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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등감을 느끼게 하는 것도, 극복하게 하는 것도 결국 ‘이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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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이미 평범한 사람들한테 아우라를 느끼고 있어요. 예를 들어서 우리나라 대기업에 어떤 사람이 다녀요. 대기업에 다니는 본인은 본인한테 아우라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분이 출신 대학에서 그 회사에 간 사람이 그분밖에 없어요. 그러면 후배들은 전부 아우라를 느껴요. 그렇기 때문에 아우라는 굉장히 상대적인 거예요. 

아우라를 만들기 위해서 사실은 내가 굉장히 존경할 만한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우리의 아우라를 만드는 상당 부분은 우리의 위치와 우리의 능력이에요. 사실 아우라라는 것 자체는 그 사람의 진실을 못 보게끔 만드는, 어떤 의미에서 심리적 베일인 거거든요.

그래서 사실은 내가 누군가한테 아우라를 느끼고 있다는 것은 내가 굉장히 위험한 상태라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어요. 아우라를 느끼지 않는 게 오히려 정상인 거예요. 아우라가 없이 그 사람을 꿰뚫어 보는 게 우리의 정상적인 인간관계인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내가 누군가한테 아우라를 느낄 때 두 가지 방법이 있는 거죠. 전에 미국에서 의사 면허를 딴 선생님한테 아우라 느꼈어요. 나도 미국에 가서 의사 면허를 따고 싶었어요. 바로 그거는 내가 아우라를 가진 사람이 되고 싶어 했던 거예요. 그 수단이 그거라고 생각했었던 거죠. 그런 방법이 있고요.

또, 두 번째는 내가 아우라를 느끼고 있다는 게 결국은 나의 어떤 열등감에서 비롯된다는 걸 깨닫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열등감을 없애게 되면 나의 아우라가 없어지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저의 열등감은 뭐였냐? 저의 열등감은 제가 서울대를 못 나왔던 거예요. 그게 저의 커다란 열등감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서울대 출신들이 절반의 인턴을 차지하는 서울 아산병원에 가서 인턴을 하고 싶었던 거예요. 그러나 거기에 가서 같이 있어 보니까 깨닫게 됐어요. 서울대에서 온 서울대 출신의 동료 인턴들을 보니까 뭐 그렇게 나보다 잘하는 게 없는 거예요. 서울대에 대한 아우라가 깨진 거예요.

환상이 깨졌을 때 그냥 거기에서 제가 인정하면 되는데, 서울대에 대한 아우라가 깨지니까 미국 출신에 대한 아우라가 생기게 된 거예요. 미국물을 먹으면 내가 열등감에서 벗어날 것 같았어요. 그런데 실제로 그리고 나서 제가 또 그게 별거 아니라는 걸 느꼈어요. 그래서 제가 미국물을 먹고 나서 스스로의 우월감도 없어졌고, 열등감도 없어졌고… 저는 이제 그다음부터 평생을 살면서 누군가한테 아우라를 느껴본 적이 없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 내가 누군가한테 아우라를 느끼고 그 아우라를 나도 가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을 수도 있어요. 결국은 거기에 다다르게 되는 게 내가 열등감을 해결하는 방법이니까요.

사실 열등감을 해결하는 데는 두 가지 길이 있어요. 하나는 열등감의 근원을 없애버리는 거예요. 저는 없애버린 거잖아요. 그런데 두 번째 방법은 뭐냐, 심리적으로 열등감을 느끼는 부분을 인지하고 깨달으면서 바뀌는 건데, 그게 참 어려워요.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 여러분이 누군가한테 아우라를 느낀다는 것은 여러분 마음속에서는 무의식적으로 결국은 그 사람을 넘어서서 나의 열등감을 없애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거죠. 그러면 저는 노력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그 과정에서 그게 깨질 수도 있고, 그것을 달성함으로써 우리는 벗어나게 돼요.

그러나 제가 진짜 경계하고 싶은 게 있어요. 어떤 사람의 아우라를 느끼고, 그 사람의 추종자가 되면 안 돼요. 결국은 지배당하게 돼요.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의 아우라를 느끼고, 누군가의 추종자가 된 분들은 그 아우라를 느끼는 대상의 진면목이 밝혀지고, 아우라가 아니라 쓰레기라는 게 밝혀지면 또다시 내가 추종할 사람을 찾아 나서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남한테 아우라를 느끼고, 그 사람을 추종함으로 인해서 나의 텅 빈 마음을 메우고 그 사람의 집단에 속함으로 인해서 나의 열등감을 보상받고자 하는 마음이면 내가 아우라를 누군가한테 느낀다는 게 굉장히 위험한 행위예요. 그것은 나를 추종자로 만드는 거고요. 타인의 도구로 만드는 행위가 돼요.

그러면서 우리는 심리적으로 착취당하게 되는 거고, 그 착취를 우리가 ‘그래도 그 사람 대단한 사람이니까 뭔가 뜻이 있을 거야…’라고 우리는 이해하게 되는 거예요. 아우라를 풍기는 사람을 바라볼 때 내가 일종의 편향을 통해서 그 사람을 보고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게 중요한 포인트죠. 

