웃으면서 대처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는데 아마 그렇게 이야기하시는 분들의 마음속에는 누군가가 나에게 무례하게 굴거나 막말해도 상처받지 않는 방법을 알려달라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상처받고 안 받고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물론 상처받지 않으면 너무너무 좋겠지만 불가능합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고군분투하지만, 오히려 내가 상처받았다는 것을 좀 더 명확하고 분명하게 인식하고 인정할 수 있어야 그 상처로부터 좀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막말하는 사람에 대해서 고민하는 시간과 에너지를 아껴서 나의 상처를 들여다보고 다루려고 노력하는 게 좀 더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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