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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역 깡패도 했었죠…” 교도소 다녀온 인테리어 업체 사장님이 성공하려는 이유

30대자영업자이야기 30대자영업자

제가 좀 어렸을 적부터 집안 환경이 안 좋다 보니까 사고도 많이 치고… 방황을 유독 많이 했어요. 학교도 자퇴하고 주변에 안 좋은 사람들, 안 좋은 형님들을 좀 접하다 보니까 결국에 교도소라는 곳도 갔다 오게 됐고요.

그런데 제가 이제 인테리어 필름이라는 일을 새로 만났어요. 반성하면서 진짜 열심히 살고, 미래를 보다 보니까 일도 되게 잘 풀리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이 인테리어 필름 업체도 더 크게 차릴 수 있게 되었고요. 이렇게 가진 것도 없고, 학벌도 없고, 전과까지 있는 저 같은 청년도 새롭게 다시 시작할 수 있고, 누구보다 잘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공유하고 싶었어요.

제가 문신이 많다 보니까 어쩔 수 없이 첫인상에서 무조건 색안경을 끼고 보세요. 그러니까 양아치같이 본다거나, 나이도 이렇게 있는데 문신을 노출하고 다니는 게 창피하지도 않나… 그런 인식은 좀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래서 좀 더 제 꿈이 확고해지는 것 같아요. 인테리어 필름을 저는 작은 사업체로 끝낼 게 아니고, 이름만 대도 알 정도로 그런 큰 기업으로 일구고 싶어요. 그때가 됐을 때 지금 저 같은 사람들에 대한 인식들도 다 뒤집어 버리고 싶고… 반성하면서 정말 마음먹고 꿈을 갖고 살아간다면 이룰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인테리어 필름 일을 하려면 기술이 필요한데, 교도소 다녀와서 처음부터 이 일을 한 건 아니었어요. 한 1년 정도는 정말 이런저런 일들을 많이 하기는 했거든요. 택배도 하고, 택배 상하차도 하고, 유리 공사… 정말 셀 수 없이 힘든 일들을 많이 했는데, 그러다 보니까 미래가 좀 안 보이는 그런 느낌이 있어서 기술을 좀 배워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그렇게 하면서 불현듯 어렸을 때 이 일을 잠깐 간접적으로 봤던 게 생각이 났어요. 그런 마음으로 발품 팔면서 배울 수 있는 곳을 찾아다닌 거죠.

인테리어 필름 자체가 어디 구인 구직할 수 있는 사이트도 없고, 알바몬 그런 데도 안 나오거든요. 어디서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구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일단은 필름 가게들, 인테리어 필름 가게들을 수소문하고, 인터넷에 찾아서 나오는 인테리어 필름 팀들을 그냥 다 적고 명단을 만들어서 한 분 한 분 다 찾아다녔죠. 가르쳐 줄 수 있는지, 거둬 줄 수 있는지 물어보다 보니까 배울 수 있게 된 계기가 생겼어요.

인테리어 필름 업체를 차린 지… 제가 개인적으로 스스로 오더를 받아서 시작한 것은 지금 그래도 한 5년 5개월 정도 됐어요.

매출은 한 달에 8,000만 원 정도 돼요. 그러면 순이익은 잘 나오면 대략 2,000만 원 정도 돼요. 제 입으로 말씀드리기는 좀 그렇지만, 저희 업체가 전국 상위 1%에 든다고 알고 있거든요.

다른 업체들에 비해서 매출이 높은 이유는 정말 무식하게 했어요. 일을 수주하려고 전국에 제가 인테리어 업체만 한 1,000군데를 돌아다녔어요. 인터넷 검색해서 지역별로 천안이라고 하면 천안의 모든 인테리어 업체, 그리고 평택… 그런 식으로 해서 한 지역씩 100~200군데씩 정해서 리스트를 만들어 놓고 네이버 지도로 경로를 만들어요.

그 순서대로 직접 찾아다니면서 저희 소개를 한 거죠. 그런 영업 활동을 펼쳤고, 사실 그게 저한테는 좀 큰 발판이 된 것 같아요.

창업 비용은 정말 따지면 한 50~60만 원 정도 들어갔는데, 그냥 기본 장비들 그리고 공부… 나머지는 건강한 육체와 좋은 손기술이 전부죠.

처음에 교도소에 가면서 그때 진짜 생각을 많이 했어요. ‘내가 왜 이렇게 여기까지 왔을까…’, ‘내가 뭐 때문에 이렇게 방황했을까…’ 하면서 과거를 되돌아보게 됐어요.