사실 우리 인간은 다 평범한 사람들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누구에게든 나와 다른 특별한 뭔가가 있을 거라고 우리는 절대로 생각해서는 안 돼요. 우리는 전부 다 눈, 코, 입, 귀가 비슷하고요. 50대에 지능 검사하면 편차가 매우 적게 나와요.

내가 모르는 사람에 대해서 책을 통하거나 방송을 통해서 볼 때는 그 사람이 리더 같아요. 그런데 내가 그 사람의 비서가 돼서 일하잖아요. “아우, 이런 x끼였어…?”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세상에는 그렇게 존경할 사람도 없고요. 그렇게 아우라를 풍기는 사람도 실제로 없어요. 그러나 그걸 바라보고 아우라를 느끼는 나 자신이 사실은 문제인 거예요. 

내가 열등감을 통해서 상대방을 보기 때문에 상대방의 아우라가 느껴지고 추종하게 되는 그런 메커니즘으로 돌아가게 되는 거죠. 그러나 나는 스스로 우월감을 느낄 수 있는 자신감이 없기 때문에 그 우월감을 타인에게 투사하는 거예요.

아까 말씀드렸지만, 그 추종하는 사이에 나의 능력이 향상되는 부분이 있다면 추종도 일정 부분에서 나쁘지는 않습니다. 저도 추종했었던 거예요. 미국 면허를 가진 의사를 추종했었던 거고요. 그런 다음에 뭐가 됐든지 간에 그 아우라가 있음으로 인해서 내 삶이 더 행복해지고 문제가 없어야 하는 거지, 그 아우라를 통해서 뭔가 되려고 하게 되면서 나의 실제 생활에 갈등이 생기고, 내가 더 어려운 처지에 놓인다면 중단해야 하는 신호가 온 거예요. 

그런 다음에 나는 그 사람한테 아우라를 느끼고, 좋다고 생각하지만 결국은 열 사람 중에 나 혼자만 그렇게 느끼고, 나머지 아홉 명은 전부 나한테 경고 메시지를 던지면 그건 아닌 거예요.

결국은 우리가 어떤 사람에 근접해서 들여다보면 일치하지 않는 부분을 생각하게 돼요. 그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나올 때마다 그것을 그 사람의 어떤 위대함에 다른 면으로 합리화하지 말고 그때마다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하는 거죠. 나는 굉장히 이 사람이 완벽하다고 생각했는데, 불완전한 점이 나오게 됐을 때 그걸 인정해야 한다는 거죠. 

그런데 그게 쉽지 않아요. 우리가 축구 경기 해 보면 알아요. 우리 팀이 반칙하잖아요. 그럼 다들 그래요. “왜 저기에 경고를 줘?” 똑같은 반칙을 남이 하잖아요. “왜 퇴장을 안 시켜?” 그게 ‘인지 합리화’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죠.

그러면서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나는 누군가의 아우라를 통해서 그러는데, 만약에 누군가의 아우라를 느끼고, 그 사람을 따라 하고, 그 사람같이 되려는 많은 노력에 대해서 내 아내, 내 남편, 내 자식, 내 부모가 “이건 아닌 것 같아…”라고 하면 아닌 거예요. 그 사람들은 편향을 가지고 보는 게 아니라 정확하게 보기 때문이죠. 

그래서 스스로 자기 아우라에 도취된 사람들 역시 가장 커다란 피드백은 그 가족으로부터 와요. 아무리 어떤 사람이 왕이더라도 왕자의 입장에서는 아들이거든요. 약점이 눈에 보이죠. 아무리 훌륭하고 높은 지위에 올랐다고 하더라도 아내는 남편의 약점을 알아요. 그렇기 때문에 끝까지 귀담아들어야죠.

그렇게 누군가를 추종하는 행위의 기저에는 열등감이라는 심리가 바탕이 되는데, 그런 열등감을 없애는 첫 번째 방법은 정면 돌파예요. 저도 미국에서 유학하고 온 사람들에 대한 열등감이 있었어요. 막상 갔다 오니까 없어졌어요. 학력에 대한 열등감은 없어진 거예요. 

그래서 저는 많은 분이 편입을 준비하는 거 아주 좋다고 생각해요. 결국은 그게 되면 좋은 거고요. 해도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되면 우리는 그때는 편입이 아닌 열등감을 조절할 수 있는 내가 잘하는 다른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거죠.

만약에 돈에 대한 열등감을 느끼고 있으면 돈을 모아야죠. 그러다 보니까 이번에 참 슬픈 일들이 된 거예요. 사실은 우리가 코인에 투자하신 분들 때문에 너무 마음 아프신 분들이 있는데, 결국은 코인에 우리가 투자해서 그토록 엄청난 돈을 한꺼번에 벌어보자고 했던 것은 결국 돈에 대한 열등감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셨던 거거든요. 

우리가 힘들수록 열등감이 더 심해요. 코인에 투자한 우리 청년분들을 보다 보면 어려운 분들이 많아요. 그래서 그분들이 단지 돈을 잃은 게 아니라 가난해서 탈출할 수 있다는 자존감 자체를 잃어버린 분들이 많아서 더욱 슬퍼요.

