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가톨릭 대학교에서 교수로 30년 재직하다가 지금은 명예교수로 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하지 못하고 마음으로 삼키고 사람들에게 좀 만만한 취급을 받는 사람들의 특징이 몇 가지 있는데요.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사람에 대해서 무관심함이 몸에 배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일찍이 사람하고 있으면 재미있다는 것을 경험해 보지 못하고 오히려 그 반대로 사람에 대해서 치였다든가 괴로움을 많이 당한 사람들은 사람을 별로 안 좋아하더라고요.
그래서 자기편에서 자꾸 사람을 꺼리다 보니까 회사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심지어 가정에서도 배우자한테 환영을 못 받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렇게 무관심하거나 무심한 사람들이 의외로 우리 사회에 많더라고요. 이런 사람들의 주 특징이 뭐냐면 감정에 대해서 굉장히 둔해요.
우리가 사람과 사람이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재미있으려면 자기의 감정에 대해서도 어떤 감정인지 잘 포착하고 또 상대방의 감정이 어떤 건지 빨리빨리 알아차려야 거기에 맞게끔 상호작용을 하죠. 근데 사람에 대해서 무심하다 보니까 뚱딴지같은 이야기를 자꾸 해요. 그러니까 눈치 없이 상황에 맞는 맥락에 맞는 말을 못 하는 거예요.
두 번째로 많은 유형이 어렸을 때 너무 엄하게 컸다거나 무슨 일을 하면은 질타를 수시로 받았다든가 혼나거나 불이익을 많이 받았던 사람들은 말을 했을 때 책잡힐까 봐 우물쭈물하고 머리를 굴리고 생각하다 보니까 타이밍을 못 맞추죠. 우물쭈물하면서 말을 못 하니까 무시당하는 경우들이 있더라고요.
첫 번째 유형도 큰 맥락에서는 바람직하지 않은 환경에서 자란 것은 똑같은데 어떤 사람들은 그래서 신경을 완전히 끄는 무심함으로 자기 동굴에 들어가는 타입이 있고, 어떤 사람들은 상대방이 트집 잡을까 봐 굉장히 예민하기는 한데 겁이 나서 우물쭈물하고 방어적이고 이런 타입으로 발전이 되는 거죠.
또 어떤 경우는 흑역사를 지닌 사람들이 의외로 많아요. 흑역사가 어떤 거냐면 첩의 자식으로 태어났다든가 집안 내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있어서 아버지가 영창에 가 있다든가 폭력이 난무하는 환경에서 자랐다든가 이랬던 사람들은 친구들이 우리 집에 대해서, 나에 대해서 잘 알면 ‘나를 무시할 거야.’ 하는 두려움을 갖더라고요.
이런 사람들은 사람들하고 가까이하면 상대방이 자기를 개방한 만큼 나도 해야 하니까 그게 부담스러운 거예요. 그러니까 일정한 거리 이상은 다가가질 않아요. 그래서 무심하거나 두려워하거나 우습게 보일까 봐 거리를 두거나 이런 패턴들을 취하는 게 굳어지면 바깥에 나와서 사람들하고 친밀하게 어울리지를 못하더라고요.
실제로 가혹한 환경 속에서 자란 사람도 괜찮은 사람으로 유능한 사람으로 바꾸기 위해서 늘 최선을 다하고 있고, 그런 사람들이 부지기수예요. 지금 이걸 보고 계시는 분들도 충분히 바뀔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고정불변은 없고 뭐든지 변화하기 때문에 우리가 방향을 잘 잡아서 부단히 노력하면 안 되는 게 없다고 봅니다.
그 방향이라는 것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찌그러지게 또는 서글프게 살면서 바람직하지 않은 패턴들이 형성되어 있잖아요. 그게 인간관계에서 양분을 못 얻어서 그렇게 된 겁니다. 부모님이 그런 양분을 제공하지 못했다면 내가 나를 위해서, 내 삶을 위해서, 자기가 능동적으로 그런 양분을 찾아서 나서야 한다고 봐요.
아주 적극적인 사람들은 집안 환경이 열악하더라도 그 대신 바깥에 와서 친구들을 통해서 그 양분을 흡수하더라고요. 또 부모님하고 관계가 안 좋은 사람일 경우 그래서 어른을 싫어하는 방향으로 가는 사람도 있지만 부모님하고 사이가 안 좋기 때문에 자기는 다른 어른 삼촌이나 이모나 학교 선생님에게서 자기에게 필요한 양분을 흡수하는 방향을 잡을 수도 있죠.
그렇게 방향을 잘 잡아서 능동적으로 하면 보완할 수 있다고 믿어요. 그렇다면 사람들을 만나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도 내가 소통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무시당하거나 아니면 만만한 취급을 당하지 않고 존중받으면서 대화할 방법이 필요하죠.
또래 애들 속에서는 에누리 없이 내가 조금 시원찮으면 친구들이 그냥 그걸 좀 어여쁘게 봐주지 않고 무시할 수도 있어요. 그러나 우리 사회가 그렇게까지 냉박하지만은 않거든요. 그래서 자기보다 조금 나이가 있는 형이나 누나에게 내가 가서 따라붙으면 그네들이 그렇게 야박하게 안 할 거예요.
그렇게 해서라도 관계의 기술을 스스로 넓혀야 해요. 사람들이 가정환경에서 제공되는 게 뭐냐면 관계 기술이거든요. 즉, 대상하고 주거니 받거니 하는 데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는데, 극복하는 건 다른 사람하고 자꾸 만나서 단련이 되는 수밖에 없다고 봐요.
