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 사회는 말 그대로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신림동에서 발생한 흉기 난동 사건 피의자 ‘조선’은 일면식도 없는 행인들을 상대로 흉기를 휘둘렀고 이 사고로 안타까운 20대 청년이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특히 상가에서 찍힌 CCTV 범행 장면은 메신저를 타고 대부분의 시민들에게 무차별적으로 노출됐고 의도치 않게 이를 본 이들에게 심각한 후유증이 발생했죠.
그런데 이 사건이 트리거가 된 것인지 방구석에 숨었던 이들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불과 이틀 전에는 분당 서현역에서 또 다른 무차별 흉기 난동 사건이 발생했죠. 아직 신상 공개가 결정되지 않았으나 JTBC는 국민의 알 권리와 범죄 예방 효과를 위해 신상을 공개했는데 피의자는 2001년생 22세 최원종입니다.
난동 직전 승용차를 몰고 백화점 인근 인도로 돌진해 보행자를 들이받고, 이후 백화점 안으로 들어가 칼을 휘두르며 추가 범행을 저질렀습니다. 14명 중 1명이 사망하고, 2명은 뇌사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대전에서는 학교를 무단침입한 남성이 선생님을 찌르고 강남 고속터미널에서는 흉기로 위협하던 남성이 체포당하는 등 시민들은 그 어디에서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일이 한국에서 일어나는 것만으로도 공포스러운데 신림역 사건 이후로 인터넷에 수많은 범죄 예고가 있다는 점입니다. 8월 5일 경찰에 따르면 분당 사건 이후 온라인에 최소 42건의 예고 게시글이 올라왔고 그중 13건에 대해서는 작성자를 검거했습니다.
아직 29건에 대해서는 IP 추적 등으로 수사를 이어가고 있지만 이 예고 글의 대부분이 현실에서 발생하지 않는 단순 협박성일 겁니다. 하지만 그중 단 한 건이라도 현실이 된다면 또다시 한국 사회는 빠져나올 수 없는 공포에 휩싸일 것은 자명한 사실이죠.
이런 흉악 범죄가 이어지자, 국민들은 분노했고 결국 정부에서는 이에 대한 예방책으로 ‘가석방 없는 종신형’ 도입을 공식화했는데요. 오늘은 1980년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삼청교육대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다만 이 주제를 다룬다고 해서 전두환과 같은 특정인을 옹호하거나 인권 침해를 미화할 의도는 전혀 없다는 점 미리 말씀드립니다.
1970~80년대는 대한민국 격동의 시대라고 불러도 전혀 부족함이 없습니다. 국가는 경제적으로 성장하고 있었으나 정치적으로 발전하지 못해 민주화에 대한 열망 역시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시절이었죠.
그런데 경제성장과 민주화에 대한 열망만큼이나 조직폭력배의 성장도 가속화됐죠. 이 당시 소위 3대 조폭이라던 ‘양은이파’의 조양은이나, ‘범서방파’의 김태촌, ‘OB파’의 이동재 등은 지금도 뉴스나 매스컴에서 종종 다뤄지고 있습니다. 1970년대 성장한 이들은 1980년대 본격적으로 도박업, 건설업, 유흥업, 운송업, 유통업, 연예업, 금융업 등 다양한 업종으로 진출했는데 이 뒤에는 불법적 행위가 필수적으로 동반됐죠.
돈이 몰리는 곳에는 늘 경쟁이 생기기 마련일 텐데 특히 검은돈이 오가는 조폭 세계의 경쟁은 상당했습니다. 이권 다툼으로 인한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는데 특히 사보이 호텔 사건, 속리산 카지노 사건, 워커힐 호텔 사건, 서진 룸살롱 집단 살인 사건 등이 죄다 1970~80년대에 발생했는데요. 매 사건·사고마다 시민들은 늘 불안에 떨었는데 이 와중에 전두환의 신군부 세력이 들어섭니다.
