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기준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사는 미국으로부터 원유 1억 1,230만 배럴을 수입한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또한 같은 기간 중동으로부터 약 5억 배럴을 수입한 것으로 집계됐죠.
남미에는 원유 매장량 80억 배럴, 즉 한국이 앞으로 15년간 전량을 수입해도 다 사용하지 못할 원유를 보유한 국가가 있습니다. 베네수엘라, 브라질에 이어 남미에서 3번째로 많은 원유 매장량을 자랑하는 에콰도르인데요. 최근 에콰도르의 일간지 ‘엘우니베르소(EL UNIVERSO)’에는 “우리는 왜 80억 배럴의 원유를 가졌으며 식량도 풍족한데 왜 한국을 따라가지 못하나?”라는 다소 자조 섞인 칼럼이 게재되었습니다. 오늘은 이 원문을 읽어보려고 합니다.
리차드 살라자르 메디나라는 에콰도르 인류학 박사는 일간지 ‘엘우니베르소’에 ‘한국과 에콰도르의 60년’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냈습니다. 이는 한국과 에콰도르의 수교 60주년을 기념하며 한국의 경제 성장과 자국을 비교 조명하는 칼럼인데요. 외국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한국의 경제 발전 흐름이 담겨 있어 읽어볼 만합니다. 원문을 번역하면 이와 같습니다.
“올해는 에콰도르와 한국이 수교 60주년을 맞이하는 해입니다. 세계 10대 경제 강국이면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인터넷 연결을 실현한 국가, 삼성/기아/현대/LG 등을 가진 나라인 한국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1960년대 초, 한국은 라틴아메리카의 모든 국가를 능가하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 중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300만 명이 넘는 사망자를 발생시킨 6·25 전쟁은 국토 전체를 황폐화했죠.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다 광복을 맞이했지만 1945년부터 1948년까지 한반도는 소련과 미국이 분할 통치했습니다. 특히 남쪽은 최악이었습니다. 몇 개의 광산을 제외하고 중공업 기반 시설의 85%는 북쪽에 있었기 때문이죠. 남쪽에는 기반 시설도, 광산도 없었으므로 당연히 국가 경제는 불안정한 농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누가 봐도 한국의 미래는 암울했습니다.“
“1960년대부터 이륙하기 시작한 한국은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에 들어가며 권위 있는 국가 그룹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즉 그간 수혜자였던 한국이 협력국이 된 겁니다.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차이가 있으나 두 국가의 출발점은 비슷했습니다. 에콰도르와 한국이 1962년 공식 수교를 체결할 당시 두 국가 모두 농업에 의존했고 문맹률이 높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두 국가는 국토가 절반으로 나뉘는 전쟁을 겪었고 두 전쟁 모두 휴전협정만 체결했으니 공식적으로 그들은 여전히 전쟁 중이었습니다. 다만 에콰도르는 1998년 페루와 평화협정을 체결했고, 한국은 여전히 같은 상황입니다.”
“한편 에콰도르는 천연자원에 있어서 만큼은 가장 큰 행운을 얻었습니다. 1972년부터 블랙 골드(원유)를 채굴하고 있고, 일설에 따르면 이 원유는 에콰도르를 부유하고 현대적인 국가로 만들어 줄 수 있다고도 합니다. 그것이 바로 첫 번째, 원유 배럴이 수도와 우리 영토를 행진하는 열정이었습니다. 그러나 50년이 지난 오늘날, 에콰도르의 빈곤과 차별은 대다수 인구에게 있어서 여전히 비참한 현실로 남았습니다. 반면 원유가 없는 한국은 세계에서 5번째로 큰 정유국이면서 항공기유를 포함한 파생 상품을 수출하는 국가가 되었습니다.“
“두 나라의 우정은 국가 발전 이전에 시작됐습니다. 1950년 UN 안전보장 이사회 비상임이사국이었던 에콰도르는 6·25전쟁 당시 소련의 지원을 받은 북한의 남침을 반대한다는 결의안에 찬성했습니다. 그로부터 2년 전 암바토 지진이라는 국가재난을 겪었음에도 전쟁 중인 한국에 500톤의 쌀을 보냈습니다. 이 시점에서 에콰도르가 한국과의 지난 60년을 돌아보는 것은 가치 있는 일입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가난에서 탈출하기 위해 열정적으로 교육에 포커스를 맞췄다는 점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인류학 박사인 그의 의도는 명확히 파악됩니다. “같은 출발점에서 시작한 우리는 왜 못하고 있는가?” 한국을 본받아 에콰도르도 한국처럼 해보자는 것이 가장 큰 논조로 보입니다. 사실 에콰도르는 한국이 가슴 깊이 고마움을 느껴야 하는 국가입니다. 6·25 전쟁을 겪었을 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으니까요. 2년 전 지진이라는 국가 재난을 겪은 상황에서 쌀 500톤을 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한국은 지난 60년 동안 어떤 변화를 겪었을까요? 우선 메디나 박사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한국은 1996년 OECD에 가입했습니다. 1960년대 이후로 정부 주도의 강력한 산업화 정책 덕분에 한국은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빠르게 도약했죠. OECD 가입이 그 대표적인 지표입니다.
