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일) 미국 대통령의 상당수가 어렸을 때 아버지를 잃었어요. 왜 그러느냐, 부족함으로 인해서 가지고 싶은 것, 소망하는 것을 더 많이 만들었다는 뜻이죠. 이 얘기는 뭐냐면 하면 내가 크게 가야 할 때, 자주 못 보는 관계 혹은 느슨한 관계는 우리가 소망을 가질 수 있게 만드는 굉장히 좋은 기능이 있다는 거예요. 반면 자주 보는 관계, 늘 옆에 붙어 있는 관계는 나로 하여금 내 인생에서 일어나면 안 되는 일을 막아줄 수 있는 참 좋은 관계라는 거예요.
그 두 개가 다 있어야 하죠. 그러니까 가깝고 가족 같은 사람들은 나로 하여금 무언가 안 좋은 일을 막아낼 수 있게 해 주고, 이탈리아에 있는 혹은 우리나라에서도 나랑 멀리 떨어져 있는데 사는 친구를 보면서 꿈을 느끼는 거예요.
김경일) 멀리 있는 친구를 문득문득 보면서 ‘살면서 나도 이런 걸 해보고 싶다’ 그런 걸 느낄 때가 있잖아요. 그러니까 거리가 있거나 자주 못 만나는 친구의 가치도 굉장히 중요하다는 걸 우리가 잊으면 안 될 것 같아요.
놀심) 흔히 우리가 생각할 때, 내가 어떤 고민이 있을 때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얘기하잖아요? 그게 맞는 거고. 멀리 있는 사람들에게 고민이나 안 좋은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소망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게 지혜로운 인간관계의 스킬이라고 생각하면 될까요?
김경일) 조금만 그걸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릴게요. 제가 생각하는 답과 거의 비슷하신데. 경희대학교 백종우 교수, 그분이 자살까지도 생각하시는 분에게 ‘자신의 어려움을 누구한테 얘기하느냐’ 물었더니 ‘좋아하는 사람에게 얘기한다’는 답을 들었대요. 그러니까 가까운 사람이라고 무조건 얘기하는 건 아니에요. 가까운 가족에게도 고민 얘기하지 않는 경우가 정말 많잖아요. 여기다 조금 더 살을 붙여 볼까요? 좋아하는 사람에게 무조건 다 고민을 얘기해야 하는 건 아니고요.
김경일) 모든 좋아하는 사람한테 모든 고민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그 고민의 종류와 좋아함의 거리가 있을 때 그렇게 얘기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무슨 얘기냐, 내 주위에 가까운 좋아하는 사람한테 ‘나는 이거 정말 이루고 싶은데 해낼 방법이 없다’ 이런 얘기해 봐야 고민 해결이 안 돼요. 그러니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는 ‘나 이런 안 좋은 일이 일어나고 있어서 힘들어’ 이런 얘기를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아까 말씀드렸던 리사 그림 교수나 이탈리아에 있는 친구, 그 친구들한테 ‘나도 이런 논문 한 번 써 보고 싶어. 나도 이런 걸 가지고 싶어’ 이렇게 말을 하죠. 먼 거리에 있으니까 내가 정말 좋아하는 가지고 싶은 것에 대해 얘기를 한다는 거예요.
김경일) 그러니까 고민도 회피 동기적 고민과 접근 동기적 고민으로 나눠요. 일어나면 안 되는 일을 못 막아서 힘든 건 정말 가까운 데 있는 좋아하는 사람, 먼 거리에 있지만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정말 내가 가지고 싶은 좋은 것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하게 돼요.
놀심) 이게 어떻게 보면 그렇다면 누군가가 나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그 사람이 나를 소중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일 수 있다는 건가요?
김경일) 그렇죠. 그가 좋아하는 소중한 사람이죠. 그런데 그 종류가 만약에 좋아하는 걸 가지지 못해서 하는 속상함이거나, 나쁜 걸 못 막아서 하는 속상함이라면 종류가 좀 다른 거잖아요. 그러면 바로잡아줄 수도 있죠.
김경일) 저는 그래서 정말 매일매일 거의 얼굴을 보는 동료 교수님이 저에게 어떤 고민을 얘기할 때, “우리가 공동 운명체인데 우리는 나쁜 걸 서로 막아주거나, 서로를 안전하게 지켜주거나, 서로가 힘들 때 에너지 보충제 역할을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얘기한 적도 있어요. 반대로 먼 거리 있는 친구가 자기에게 일어나면 안 되는 일을 막아내는 얘기를 했을 때 난감했던 적도 있죠. 저는 그 친구를 옆에서 잘 매번 확인해 줄 수 없는 사람이니까요.
제가 봤을 때 좋은 심리학자들이나 아주 노련한 카운셀러분들이 ‘이건 조금 더 거리가 먼 친구, 이건 조금 더 가까운 분’ 이렇게 선을 잘 그어주는 경우가 있거든요. 노련한 분들은 그런 감이 있으신 것 같아요.
놀심) 그럼 그런 사람들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 좀 더 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질문이나 말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김경일) 특히 한국의 문화에서는 ‘당신과 나는 우리야, 가까워’라는 말을 정말 강하면서도 순간적으로 기분 좋게 느끼게 만드는 말이 있는데요. 그중에 하나는 ‘도와달라‘는 말이에요. 이웃 간에 사이가 안 좋았는데 한쪽이 ‘도와주실 수 있으세요?’라고 하면 확 사이가 좋아져요. 부부싸움으로 두세 시간 터프하게 싸우고 난 다음에 아내가 옆에서 ‘이것 좀 들게 잠깐 도와줄 수 있어?’라고 하면 도우러 가게 돼 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도와달라는 게 구조의 신호뿐만 아니라 당신과 내가 ‘우리’라는 의미예요.
김경일) 그래서 직장생활에서도 ‘나 도와줄 수 있어?’ ‘선배님, 도움이 필요한데요’ 이런 얘기를 조금씩 해 봐야 해요.
놀심) 이게 어떻게 보면 후배 입장에서도 말하기 어려울 수 있는데 오히려 그렇게 말을 해야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거군요.
김경일) 우리 주위에 반대로 절대로 도와 달라는 얘기 안 하는 그런 사람 있죠. 참 친해지기 어렵죠. 왜 도와달란 얘기를 안 할까요. 그걸 빚진다고 생각해서 그래요. 빚진다는 건 뭐예요? 거래 관계라는 뜻이에요. 한마디도 도와 달라는 얘기 안 하는 것, 어떤 경우에도 도와 달라는 얘기 안 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은 거리감 느껴지잖아요.
김경일) 그래서 저는 도와 달라는 말을 어느 정도로 서로 툭툭 주고받을까, 이 사람과 나 사이에서는 어떤 식으로 그런 얘기를 할까 늘 고민해요. 심지어는 굳이 그 도와달라는 게 정말 도움이 아니라 술잔 좀 따라 줄래, 저기 있는 술 좀 줄래 등 부탁의 느낌을 넣어서 말하기도 해요. 일부러 익살스럽게. 도와달라는 얘기를 잘 사용해 보실 필요가 있어요.
놀심) 도와달라는 말만 잘 사용해도 인간관계가 달라질 수 있다. 참 와닿는 말씀 해주셨습니다. 오늘 김경일 교수님을 모시고, 우리가 인간관계에서 절대 놓치면 안 되는 사람에 대해서 알아봤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더 가까워질 수 있고 적절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럼 오늘 좋은 말씀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의 심리학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