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텍스트 YouText 글로 읽는 동영상

한국 조선업이 세계 1위일 수 밖에 없는 이유

해외반응 일본반응 중국반응 한류 해외리얼반응 외국반응 해외언론

올봄부터 올해는 역대급 폭염과 폭우가 예상된다는 기사가 쏟아지더니 결국 이는 현실이 됐습니다. 요 며칠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쏟아진 집중호우로 충북과 경북 지역에는 역사상 최대치에 이르는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충북 오송읍에서는 지하차도가 물에 잠겨 차량 19대가 고립돼 아직 인명피해 자체를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고 충북 괴산군의 경우는 댐이 월류 하면서 댐 주변 주민 1,200명이 대피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경북 예천에서는 지역 곳곳에서 폭우로 인한 산사태로 주민 8명이 숨지고 9명이 실종되는 등 전국적으로 폭우로 인한 피해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괴산군의 경우는 제 고향이기도 한데 괴산군 뿐 아니라 전국에서 폭우로 고통받고 계신 모든 분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부디 모든 분이 안전관리에 만전을 기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집중호우가 쏟아지면 댐이 월류하고 저수지가 범람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 아래에서 생각지도 못한 유물이 출토되는 경우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 아직도 역대급으로 기억되는 거대한 태풍이 할퀴고 지나간 자리에서 8,000년 전 나무배 한 척이 발견됐습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우리나라가 전 세계 선박 시장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는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중국의 저가 공세에 몇 년 고생하기는 했지만, 우리나라 조선업은 여전히 세계 1위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영국 ‘클락슨 리서치’에 따르면 올 1분기 한국 조선업계는 총 65척을 수주해 전 세계 점유율 44%를 차지하며 세계 1위에 올랐고 특히 고부가가치 선박으로 꼽히는 LNG선의 경우 올해 1분기 발주된 19척 중 17척을 한국 조선업계가 수주하면서 점유율 90%를 차지했습니다. 앞선 기술력으로 그간 2020년 85.2%를 제외하고는 매년 90% 이상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죠.

그런데 궁금한 점은 우리에게 선박을 잘 만드는 DNA가 언제부터 생겼느냐는 점입니다. 사실 기록상으로 보자면 9세기 일본 승려 엔닌은 당나라를 여행하고 쓴 ‘입당구법순례행기’에서 신라 배는 작지만 날렵하고 강하다고 감탄했고,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은 집안 대대로 해상무역으로 부를 축적한 집안 출신으로 914년에는 70여 척의 군함을 운용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원나라의 왕휘가 쓴 ‘범해소록’에는 여몽 연합군이 일본을 정벌할 당시 크고 작은 함선들이 파도에 다 부서졌으나 유독 고려의 전선은 배가 견고하여 온전했다거나 고려의 배는 강하기 때문에 고려에서 배를 건조해 다시 일본을 정벌하면 이길 수 있다고 쓰고 있는바 우리 조상들의 선박 건조 능력은 남달랐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도대체 언제부터 이러한 DNA가 생겨났는지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일본만 하더라도 신석기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목선 100여 개가 발굴됐지만 한반도 지역에서는 아직 이러한 유물이 등장하지 못해 애만 태웠습니다. 2003년 9월 태풍 ‘매미’가 경남 지역을 휩쓸기 전까지 말이죠.

2003년 9월 12일 한반도를 할퀸 제14호 태풍 매미는 특히 경남지역에 엄청난 피해를 줬습니다. 경남 창녕군 부곡면 비봉리도 큰 피해를 보았는데 그 원인은 양수와 배수의 문제였죠. 이렇게 결론 내린 창녕군은 비봉리의 양 배수장을 증축하기로 하고 이듬해 4월부터 배수장 확장공사를 시작합니다.