1980년 5월 31일 비상계엄 아래에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설치하며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를 장악해 버렸죠. 국보위는 소위 ‘정치 및 사회 정화’라는 명분으로 신군부에 저항할 가능성이 있는 모든 세력을 제거하고자 했는데 이를 ‘삼청교육’이라 불렀습니다.
특히 ‘국민적 기대와 신뢰를 구축한다’는 명목으로 추진된 사회정화작업은 ‘불량배 소탕계획’으로 불리는 삼청 계획 5호는 일반인들의 무차별적인 검거로 이어졌죠. 국보위 사회정화분과위원회는 삼청 계획을 입안하고 전반적인 조정, 통제 업무를 담당하였고, 계엄사령부는 내무부와 법무부를 지휘, 감독하여 불량배 검거와 분류심사를 맡았으며, 전후방 각 부대는 피 검거자를 수용해 순화 교육 및 근로봉사 등을 시행하도록 역할이 부여되었습니다.
그리고 8월 1일부터 이듬해 1월 25일까지 속칭 불량배에 대한 일제 검거가 시작됐죠. 사실 저는 개인적으로 사회 공보 분위기를 조성하며 시민들을 위협하는 오늘날의 조선이나 최원종, 그리고 몸에 새긴 혐오스러운 문신을 까 보이면서 일반인들에게 위력을 행사하는 일부 조폭이나 양아치들에 상당한 혐오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류의 인간들만 족집게처럼 골라내는 장치나 제도가 있다면 제가 두 손 두 발 걷고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나설 의향도 충분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당시에도 그랬는데 국보위 지침상 검거 대상은 개전의 정의 없이 주민의 지탄을 받는 자, 불건전한 생활 영위자 중 현행범과 재범 우려자, 사회풍토 문란사범, 사회질서 저해 사범 등입니다.
명확한 듯 보이지만 체포 기준이 모호해 무고한 시민들에 대한 인권 탄압도 시작됐습니다. 가령 몇 명이 짜고 한 명을 골탕 먹일 계획이라면 거짓말로도 얼마든지 가능했죠. 이렇게 계엄 포고 제13호에 의거, 연인원 80만 명의 군경이 투입된 삼청 작전으로 총 60,755명이 체포됐습니다.
법원의 영장 없이 말 그대로 국가 권력 전체가 움직인 대형 사건인 셈입니다. 이때 잡힌 이들은 등급에 따라 다른 조치가 진행되었는데요. A급은 군사재판 또는 검찰 인계, B급은 순화 교육 후 근로봉사, C급은 순화 교육 후 사회복귀, D급은 훈방 조치로 이루어집니다.
A급으로 분류되어 재판에 회부된 인원은 총 3,252명이었으며 B급으로 분류되어 훈방 조치된 인원은 17,761명이었으며, 나머지 39,742명이 순화 교육 대상인 B, C급으로 분류되었습니다. 그런데 검거된 사람 중에는 억울한 사람이 태반이었습니다.
어용노조 간부의 멱살 한번 잡았다는 노동자, 체불 임금 내놓으라고 사장에게 대들었다는 노동자 정부를 비판한 기사를 쓴 기자, 논에 물대는 문제로 싸웠다는 농민, 가족회의 중 언성을 조금 높였다고 존속폭행죄를 뒤집어쓰고 끌려온 이발사, 몸에 문신이 있다고 포장마차에서 술 한잔 마시고 고성방가 했다고 끌려온 사람들,
김대중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끌려온 칠십 노인, 육성회비를 잘못 거둔 죄에 대한 사표를 거부하다가 끌려온 선생님, 술값 외상이 조금 있다고 끌려온 사람, 계모임을 하다 끌려온 가정주부, 공부하다가 바람 쐬러 잠깐 밖에 나갔다가 단속반과 마주친 죄밖에 없는 재수생, 벌금, 구류와 같은 사소한 전과가 있다는 이유로 끌려온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이번 칼부림 사건을 계기로 많은 분이 기대하는 것이 순화 교육 대상자를 훈련시켰던 삼청교육대의 부활일 텐데요.
