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텍스트 YouText 글로 읽는 동영상

이게 한국에 있었다고?

해외반응 일본반응 중국반응 한류 해외리얼반응 외국반응 해외언론

지금 우리가 사는 지구의 나이는 46억 살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살아있는 모든 것이 그러하듯 어느 순간 지구 역시도 생명을 다할 겁니다. ‘지구 종말의 날’이 올 것인데 그렇다면 인간도 지구와 함께 멸망할까요? 아마 아닐 겁니다. 어떻게든 새로운 행성을 찾아 삶의 터전을 마련할 텐데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문제가 있습니다. 먹을 것이 없을 테니까요.

의식주라는 세 가지 필수 요소 중 생명과 직결되는 건 식량일 텐데 그래서 우리 인간은 언젠가 다가올 지구 종말의 날에 대비해 종자, 즉 씨앗을 보관해 오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종자은행을 설립해 종자를 보관하는 것인데, 사실 종자은행은 연구나 증식을 목적으로 종자를 저장하는 기능을 합니다.

하지만 이보다 좀 더 근본적인 목적을 위해 세운 시설이 전 세계에 딱 2개 있습니다. 급격한 기후변화나 전쟁, 또는 핵폭발과 같이 인류가 예상치 못한 재앙이 닥쳐 지구가 실제로 멸망할 때를 대비해 현대판 노아의 방주를 만든 것인데요. 그래서 이는 종자은행이라 불리지 않고 종자를 뜻하는 시드와 금고를 뜻하는 볼트를 써, ‘시드 볼트’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자랑스럽게도 전 세계 단 2개뿐인 시드 볼트가 송이버섯으로 유명한 경북 봉화의 산꼭대기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목에서 말씀드렸듯 지구멸망의 날이 오면 아마 전 세계 모든 인류가 경북 봉화로 달려와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악에 물든 세상을 보고 실망한 하나님은 인류를 멸망시키기 위해 대홍수를 일으킵니다. 하지만 그 악한 인간들 사이 유일하게 올바른 인간인 노아에게만 자비를 베풀어 거대한 배를 만들고 이 배에 정결한 짐승 7쌍과 부정한 짐승은 2쌍을 싣도록 명령해 동물의 씨가 마르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합니다. 구약 성경 창세기에 기록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흔히 ‘노아의 방주’라 부르는 그 장면이죠.

그런데 현대판 노아의 방주가 지구상에 딱 2개 있습니다. 씨앗은 한 번 사라지면 복원할 수 없기 때문에 관리가 가장 중요합니다. 이에 각국은 자국의 토종 종자를 보존하기 위해 유전자은행을 건설하기 시작했는데 이 은행 하나로는 안심이 되지 않았습니다. 내전으로 유전자은행이 파괴되기라도 하면, 전력이 끊겨 냉동이 유지되지 않기라도 하면, 핵폭발로 국가 전체가 날아가 버리기라도 하면,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유전자은행보다 좀 더 안전한 은행에 맡기고자 했는데 그렇게 2008년 첫 번째 시드 볼트가 노르웨이 스발바르 제도에 건설됐습니다. 아마 최근 TV 광고 중 ‘노르웨이 스발바르 지역은 1년 중 4개월을 태양 없이 보낸다. 카메룬의 바람은 좀처럼 세게 불어오는 법이 없고, 우즈베키스탄에서는 두 개의 구경을 넘어야 겨우 바다를 만날 수 있다’는 광고가 익숙하실 텐데 여기에 등장하는 노르웨이 스발바르, 즉 1년 중 4개월은 태양 없이 보내야 하는 그곳에 첫 번째 시드 볼트가 건설되어 있습니다.

스발바르 국제종자저장도는 노르웨이 정부가 건립하고 세계작물다양성재단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저장고로 지구에서 벌어질 수 있는 자연재해 및 핵폭발 등의 대재앙에 대비해 식량과 농업을 위해 세계 각국의 식물 유전자원을 보존하고 있습니다.

총 450만 자원을 보존할 수 있어 ‘최후의 날 종자저장고’라고도 부르는데 지금 전 세계 각국에서 보낸 110만여 자원을 보존하고 있죠. 이 저장고는 별도의 행사를 개최하지 않고 1년에 딱 3번 문을 열어 각국이 기탁한 종자를 입고시키고 있습니다.