이보다 더 대단한 것이 있습니다. 한국은 ‘원조 수혜국’에서 ‘원조 공여국’으로 전환한 첫 국가라는 점입니다. 지난 2009년 11월 25일 파리에서는 OECD 개발원조위원회(DAC) 가입 심사를 위한 특별 회의가 개최되었는데요. 이 자리에서 한국은 DNC 회원국 전원 합의로 24번째 DAC 회원국으로 승격했습니다. DAC란 국제사회 원조의 90% 이상을 담당하는 주요 공여국 모임이자 OECD 3대 위원회 중 하나입니다. OECD 국가라 하더라도 일정한 조건을 갖추어야 가입이 가능합니다. 한국은 일본에 이어 아시아 두 번째 회원국이 되었죠.
2010년 이후 한국의 연평균 공적개발원조(ODA) 증가율은 DAC 회원국 중 최상위 수준입니다. 2021년 기준 한국은 총 28.6억 불을 ODA로 지출했는데요. 이는 전년 대비 26.9% 증가한 수준입니다. 한때 에콰도르로부터 쌀 500톤을 지원받고, 한국 전쟁 후 미국의 지원을 받아 간신히 배고픈 배를 채우던 한국이 이제 다른 나라에 지원을 베푸는 국가가 됐다는 점은 상당히 의미 있습니다.
원유는 없지만, 세계에서 5번째로 큰 정유국이라는 점도 상기해 볼 만한 이야기입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에너지 기업 중 하나인 ‘브리티시 페트롤리엄(BP)’은 매년 발행하는 BP 세계 에너지 통계 보고서를 통해 전 세계 에너지와 관련된 통계를 제공합니다.
2021년 판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정제 설비 능력은 하루 357만 2,000배럴로 전 세계 5위를 기록했습니다. 미국이 하루 1,814만 배럴로 1위 / 1,669만 배럴의 중국이 2위 / 673만 배럴의 러시아가 3위 / 501만 배럴의 인도가 4위에 랭크되었습니다.
더 주목할 만한 성과도 있습니다. 단일 정제 능력 기준, 전 세계 600개 이상의 정유 공장 중 한국의 정유 기업 세 곳이 TOP 5에 들었습니다. ‘2020 Worldwide Refining Survey’에 따르면 SK에너지가 하루 84만 배럴의 능력을 보유해 2위 / GS칼텍스가 하루 78만 5,000배럴로 4위 / 에쓰오일이 66만 9,000배럴로 5위를 기록했습니다. 정제 능력이란 석유로부터 등유, 경유, 납사, LPG 등을 추출하는 능력을 의미하는데요. 한국은 하루 최대 339만 3,000배럴을 정유할 수 있습니다. 이는 전 세계 전체 정제량의 3.5%를 차지하는 비중입니다.
이러한 정제 능력은 단순히 원유 매장량이 높다고 해서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전 세계 원유 매장량 1위를 자랑하는 베네수엘라의 경우 정제 능력이 한국의 3분의 1에 불과하고, 대표적인 중동의 산유국 사우디아라비아는 한국의 70%, 이란의 60%에 불과합니다.
원유가 매장되었다는 것은 분명 하늘의 축복이지만 이를 수입해 더 비싼 제품으로 부가가치를 높이는 것은 순전히 기술력의 차이입니다. 석유 한 방울 없는 한국에서 태어난 정유 기업이 치열한 연구 개발을 통해 세계 수준으로 올라섰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오늘 내용을 통해 전 세계 많은 국가가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한국의 발전상을 상당히 부러워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