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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일본을 향한 소신 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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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집집마다 당연하게 태극기가 있었습니다. 주요 국경일이나 기념일에는 너도나도 대문 앞이나 베란다에 태극기를 게양하고는 했죠. 이런 행위는 정치나 외교 관계와는 무관한 순수한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과 같은 일이었습니다. 다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렇게 실물 태극기를 게양하는 가정은 줄었지만, 대신에 SNS 프로필에 태극기를 거는 사람은 늘었습니다.

이는 한류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연예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이런 행위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이들도 있는데 일본의 한류 팬들입니다. 우리에게 8월 15일은 치욕스러운 35년의 일제 식민 통치에서 벗어난 기념비적인 날이지만 일본에게는 종전기념일입니다.

말이 좋아 종전기념일이지 엄밀히 따지면 일본이 핵폭탄 2방에 무조건적인 항복을 선언한 패망일입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지지하는 한국 연예인이 SNS 프로필을 태극기로 바꾸면 정치적이라는 말로 비난하고 비판하기 일쑤.

그런데 일부러 한국에서는 광복절로 개봉일을 맞추고 일본에서는 개봉을 무기한 연기한 할리우드 영화 한 편이 있습니다. 인터스텔라, 인셉션 등 역대급 작품들을 만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펜하이머인데요. 일본 내 수많은 팬을 보유한 유명 감독이지만 이번 영화는 유독 논란이 많고 그 평가 또한 극과 극입니다. 왜 영화 한 편을 두고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요?

1938년 12월 독일 과학자들이 핵분열의 원인을 발견하자 헝가리 출신 물리학자 레오 실라르드는 이것이 매우 강력한 폭탄을 만드는 데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그러고는 그의 절친이었던 아인슈타인을 통해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매우 강력한 폭탄이 만들어질 수 있음을 경고하는 편지를 썼죠.

나치 독일의 이런 성과를 두려워한 루스벨트가 1939년 10월 21일 우라늄 자문위원회를 구성하면서 전 세계는 본격적인 핵 개발 시대로 접어듭니다. 그리고 6년 뒤 1945년 7월 16일, 미국 뉴멕시코의 한 고원 사막에서는 인류 최초의 핵무기 폭발 실험이 가동됐는데 이름하여 맨해튼 프로젝트입니다.

미국은 총 3개의 핵폭탄을 만들어 실험하기로 했는데 당시 이 사막에는 오펜하이머, 페르미, 로렌스, 콤프턴 등 4명의 과학자가 모였습니다. 그리고 첫 번째 실험을 통해 가제트를 폭발시켰죠. 실험 명은 트리니티.

실험에 성공한 연구팀은 이 자리에서 제2차 세계대전의 원흉인 일본에 이를 투할 것이냐를 결정해야 했는데 당시 책임자였던 오펜하이머는 핵무기는 죽음의 무기지만 전쟁을 끝내고 인류의 평화를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실전에 투입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는데요. 그렇게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에 우라늄 핵폭탄 리틀보이를, 3일 뒤 8월 9일 나가사키에 플루토늄 핵폭탄 팻맨을 투하했습니다.

이 덕분에 일본이 무조건적인 항복을 선언하면서 제2차 대전은 종전을 맞이했고 한국은 치욕스러운 일제 식민 지배를 끝내고 광복을 맞이했죠. 핵무기 2방을 일본에 투하하기로 한 인물 오펜하이머가 바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만든 영화의 주인공입니다. 그리고 영화는 이 모든 과정을 담았죠.

원래 이 작품은 2005년 출간된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라는 오펜하이머 평전을 원작으로 합니다. 카이 버드와 마틴 셔윈이 공동 집필한 이 책은 퓰리처상을 수상했는데 그의 영화 같은 일생을 완벽하게 영상에 담아냈습니다. 그가 소련 스파이로 몰리게 된 오펜하이머 청문회를 중심으로 그가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는 과정, 그리고 인류에 불을 전해준 그리스 로마 신화의 프로메테우스처럼 인류에 핵을 전해줬으나 이로 인해 느끼는 죄책감을 특유의 방식으로 풀어내 관객을 단숨에 빠져들게 만듭니다.