그래서 옛말에 ‘땅에서 넘어진 자는 땅을 짚고 일어서야 한다.’고 말을 하거든요. 그 이야기는 관계에서 우리가 찌그러졌기 때문에 다른 방법을 통해서 그거를 복원하는 게 아니라, 관계에 더 적극적으로 따라붙어서 연마를 해야 한다고 봐요.
가정에서 충족이 안 된 사람은 자기 힘으로 친구들은 쫓아다니면서 그래도 충족을 할 수 있으면 크게 걱정 안 해도 되지요. 근데 이미 친구들도 겁나고 친구들에게서 이렇게 자꾸 소외감 느끼는 사람들은 친구들 속으로 파고 들어갈 수가 없잖아요. 그런 사람들은 전문 상담자에게 와서 관계하는 기술, 마음 놓고 대화하는 그런 연습을 얼른 해서 그걸로 친구들 속으로 파고 들어가서 거기에서부터 한 단계씩 올라가는 방법을 채택해야 해요.
어떻게든 간극을 좁혀야 삶이 억울하지 않아요. 예를 들어 아버지가 너무 무서웠다면 사회에 나와서도 아버지와 비슷한 인상을 가진 사람 앞에 가서 불편해서 자꾸 피해요. 이런 사람들은 1대 1의 상담자하고 그런 특정인을 대신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이런 분들은 집단상담에 가서 연습하는 게 바람직해요. 집단상담은 한 20명 남짓 모여서 하는 데 거기에는 다양한 인물들이 오잖아요. 그래서 집단상담은 사회의 축소판이거나 가정의 확대판이라고 얘기를 해요.
즉, 우리 아버지를 연상시키는 사람도 있고 얄미운 형을 연상하는 사람도 있고 그래서 자기가 일찍이 부정적으로 경험했던 인물이 그 집 단 속에 있을 수 있다는 얘기죠. 그래서 그런 사람 앞에서 자기 이야기를 해 보는 거예요.
처음에는 쭈뼛쭈뼛하면서 얘기를 안 하더라도 리더가 자꾸 하도록 독려하고 또 무슨 불상사가 벌어지면 리더가 그거를 수습하거든요. 그러니까 그런 특정인 앞에서 얘기하는 게 두려운 사람들은 집단에 가면 그런 특정인을 대신하는 인물이 거의 있기 마련이에요.
거기에서 한번, 두 번 자꾸 얘기하다 보면 ‘아, 내가 무서워했던 것은 내가 어렸을 때지. 지금은 내가 어린애가 아니고 힘이 있는데도 내가 아직도 과거에 사로잡혀 있구나. 지금은 너끈히 그네들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면서 용기들이 막 나오지요.
그리고 집단상담에 가서 잠자코 있으면 리더가 자꾸 촉진을 시켜요. ‘저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 말해 봐라.’ 그래서 처음에는 마지못해 얘기하지만 얘기했을 때 다른 사람이 ‘아, 일리가 있다. 동의한다.’ 이런 긍정적인 강화를 받으면은 점점 탄력이 생겨서 말을 하는 데 굉장히 도움이 되지요.
집단상담 그리고 나의 방향성을 다른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방식으로 바꾼다면, 나의 인생은 달라집니다. 우리가 삶은 곧 관계라고 얘기하거든요. 이 관계를 가능하게 해주는 게 대화죠.
누군가를 만났을 때 그 사람의 마음을 잘 헤아려 가면서 얘기를 하고 또 자기 상태를 더 정확하게 잘 전달하면서 대화를 하면 이 관계가 아무래도 돈독해지거든요. 관계가 돈독해지면 그 속에서 우리가 만족감, 행복감을 느끼게 마련이죠. 아무리 많은 성취나 성공을 거두었어도 측근 사람들하고 이 교류, 교감하는 맛을 못 느끼는 사람들은 굉장히 씁쓸해하고 허망해하는 경우를 많이 봐요.
그래서 ‘아, 우리의 행복을 결정하는 것은 인간관계지, 다른 게 아니다.’ 특히 옆에 있던 사람하고 주거니 받거니 대화가 잘 되면 그것보다 더 큰 복이 없다고 보거든요. 지금 당장 활용할 수 있는 말을 잘하기 위한 팁 같은 게 있어요. 말을 잘하기 위해서는요. 남의 말에 귀 크게 기울여 집중하고 자기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을 심플하고 사실적으로 얘기를 하는 게 대화를 잘하는 사람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또 내 의도를 정확하게 전달하려면 성장해야 해요. 그래서 그건 어떤 기술의 일종이 아니고 자기 성장과 비례 되니까 열심히 성장하는 사람은 남을 헤아리는 능력, 내 말을 호소력 있게, 설득력 있게 전하는 기술이 자연스럽게 는다고 봐요.
우리가 성인이라고 하는 분들은 남에게 반감이나 저항을 덜 불러일으키는 게 개개인의 심정을 정확하게 읽고 그거를 보듬는 식의 말을 하니까 그 많은 분으로부터 추앙받지 않나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요. 사람은 대화적 존재입니다. 그래서 많은 고통도 나눌수록 반으로 나누어지고, 즐거움도 나눌수록 배가되죠. 우리가 잘 사는 방법은 자꾸 대화를 통해서 측근 사람들하고 나누는 거라고 봐요. 다른 걸 욕심내실 게 아니라 대화 능력을 욕심내시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