펌프의 용량을 키우고 중장비를 동원해 물이 머무를 수 있는 유수지를 새로 조성하는 공사를 시작했는데 공사 도중 진흙 아래에서 패총이 발견되기 시작합니다. 패총은 쉽게 말하면 조개무덤이라고 부르는 별 의미 없는 유적인데 왜냐하면 해안이나 강가에 살던 이들이 먹고 남은 뼈나 조개껍데기 또는 생활용품을 버리는 일종의 쓰레기장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비봉리에서 발견되는 패총은 의미가 달랐습니다. 왜냐하면 경남 창녕은 해안이 아닌 내륙지방이기 때문입니다. 내륙지방에서 발견되는 쓰레기장은 그 지역이 집단거주 증거가 되기 때문에 공사를 중단하고 유적을 발굴하기로 결정됐습니다.

임학종 당시 국립진주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은 조사단을 꾸려 비봉리로 달려갔다가 놀라운 유물을 발견합니다. 조개껍데기는 석회질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패총에서는 비교적 온전한 형태의 고대 유물이 발견되는데 비봉리 패총에서도 온전한 상태의 나뭇가지, 바닷조개, 빗살무늬 토기 등이 출토됐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사실을 종합해 볼 때 이 장소는 선사시대에 만들어진 패총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이에 조사단은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죠. 패총은 흔히 해안가에서 발견되고 세월이 흐르면서 파도의 충격으로 자연스럽게 훼손되지만 비봉리는 지금 현재 내륙지방이기 때문에 온전하게 보존된 선사시대의 유물을 기대할 수 있었습니다.

이에 11월부터 본격적으로 유물발굴을 시작하게 되는데요. 비봉리에서 발견된 패총은 총 5개 층으로 구분됐는데 가장 위층은 약 5,500년 전, 두 번째 층은 약 6,500년 전, 가장 아래층은 최대 8,000년 전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5개 층에서 발견된 유물들은 전부 놀라웠지만 가장 놀라운 것은 대부분 가장 위층에서 발견됐습니다.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똥 화석이 나왔고 망태기와 장신구도 함께 발굴됐습니다. 장신구가 발견됐다는 것은 우리 조상들의 여유로웠던 생활 수준을 보여주는 유물입니다. 인간의 특성상 먹고살기 넉넉했을 때야 비로소 몸치장을 시작하기 때문에 5,500년 전 경남 창녕 지역에 살던 우리 조상들은 여유 있는 생활을 했다는 점을 추정할 수 있죠.

그런데 비봉리 유적에서는 당시 식생활을 추정할 수 있는 뼈들도 다소 출토됐는데 상어 척추와 가오리 꼬리로 추정되는 뼈들이 발견됐습니다. 빙하기가 끝나고 신석기시대로 접어들면서 자연환경에는 큰 변화가 생깁니다.

보통 신석기 시대 하면 많은 이들이 농경을 떠올립니다. 물론 한반도에서도 곡물을 재배했는데 한반도 신석기인들의 가장 큰 특징은 바다 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상어와 가오리 뼈가 발견됐다는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상어나 가오리는 해안에서 발견되기도 하지만 바다생물이기 때문에 해안가가 아니라 바다에 주로 서식합니다.

그런 의미로 본다면 경남 창녕에 살았던 이들이 상어와 가오리를 포획한 후 주거지로 가져와 먹었다는 의미가 되니까요. 그렇다면 상어나 가오리를 잡기 위해서 직접 수영해서 먼바다까지 나갔다 왔을까요? 상식적으로 힘들 겁니다. 그래서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사냥을 했으리라 추정할 수 있는데 이 추정을 뒷받침하려면 배, 즉 사람이 바다까지 타고 나갔을 운송수단이 발견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배가 발굴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생겨났고 그 결과가 얼마 뒤 나타났습니다. 발굴을 시작하고 여름이 다가오면서 조금씩 힘든 기색이 발굴단 사이에서 포착되기 시작할 즈음 임 실장은 의미심장한 꿈을 꿨습니다. 그는 꿈속에서 십자가를 봤는데 그 끝에 돼지 꼬리처럼 생긴 끈이 보인 겁니다.

