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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으로 한국 조롱하던 중국이 벙어리가 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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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7일 영국에서 열린 ‘세계 최고 성악 콩쿠르’로 꼽히는 ‘BBC 카디프 싱어 오브 월드 2023’에서는 한국인 테너 김성호가 가곡 부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하루에 불과 2시간밖에 잠을 자지 않고 거둔 의미 있는 쾌거였죠.

영국 BBC가 생중계하는 이 대회는 2년마다 열리는데 그간 한국인 우승자는 1999년 바리톤 노대산, 2015년 베이스 박종민, 2021년 바리톤 김기훈 3명에 불과했는데 김성호가 우승을 차지하며 4번째 주인공이 됐는데요. 그런데 그가 우승보다 더 주목받았던 것은 옷차림입니다. 그는 턱시도가 아니라 굉장히 한국적인 옷을 선택했는데 다름 아닌 두루마기 한복이었습니다.

꽤 흥미로운 복장 선택인데 이는 단순히 주목을 끌기 위한 목적이 컸습니다. 그는 본선에 중국 성악가 2명이 올라와 중국인들이 많이 볼 것 같아서 한복으로 입었다며 순전히 13억 중국인들의 시선이 자기 옷에 쏠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복 두루마기를 선택했습니다. 아마도 그냥 중국의 한복 공정 논란을 의식해 한복은 한국의 전통의상이라는 점을 알리고 싶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정부가 하지 못하는 일을 해주신 김성호 테너님의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한복 공정으로 대표되는 중국의 문화공정, 생각만 해도 골치 아픈 일입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짝퉁을 만드는 나라에서 한복을 두고 중국 전통의상 짝퉁이라고 우겨대니 여간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닌데요.

인터넷에서나 통용되던 이 주장은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화룡점정을 찍었는데 소수민족 대표 자격으로 참가한 한 여성이 한복을 입고 댕기 머리를 한 상태로 오성홍기를 전달하는 퍼포먼스를 펼치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이제 논란도 끝날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1,400년대에 한복이 명나라 정부가 골치를 썩을 정도로 심각하게 유행했었다는 기록이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그간 한국을 조롱하던 중국이 꿀 먹은 벙어리에 놓이게 됐는데요. 지난 2015년 7월 중순 시진핑은 길림성에 대한 시찰과 조사연구를 진행했는데 그 첫 지역으로 선택한 곳은 연변이었습니다. 길림성에는 연변조선족자치주가 자리하고 있는데 연변은 중국 내 유일한 조선족자치주이자 최대 조선족 집거지역입니다.

한국 전체 면적보다 큰 길림성을 시찰하면서 그 첫 시찰지로 연변조선족자치주를 선택했다는 것은 꽤 의미 있다고 받아들여졌는지 시진핑 역시 평소 길림성에 가면 꼭 연변에 가보고 싶다고 이야기해 왔습니다.

그런데 시진핑이 연변을 방문하면서 조선족과 찍은 사진 속에는 연두색 한복을 입은 여성이 등장하거나 알록달록 색동저고리를 입은 아이가 등장하는데 어쩌면 이때부터 한복 공정이 시작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중국 소수민족 중 한복을 입는 이들이 있으니 당연히 한복은 중국의 전통 옷이라는 기이한 계산과 함께 말이죠. 그렇다면 한복은 진짜 중국 전통 옷이 맞을까요? 이에 대한 학술대회가 얼마 전 서울에서 비공개로 열렸습니다.

지난 7월 21일 ‘동북아역사재단’과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은 서울 더 플라자 호텔에서 ‘한국 복식 문화사: 한국의 옷과 멋’을 주제로 비공개 공동 학술회의를 개최했습니다. 그간 한국의 복식문화가 중국에서 기원했다는 주장이 중국 온라인을 통해 확산되면서 양국 간 갈등 요인 중 하나가 되었는데 이런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 학술적으로 이를 접근해 보자는 취지였을 겁니다.

그런데 이날 구도영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명나라의 조선 드레스 열풍과 조선 전기 여성 한복’을 주제로 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데 이 연구를 통해 지금으로부터 600년 전 조선의 옷이 명나라 부유층의 패션을 휩쓸었음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그 증거로 말총으로 만든 속치마 ‘마미군’을 들었죠.