스발바르 시드 볼트는 북극점에서 불과 1,300km 떨어진 스발바르섬에 건설됐는데 이 섬은 60%가 빙하로 이루어져 있어 지구상에서 최악 수준으로 메마르고 척박한 땅입니다. 이곳 해발 130m 영구동토층의 사암으로 이루어진 바위산 속 지하 120m에 지었기 때문에 핵전쟁이나 기후변화, 소행성 충돌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전기공급이 끊기더라도 영구동토층이 영하 3.5도를 유지하기 때문에 보관 중인 씨앗에는 아무런 손상이 가지 않죠. 그런데 시드뱅크와 달리 시드 볼트에 보관된 씨앗은 꺼내지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현재가 아니라 미래를 위해 세운 시설이니까요. 전 세계에 총 1,400여 종자저장도 중 유엔에서 인정한 유일한 시드 볼트이기 때문에 출입구가 하나밖에 없고 이 문을 열기 위해서는 유엔과 국제기구들이 보관 중인 마스터키 6개를 전부 꽂아야 하는데요. 한국 역시 총 4번에 걸쳐 종자를 기탁했는데 현재까지 총 55 작물, 30,272 자원입니다. 작년 10월에 벼, 보리, 콩, 옥수수, 돌콩 등 총 3,392 자원을 추가로 기탁했죠.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시드 볼트 하나가 경북 봉화에도 있습니다. 송이버섯으로 가장 유명한 경북 봉화군에 가면 나라에서 운영하는 백두대간수목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1,500만 평이라는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수목원은 아시아 최대 규모 이자 남아공 국립한탐식물원에 이은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큽니다.

전시용으로 공개된 곳만 62만 평, 쉽게 말해 축구장 8천 개 크기에 달하죠. 2018년 5월에 문을 연 수목원에는 호랑이숲, 암석원, 백두대간자생식물원 등 연구관리동과 전시원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수목원이 개장할 당시 호랑이숲 조성이 큰 화재였습니다.

수목원 내 약 1만 1,000평 부지에 호랑이가 살 수 있는 숲을 조성해 1920년대 멸종된 백두산 호랑이를 복원하겠다는 프로젝트였죠. 현재 ‘한청’, ‘우리’ 등의 호랑이가 살고 있는데 얼마 전 태어난 판다 쌍둥이처럼 백두산 호랑이를 완벽히 복원하겠다는 목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수목원 끝 해발 600m 고지에 전 세계 단 2개뿐인 시드 볼트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바로 ‘백두대간 시드 볼트’입니다. 동그란 버섯 모양의 이 건물은 지하 120m 깊이에 3중 철판 구조로 지었는데 60m에 달하는 콘크리트 벽은 진도 7의 지진도 거뜬히 견뎌내도록 내진 설계했습니다. 이렇게 깊이 튼튼하게 지은 덕분에 만약 전기와 통신이 모두 끊겨도 실내 기온은 15도 이상 올라가지 않습니다.

평소에는 영하 20도를 유지해 종자가 발아되는 사고를 예방하고 있죠. 그런데 이 봉화군에 시드 볼트가 건설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이미 조선시대부터 중요한 보관소 역할을 맡았던 장소죠.

강원도 영월, 정선, 태백, 경북 봉화 경계에는 태백산이 자리하고 있는데 봉화 태백산에는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태백산사고가 있었습니다. 조선왕조는 종이로 만들어진 조선왕조실록을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 접근이 힘든 가장 안전한 지역 5곳을 선정해 사고를 만들었는데 평창 오대산, 강화도 마니산, 무주 적상산, 봉화 태백산, 그리고 내사고인 춘추관과 함께 5개의 사고를 운영했습니다.

그중 태백산 사고가 봉화에 있었는데 1913년까지 실록을 보관하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이 실록들을 전부 경성제국대학으로 옮겼습니다. 광복 후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있다 지금은 국가기록원 부산기록관으로 옮겨 보관 중인데요. 그러니까 이미 조선시대부터 봉화는 보관소의 역할을 해 온 겁니다.

어쨌든 스발바르에 이어 두 번째로 건설된 백두대간 시드 볼트는 스발바르와 그 역할에 차이가 있습니다. 스발바르는 벼나 밀과 같은 작물 종자를 보관하는 반면 백두대간 시드 볼트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야생식물 종자 위주로 보관합니다. 물론 두 시드 볼트 모두 구조방식이나 영하 20도, 상대습도 40%를 유지합니다.

씨앗의 특성상 온도와 습도가 맞을 때만 스스로 발아하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발아할 수 없는 환경을 조성해 종자들을 잠재우는 것이죠. 우리가 흡사 영화에서 많이 보던 냉동인간의 원리와 동일하죠. 한국의 시드 볼트에서 야생식물 씨앗을 보관하는 이유는 식물 다양성 확보를 위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2013년 국제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된 구상나무 씨앗을 영구적으로 보관했다가 필요한 시기가 오면 이를 발아시켜 멸종 위기를 막아내는 것이죠.