뭔가 심상치 않다고 생각한 그는 조사 단원들에게 납작한 판이 보이거든 즉각 발굴을 중단하라고 지시했죠. 그가 꿈에서 본 돼지 꼬리 모양의 끈은 배를 해안가에 접안시킬 때 사용되는 밧줄로 해석했고 여러 정황상, 이 비봉리는 7, 8천 년 전에 바닷물이 들어왔을지도 몰랐습니다. 그리고 그의 꿈은 적중했죠.

6월 24일 오후 3시쯤 지하 6m가량을 파 내려간 포클레인 기사는 이제 그만하자며 임 실장을 설득했지만, 그는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동아줄이라도 잡는 심정으로 딱 한 번만 더 긁어보자고 부탁했는데 그 마지막 바가지를 긁는 순간 갈색 나무판이 등장했습니다.

즉각 포클레인을 뒤로 물리고 발굴 단원들이 내려가 맨손으로 진흙을 퍼냈는데 1시간의 작업 후에야 쪽배가 모습을 나타냈죠. 통나무 속을 파내 길이 3.1m, 너비 62cm 크기의 배가 나온 겁니다. 배에서 한 조각을 떼어 연대를 측정한 결과 목선은 소나무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판명됐고 그 수령도 200년 이상 넘었다는 점이 밝혀졌습니다.

이로써 무려 8천 년 전 한반도에 살던 조상들이 먼바다로 나갈 때 탔던 배가 등장하게 됐습니다. 8천 년 전이면 국내에서 발굴된 가운데 지금까지 가장 오래된 경주 안압지 배보다 6,800년 앞서고 이집트 쿠푸왕의 피라미드 고선박보다 3,400년 앞선 배입니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배로 알려진 토리하마 1호나 이키리키 유적 출토품보다 2천 년 이상을 앞선 배가 경남 창녕 비봉리에서 나온 것이죠.

이로써 비봉리에서 발굴된 목선은 전 세계 선박 역사에서 가장 귀중한 보물이 됐습니다. 발굴단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급히 파견된 목조 보존 전문가 2명과 함께 주변 흙과 나무배를 한꺼번에 들어 올린 후 특수제작된 나무상자에 실어 중앙박물관으로 옮겨갔습니다.

이 배에는 ‘비봉리 1호’라는 명칭이 생겼는데 숫자 1이 붙은 이유는 2008년 조사에서 또 다른 배 한 척이 발굴됐기 때문입니다. 2010년 발굴 당시에는 약 9m 떨어진 곳에서 배를 젓는 노까지 출토됐습니다. 그러니까 한반도에 살던 신석기인들은 8천 년 전부터 배를 제작해 먼바다로 나가 상어, 가오리 등을 잡아 식재료로 사용했다는 점이 유물로 증명된 겁니다.

보통 신석기시대나 선사시대라고 하면 굉장히 원시적인 삶을 떠올리지만, 고기잡이는 한반도 신석기시대의 중요한 생업 활동이었습니다. 현재 행해지는 어업 방식의 대부분이 그 시기에 시작됐다고 하죠. 나중에 확인된 사실이지만 현재 바다와 60km 떨어진 경남 창녕에서 상어와 가오리 뼈, 목선, 노 등이 발견된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현상입니다.

경북대 황상일 교수는 2013년 발표한 ‘창녕 비봉리 지역의 Holocene 중기 해수면변동’이라는 논문에서 6,800년 전 이전에는 비봉리가 내만의 해안에 있었으며 해안선은 청도천을 따라 나무다리 부근까지 전진해 있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이곳에서 채취한 흙에서 바다에 사는 플랑크톤이 다량으로 발견되기도 했죠.

그러니까 8,000년 전 창녕 비봉리가 해안이었을 때 신석기인들은 이곳에서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상어를 잡고 가오리를 잡았을 겁니다. 이미 8,000년 전부터 배 타고 원양어업에 나섰던 우리 조상들의 DNA가 지금까지 남아 세계 1위의 조선업을 가능하게 한 것은 아닐까요?

Exit mobile ver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