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브랜드와 대중 브랜드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고백하자면 저는 불과 몇 년 전까지 프리미엄 브랜드와 대중 브랜드 제품의 차이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5천만 원 미만으로 구입할 수 있는 그랜저만 해도 제가 차에 기대할 수 있는 모든 걸 갖췄는데, 왜 두 배나 비싼 가격을 지불하고 그 차들을 사는지 이해가 잘 안되었거든요. 정확히 두 배 좋은 것도 아니잖아요. 하지만 얼마 후 벤츠의 운전석에 앉아 본 뒤 완벽하게 이해하게 됐습니다. 대중차 브랜드에서 느낄 수 없었던 어떤 디테일의 차이를 경험했기 때문이었어요. 단순히 옵션 표에 텍스트로 적혀 있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거든요.
오늘은 국산 프리미엄 브랜드의 ‘창세기’를 읽어볼 겁니다. 두꺼운 프리미엄 수입차의 벽을 깨기 위해 ‘현대가 실수로 잘 만들었다‘는 소리까지 나왔던 차, 지금은 까다롭기로 소문난 한국 소비자들의 마음속에 드림카로 자리 잡기 시작한 이 차. 이번 시간에는 현대 ‘제네시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제네시스, G80 이야기│국산 프리미엄 브랜드의 창세기]
당시 공격적인 해외 시장 진출을 노리고 있던 현대차에 가장 큰 걸림돌은 기존의 ‘저가 마케팅’으로 망가진 브랜드 이미지였습니다. 이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브랜드 밸류를 끌어올려야만 했고, 현대차는 더 비싼 값에 팔 수 있으면서 동시에 회사의 수준을 대변할 수 있는 ‘프리미엄 모델’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게 됩니다.
아시다시피 그때 현대차에 고급 모델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어요. 미쓰비시와 공동 개발한 플래그십 세단 에쿠스가 있었지만, 철저히 내수 시장에 초점이 맞춰진, 한마디로 ‘방구석 여포’였습니다. 게다가 지금도 정통 고급 세단의 덕목처럼 여겨지는 후륜구동 기반의 해외 프리미엄 세단을 상대하기에 앞바퀴를 굴리는 에쿠스는 확실히 역부족이었죠.
결국 현대차는 글로벌 시장에서 프리미엄 브랜드와 견주어도 밀리지 않을 후륜구동 고급차를 만들기로 했고, ‘프로젝트 BH‘라는 이름으로 2003년 개발에 착수하게 됩니다. 토요타 렉서스, 닛산 인피니티 등 일본 브랜드의 사례를 참고해 내친김에 프리미엄 브랜드를 런칭할 계획 역시 이때 세우게 되지만, 프리미엄 브랜드 런칭은 시기상조라는 결론을 내리고 현대 브랜드로 출시하기로 합니다. 이후 2007년 4월 미국 뉴욕 모터쇼에서 ‘제네시스’라는 이름의 콘셉트카가 발표됐고, 이듬해 2008년 1월 미국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제네시스의 양산형 모델이 모습을 드러냈죠.
[제네시스│2008-2013]
2008년 출시된 1세대 제네시스는 단종된 다이너스티의 포지션을 이어 에쿠스와 그랜저 사이에 자리 잡았습니다. 성경 속 창세기에서 가져온 차명 ‘제네시스’는 국산 고급 세단의 새로운 기원을 열겠다는 뜻으로 붙여졌어요. 현대차 라인업으로 출시하긴 했지만 벤틀리를 연상케 하는 전용 날개 엠블럼을 부착해 프리미엄 브랜드로 출시할 계획도 엿볼 수 있었죠. 007을 모티브로 한 온라인 AD 무비를 내놨던 게 기억에 남네요
외관은 ‘다이나믹 럭셔리’라는 슬로건에 걸맞게 스포티한 느낌과 고급스러움이 동시에 느껴지는 모습이었습니다. 날카롭고 또렷한 인상의 프로젝션 헤드램프와 생선 뼈 모양의 그릴이 돋보이는 전면부는 전용 날개 엠블럼과 조화를 이뤘죠. 측면은 프론트 오버행을 짧게 배치한 후륜구동의 비율과 늘씬하게 뻗은 캐릭터 라인, 고급스러운 디자인의 18인치 휠이 더해져 그랜저, 에쿠스의 전륜구동 디자인에 익숙한 소비자들에게 남다른 느낌을 줬습니다. 우아하면서도 전면부의 스포티한 느낌을 그대로 이어 ‘잘 달릴 것 같은 모양새’였죠.