그런데 어떻게 보면 백두대간 시드 볼트가 스발바르 시드 볼트보다 좀 더 원초적인 역할을 합니다. 왜냐하면 재배작물의 모태는 전부 야생식물인데 재배종이 아닌 야생에서 자라는 식물은 유전자풀이 훨씬 다양해 환경 적응력이 우수하죠.

종자, 즉 씨앗을 보관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종자는 식물의 혈통을 잇는 유전자인데 지구 온난화와 무분별한 개발 활동으로 매년 5만 종의 생물이 사라지고 있고 향후 30년 내 지구 전체 생물의 25%가 멸종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식물 다양성을 잃게 되면 먹이사슬 내 생물들이 영향을 받게 될 테고 결국 생태계 균형은 망가져 버릴 겁니다.

더구나 씨앗은 한 번 사라지면 다시는 복원할 수 없기 때문에 종자의 영구 보관이 더더욱 각광받는 것이죠. 현재 5천여 종, 18만여 점의 야생식물 종자가 백두대간 시드 볼트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백두대간 시드 볼트가 뉴스를 장식했던 적이 있습니다.

지난 2021년 6월 tvN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는 백두대간 시드 볼트의 이하얀 팀장이 출연해 ‘아라홍련’이라는 연꽃 종자와 시드 볼트를 소개했습니다. 2009년 경남 함안 성산산성 유적지에서 연꽃 씨앗이 다수 출토됐는데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 결과 약 700년 전의 고려시대 연꽃으로 밝혀졌습니다.

보통 연꽃 씨앗은 그 껍데기가 너무 딱딱해 일부러 씨앗에 충격을 가하지 않으면 천년이 지나서도 싹을 틔운다고 하죠. 그래서 함안박물관에서 이 씨앗 중 일부를 발아시켰는데 이듬해 꽃이 피었습니다. 700년 만에 잠에서 깬 아라홍련은 어느새 수만 개로 번식해 함안연꽃테마파크를 가득 채워 장관을 연출하고 있는데요.

이 팀장은 이렇게 핀 아라홍련 씨앗이 백두대간 시드 볼트에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을 소개했는데 그러면서 시드 볼트 내부 구조는 물론, 저장고의 위치, 출입 경로까지 세세하게 공개됐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백두대간 시드 볼트가 국가 보안시설로 지정됐다는 점입니다.

2019년 12월 16일 국가정보원은 이 시설을 국가 보안시설 ‘다’급으로 지정했는데 국가 보안시설의 경우 테러 등의 위협이 있을 수 있어 내부를 공개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외부인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으며 보안을 위해 지도에서 검색되지 않는 것은 물론 사진 촬영 또한 금지됐죠. 그래서 GPS에도 잡히지 않는데 특히 이동 경로 데이터를 자동으로 수집하는 테슬라 차량은 아예 접근 자체가 불가능하죠.

이로 인해 수많은 기사와 뉴스가 쏟아지면서 시드 볼트가 언론에 오르내리며 오히려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는데요. 스발바르든 백두대간이든 잠시 언급했듯 웬만해서는 보관된 씨앗을 반출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시드뱅크가 연구개발 등 현재를 위한 시설이라면 시드 볼트는 지구 종말에 대비한 미래를 위한 시설이니까요.

그러다 스발바르 시드 볼트에 딱 한 번 유엔을 포함한 국제기관이 보관한 마스터 6개가 모였던 적이 있습니다. 2015년 시리아 내전 때문입니다. 시리아 알레포 유전자은행은 전 세계 128개국에서 온 밀, 보리, 렌틸콩 등 종자 15만 종을 보관하고 있었는데 내전으로 반군이 이 시설을 장악하면서 모든 인력을 철수시키고 본부도 레바논 베이루트로 옮겼습니다.

반군이 시설을 파괴한 것은 아니지만 은행에 보관하던 씨앗을 옮겨오거나 접근할 수는 없게 됐는데요. 결국 국제건조지역농업연구센터는 알레포 은행과 동일한 쌍둥이 은행을 레바논과 모로코에 세우기로 하고 스발바르에 요청해 기탁했던 종자를 되돌려 받았습니다.

이렇듯 지금 저장된 종자들은 우리 세대에는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최근 100년간 지구를 병들게 한 책임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가 저지른 잘못을 미래세대가 책임져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만 이렇게라도 후손에게 유산을 남겨주게 돼서 다행입니다.

Exit mobile ver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