물론 3시간이라는 긴 러닝타임이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한번 빠져들면 3시간도 순식간에 지나갑니다. 혹 기회가 되시면 꼭 한번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특히 CG 없이 재현한 핵폭발 장면은 가히 압권입니다.

워낙 상징적인 영화다 보니 한국에서는 개봉 전부터 대단한 관심을 끌었는데 개봉 첫날인 광복절에만 55만 관객이 영화관을 찾았고, 이는 2023년 올해 국내 극장에 걸린 외화 중 최고의 오프닝 스코어였죠. 사실 미국에서 7월 21일 공개된 것에 비하면 꽤 늦은 개봉인데 전 세계 동시 개봉 같은 트렌드 민감한 국내 극장가에서 이례적 선택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개봉을 한 달가량 미룬 것은 한국의 특수성을 감안해 내린 선택입니다.

일본에 핵폭탄 2방이 투하되고, 패망하고, 또 그로 인해 광복을 맞은 한국의 입장에서는 가장 상징적인 날이니까요. 미국 워싱턴포스트 역시 이에 대해 한국에서는 8월 15일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항복한 것을 기념하는 광복절에 스크린 등장이라며 관심을 보였고 이에 대해 오펜하이머를 배급하는 유니버설 픽처스 코리아는 영화 개봉 시기는 각국 배급사에서 정하며, 가장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는 징검다리 연휴를 택했을 뿐이라며 미리 논란을 일축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사실 우리야 기분이 나쁠 이유가 없고, 대작에 목말라 있던 영화산업 역시 오펜하이머를 반기는 눈치였죠. 하지만 바로 옆 나라, 일본은 다릅니다.

원폭 투하 78년을 맞은 일본에서는 아직 개봉 일정도 잡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비슷한 시기 미국에서 공개된 ‘바비’, ‘미션 임파서블7’이 이미 일본 극장에 걸린 것과도 대비되는데요.

오펜하이머의 미국 시사회 당시 일본 교도통신은 ‘원폭의 아버지 전기 공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황폐화 묘사하지 않았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고 아사히 신문은 과학자의 고뇌를 그리는 데 역점을 둔 나머지 원폭의 위험을 환기하는 것을 간과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즉, 영화의 주제는 이해하지만 왜 원폭으로 피해 본 일본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다뤄지지 않았느냐는 겁니다. 실제로 영화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을 투하하는 장면이나 피폭자들의 모습은 다루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 대해 놀란 감독은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영화는 오펜하이머의 삶에 대한 나의 해석’이라며, ‘원폭이 자칫하며 세상을 파괴할 수도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도 실험 버튼을 누른 바로 그 방으로 관객들을 데려가고 싶었다’며 리얼리티에만 집중했음을 강조했습니다.

물론 영화라는 특정 장르이기는 하지만 굳이 일본인의 입장에서 생각하자면 아쉬운 부분이 있기도 할 것으로 보입니다. 가령, 첫 원폭 실험이 성공한 뒤나, 히로시마에 원폭을 투하한 뒤 연구원들이 환호하는 모습, 폭탄 투하 도시를 결정하는 장면을 무심하게 선택하는 장면 등이 일본인들의 입장에서는 불만스러울 수 있겠지만 영화라는 것은 창작품이기 때문에 창작에 정치를 가미시킬 수는 없는 일입니다. 놀란 감독의 선택이죠.

여기에 미국에서 유행처럼 번진 ‘바벤하이머’라는 단어도 일본의 심기를 건드렸습니다. 미국에서는 7월 21일 바비가 개봉했고, 같은 날 오펜하이머가 개봉했습니다. 그래서 미국 SNS에서는 성격이 전혀 다른 두 영화의 포스터를 결합한 바벤하이머 밈이 크게 유행했었는데요.

여아 대상 패션 인형을 다루는 판타지 코미디 영화와 일본을 패망하게 만든 핵폭탄의 아버지를 다룬 영화라는 완전히 다른 장르의 두 영화가 동시에 개봉하면서 탄생한 용어입니다. 두 영화 모두 잘 됐으면 하는 의미로 만들어진 유머로, 원자폭탄 구름을 바비의 컬러인 핑크색으로 바꾸거나, 두 포스터를 합성하는 등 다양한 밈이 탄생했죠.

