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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한 대기오염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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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닥터프렌즈입니다. 지금은 공기청정기가 필수라는 얘기가 있지만 옛날에는 안 그랬겠죠. 대체 왜 공기청정기를 만들 수밖에 없었는지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대기 오염이라고 하면 사실은 되게 오래됐어요. 최근에 캐나다에서 산불 났죠. 호주에서도 산불이 크게 났고요. 근데 사실 그것도 대기 오염이거든요.

화산 폭발도 대기 오염이에요. 도시 전체가 없어지잖아요. 화산재 날아가고 피해도 엄청나게 크고요. 크레타 같은 경우는 화산 폭발로 문명 하나가 망하고요. 그래서 사실은 지구의 수명과 함께한다고 볼 수 있는데 이거를 제외하고 인위적인 대기 오염은 인류와 함께했다고 보면 됩니다.

사람이 불을 피우는 순간부터 대기오염은 시작된 거죠. 하지만 선사시대 때 불 피워봤자 대기오염까지는 아니죠. 하지만 추울 때 추위를 몰아내기 위해서 혹은 동물을 쫓아내기 위해서 동굴이나 움막에서 피우죠. 그러니까 환기가 안 돼요. 그래서 선사시대 동굴에 층이 있어요. 거기서 계속 불을 피우니까 재가 붙어서 층을 이룬 거죠. 그걸 계속 마신 거죠.

여기서 이집트로 가보면 비슷하거든요. 이집트의 미라를 조사해 보면 보통 진폐증이 있습니다. 폐에 나무나 이런 것들을 태운 가루들이 박혀 있어요. 그리고 이집트는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도시가 형성됩니다. 집들이 모여 있게 되면서 비로소 공기 오염이 시작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거보다 훨씬 도시가 커요. 아테네만 해도 전성기 시절에 20만 명 정도가 됐고 로마 시대 전성기 때 로마는 100만 명이 살았어요. 이 당시 도시에는 산업이 있어요. 대장간도 있고 도자기도 굽고 검은 연기가 계속 치솟는 거죠.

로마 시대 기록에 호라티우스라는 분이 쓴 걸 보면 ‘로마의 아름다운 유산의 사원, 신전 또는 조각상들이 검댕에 의해서 망가지고 있다’라고 해요. 그렇게 될 정도로 심했고, 유명한 철학자인 루키우스는 자기 친구한테 편지를 쓰는 데 대기 오염 때문에 건강이 안 좋아진다고 해요. 계속 기침이 나고 너무 힘들다고요. 게다가 로마는 납을 계속 사용하니까 대기 중에 중금속도 계속 있는 거죠.

이게 사실 이렇게 계속 염증이 있으면 만성폐쇄성폐질환이 생기거든요. 당시에 사망한 사람들의 폐를 보면 기관지 확장증이나 광산 지역 주변에는 결핵 환자 더 많은 것들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런 공기 오염이 로마 시대를 지나 먹고살기 힘든 중세가 되니 더 안 좋아져서 최악입니다.

우리나라는 조선시대까지 계속 나무 땔감을 썼죠. 그래서 산업혁명 때 석탄을 썼다고 생각했거든요. 석탄은 약간 증기 기관으로 연결되잖아요. 아닙니다. 영국 동, 북부 해안 쪽은 그냥 길을 가다 보면 석탄이 있대요. 태우면 나무보다 훨씬 강력하고 오래가는 열이 나는 거죠. 원래 중세 초반부터, 3~4세기부터 석탄을 썼대요.

주변으로 번지진 않았어요. 왜냐면 석탄을 태워봤더니 너무 따뜻하고 좋은데 냄새가 훨씬 매캐해요. 황이 타니까 검댕도 훨씬 까맣게 지고 연기도 너무 새까매서 위험해 보였던 거죠. 그러다가 런던이 점점 커지고 교류를 많이 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은 나무 땔감이 안 그래도 사람이 많아지고 계속 사서 써야 하니까 땔감 가격이 계속 올라가요.

근데 동북부 해안 사람들이 거기서는 석탄을 그냥 길을 가다가 주워서 쓴다고 하니까 너무 싼 거죠. 그래서 런던에서도 사용하기 시작해요. 나무랑 같은 부피에서 석탄이 너무 사용하기 좋으니까 가난한 사람들이 계속 사용하거든요. 그래서 이게 사용량이 꽤 많아져요.