LED를 적극적으로 사용한 리어 램프, 듀얼 머플러로 멋을 낸 후면부도 고급차 분위기를 물씬 풍겼어요. 각진 자체로 권위적인 느낌이 강했던 에쿠스에 비해 곡선이 많아 한결 부드러운 이미지였고, 덕분에 사모님들의 반응이 상당히 좋았죠. 전체적으로 새롭거나 신선한 디자인은 아니었지만, 당대 트렌드가 적절히 반영된, 호불호가 크게 갈리지 않는 잘생긴 모습이었습니다. 다만 먼저 공개된 콘셉트카의 반응이 워낙 좋아서인지 기대 이하라는 반응도 많았죠.
[진짜로 실수가 될 뻔함]
참고로 지금의 디자인은 한 번 갈아엎은 후에 나온 디자인이에요. BH 프로토타입 모델과 나중에 출시된 양산형 모델의 모습이 언뜻 봐도 꽤 다른 것을 눈치채신 분들이 있을 텐데, 후에 양산형 디자인이 결정되고 기존 프로토타입의 위장막이 보완 해제되면서 공개된 실물은 경악 그 자체였습니다. 컨셉트카는 커녕 베라크루즈를 그대로 세단에 욱여넣은 듯한 엉성한 모습에 사이드 캐릭터 라인, 후면 일부를 제외하고는 아예 다른 디자인이었어요. 이 프로토타입의 모습을 본 당시 정몽구 회장의 반응이 좋지 않았다는 풍문이 돌기도 했죠.
실내 역시 당시 최신 트렌드가 반영된 모습이었습니다. 수평으로 뻗은 대시보드는 우드그레인과 가죽으로 감싸 고급스러움이 돋보였고 운전자의 시야를 고려해 높고 깊게 배치된 인포테인먼트 화면, 개수를 최대한 절제한 버튼류, 여기에 BMW의 i-Drive 인포테인먼트를 모방한 ‘DIS 시스템’을 탑재해 정돈된 분위기를 연출했죠.
메모리 시트와 통풍 시트, DVD 내비게이션 등 지금 기준으로도 풍부한 편의 장비를 가득 채우면서도 장식 요소는 최대한 절제하고 소재를 고급화하는 등 프리미엄 세단에 걸맞은 인테리어를 보여주었습니다. 여기에 롤스로이스에만 쓰이던 렉시콘 프리미엄 사운드 시스템을 탑재해 수입차에 뒤지지 않는 풍부한 해상력을 제공한 것도 장점이었죠.
뒷좌석은 후륜구동의 구조적 특성으로 그랜저보다 작았고, 우뚝 솟은 센터 터널이 추가 타격을 날렸지만 좋은 승차감으로 상쇄했고, 공간도 그만하면 충분했습니다. 또 비즈니스 세단으로 이용되는 차급인 만큼 뒷좌석 모니터와 전동식 후방 커튼, 전동 리클라이닝 시트 등 에쿠스 못지않은 편의 장비를 갖춰 가족이나 중요한 손님을 태우기에도 부족함 없는 편의성을 제공했죠.
파워트레인은 V6 3.3L, 3.8L 람다 가솔린 엔진을 탑재했고, 아이신 6단 자동 변속기를 맞물려 고급 세단에 걸맞은 매끄러운 주행 감각을 제공했습니다. 특히 국내 소비자들이 고급 세단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인 정숙성과 부드러운 승차감이 돋보였는데요.
서스펜션을 부드럽게 세팅하면서 코너링과 고속 주행 안정성에서 손해를 봤지만, 기존 국산 대형 세단을 탔던 소비자가 충분히 만족할 만한 승차감을 선사했습니다. 이때까지도 일명 ‘물침대’로 불렸던 ‘물렁한 승차감’이 좋은 승차감으로 통하던 때였고, 주요 고객인 중장년층에게 어필하기 위해서는 타협이 필요했죠. 오죽하면 후륜구동으로 전륜구동의 느낌을 완벽히 구현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였어요.
BMW나 아우디는 딱딱해서 못겠다며 국산 대형 세단으로 회귀하는 분도 적지 않았으니까요. 또 현재 G90에도 없는 전자식 에어 서스펜션을 옵션으로 마련해 한층 안정적인 주행 성능과 안락한 승차감을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차간 거리 조절이 가능한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 전방 사각지대 카메라, 차선 이탈 경고 같은 안전 장비까지 탑재하면서 더 안전한 주행이 가능했죠. 참고로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을 장착하면 그릴의 모양이 달라져서 외관상으로 풀옵션 차량임을 짐작하게 할 수 있었어요. 수입차에 못 미쳤을 뿐 주행 성능이 안 좋은 건 아니었기 때문에 플래그십 세단이었던 1세대 에쿠스조차 초라하게 만드는, 당시 국산 차로서는 상당히 진보한 수준이었습니다.