B와 C등급으로 나뉜 39,742명은 전후방 26개 부대에 배치되었으며, 입수한 이들의 순화 교육은 1981년 1월 21일까지 11차에 걸쳐 실시되었습니다. 4주를 원칙으로 하되 죄질과 개과천선 가능성에 따라 2주간 훈련 후에 조기 퇴소시키기도 했죠.
순화 교육은 삼중의 철도망과 장갑차 그리고 완전 무장한 군인들에 에워싸인 채 머리를 빡빡 깎이고 유격훈련, 목봉 체조, 제식훈련 등 혹독한 훈련이 실시됐습니다. 교육과정에서는 구타와 얼차려가 빈번하게 실시되었고 지시 불이행자나 태도 불량자 등은 별도로 설치된 특수교육대에서 혹독한 훈련을 받았죠. 그 위험한 깡패들이 어떻게든 삼청교육대에 가지 않기 위해 발악한 것이 바로, 이 때문입니다.
합법적으로 범죄자를 구타해 교육할 수 있는 국가 정책이자, 기관이었으며, 아마 지금도 삼청교육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분이 원하는 것도 이런 부분 때문일 겁니다. 순화 교육이 끝나면 교육대상자들은 계엄사령부의 지침에 따라 사회복귀자와 근로 봉사자로 재분류되었는데요. 미순화자로 분류된 B급 10,016명은 순차적으로 9차에 걸쳐 전방 20개 사단에 수용되어 근로봉사에 투입되었으며, 이들은 보호감호 처분 결정 시까지 근로봉사라는 이름하에 전술도로 보수, 진지구축 및 보수공사, 자재 운반, 통신선 매설 등의 작업에 동원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모든 교육이 끝나고 사회로 돌아가면 퇴소자의 기록은 경찰서에 인계되었으며 치안본부에서는 지속적인 보호관찰과 수사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삼청 관련 기록을 전산 자료화하고 1982년 1월 15일부터 1988년 6월 28일까지 범죄 수사에 활용하기도 했죠.
아울러 행정 기관에서는 내무부의 지시에 의하여 동면사무소별로 순화 교육 이수자 사후관리 기록 카드를 작성하고 생활환경을 관찰하였으며, 주거 이전시 전입 동면사무소에서도 동일한 방법으로 퇴소자를 관리했습니다.
이렇게 단면만 보자면 흉악한 범죄자나 조폭들도 잡고 교육도 하고 나라에 필요한 인력을 충당하기도 하고 심지어 교육이 끝나고 난 후 제대로 교정이 되었는지 감시까지 할 수 있으니, 우리처럼 일반 국민에게는 참 좋은 일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아무 잘못이 없는 우리가 그 대상이 된다면 어떨까요? 1988년 삼청 교육은 정기국회에서 국정감사 대상이 됩니다.
대대적인 ‘정화 바람’ 속에 자행됐던 삼청교육대 입소자 중에는 억울하게 검거된 경우가 많았고 입소 후 순화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심한 가혹행위가 이루어졌다는 소문이 계속해서 돌았기 때문입니다. 당시 국방부에서는 교육 중 54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보고했죠.
사실 1970~80년대 대한민국을 공포에 떨게 했던 깡패들이 직접적으로 타격을 입었던 것은 삼청교육대가 아니라 노태우 정권에서 시행되었던 10/13 특별 선언, 즉 범죄와의 전쟁인 만큼 실제 대한민국 범죄 교화 과정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는 평가가 있기도 합니다. 많은 이들이 흉악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사형제도 개선과 함께 삼청교육대 부활을 떠올립니다.
물론 저 역시도 범죄자 인권을 중요시하는 현재 법체계가 일반인의 안전을 더 중요시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되지만, 이는 개인적인 감정으로 다룰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다만 현재 범죄자들이 받는 처벌이 약해 보인다는 점에 있어서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만큼 빠른 시일 내에 일반 시민들이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