근데 런던은 원래 안개가 잘 낍니다. 그래서 13세기부터 런던은 스모그가 있었어요. 냄새도 심하고 시야도 가리고 기침도 나니까 사람들이 짜증이 너무 나는 거죠. 근데 보통 가난한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쓰고 있으니까, 짜증이 나도 참아야 하는데 귀족들이랑 성직자들이 런던에서 못 살겠다며 왕한테 가서 너무 힘들다고 해요.

그 당시의 왕이 에드워드 1세인데 엄청 유명한 왕이예요. 에드워드 1세는 영국 역사에서 성군이에요. 그래서 석탄 연소 금지법이라는 법을 만듭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에드워드 1세의 어머니가 런던이 공기가 안 좋아서 못 살겠다고 하고 시골로 이사를 가서 살아요. 자기 어머니도 그러니까 화가 난 거죠.

근데 목구멍이 포도청이잖아요. 빈민들은 계속 사용하게 됩니다. 그래서 법을 바꿉니다. 두 번 걸리면 화로를 부숴버릴 거라고 해요. 근데 부숴도 계속하니까 이제 걸리면 너네 죽는다고 그랬어요. 결국 실제로 사형을 집행합니다. 근데도 근절이 안 돼요.

너무 춥고 당시에 인구 구조가 이상해요. 런던 인구가 4만 명 정도 있는데 자유민이 2천 명밖에 안 돼요. 정당한 권리를 가지고 제대로 된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이 2천 명이죠. 나머지 3만 8천 명은 빈민이에요. 이 사람들은 얼어 죽나 사형으로 죽나 다 똑같은 거죠. 그래서 계속 석탄을 쓰는 거예요.

그러다가 이제 16세기에 위대한 여왕이 탄생하죠. 엘리자베스 1세, ‘나는 국가와 결혼했다.’ 그때 당시까지만 해도 영국이라고 하면 유럽의 가난한 나라예요. 프랑스 쪽에서 볼 때는 메인 스트림은 아니죠. 근데 엘리자베스 때, 이 사람이 정치를 너무 잘하니까 가장 강한 나라로 발돋움하게 되는데 1558년에 여왕이 되시고 1603년에 사망하시거든요. 50년 동안 런던의 인구가 7만 5천 명에서 20만 명으로 늘어나요.

그리고 1700년대가 되면 57만 명이 돼요. 런던이 점점 강성해지니까 런던에 사람들이 계속 늘어요. 나무 땔감을 이때까지는 그래도 귀족들은 썼어요. 근데 이 땔감의 수요가 너무 늘어나니까 가격이 1540년~1640년 100년 사이에 8배가 올라요.

이제 감당이 안 되니까 대부분 석탄을 사용하게 되는데 그 결과 이제 1580년에 런던에서 석탄을 1년에 만 톤 정도 썼대요. 1680년에는 36만 톤으로 증가합니다. 근데 문제를 인식하지 않았던 건 아니에요.

존 이블린이라는 유명한 사람이 상소문을 올렸어요. ‘공기 오염이 너무 심하다. 가내 수공업 하는, 석탄 태우는 도자기 공장이나 이런 것들 런던에서 10km 이상 떨어진 곳으로 만들게 해야 한다.’ 지금 하는 거랑 비슷하게 했어요. 그래서 실제로 왕도 적극적으로 생각합니다. 근데 이때가 런던의 명예혁명이 있기 직전이거든요. 왕이랑 의회랑 힘 싸움을 하고 있을 때예요. 왕이 상소문을 주장하니까 의회는 무조건 싫다고 해요.

그러던 와중에 또 상소문 올리고 나서 얼마 뒤에 1666년에 런던 대화재가 일어납니다. 어마어마하게 사람들이 죽었어요. 존 이블린 자체도 유명해진 이유가 이 대화재가 어디서 어떻게 발생했고, 어떤 피해를 야기했는지를 써서 유명해져요. 이것 때문에 상소는 유야무야 사라져요. 그리고 명예혁명이 일어나서 영국은 그렇게 지나가게 됩니다.