독자 개발 후륜구동 대형 세단을 처음 내놓은 것 치고는 완성도가 상당히 높았죠. 여담으로 이 후륜구동 플랫폼을 이용해 현대차 최초의 ‘FR(앞엔진-뒷바퀴 굴림) 스포츠카’ 제네시스 쿠페를 선보이기도 했는데요. 이건 파생 모델로 짧게 보기에는 예의가 아닌 차라 나중에 따로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파워트레인 풀 체인지]
2011년에는 외관의 디테일을 수정하고 편의 장비를 업그레이드한 2012년형 모델을 출시했습니다. 전면부는 날카롭게 수정한 범퍼 디자인과 LED를 추구한 헤드램프로, 미래 지향적이면서 스포티한 분위기를 연출했습니다. 그릴 한가운데 옥에 티처럼 자리했던 크루즈 컨트롤 레이더는 하단으로 옮겨 통일감을 줬죠. 측면의 변화는 미미했지만 새로운 19인치 휠, 일명 ‘오란씨 휠’을 적용해 남다른 느낌을 줬습니다. 리어 램프의 그래픽을 수정하고, 당시 대세로 자리 잡은 매립형 듀얼 머플러를 적용해 전체적으로 차가 더 젊고 스포티해진 것이 특징이었어요. 특히 저 오란씨 휠과 풀 LED 헤드램프가 달린 차는 지금 봐도 눈길이 가더라고요.
실내는 통풍 시트같이 소비자 선호도가 오픈 옵션을 낮은 트림에도 추가하고, 새로운 내장 색상을 선보이는 등 소소하게 개선했습니다. 대신 변화는 파워트레인에 집중됐죠. 기존 3.3L, 3.8L 가솔린 엔진에 직분사 기술을 적용하고 아이신 6단 자동 변속기 대신 현대파워텍의 8단 변속기를 맞물려 출력과 효율을 높였습니다. 거의 풀 체인지에 가까운 변화였고, 수치상으로도 수입차에 밀리지 않았어요.
물론 성능이나 신뢰도는 기존에 사다 쓰던 아이신이나 ZF 변속기에 미치지는 못했지만, 독자 개발 그것도 8단 변속기가 적용된 것에 의미가 컸죠. 여러모로 상품성이 크게 좋아졌지만 하지만 여전히 수입차와 비교해 물렁한 하체는 단점으로 지적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에 대응하고자 고성능 브레이크와 서스펜션, 19인치 휠을 기본 적용해 주행 감각을 강조한 ‘다이나믹 에디션’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명품+차=명차(?)]
한편 2011년 5월에는 명품 브랜드 ‘프라다’와 콜라보한 제네시스 프라다를 함께 선보였습니다. 이때 대기업들이 명품 브랜드와 콜라보하는 사례가 종종 있었는데, LG도 프라다와 협업한 핸드폰을 내놓기도 했죠. 오묘한 색상의 전용 컬러 세 가지와 프라다가 직접 디자인한 19인치 휠, 사피아노 가죽 인테리어를 적용해 보통의 제네시스와 차별화했습니다. 화룡점정으로 수출형 R-Spec 모델과 에쿠스에 들어갔던 8기통 5.0L 타우 GDi 엔진을 장착해 당시 ‘국산 모델 중 가장 빠른 차’라는 타이틀도 가졌었죠. 2년에 걸쳐 단 1,200대만 한정 판매하기로 했고, 심지어 전용 탁송 차량까지 마련해 출고에도 신경을 썼어요.
하지만 상징성에 비해 높은 가격과 5.0L의 어마무시한 유지비로 소비자의 반응은 생각 외로 시원찮았고, 울며 겨자 먹기로 하위 트림인 3.8L 모델을 슬그머니 끼워넣기도 했죠. 여기에 연예계 대표 잉꼬부부로 알려진 차인표·신애라 부부에게 1호 차를 제공했지만, 등록증의 잉크도 안 마른 차가 얼마 뒤 중고 매물로 올라오면서 가뜩이나 씁쓸했던 현대차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죠. 차인표 부부 측은 ‘기부 활동을 위한 매각’이라고 설명하기는 했지만, 이걸로 과연 위로가 됐을까요…?
