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열심히 사는데도 뭔가 발전은 없고, 제자리걸음이었거든요. 근데 지금은 주변 분들이 성공했다고 봐주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아직까지는 한국에서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유효한 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제 이야기를 좀 들려드리려고 해요.
저는 미용실도 하고 있는데, 주로 삭발 디자인이라고 두피 문신을 하고 있어요. 왼쪽 모습에서 오른쪽 모습으로 바꿔 드리는 일을 하고 있어요.
아침에 제가 얼굴이 많이 붓는 편이라 아침마다 운동을 해요. 제가 아무래도 삭발 디자이너니까 탈모인 손님들한테 좀 멋있게 보여져야 하거든요. 그래야 그분들이 희망도 얻고 용기를 얻기 때문에 좀 관리를 이런 식으로라도 좀 하고 있어요.
현재 월 매출이 평균 1억 정도 돼요. 순수익은 매출이 한 1억 정도 되면 반 정도 남는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미용실 커트가 예를 들어서 2~3만 원인데, 머리 잘라주는 데 재료비가 많이 들거나 하는 건 아니잖아요. 두피 문신도 거의 그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근데 정말 기술력이 높아야 하고, 정말 손님한테 잘해줄 수 있는 많은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어야 금액을 제대로 받아도 고객들이 전혀 비싸다고 생각을 안 하세요.
제가 뭐 처음부터 이렇게 뭐 잘 됐던 건 아니고, 진짜 평범하게 그냥 대학교 들어가서 관광경영학과 다니다가 집안 형편이 너무 어려워져서 중퇴하게 된 거예요. 정말 그냥 아무것도 없이 청담동 미용실에 일을 구하러 갔는데, 채용공고에 뭐라고 쓰여 있었냐면 ‘동방신기 누구 다닌다’, ‘이병헌이 온다’라고 적혀 있어서 그냥 거기다 이력서 넣고 면접을 봤는데, 채용된 거예요.
그렇게 1년 동안 미용실에 있으면서 저는 항상 제일 막내였으니까, 사실 뭐 그렇게 많이 배운 게 없어요. 바닥 쓸고, 샴푸 하고… 이런 거 위주로 많이 하다 보니까 언제 디자이너가 되는 건지에 대해 회의감도 많이 들고 그래서 그만뒀어요.
청담 미용실을 그만두고 속성으로 디자이너가 될 수 있는 학원을 찾아서 거기를 매달 매일 다녔어요. 그래서 거기서 속성으로 디자이너가 됐죠. 디자이너가 돼서 취직했는데, 실력이 사실 좀 없는 상태에서 디자이너로 들어간 거니까 실제로는 손님들이 자리를 박차고 나간 적도 있어요. 한두 번 정도… 정말 그때 충격이 정말 엄청났는데, 손님이 컴플레인을 너무 심각하게 거니까 너무 당황스럽더라고요.
진짜 온갖 창피는 다 당하고, 원장님한테 핀잔 듣고… 집으로 갔어요. 당시에 집이 반지하였는데, 정말 세상에 아무도 나를 혼자인 느낌이더라고요. 그렇게 핀잔 들으면서 기술을 완성시켜서 창업하게 됐어요.
그렇게 미용실 운영하면서 항상 제가 고민이었던 게, 탈모가 있으신 분들, 머리 빠지신 분들은 스타일링을 어떻게 해도 답이 안 나와요. 그래서 그분들을 어떻게 하면 멋있게 만들어 드릴 수 있을지 계속 생각하다 보니까 해외에서 하고 있는 두피 문신을 보게 된 거죠. 딱 그걸 봤는데, 그게 엄청나게 배우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그 기술을 배워 와서 한국에서 장사하려고 하는데, 사진 자료들이 많이 없으니까, 손님들이 상담만 하고 그냥 가시는 거예요. 정말 저는 간절함이 있었거든요. 내가 흙수저지만, 정말 이걸 통해서 돈을 벌어야겠다는, 이걸로 내가 정말 잘살아 봐야겠다는 간절함이 있었어요.
그래서 탈모인 분들한테 두피 문신의 좋은 점을 보여드리려면 내가 머리를 밀어야겠다고 생각해서 직접 머리를 밀고 제 머리에다가 작업을 하게 된 거예요. 그게 진짜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진짜로 제가 머리를 딱 밀고, 제 머리에 작업을 딱 해 놓으니까, 제가 할 말이 생기는 거예요. 손님한테 당신을 이렇게 만들어 줄 수 있다고 어필하게 되니까 손님들이 바로 결정하시더라고요. 그 사람들한테는 뭔가 결정을 할 수 있는 증거들이 필요했던 거예요. 뭔가 확신을 줄 수 있는 것들 말이죠.
