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면서 배우는 심리학 _ 이하 몸장)
고선규 박사님 _ 이하 호칭 생략)
몸장)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소중한 사람이 떠났을 때는 그 기억을 잊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잖아요.
고선규) 많이들 그러세요. 왜냐하면 그게 너무 아프니까. 상담해 오시는 분들도 그런 도움을 받으려고 보시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애도는 고인과, 고인과 나와의 관계와 그런 것들을 잘 기억하는 게 어떻게 보면 핵심, 기억이 핵심이거든요.
몸장) 잊어버리는 게 아니라 기억하는 게 핵심이다…
고선규) 그 기억하는 게 고통스러운 거잖아요. 그래서 지우려고 하는 거고, 그러면 기억하는 게 고통스럽지 않게 해줘야 하는 게 애도 상담이 해야 하는 거죠. 그런데 그렇게 할 수 있어요. 왜 그 기억이 고통스러운지를 알게 되면, 그리고 한동안 그 기억이, 기억하는 게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음을 받아들이면.
고선규) 기억을 지우려고 하려는 사별자의 노력도 어떻게 보면 사별한 직후에 한동안은 자연스러운 애도 반응일 수 있어요. 그게 너무 아프고 고통스러우니까. 하지만 언젠가는 온전히 기억할 수 있어야 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 거예요.
몸장) 그 고통스러운 과정이 사람마다 차이가 많이 있을 것 같거든요. 지속적으로 그런 고통스러운 기억이 떠올라서 힘이 너무 든다면,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고선규) 네, 그게 되게 중요한 포인트인데요. 저한테 오는 내담자분들은 조금 더 전문적으로 개입해야 하는 그런 분 들이 오시지 않아요. 우리가 흔히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하는 어떤 진단을 붙일 만한 상태의 어려움을 겪고 계신 분들…
고선규) 예를 들어, 자택에서 목숨을 끊으셨고, 너무 참혹한 현장을 직접 수습해야 했던 분들이라든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너무 계속 떠올라서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악몽에 시달리고 일상생활 기능에 너무 지장이 있고, 그렇다면 이거는 상실을 먼저 다루는 것이 아니라 충격적인 기억으로 인해서, 그 외상적인 경험으로 인해서 힘들어하는… 그건 또 전문적인 치료가 있어요. 그 정도는 아니고 제가 만난 내담자분들 중에서 외상 후 스트레스에 준하는 그런 기억은 아니지만, 그냥 고인의 부고를 들었을 때, 그때 느껴졌던 내 오감의 감각들, 그때 봤던 어떤 이미지들, 후각들, 기타 어떤 소리들, 한동안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어떤 맥락에서 다시 떠올라서 힘들어하시는 분들은 너무 많아요.
고선규) 혹은 예를 들어 우리 오빠가 쓴 안경테를 쓴 어떤 남자를 보면 막 갑자기 확 떠올라서 눈물이 나기도 하고, 어떤 자녀를 잃으신 어머니께서는 젊은이만 보면 다 눈물이 나서 집 밖에 못 나가고… 그런데 이것도 한동안은 그럴 수 있어요. 고인의 기억을 떠올리는 그런 단서를 접할 때마다 그 기억에 빠져서 너무 힘들어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애도 반응인데, 이게 너무 길어지고 그걸로 인해서 대인관계도 어렵고 직장생활도 못 하고 그러면 또 그것에 맞추는 어떤 치료적인 계획을 해야 하겠죠.
몸장) 얘기를 들어보니까 혼자서 진정한 애도를 하기란 굉장히 어려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서 애도를 하는 방법, 잘할 수 있는 방법 같은 게 있다면 얘기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고선규) 특히 자살 사별자 혹은 외상적 사별 또는 관련된 그런 서적들을 보면 이런 경험을 한 사별자들이 겪는 사별의 아픔은 결코 누군가의 도움이나 위로 없이 혼자서 그것들을 겪어내기 어렵다고 나와 있어요. 그리고 애도라는 것 자체가 굉장히 사회적이고 공적인 위로예요. 나도 슬프지만, 나의 슬픔을 다른 사람들이 위로해야지 그게 애도가 되는데, 일단은 개인적으로는 시작은 나부터 먼저 해야 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여러 가지, 글쓰기 많이 하시는 분들도 있고요. 이 글쓰기가 좋은 이유는 누군가의 어떤 평가, 비판 이런 것 없이 아까 얘기한 초반에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은 혼란스러운 그런 감정들, 사람들은 어제 이러더니 오늘 이러고 따라오지 못하는 거예요, 나의 이런 급변하는 마음들을. 그런 것들을 쓰는 것들, 비밀 블로그나 아니면 일기장이나 그런 거에…
고선규) 그냥 어떻게 보면 쓴다기보다 토해내는 거죠. 그런 것도 한동안은 도움이 돼요.
몸장) 그러니까 그런 블로그나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서 나의 감정을 토해내는 건가요?
고선규) 그렇죠, 감정, 생각들. 왜냐하면 그런 것들을 사람이 들어주면 너무 좋겠지만, 그럴 만한 사람이 별로 없을 거예요. 매일매일 왔다 갔다 하는 내 감정을 내가 필요할 때, 이런 사람들은 별로 없으니까요. 그래서 표현적인 어떤 활동, 여기서 표현한다는 것은 그 사별이 주는 다양하고 혼란스럽고 낯선 어떤 경험들, 생각들, 이해 안 되는 것들, 그런 것들을 어딘가에는 토해내는 정말, 왜냐하면 토해낸다는 표현을 하는 이유가 말이 잘 생각이 안 나요. 형언할 수 없는 이런 말 쓰잖아요.
