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중 그의 목숨이 정말 위태로웠던 대결도 있었죠. 바로 ‘검귀’라고 불리던 일본 최고의 칼잡이 ‘료마’였습니다. 검도 7단의 고수였던 료마는 사무라이부터 이어져 온 검도의 본고장 일본에서도 적수가 없을 정도로 귀신같은 실력을 자랑했는데요. 휘두르는 칼 한 방을 정면으로 허용한다면 그대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한 대결이었지만 최배달은 피하지 않았습니다. 최배달은 사실 이 대결이 너무 두려웠다고 했습니다. 왜냐면 모든 대결이 승리와 패배를 겨루기 위해 하는 싸움이라면 칼잡이와의 대결은 목숨을 내놓는 죽음의 사투였습니다. 차원이 다른 싸움이었습니다.
먼저 대결을 청해온 료마의 도전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면서 그는 자신의 죽음을 직감했습니다. 그래서 죽는다는 각오로 전투에 임하게 되는데요. 대결 장소로 정해진 아오야마 묘지로 나간 그와 료마의 결투가 시작됩니다. 최배달의 보자마자 칼을 빼 들어서 그에게 몇 번 휘두르자 최배달의 옆구리에서는 피가 새어 나왔고, 두 번째 칼을 휘두르자 그의 등에서 선혈이 흘러내렸습니다. 이제 그는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이합니다.
더 이상 칼을 받아주다가는 자신의 생명을 잃을 수가 있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결정을 내려야 했습니다. 항복하고 목숨을 구걸하거나 아니면, 필사즉생의 각오로 장렬하게 전사하던가 말이죠. 결국 그는 후자를 선택합니다.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하더라도 명예는 지킬 수가 있다고 생각하고는 실제로 목숨을 내놓았습니다. 두 번의 공격으로 최배달이 무너지는 모습을 본 료마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칼춤을 추기 시작했는데요. 순간 최배달은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맨손으로 칼잡이를 상대로 승리하는 것은 불가능한데 차라리 자신의 왼팔을 내주고 오른팔로 그를 쓰러뜨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실제로 왼팔을 내줬습니다.
위에서 내려친 료마의 칼을 확인하는 순간, 그는 두 손을 합장해 료마의 칼을 잡아버렸고 그대로 최배달의 왼쪽 어깨를 깊숙이 파고듭니다. 그러니까 최배달은 료마의 칼을 자신의 왼쪽 어깨로 받아 움직일 수 없도록 만든 후에 오른쪽 주먹으로 강력하게 류마의 명치를 가격했는데 그 한 방으로 승부는 결정됐습니다. 차돌을 깨며, 손가락으로 물구나무를 서며, 강철같이 단련시켰던 그의 주먹 한 방에 료마는 온몸의 내장이 파열되며 즉사하게 됩니다. 하지만. 최배달은 자신으로 인해 목숨을 잃은 로마의 대결을 끝으로 다시 입산을 결정합니다. 진정한 무술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였죠.
단순히 누군가에게 해를 가하는 것이 진정한 무술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것이죠. 그리고는 ‘하코네 산’으로 두 번째 입산을 하게 됩니다. 첫 번째 입산에서 ‘살기’를 터득했다면, 두 번째 입산에서는 자기 스스로 극기를 찾고 진정한 무술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성찰이 함께 이어졌죠. 이후 수양을 마치고 내려온 그에게는 한 가지 철학이 자리 잡았습니다. “자신의 강함을 추구한다면 강하다는 점을 보여야 한다”는 어록과 함께 말이죠. 즉, 자신이 강하다면 강함을 증명해 아예 그만 싸우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만큼 강해져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가라데를 베이스로 한 그의 무술이 완성됐습니다. 바로 극진 가라데였습니다. ‘궁극의 끝에 치달은 진정한 힘’이라는 의미인 최배달의 무술은 최소한의 룰만 규정하고 서로 무제한으로 치고받을 수가 있는 상당히 실전에 가까운 거의 유일한 무술이죠. 복싱처럼 글러브를 끼지 않으며 UFC처럼 독특한 장비도 착용하지 않은 상태로 맨손으로 상대와 겨루면서 손으로의 안면 타격을 제외하고는 거의 마음대로 상대방을 가격할 수가 있죠. 현재는 세계 최대 격투 단체로 성장한 UFC 뿐 아니라 예전 k1 등에서 활약하던 유명선수들 중 극진가라데를 수련한 선수들은 셀 수 없이 많은데요.