그러나 일본인들 사이에서 수많은 희생자를 발생시킨 원자폭탄을 희화화하고, 피해자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며 난리가 난 겁니다. 이에 블룸버그 통신과 영국 가디언 등은 바벤하이머의 공동마케팅이 핵전쟁을 너무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며 이러한 논란을 전하기도 했는데요.

결국 개봉 상태에 있던 바비의 일본 배급사는 급히 입장문을 내 미국 본사의 배려가 부족했으며 불쾌했던 분들에게 사과한다고 밝혔고, 일본 매체 더 재팬 타임스는 일본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투하를 추도하고 있을 때 영화를 개봉하는 것은 사업적 측면에서도 적절하지 않다고 논평했습니다.

결국 세계적인 명작 오펜하이머는 지금까지도 일본 개봉 일정을 잡지 않았고, 아마 어쩌면 일본에서는 영원히 개봉하지 않을 가능성도 충분한 상황인데요. 사실 원폭 투하 후 생긴 피해를 되돌아보면 일본이 이토록 예민한 것도 이해는 됩니다. 원자폭탄이 투하되면서 폭 심지 반경 1km 이내에 있던 시민들은 열선에 타 죽거나 최대 풍속 44m의 폭풍에 압사했고, 약 4km 지점에 있던 사람 대부분이 전신화상을 입었죠.

더구나 암이나 백혈병은 방사능 피폭 후 수년 혹은 십수 년 뒤부터 발생하므로 후발성 장애라고 하는데, 학계에서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투하 후 후발성 방사능 후유증까지 포함해 약 70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 이 가운데는 약 3만 명의 조선인 피해자도 있습니다.

다만, 이 원폭으로 한국은 광복을,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은 마침표를 찍었다는 점에서 일본과 우리가 받아들이는 태도가 완전히 반대입니다. 그렇다면 일본은 어쩌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원폭을 2방이나 맞게 된 것일까요?

1941년 12월 7일 일본군은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적으로 폭격했는데 잠자는 호랑이에 코털을 건드린 격입니다. 그간 미국은 자신들의 무기를 사주는 나치 독일을 시장으로 여기고 열심히 무기를 팔아 돈을 모았죠. 그러니까 미국은 인류애라는 거창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2차 대전에 참전한 것이 아니라 일본이 건드는 바람에 마지못해 발을 들여놓은 겁니다.

어쨌든 자국이 침공당했다는 사실에 분노한 미국은 즉각 일본군을 폭격하기 시작하는데요. 아마 일본이 미국의 두려움을 느끼고 즉시 전쟁을 끝냈다면 원자폭탄은 사용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미국은 포츠담 선언을 통해 항복을 요구했지만, 일본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오히려 가미카제를 앞세워 승패가 결정된 전쟁을 이어갔습니다.

이대로라면 일본을 항복시키기 위해 미군은 큰 피해를 감수하고 일본 영토 내에서 끝이 보이지 않는 전쟁을 이어가야 했는데, 그 피해가 너무나 명백했기 때문에 결국 히로시마에 리틀보이 투하를 결정합니다. 하지만 항복할 줄 알았던 일본은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팻맨을 나가사키에 투하한 후에야 백기를 들었죠.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뒤로하고 오로지 원폭 피해자라는 사실만을 강조하고 그걸 교육하고 있는 겁니다. 전쟁 당사자인 미국은 물론, 당시 굴욕적인 식민 통치를 받았던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 국가에게 있어서 일본에 떨어진 원폭은 징벌이자 천벌이었지만 말이죠.

해외 네티즌과 일본 네티즌 간의 인터넷 속 싸움 역시 바로 이런 일본의 가해자 인식 없는 피해자 인식 때문에 발생하고 있는 겁니다. 일본은 늘 일관되게 자신들의 전쟁 역사는 시대 흐름에 따라 어쩔 수 없던 것이라고 말하고, 그들이 패망했던 과정과 결과는 피해자라고 호소합니다.

우리는 피해자의 입장에서 아주 잘 인식하고 있지만 많은 국가에서는 일본 국가 차원에서 만든 이미지 메이킹 덕분에 잘 인식하지 못했을 뿐이죠. 심지어 많은 사람이 일본이 전범국이었던 사실조차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번 오펜하이머 영화가 전 세계 많은 이들이 역사적 사실을 인지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고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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