고선규) 그래서 거기에 유려하게 쓰라는 건 아니고요. 말 같지도 않은 말을 하지만, 나의 그런 것들을 진솔하게 하는 그 작업이 저는 좀 필요하다고 생각을 해요, 사람이 들어주면 제일 좋겠지만. 그런데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그런 분들도 결국에는 이 경험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들어주고 위로해주고 알아주고 그런 어떤 연결된 단 한 사람이라도 좋아요. 그런 사람이 꼭 필요하더라고요. 내 말을 공중에 내 말을 발화하고 그것에 고개를 끄덕여 주고 반응에서 이야기를 해 주고 그런 그 상대가 있는 것, 그게 너무 다르다는 거고요. 더 중요한 것은 이 세상에 그 사람을 기억하는 나 말고 또 다른 누군가가 있다는 것에 대한 위로 그런 게 굉장히 큰 것 같아요.
고선규) 내가 겪은 고통스러운 일을 얘기하는 순간, 그것은 나 혼자 겪은 일이 아니라 이 세상에 있었던 일이 된다는 얘기가 저는 너무 좋더라고요. 그래서 고통스러운 일일수록 그것을 들어주는, 그것을 발화하고 그것에 반응하는 한 사람이 있는 것의 중요성을 저는 너무너무 많이 느껴요. 애도의 끝은 결국 그 사별자를 진정으로 위로하고 지지해 주고 연결돼 있는 단 한 사람, 그것은 가족일 필요도 없어요. 때로는 가족이 더 큰 상처를 주기도 하기 때문에…
몸장) 굳이 가까운 사람일 필요는 없다…?
고선규) 네. 그리고 사별 이후에 관계들이 굉장히 많이 재편이 돼요. 왜냐하면 이런 외상적인 큰 사건을 경험하신 분들은 삶의 의미, 어떤 가치, 관계, 목적들이 와르르 무너지는 경험을 하시거든요. 다시 다 재편해야 해요.
고선규) 의미 없던 것들이 다시 의미를 갖게 되기도 하고, 의미 있던 것들이 의미가 덜해지기도 하고,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지기도 하고, 상실을 했지만 또 다른 어떤 관계가 만들어질 수도 있고, 그러면서 사별자의 삶이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것. 그것은 제가 목격한 일이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몸장) 그러니까 얘기를 들어보면 그 사실에 대해서 부정하거나 억압하는 게 아니라 적절하게 표현을 하면서 감정을 같이 공감해 줄, 아예 남일지라도 그 감정을 같이 공감하고 위로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게 필요하다.
고선규) 사별자가 찾기는 아마 어려울 것 같고…
몸장) 그래서 저는 여기서 궁금한 게 그렇다면 아까 전에 처음에 자조 모임에 관해서 얘기해 주셨잖아요. 안전한 자조 모임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고선규) 정보 제공 차원에서 말씀을 드리면, ‘한국 생명 존중 희망 재단’이라는 곳이 있는데 ‘중앙 자살 예방 센터’와 ‘중앙 심리 부검 센터’가 합쳐져서 큰 규모로 자살 예방 정책, ‘처음부터 끝까지 좀 잘해 보자’ 이런 목적에서 만든 재단이에요. 그래서 여러 가지 일들을 하고 있어요. 그러는 맥락에서 지역마다 자살 사별자들, 자살 유가족들 자조 모임을 적극적으로 운영하도록 그렇게 하고 있어요. 그래서 모르시는 분들은 많지만, 지역마다 ‘정신 건강 복지 센터’라는 곳이 있고요.
고선규) 자살 유가족 자조 모임을 하는 곳이 있어요. ‘한국 생명 존중 희망 재단’ 이런 데 들어가 보시면 그 리스트가 쫙 나와요. 연락을 하시면 아마 친절하게 언제, 어떤 분들이 오셔서 이런 모임을 한다는 안내를 받으실 수 있고요. 참고로 덧붙여서 말씀드리면 자조 모임이 다 능사는 아니에요. 자조 모임이 분명 도움이 되는 분 들도 있어요. 그리고 도움이 되는 영역들이 있어요. 그런데 제가 이 말씀을 왜 드리냐면 너무 큰 기대를 갖고 가셨다가 또 실망하실 수도 있거든요. 왜냐하면 이거는 전문가를 만나서 나의 깊은 어떤 것들, 치유의 그런 것이라기보다는 나랑 같은 경험을 한 사람, 약간 ‘거기 가서 얘기하면 내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들이 있어’라는 그런 마음으로 가시면 정말 많은 위로와 지지를 받으실 수 있어요. 툭 얘기해도 다 아는 분들이거든요.
고선규) 그런 목적으로 그런 기대를 갖고 가신다면 아마 너무 잘 환대해 주실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내가 다른 데 가서 못했던 얘기를 편견 없이, 평가하지 않고 아마 들어주시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몸장) 오늘 고선규 선생님을 모시고 우리 주변에 소중한 사람이 떠났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법과 실질적으로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해결이라기보다는 마음의 위로와 어떻게 애도를 할 수 있는지 그 올바른 방법에 대해서 알아봤습니다.
고선규) 자살 사별 경험이라는 게 각자가 처한 상황이나 사별 경험에 따라서 굉장히 다르고 고유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제가 드리는 말씀이 모든 사별자분들께 다 적용되는 이야기는 아닐 거예요. 그래서 그 점은 또 감안하셔서 들어주셨으면 좋겠고요. ‘나한테는 적용이 안 되는 얘기인데?’ 그러실 수 있다는 거 제가 또 덧붙여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