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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잃은 아픔을 이겨내고 같은 길을 걷는 지게차 청년

30대자영업자이야기 30대자영업자 자영업 창업 지게차 중장비 청년

안녕하세요. 중장비 운전을 하는 95년생 27살입니다. 원래 공사 시작이 아침 7시부터 시작하는데 아무래도 공사를 시작하면서 자제가 오니까 지게차를 그때부터 부르는 거죠. 먼저 가서 자제를 내려야 사람들이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아침이 가장 피크타임이고 점점 줄어들어요.

그리고 점심 먹고 나서 다시 또 자재들이 들어오는 데도 있고 또 떠나보내야 하는 데는 가서 실어줘야 하고요. 계속 장비 일은 대기하고 있어야 해요. 돈은 가서 건당 5만 원씩 받습니다. 원래는 40분 기준으로 6만 원씩 받는데 여기는 단골들이어서 깎아줘서 5만 원씩 받고 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 공부를 잘 못했어요. 친구들은 다 대학교 가는데 저는 막상 할 게 없는 거예요. 그래서 고등학교 졸업식 날 친구들은 다 사진 찍고 졸업식 즐기잖아요. 저는 경기인력개발원이라고 나라에서 국비 지원해 주고 기술 양성해 주는 데가 되게 많더라고요.

저는 졸업식 날 하다가 면접 보러 가서 중장비 국비 지원에 붙어서 운 좋게 거기서 20살 1년 동안 자격증 따면서 하다 보니까 저는 할 게 이거밖에 없는 거예요. 그래서 계속 이쪽 길로 걸어가고 있습니다. 보통 일 없을 때는 거의 집에서 쉬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름이랑 11월까지 너무 바빠서 지금은 조금씩 쉬면서 한다는 생각으로 하는데 그래도 계속 일은 있네요.

남자 혼자 사는 집이어서 더러울 수도 있어요. 상황이 안 좋아서 혼자 살게 됐어요. 아무래도 음식을 안 해 먹다 보니까 별거 없어요. 그냥 다 배달시켜 먹거나 그래서요.

제가 원래 자영업자님 유튜브를 되게 많이 봤었어요. 그런데 거의 다 요식업이나 서비스업 쪽이 많잖아요. 그런데 이런 일도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고 요즘 젊으신 분들이 다들 이런 일을 안 하려고 하시는 것 같아서 이런 일도 되게 재미있고 보람차게 할 수 있고 이걸로도 돈을 벌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어렸을 때 제 방이 없어서 맨날 엄마랑 같이 써서 저는 항상 나중에 돈 벌면 좋은 집 한번 사보자는 목표가 있어서 계속 악착같이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 9시까지 20만 원 벌었습니다. 1시에 또 예약이 있고 아마 10시 반쯤에 한 번 더 전화가 올 것 같아요. 저는 중장비업을 주로 하고 있고요. 건설자재 납품도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장비만 하면 원하는 수입에 살짝 모자라요. 한 달에 그래도 천만 원은 순수익으로 가져와야 하지 않나 싶어서요.

3월부터 11월은 그렇게 벌고 있고 12월, 1월, 2월 그리고 장마철 때 잠깐 주춤하기도 해요. 12월에는 600만 원 벌었고 1월에는 한 550 정도 벌었습니다. 기름값, 보험료 이런 거 다 빼고요. 처음에 현장에 가면 학생이냐고 그러고 매일 혼났어요. 작업 현장 같은 데 보면 사람들이 성격이 되게 급하고 잘해야 하는데 저는 아직 어리고 하니까 그 당시에는 그 사람들의 기대치를 못 하니까 다른 분을 부르고 그랬어요.

근데 이것도 경쟁이잖아요. 이걸 하면서 아르바이트했어요. 끝나고 써브웨이도 하고 투잡했어요. 돈이 안 되니까요. 왜냐하면 처음에 저를 누가 불러줘요. 그런데 포기는 하고 싶지 않더라고요. 그 건설 현장에서 아저씨들이 욕하는데 뭔가 제가 여기서 이것까지 못 버티면 나는 다른 일을 해도 못 할 것 같으니, 이거라도 한번 해 보자 싶었어요.

그리고 할 줄 아는 것도 이거밖에 없었으니까요. 진짜 맞지만 않았지 팔도 욕 다 먹으면서 스트레스도 엄청 많이 받았어요. 그런데 제가 뭐라고 못하잖아요. 제가 못하니까 그냥 항상 죄송하다 하고 다음에는 더 잘하겠다고 한 번만 더 불러달라고 했죠.

제가 어리니까 건설 현장 가면 애교도 부리고 그러면서 버텼던 것 같아요. 본격적으로 중장비 일은 20살 12월에 방위산업체를 가서 지게차를 타면서 기계를 다뤘단 말이에요. 23살에 거기서 전역해서 나와서 지게차 큰 거 사서 거의 23살 3월부터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20살 때 지게차 필기시험을 보러 갔을 때 아버지랑 같이 보러 갔어요. 아버지도 지게차 자격증을 따신다고 하셔서요. 그런데 아버지는 공부를 안 하시고 그냥 가신 거예요. 아버지는 떨어지고 저는 붙었어요. 아버지는 비슷한 업종에서 포크레인을 주로 하셨어요. 근데 아버지가 포크레인을 타다가 사고가 나서 포크레인에 깔리셔서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뭔가 거기서 제가 살짝 장비 타는 게 좀 무서운 거예요. 왜냐하면 진짜 위험하기는 하거든요. 이게 잘못하면 물건을 쏟으면 사람이 다칠 수도 있고 그 트라우마가 처음에는 좀 생겼어요. 그런데 이것까지 한번 극복해 보자 해서 지금 계속 극복하면서 일하고 있습니다.