그리고 또 그 과정에서 여자친구가 사실 저를 믿고 응원해 주면서 많이 기다려 줬어요. 하루도 빠짐없이 접견 오고, 매일 편지 써주고… 그러다 보니까 제가 진짜 다시는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고, 사실 또 겁도 많이 났어요. 제가 이렇게 살다가는… 정말 이런 제 옆에 누가 있고 싶겠어요? 누구든 금방 떠나갈 것 같고, 제 사람을 지키지도 못할 것 같았어요. 그러다 보니까 뭔가 새롭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 같은 경우는 여자친구랑 한창 불타오를 때 간 거라서 마음이 항상 진짜 애간장이 탔어요. 너무 보고싶고, 접견하는데 서로 만질 수도 없고… 처음에는 진짜 마주 보고 제가 울기만 했거든요.

저는 중학교 때까지는 진짜 부모님 말씀도 잘 듣고, 그냥 되게 착실한 학생이에요. 공부만 못할 뿐이지, 진짜 착실한 학생이었죠. 근데 제가 고등학교 올라가고 나서부터 방황이 시작됐던 것 같아요.

저는 이제 돈에 대한, 가난한 것에 대한 결핍감이 심했었거든요. 고등학교 때, 그때야 제가 하고 싶은 게 생겼는데, 집에 돈이 없으니까 자꾸 부모님을 원망하게 되더라고요. 어린 마음에 자꾸 그걸 비뚤게 표출했던 것 같아요. 제가 학교를 그래서 계속 많이 안 나가고 사고만 쳤어요. 그래서 고등학교 2학년 때 제가 자퇴를 하게 됐는데, 그때부터 부모님이랑 좀 많이 틀어졌죠.

아까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제가 처음으로 집을 나가서 대천으로 갔어요. 깡패들 숙소에 있으면서 치킨 가게에서 아르바이트하고… 그러면서 제 사회생활이 그렇게 시작이 된 거예요.

자꾸 목적이 돈으로 치우치다 보니까 안 좋은 사람들, 쉽게 벌 수 있는 곳으로 자꾸 끌리더라고요. 그러면서 그런 사람만 자꾸 보게 되고… 그래서 그런 사람들이랑 같이 많이 지냈어요. 자꾸 그런 사람들을 보고 흉내 내고, 닮으려고 하니까 더 비뚤어지는 거죠. 그때부터 계속 저는 그렇게 돈을 벌기 위해서 뭐든지 다 하면서 살았던 거예요.

흔히 알고 있는 용역 깡패라고 있잖아요. 제가 20살 처음 들어서 용역 깡패를 하게 됐는데, 23살 정도까지 했거든요. 그런데 정말 그때부터는 걷잡을 수 없이 인생이 엇나갔죠.

근데 내가 오히려 그런 모습을 당당하게 여겼어요. 왜냐하면 돈을 많이 벌기도 벌었거든요. 많이 벌 때는 한 달에 한 3,000만 원도 벌었어요. 그 나이에, 20대 초반에…

돈도 그렇게 벌고 하니까 아버지한테는 저는 항상 당당했죠. 어머니, 아버지는 나에게 해 준 거 없고 가난한 집안이었지만, 나는 이렇게 나가서 돈 번다고 하면서 어린 마음에 더 그런 걸 표출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때 제가 아버지한테 못 할 말도 하고… 진짜 불효를 많이 저질렀어요.

아버지가 이제 돌아가신 지가 2~3년 정도 되셨는데, 제가 임종도 못 봤어요. 어렸을 때 제가 후회되는 게 너무 많아서 이제라도 잘 사는 모습, 빨리 성공하는 모습 보여드리고 싶어서 진짜 열심히 살았어요. 열심히 산다고 임종을 못 지키고…

아버지한테 마지막으로 인사드리지 못한 게 정말 아직까지 한이 돼서 이렇게 혼자 운전하고, 혼자 일하면서도 그 일만 생각하면 자꾸 막 이렇게 가슴이 먹먹해지더라고요.

제가 그렇게 방황하게 된 게 아버지 본인 때문이라고 생각하셨거든요. 아버지가 저 어렸을 때 술을… 알코올 중독이었어요. 그런 가정환경 때문에 제가 엇나간 거라고 생각을 많이 하셨거든요. 제가 마지막으로 하고 싶었던 얘기가 그게 아니고, 다 내 잘못이고 죄송하다고… 그 이야기를 못 하고 보내드린 게 너무 후회돼요.

시간이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잖아요. 그래서 지금 남아계신 어머니 가슴에도 제가 정말 엄청 큰 대못을 많이 박았거든요. 아버지한테는 지금 그런 후회가 남아 있지만, 살아계신 어머니한테만큼은 정말 성공하는 모습 보여드리고, 주변에서 진짜 아들 잘 키웠다는 소리를 꼭 듣게 해 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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