대표적으로 조르주 생 피에르, 앤디훅, 프란시스코 필리오, 글라우베 페이토자, 니콜라스 페타스 등의 선수들이 대표적인 극진 가라데를 베이스로 하는 선수죠. 맨손으로 차돌을 깨고, 싸움소의 뿔을 자르고, 병목을 마치 칼로 자르듯 모든 것을 손으로 끝냈던 ‘신의 손’이라 불리던 최배달은 수많은 제자를 양성함으로써 세상에서 가장 강하다는 남자로 불렸습니다. 현재 UFC 에서 사용되는 ‘기무라’라는 관절기가 있습니다. 많은 선수들이 이 기술에 팔이 부러지기도 하고 탭을 치기도 할 정도로 강력한 기술인데요. 원래 이 기술은 유도에서 만들어진 기술인데 이는 ‘기무라 마사히코’라는 인물에서 따왔습니다. 그가 직접 창시한 기술이니까요.
기무라는 일본 유도의 전설로, 20살의 나이로 일본 무제한급 유도 대회를 제패했고 27살의 나이로 유도 7단의 경지에 올랐죠. 그러나 병든 아내의 약값조차 제대로 마련하지 못하는 가난함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고 결국 프로레슬러로 전향해 역도산과 한 팀으로 활약하게 됩니다. 하지만 항상 일인자였던 기무라는 역도산이라는 거대한 산 아래에서 늘 2인자였고, 여러 사건이 겹치면서 둘은 갈라섰습니다. 이후 일본답게 프로모터가 나서서 이 두 사람의 대결을 성사시켰고 기무라는 역도산에게 치욕스러울 만큼 두들겨 맞다 KO패를 당하게 되는데요.
하지만 기무라와 유독 친분이 깊었던 최배달은 세컨드로 경기를 지켜봤는데 무자비하게 기무라를 패는 역도산에 분노해 링 위에 뛰어오르려 했으나 “동포 간에 일본인들 앞에서 싸우지 말라”는 외침에 분을 삭였는데요. 이와 관련해서는 다음 영상에서 찾아뵙겠습니다. 최배달은 사실 세계 무도계에서 전설처럼 불리는 인물이지만 한국에서는 귀화했다는 이유로 크게 인정받지는 못했습니다. 해방 후 어지러운 정국에서 그는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를 매료시켰음에도 한국에서는 그를 싸움꾼, 또는 소를 때려잡는 미치광이 정도로 평가했죠. 일본에 협조한 변절자라고도 불렀죠.
평가야 어찌 됐든 그는 1968년, 일본으로 귀화한 것은 사실입니다. 참고로 최배달이 일본으로 귀화한 이유가 있습니다. 자신을 외면한 조국에 대한 서운함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일본 청소년들의 우상이었던 그가 어쩌다 보니 ‘일본의 위대한 영웅 10걸’에 선정된 것입니다. 당시 극진 회관을 후원하던 사토 전 일본 총리가 정중하게 귀화를 권유해 온 것이죠. 다만 일본에서 살아가는 만큼 일본식 이름을 갖게 되지만…
그는 ‘최영의’라는 본명을 쓰지 않고 한국인임을 잊지 않기 위해 ‘배달의 민족’에서 나온 ‘배달’이라는 단어를 자신의 이름을 대신해 사용했고 그의 이름인 ‘오오야마 마쓰다츠’는 한국명으로 ‘최배달’ 즉, 배달의 민족이라는 뜻이 담긴 이름인데 그는 항상 최배달로 불리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서 그렇게 고집스럽게 한국명을 썼습니다. 그는 평소 일본으로 귀화한 것은 단순히 일본 국적 취득이라고 설명했으며 그의 제자들에게는 항상 자신이 한국인임을 강조했다고 합니다.
1994년, 암으로 세상을 떠난 그는 살아생전 실전 무도인 극진 가라데를 한국에도 보급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준비했습니다만 광복 후 태권도가 한국의 국기로 자리 잡으면서 태권도의 안정적인 보급을 위해 그 꿈을 접었습니다. 그리고는 태권도의 발전에 후원과 도움을 아끼지 않은 것은 태권도 원로들 사이에서도 아주 잘 알려져 있습니다. 어쨌든 국적을 떠나 한 무술인이 자신의 철학을 바탕으로 일본뿐 아니라 세계 무술계를 바꿔놓았다는 점은 정말 존경하고 싶습니다.
다음번 영상에서는 두 명의 한국인, ‘일본 최고의 레슬링 영웅’으로 꼽혔던 ‘역도산’과 일본 무도계 최고의 영웅으로 꼽혔던 ‘최배달’이라는 한국인이 직접 대결을 펼칠 뻔했던 뒷이야기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