사실은 코인에 투자해서 돈이 늘어난다는 게, 통장 잔고가 늘어난다는 게 아니라 본인의 어떤 자존감이 올라가는 거였거든요. 이 세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다는 거죠. 그러나 만약에 내가 빚이 있고, 그 빚으로 인해서 나의 열등감이 심하다면 그때는 진짜 죄송하지만 빚을 갚건, 진짜 빚을 못 갚는다고 그러면 빨리 채무를 변제하고 탕감받으세요. 

의외로 이런 분들이 많아요. 채무를 변제하고 탕감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 되지만, 그거를 자신의 자존심이 허락 안 하는 거예요. 그러나 막상 채무가 탕감되잖아요. 자존감이 올라가요. 당장 빚이 없어지니까요.

그러나 정면 돌파가 불가능해졌을 때, 혹은 내가 정면 돌파를 하다가 아까 코인 얘기처럼 좌절이 되어서 내가 불가능해졌을 때, 혹은 애초부터 그 정면 돌파가 나한테 불가능했을 때는 우리는 결국 심리적 열등감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죠. 

그러나 심리적 열등감을 바라보면서 그 열등감 자체를 내 마음으로 없애는 건 한계가 있어요. 결국은 뭔가 하게 되면 다른 측면에 있어서 내가 우월하고 잘할 수 있는 면을 찾아봐야 하는 거예요.

돈이 많다고 해서 그 사람이 꼭 우리의 존경을 받게 되는 건 아니에요. 그리고 우리는 생각해요. 내가 돈이 없으면 사람들이 돈이 없다고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아요. 그러나 정작 그 생각을 하는 여러분은 돈이 없다고 남을 무시하십니까? 그렇지 않죠. 내가 돈이 없어서 나의 삶은 엄청 불편할지 몰라도, 돈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남들이 나를 무시하지는 않는다는 증거가 되는 거죠.

결국은 우리는 다른 부분을 찾아야 하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 제가 권해 드리는 방법은 열 명이 있을 때 제일 잘하는 것 하나가 필요해요. 만 명이 있었을 때 그걸 제일 잘하잖아요? 그건 대단한 거예요. 틀림없이 돈이 돼요. 그러나 열 명이 있었을 때 제일 잘하는 것은 그게 돈까지는 안 되지만, 그것은 열등감에 사로잡힌 나한테 쉴 수 있는 쉼터를 제공해줘요.

적어도 대한민국 사람 열 명이 모였을 때 임창정 씨나 송가인 씨 같은 가수가 끼어들지 않았다는 전제하에 내가 노래를 제일 잘 부른다고 하면, 나는 노래방에 있는 그 3시간만큼은 나는 열등감에서 벗어나 있어요. 동창회에서 “나는 이렇게 좋은 아파트에서 살아”라고 우월감을 가졌던 사람도 노래방에서 노래 부르는 3시간 동안은 나한테 열등감을 가지게 돼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바라보는 특정 부분에 있어서 우월감을 가졌더라도, 그 사람이 모든 부분에 있어서 나보다 우월할 수는 없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적어도 열 명 중에서 내가 최고인 게 하나는 있어야 하는 거고요.

그다음에 또 중요한 것은 만약에 이 세상에 사람이 단 한 명도 살지 않아요. 살아 있는 사람이 나 하나밖에 없다고 하면 그 돈은 나한테 아무 소용이 없어요. 열등감과 우월감은 결국은 인간으로서의 나를 누군가 타인으로서 인정해 주냐, 인정해 주지 않느냐는 데 있죠. 

누가 나를 인간 자체로 인정해 주잖아요. 그 사람이랑 있는 순간만큼은 우리는 열등감을 느끼지 않아요. 그래서 많은 사람이 사랑하잖아요. 자존감이 올라가요. 그 사랑이 유지가 되는 한은 나는 열등감에서 굉장히 자유로워져요. 그래서 또 우리한테 가족이 중요하다고 하는 것도, 있는 그대로 나를 받아들여 주는, 나의 열등감을 조장시키는 잔소리만 하지 않는다고 하면 가족이랑 같이 있는 순간엔 우리는 열등감을 받지 않아요.

그래서 우리가 그렇게 사랑이 소중하다고 느끼고, 우리가 드라마를 볼 때마다 주인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사랑을 보기를 원하는 거예요. 그 사랑이 실제에서는 없더라도…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나의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서 돈을 많이 모으는 것보다, 나의 외모가 바뀌는 것보다, 혹은 나의 출신 대학이 바뀌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랑할 누군가가 나한테 생기는 건데요. 

그 사랑할 누군가는 내가 돈이 많아도 안 생길 수 있고, 돈이 없어도 생길 수 있고요. 내가 과거에 공부를 못했더라도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고, 내가 과거에 공부를 잘했더라도 사랑하는 사람은 못 만날 수 있어요. 결국에 우리가 열등감을 느끼는 이유가 사람 때문이고 사람으로서 해결할 수 있다는 이야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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