근데 그런데도 영국 자체는 더 잘살게 되니까 런던에 사람은 계속 늘죠. 목재는 진짜 부족해서 석탄을 써야 해요. 그 상황에서 프랑스가 혁명이 일어나기 전에 똑똑해 보이는 사람들을 탄압해요. 이 사람 중에는 영국으로 망명한 사람들을 위그노라고 하는데, 영국은 석탄을 엄청나게 쓰니까 위그노들이 석탄을 좀 다르게 쓸 생각을 하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이 석탄을 좀 더 힘 있게 써보자고 해서 프랑스, 이 잘 사는 나라에서 온 지식인 위그노들과 영국의 토박이들은 석탄에 익숙하니까 이 두 개가 시너지를 일으켜서 증기 기관이 나온 거죠. 이게 18세기 때 일입니다.

증기 기관이 나오니까 생산력이 엄청나게 올라갔어요. 대영제국은 식민지를 경영하면서 식민지에서 원자재 싸게 사서 증기 기관을 돌려서 물건 만들어서 싹 팔아요. 경제가 날아가요. 그 와중에 누가 석탄 사용을 좀 자제하자고 말할 수가 없는 거죠. 이제 막을 수도 없는 대세가 되어서 점점 막 사용합니다. 그래서 1850년부터 신기한 현상이 발생해요.

런던에서 스모그가 있으면 주변에 노란띠가 생겨요. 이걸 런던 파티큘러라고 하는데 귀여운 별명이 있습니다. 완두콩 수프래요. 완두콩으로 수프를 만들면 주변으로 기름이 번져서 가장자리가 노랗게 됐는데 그래서 완두콩 수프라고 귀엽게 불렀는데 그게 석탄이 타서 나온 황이 대기 중에 노랗게 보이는 거죠.

엄청나게 심각한 스모그를 대변하는 건데 당신 런던 사람들은 이것이야말로 대영제국의 수도 런던의 상징이고 우리가 이렇게 번영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게 심각해져서 1951년에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런던 공항에 비행기가 내렸어요. 근데 스모그가 너무 짙어서 비행기가 터미널까지 못 가는 거예요.

관제탑에 연락합니다. 스모그 때문에 갈 수가 없으니, 버스를 보내달라고 해요. 그래서 버스가 출발하는 버스도 안 보여서 길을 잃습니다. 그래서 비행기랑 버스가 행방불명됐어요. 공항 활주로 내에서요. 여러 명의 수색대가 나가는 데 실패해요. 비행기도 못 찾고 버스도 못 찾고 수색대도 다 길을 잃었어요.

근데 그랬으면 경각심을 가질 만도 한데 아무것도 바뀌지 않고 이듬해 1952년에 아주 유명한 사건이 있었죠. 런던에 그레이트 스모그, 정확히 말하면 1952년 11월 5일부터 11월 9일까지 나흘 동안 발생한 현상인데 이전에도 그레이트 스모그라고 할 만한 게 열몇 차례 있었어요. 근데 그때까지는 별로 관심도 없었고 엄청나게 심각한 사태를 일으키기까진 무시했어요.

근데 그 이유가 사실은 의학의 발전과도 연관이 있어요. 그전까지는 냄새가 나는 공기는 독기론이라고 해서 이게 병을 일으킨다고 생각했잖아요. 근데 그러다가 세균을 발견하고 나서는 공기나 냄새가 위험한 게 아니고 세균이 위험한 거지 공기나 냄새는 불쾌할 뿐이라는 기조가 있으니까 대기 오염에 대해서 별로 경각심이 없었던 거죠.

하여튼 그레이트 스모그 나흘 동안 가시거리가 1m가 안 돼요. 대낮에 1m 뒤가 안 보여요. 그리고 서쪽에 항구가 있으니까, 공장이 많았거든요. 서쪽 지대는 30cm예요. 그래서 이게 어마어마하게 심각한데 공식적으로 4,000명, 비공식적으로는 12,000명의 사람이 나흘 동안 사망했어요.

비공식적으로 12,000명이라는 건 4천 명은 정확히 호흡기 질환으로 사망한 거고 나머지 8천 명은 다른 병도 이송을 못 하니까 앰뷸런스고 뭐고 아무것도 움직이지 못해서 더 사망했을 거로 추정하는 게 12,000명이죠. 이때 그레이트 스모그 영향으로 호흡기 질환을 앓았다고 알려진 사람은 10만 명 정도 됩니다.

근데 사실은 당신 런던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길게 보면 영향을 받았겠죠. 게다가 이때 문제가 된 거는 단순히 그냥 공기가 안 좋은 게 아니고 포름알데히드나 중금속 같은 것도 퍼진다는 거죠. 그냥 발암물질이 떠다니는 거예요. 이런 끔찍한 사건 때문에 비로소 대기 오염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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