참고로 에쿠스는 플래그십에 걸맞게 에르메스와 콜라보한 리무진 쇼카를 선보였는데, 양산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1세대 제네시스는 사전 계약 대수만 5천여 대에 이를 만큼 성공적이었고 출시 첫해부터 국내 대형차 점유율 2위에 오르는 등 높은 가격대라는 특수성에도 불구, 국내 소비자에게 크게 사랑받았습니다. 처음에는 조롱의 의미로 쓰던 ‘제네실수’라는 별명이 나중에는 실수로 잘 만들었다는 뜻으로 바뀔 정도였으니까요.
야심 차게 도전한 북미에서도 꽤 준수한 실적을 올렸고, 현대차가 기대했던 브랜드 이미지 상승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2009년 미국 올해의 차를 수상하기도 했고 이때 심어진 좋은 이미지가 현재 제네시스 브랜드의 마중물 역할을 톡톡히 했죠.
다만 초기형 모델의 경우 연식이 쌓이며 에어 서스펜션의 유지 및 관리에 어려움을 겪는 고객이 속출했죠. 이건 부품의 수명 문제라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지만, 해가 갈수록 헐거워지는 차체는 같은 연식의 수입차와 비교되며 실망감을 줬습니다. 여기에 연료 탱크의 유증기를 엔진에서 연소시키는 부품인 ‘캐니스터’의 불량으로 저속 주행 시 간헐적으로 시동이 꺼지는 결함이 발생했습니다. 뒤늦게 리콜되는 등 품질에 관한 이슈가 좀 있었어요.
또 측면 추돌로 차량이 대파된 사고에서 에어백이 단 하나도 터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크게 보도됐는데, 충돌 센서 부위 비껴 나갔다는, ‘충돌 각’ 때문에 에어백이 전개되지 않았다’라는 사측 답변이 화제가 되면서 많은 고객이 현대차에 등을 돌리기도 했습니다.
이후 충돌로 인해 배터리가 분리됐고 전원 공급이 차단되면서 에어백이 동작하지 않았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기는 했지만 소비자의 실망감은 여전했어요. 지금의 별명도 이때 굳어진 거죠. 여담으로 여러 미드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인셉션>에서 잠깐이지만 주인공이 타는 차량으로 등장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강렬한 와인색 컬러를 입고 나타난 제네시스는 등장만으로 여러 한국 관객을 술렁이게 했고 공교롭게도 액션신이라 우렁찬 V8 배기음과 날렵한 모습으로 짧지만 강한 인상을 남겼죠. 특히 집채만 한 기관차에 부딪쳤는데 아무렇지 않게 주행하는 모습이 돋보였죠.
[제네시스(DH)│2013-2016]
창세기의 2장은 독일 뉘르부르크링에서 시작했습니다. 서킷을 시원하게 내달리며 등장한 2세대 제네시스는 1세대의 아쉬운 부분들을 갈고닦아 모든 면에서 진보된 성능을 제공했죠. 정식 출시에 앞서 광고 촬영 사진이 유출됐고, 여러 가지 브랜드를 섞어 놓은 짬뽕 디자인이라며 일부 네티즌들에게 욕을 먹었지만, 막상 제대로 공개된 실물은 누가 봐도 멋진 디자인이었어요.
최신 현대차 디자인 언어를 적용해 단정하면서도 힘 있는 선이 돋보였고, 거대한 크레스트 그릴과 ㄷ자로 꺾인 LED 주간 주행등이 시선을 사로잡는 전면부는 존재감이 뚜렷했습니다. 다만 아우디를 연상케 한다는 지적도 많았죠.
긴 휠 베이스가 돋보이는 측면은 이전의 보수적인 3박스 스타일에서 벗어나 쿠페 형태로 다듬어졌고, 거대한 알루미늄 휠, 늘씬하게 뻗은 캐릭터 라인으로 후륜구동 세단의 우아함을 제대로 살렸습니다. 후면부는 입체감이 돋보이는 LED 리어 램프와 깔끔하게 정리된 듀얼 머플러로 스포티한 느낌이었어요. 뭔가 급조된 티가 났던 이전의 제네시스 로고를 세련되게 다듬은 것도 정제된 디자인과 아주 잘 어울렸습니다.
전체적으로 보수적인 디자인에서 벗어나 스포츠 세단의 날렵함과 대형 세단의 중후함이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었는데요. 이때부터 디자인만큼은 당대 수입차와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았죠. 현행 3세대 모델보다 더 낫다고 평가하시는 분도 꽤 있고요.
