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수학능력시험, 말 그대로 대학의 교육과정을 얼마나 잘 수학할 수 있는지 평가하는 것이 목적인 시험입니다. 짧게 말하면 ‘수능’이라고도 하죠. 매해 수능이 끝나면 검색어에는 수능 문제의 답과 수능 등급 컷으로 도배되는데요.
이것만 봐도 사람들은 수능 문제를 푸는 것에만 집중했지, 수능 문제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수능 문제가 그냥 하늘에서 ‘뚝’하고 떨어지는 것은 아닐 테고, 분명 누군가가 수능 문제를 만든다는 것인데요. 그렇다면 수능 문제를 출제하는 과정은 어떻게 될까요?
우선,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엄선한 대학 교수 300명과 고등학교 교사 180명이 각각 출제 위원과 검토 위원으로 선발됩니다. 당연히 자녀 중에 수험생이 있거나 고3 담임을 맡고 있는 사람은 출제 위원과 검토 위원에 뽑히지 못합니다.
여기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교수나 교사에게 수능 문제 출제 과정에 선발되었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것이 아니라 교수나 교사에게 수능 문제 출제에 참가할 것인지를 묻고, 교수나 교사가 이를 받아들여야 선발한다고 합니다.
선발된 출제 위원과 검토 위원은 군사안보지원사령부와 대한민국 경찰청을 통해 전과 여부는 없는지 신원 진술서까지 써야 한다고 하죠.
주식시장 개장 시간과 비행기 이착륙 시간까지 바꿔놓을 정도로 전국을 뒤흔드는 수능이다 보니, 출제 위원과 검토 위원을 선발하는 과정부터 이렇게 심혈을 기울여 진행할 수밖에 없는 것이겠죠.
출제 위원들과 검토 위원들은 수능 한 달 전부터 세상과 완벽히 격리된 숙소에서 수능 문제를 출제하게 되는데요.
숙소가 출제 장소라는 것을 감추기 위해 내부 공사 중인 건물로 위장하며, 유리창에는 신문지를 붙여서 밖에서 내부를 볼 수 없게 만들고, 숙소 주위에는 펜스와 철조망을 쳐놓습니다. 뿐만 아니라 출제 장소는 매년 변경되며, 한 번 출제 장소로 지정되었던 곳은 다시 지정되지 않는다고 하죠.
또한 보안 요원들이 인터넷을 끊고 휴대폰을 비롯한 모든 통신 수단 등을 압수하여 외부와의 연락을 차단합니다. 외출도 당연히 매우 엄격하게 통제되는데, 직계 가족이 사망했을 경우에 한하여 장례식을 사유로 외출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이마저도 보안 요원이 동행하며 장례식장에 단 3시간만 머무르고 숙소로 다시 복귀해야 하죠.
몸이 아플 경우에도 병원에 가는 것이 아니라 숙소에 있는 의사한테 진료를 받으며, 큰 수술이 불가피할 때만 밖으로 나가게 되어 있다고 합니다. 전염병이어도 숙소 내에 격리 시설을 만들어 이중으로 격리 조치한다고 하네요.
혹시 수능 문제와 관련된 정보가 적힌 종이가 쓰레기와 섞여 나가기라도 하면 유출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쓰레기를 계속 숙소 안에 쌓아 둔 뒤, 수능이 끝나고 나서야 반출하여 처리한다고 합니다.
한 번은 숙소에서 출제 위원들과 검토 위원들끼리 족구를 한 적이 있는데, 실수로 공이 담장을 넘어가자, 보안 요원이 번개처럼 달려들어 공을 갈기갈기 찢은 뒤 확인 작업을 했을 정도라고 하죠.
이런 감옥 같은 숙소에서 출제 위원들이 문제들을 만들고, 검토 위원들이 문제를 검토하는데요. 이때 엄청난 갈등과 기싸움이 벌어진다고 합니다. 출제 위원 한 명이 한 문제를 만들면 다른 출제 위원들이 검토하는데, 이들 중 한 명이라도 반대한다면 문제를 출제한 출제 위원은 처음부터 다시 문제를 출제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문제에 대한 출제 위원들 간의 언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고, 이렇게 언쟁 속에서 통과된 문제들도 검토 위원에 의해 통과가 되지 않으면 바로 폐기되거나 수정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교육 과정을 이탈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교육과정 해설서를 참고하면서 문항을 검토할 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발문이 많이 들어가면 안 된다’, ‘교육적 가치가 있는 내용을 출제해야 한다’ 등 세세한 규율에 따라 문제를 폐기하거나 수정하는 것이죠.
이 정도로 꼼꼼하게 검토하다 보니 검토 위원에 의해 검토하기 전과는 달리 아예 다른 문제가 되기도 한다고 하네요.
이렇게 검토 위원들이 출제 위원에 대한 견제를 강화하게 된 배경이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2004학년도 수능 언어 영역의 ‘미궁의 문’ 문제였습니다. 검토 위원들은 이 문제를 검토하고는 복수 정답 시비가 일어날 것을 우려하여 문제를 수정할 것을 요구했으나 끝까지 출 제 위원이 강행을 요구하는 바람에 그대로 출제되어 버렸습니다.
이후 이 문제는 검토 위원들의 우려대로 서울대학교 불어과 교수의 이의제기로 인해 복수 정답 처리되는 사태가 일어났죠. 이후 이 문제를 냈던 출제 위원은 경찰로 넘어가 경위서를 쓰는 굴욕을 맞이하고, 이후 2005학년도 수능부터 검토 위원들의 견제가 강화되고 문항 검토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검토를 완료하고 수능 2주 전까지 수능 문제들이 완성됨에도 불구하고, 출제 위원들과 검토 위원들은 수능이 끝날 때까지 남은 2주 동안 숙소를 나올 수 없습니다.
이들뿐만 아니라 영어 듣기 대본을 녹음한 성우들 그리고 EBS의 수능 문제 해설 강의를 찍는 강사, 촬영감독 PD도 마찬가지죠. 뜬금없이 EBS 관련자들이 왜 격리될까요?
수능이 끝나면 EBS에 수능 문제 해설 강의가 바로 올라와야 합니다. 수능이 끝나고 해설 강의를 촬영하기에는 너무 늦기 때문에 수능이 시행되기 얼마 전에 미리 문제를 보고 해설 강의를 미리 제작해야 하는데요.
수능 문제 해설 강의를 찍은 강사, 촬영감독, PD는 미리 문제를 봤기 때문에 당연히 수능이 끝날 때까지 격리되는 것이죠.
최종적으로 확정된 문제는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내판리에 위치한 인쇄 공장에서 1주간 작업하여 시험지 형태로 인쇄됩니다. 인쇄가 완료된 후, 인쇄 공장의 인쇄공들도 역시 수능이 끝날 때까지 철저히 격리되죠.
시험지들은 포장 및 봉인에 걸쳐 수능이 있는 주의 월요일부터 배송에 들어갑니다. 수능 당일 새벽 2시에 도착하도록 시간을 맞춰 경찰의 호위를 받으면서 각 시험장으로 배달됩니다. 물론 문제지를 배달했던 사람도 비록 단 하루뿐이지만, 격리된다고 합니다. 이런 철두철미한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수능은 그 어떤 시험보다 공정성을 크게 갖추고 있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