저는 아직 레이를 타고 다니는데요. 미용실 할 때 샀던 첫 차인데, 아직 잘 굴러가고… 어릴 때부터 조금 가난하게 살았다 보니까 그때부터 가져온 습관이 지금까지 계속 연결되는 것 같아요.
한국에 삭발 디자인하는 곳은 엄청 많아요. 많이 생긴 것 같아요. 그런데 이제 모든 업체가 다 저희만큼 손님이 많고, 돈을 많이 벌고 있지는 않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3년 전에 최초로 시작하면서 가장 많은 전/후 사진들을 갖고 있고, 디자인적인 부분에서도 아무래도 제가 헤어 디자이너를 했던 경력이 있으니까 많은 고객님이 저를 선택해 주시는 것 같아요.
두피 문신을 한다고 해서 다 손님이 많이 찾거나 돈을 많이 버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어떤 사업이든 간에 똑같이 상위 1%에 있는 사람들이 돈을 많이 벌게 되어 있잖아요.
돈을 많이 벌게 되니까 얼떨떨한 것도 있어요. 그리고 제가 이렇게 많은 돈을 벌어도 되는 사람인지 생각도 한 번씩 하게 되고… 그런데 아무튼 예전을 생각해 보면 반지하에 살면서 밥값도 아끼고 살았던 게 불과 몇 년 전인데, 지금 보면 정말 여유로워진 거라고 생각하죠. 그래서 지금은 김밥천국 같은 데 가서 그렇게 배가 안 고파도 메뉴 2개씩 시켜서 먹을 수 있는 여유 정도 생긴 거… 이런 게 변했어요.
요즘에 드는 고민이라면 그냥 이 달리기가 언제 끝나나… 항상 뒤에서 누가 쫓아오듯이 열심히 살아야 하는 기분이에요. 자유경쟁 사회에서 살아남아야 하잖아요. 그래서 항상 이렇게 뒤쫓아 오듯이 열심히 사는 걸 좀 어느 순간 내려놔야겠다는 생각을 조금씩은 하고 있어요. 좀 내려놓고 일을 즐기면서 할 수 있게, 너무 목숨 걸고 하지 않고 그렇게 하려고 해요.
아직 해외여행도 한 번 못 가봤거든요. 제가 워낙에 가난하게 자라서 가볼 생각도 못 해요. 좀 여유가 찾아오면 저도 좀 내려놓고 해외에 좀 다녀보고 싶어요.
회사 다니는 친구들은 자기보다 몇 배 이상 돈을 버니까 욕심을 왜 이렇게 많이 부리냐고 가끔씩 얘기하는데, 직접 현업에서 사업하다 보면 언제까지 이렇게 벌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불안함과 항상 뒤처지면 안 된다는 긴장감이 다 모여서 사람을 쉴 수 없게 만드는 게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가게에서 자면서 일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그런 부분이랑 연관돼 있는 것 같아요.
사회초년생 친구들 앞에 가서는 말을 좀 조심하는 편이에요. 왜냐하면 그들한테는 굉장히 현타가 올 수 있기 때문에… 왜냐하면 분야가 완전히 다른 거잖아요. 제 친구들도 나름대로 자기만의 길을 걸어서 어떤 자리에 오른 사람들인데, 그걸 돈으로 평가해서 제가 그들보다 많이 번다고 해서 나은 사람이 되는 건 아니잖아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제가 간절함으로 처음에 머리를 밀지 않았더라면 정말 그 한 명의 고객을 못 잡았을 수도 있어요. 정말 그 하나의 차이가 굉장히 크다고 생각해요. 한 끗 차이. 그러니까 제가 그때 간절함으로 다음번에 오는 상담 손님을 놓치지 않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거예요. 내가 진짜 머리를 밀고 있으면 적어도 머리를 할 확률이 더 높으니까요.
결국 그게 먹혔고, 그런 한 끗 차이가 사실 모든 사업에 다 비슷한 것 같아요. 내가 이걸 해 볼 수 있느냐, 없느냐가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직까지는 대한민국이 진짜 힘들다고 하지만, 이 시대에도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