2020년 6월 1일에 사고가 나서 의식이 없으시다가 7월 1일에 돌아가셨습니다. 중환자실에 있었는데 아버지를 봤는데 너무 속상한 거예요. 일하다가 그렇게 됐고 저도 이 업종을 하다 보니까 뭔가 남 일 같지 않은 거예요. 저도 나중에는 저렇게 사고가 나서 아버지처럼 그렇게 될 수도 있겠구나 했는데 뭔가 깊은 생각을 했어요. 아버지도 일하는 걸 되게 좋아하셨던 분이었기 때문에 후회는 없으셨을 것 같아서요.

저도 지금 생각해 보면 어차피 내가 선택해서 일을 하는 거니까 후회 없이 한번 해 보자 했죠. 저는 지금 일이 좋아요. 아무래도 이거밖에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또 재미있고 이거 할 때만큼은 집중하고 진지하다 보니까요.

안 그래도 같은 업종의 사장님께서 저는 아직 젊으니까 너무 아깝지 않냐고, 다른 일도 많은데 처음부터 이 길로 가니까 좀 안타깝게 보셨나 봐요. 그런데 저는 되게 이 길에 만족하고 있어요. 그리고 저는 더 키울 생각이어서요. 밥 먹다가 일 전화 들어오면 밥 먹다 말고 가요. 지금은 겨울철이니까 집에서 잠깐 쉬고 있는 거지 날씨 풀리면 거의 밖에 있어요.

나가 있으면 사무실에 있거나 다른 건재 쪽 배달도 들어오고 장비 일도 들어오니까요. 그리고 포크레인으로 들어오면 제가 스페어 기사들도 있어서 스페어 기사들 보내고 신경 쓸 게 많아요. 그거는 다 아버지 일을 물려받은 거라서 지게차만 제가 따로 하는 거죠.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에는 건재 쪽이랑 포클레인이랑 같이 했으니까요.

그리고 제가 지게차를 하고 지게차 일이 없을 때는 가서 도와드리고요. 이렇게 건재 일도 보고 배워서 그것도 다 하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둘이 하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까 이제 혼자가 되다 보니까 다 너무 떠맡게 됐잖아요. 또 사람을 써야 하는데 그렇게 믿을 만한 적임자도 없어서 혼자 지게차 일 없을 때는 건재도 배달하고 그랬죠.

그런데 거의 장비 쪽으로 제가 많이 해서 건재 일이 들어오고 하면 다른 건재상에 전화해서 일도 넘기고 그냥 혼자서 다 어떻게든 했던 것 같아요. 혼자서 가능할 수 있을 정도로만 했지만 좀 오버해서 하긴 했죠. 점심도 못 먹을 정도로 한 게 많았으니까요.

그런데 항상 혼자 일하다 보니까 다 사 먹잖아요. 점심 뭐 먹을지가 일하면서 가장 고민되더라고요. 고민하다가 안 먹어요 결국. 제가 사실 한쪽 귀가 안 들려서 공익 판정을 받았어요. 저한테는 그 당시에 공익을 하기에는 너무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생산적인 일도 하고 돈도 벌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공익 판정받자마자 회사들 찾아서 면접 보러 다니고 했어요.

방위산업체에서 2년 2개월 정도 일을 했는데 제가 주야 교대로 일을 했어요. 최저시급으로 계산하거든요. 주간일 때는 한 150 정도 벌었던 것 같고 야간일 때는 250~300 정도 벌었어요. 아무래도 야근도 하고 주말에 특근 나가고 하니까 수당이 엄청 많았어요. 그 당시 제가 최저임금이고 젊은 애들이니까 빠르게 최고의 가성비를 띄우니까 공장 사장 입장에서도 특근을 많이 불렀어요.

돈은 다 챙겨주니까 열심히 했죠. 2년 동안 2천만 원 조금 넘게 모으고 나왔습니다. 친구들도 다 군대에 있으니까 만날 사람도 없고요. 그냥 맨날 집에서 게임하고 그 당시에도 쓸 거는 썼죠. 옷도 사고 그랬는데 그래도 돈이 좀 모였었죠.

그 당시에는 어머니 밑에서 살았는데 어머니가 아프셔서 지금은 요양병원에 계셔서 혼자 살게 됐어요. 제가 20살 때 어머니가 그 병을 아셨어요. 14년도에 어머니가 파킨슨병에 걸리셔서 점점 안 좋아지셨어요. 어느 순간 갑자기 확 안 좋아지더라고요.

그래서 어머니가 제대로 거동도 못 하시고 화장실도 혼자 못 가시는데 저는 또 일해야 하잖아요. 아버지랑은 따로 살았고요. 일은 아버지랑 같이했는데 어머니랑은 또 따로 살아서 어머니를 챙겨줄 사람이 없어서 요양병원에 결국 가시게 되셨습니다. 이제 일하러 가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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