수평 기조의 실내 역시 외관과 마찬가지로 한결 차분하고 정돈된 모습이었습니다. 나파 가죽과 스웨이드, 질감을 살린 원목 등 질 좋은 소재로 꾸며 한층 더 고급스러워졌어요. 대화면 내비게이션과 서라운드 뷰, 헤드업 디스플레이, 렉시콘 사운드 시스템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입 아픈 편의 장비를 대거 탑재했습니다. 그리고 깔끔하게 정돈된 버튼으로 이 넘칠 듯한 첨단 기능을 손쉽게 조작할 수 있게 했죠.
스마트폰으로 원격 시동, 온도 설정 등을 할 수 있는 텔레매틱스 시스템 ‘블루링크’를 기본 적용해 전작 ‘모젠’에서는 누릴 수 없었던 기능을 제공한 것도 좋았고요. 다만 이 비대칭 송풍구는 왜 이렇게 했는지 아직도 이해가 안 되네요.
휠 베이스가 크게 늘면서 뒷좌석은 공간도 승차감도 한결 쾌적해졌습니다. 여전히 4인승에 가까운 건 똑같았지만 뒷좌석에도 들어간 통풍 시트, 독립식 공조 장치, 뒷좌석 듀얼 모니터, 고스트 도어(소프트 클로징) 등 이번에도 2세대 에쿠스 못지않은 편의 장비를 마련했습니다. 대형 세단에는 흔치 않았던 파노라마 썬루프를 적용해 개방감을 선사한 점도 좋았죠. 파워트레인은 전작과 동일한 3.3L, 3.8L GDi 가솔린 엔진과 8단 자동 변속기를 탑재했는데, 신형임에도 오히려 출력이 줄어들어 논란이 있었죠.
차량의 성격에 맞게 중저속 토크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출력이 줄어들었다는 해명을 했고, 그 설명대로 실용 구간에서는 쾌적한 주행 성능을 제공했지만 이전 세대 제네시스가 ‘뻥마력’이었다는 의심은 거둬지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당시 현대차가 외쳤던 ‘기본기 향상’에 있어 핵심이 됐던 차량인 만큼 엔진룸부터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겼습니다.
초고장력강을 넓게 사용하면서 차체 강성을 높인 것은 물론, 전작의 에어 서스펜션은 버렸지만 발전된 전자 제어 서스펜션 / 주행환경에 따라 구동력을 다르게 배분하는 전자식 사륜구동 시스템을 탑재하는 등 주행 안정성을 대폭 향상했습니다. 개선을 거듭한 수입 경쟁차에 비하면 여전히 부족했지만 적어도 프리미엄 모델에 기대하는 수준만큼은 해냈죠.
다만 전작에 비해 황당하리만치 늘어난 몸무게는 경쟁차에 비해 둔한 움직임, 연비 하락 등의 문제로 이어졌습니다. 제네시스가 경쟁차에 비해 반 체급 정도 크기가 컸지만 그건 전작도 마찬가지라 변명이 되지 못했죠. 기술력 차이라고 볼 수밖에 없었어요. 물론 그 육중한 차의 덕을 본 부분도 있었는데, 중량에서 오는 묵직한 승차감은 덤이었고 충돌 안전성이 경쟁차를 압도할 만큼 상당히 뛰어났습니다.
특히 전면부의 25% 부분을 비껴 치는 신개념 ‘스몰 오버랩 테스트‘가 2012년 미국에 도입되면서 많은 차들이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나갔는데, 제네시스는 이에 대응한 안전 설계로 최고 등급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루게 됩니다.
내친김에 ‘긴급 제동 보조‘를 현대차 최초로 적용해 충돌 방지 시스템 평가까지 만족하면서 가장 안전한 차로 선정되기까지 했죠. 한편 이 무렵 현대차의 내수용과 수출용 차량의 안전성에 차이가 있다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됐고, 현대차는 동호회 회원들과 블로거 수십 명을 초청해 직접 눈앞에서 스몰 오버랩 충돌 테스트를 진행, 뛰어난 안전성을 직접 검증받기도 했죠. 이때 차량은 공장에서 출고를 기다리는 차 중 아무거나 집어 왔다고 하죠. 2015년에는 연식 변경을 통해 ‘차선 이탈 방지 장치’를 추가하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어느 판타지 드라마에서는 이런 명장면이 탄생했죠. 여담으로 경쟁차의 홈그라운드, 유럽 시장에도 잠깐 진출했는데 유럽 소비자가 선호하지 않는 대배기량 가솔린 엔진과 메리트 없는 가격, 뛰어난 현지 경쟁 모델로 인해 이 차를 살 이유가 딱히 없어 말 그대로 폭망했습니다. 지금 현대차를 유난히 싫어하는 분의 식지 않는 떡밥 중의 한화로 열심히 회자되고 있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