여기서 마미군은 그 한자에서 알 수 있듯이 말의 꼬리, 즉 말총으로 만든 치마를 의미합니다. 사실 속치마는 속살과 닿기 때문에 부드러워야 하는데 뻣뻣한 말총은 속치마를 만들기에는 부적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마미군을 입으면 겉치마가 뻣뻣한 마미군에 의해 풍성하게 펼쳐지는데 지금으로 치자면 파티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페티코트’ 같은 느낌을 줍니다.

치마를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 해서 발군이라 표현하기도 했는데 19세기 중반 유럽을 휩슨 크리놀린과 유사한 형태죠. 15세기 명나라 관료였던 육용이 쓴 ‘숙원잡기’에는 ‘마미군은 조선에서 시작되어 경사로 유입되었다. 처음에는 부유한 상인과 귀공자, 기생들만 입었는데 이후 조정 관료들은 물론 무신들까지 입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관료였던 그는 이 마미군이 꽤나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아랫도리에 허황되고 사치스럽게 옷을 입는 자는 예쁘게 보이고자 할 뿐이라고 꼬집기도 했죠. 그런데 한국으로 치자면 부유층이 거주하는 서울 강남과 같은 명나라 초기 도읍인 남경에서 부유층과 귀공자들 사이에서 유행을 시작해 점차 확산되더니 심지어 조정 관료들은 물론 병사들까지 마미군을 입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명나라 9대 황제 홍치제에 이르러 조정에서 마미군 착용을 금지시키기에 이르죠. 그 이유가 재미있는데 말꼬리로 만든 치마다 보니 관청에서 키우는 말을 타겟으로 꼬리를 잘라가는 사대부가 많아지면서 군마 손실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한복이 중국 전통 복장이라는 일부 중국 누리꾼들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결과인 셈이죠. 도시에서는 마미군을 직접 직조해 판매하는 상인들도 생겨날 만큼 패션 코드로 자리매김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구 연구위원은 명의 강남지역은 중국의 패션과 유행을 선도하는 지역이었고 그중 으뜸은 소주였다고 설명했는데 실제 마미군을 기록한 사료의 필자들은 전부 소주 인근 강남지역에 거주하던 이들로 명나라 중심지에서 실제 마미군이 유행했음을 단번에 알 수 있죠.

그렇다면 위 기록만으로 한복이 조선 옷이라는 증거가 될까요? 여기에 추가 증거가 하나 더 있습니다.

15세기 우리 조상들이 입었던 치마를 진작 할 수 있는 그림자료는 많지 않지만 16세기 유물을 통해 추정할 수 있습니다. 당시 입던 치마들은 볼륨감 있는 형태로 길이가 길고 방사형으로 길게 넓어지는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그래서 옷을 입었을 때 하단을 풍성하게 하고 전체적으로 우아한 분위기를 풍기는 특징이 있죠.

하지만 16세기 중국 사대부 가정의 일반적인 복장은 볼륨감이 없는 형태로 슬림했습니다. 16세기 명나라 화가 구영이 한나라 궁중 여인들을 그린 ‘한궁춘효도’를 보면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죠. 학술대회에서는 마미군 이전 14세기 몽골, 즉 원나라에서 유행했던 ‘고려양’에 대해서 다뤘는데요.

고려가 원나라에 복속된 후 이들은 마음대로 내정에 간섭하고 고려 국왕을 마음대로 교체하며 막대한 공물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공물 중에는 여성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바로 공녀입니다. 원나라는 새로이 군대로 편입된 남송의 군인들에게 배우자를 마련해 준다는 명목으로 고려의 여성들을 보내도록 요구했는데 고려는 결혼도감을 설치해 약 140명에 과부 및 처녀들을 몽골로 보냈었죠.

그런데 이들이 원나라에 들어가서 왕실 및 일반 사회에 고려의 풍습을 전파해 고려양이라는 고려양식의 옷을 궁중에 유행시켰습니다. 원나라 장욱의 ‘궁중사’에는 ‘궁중에 의복이 고려 양식을 새롭게 숭상하니 방령에 허리까지 오는 반비라네. 밤마다 궁정에서 앞다투어 구경하니, 일찍이 고려 여인들이 황제 앞에서 입는 옷이었다’라고 쓰고 있죠.

방령에 허리까지 오는 반비는 나란히 마주 보는 깃이 달렸고, 허리까지 오는 짧은 소매의 덧옷을 나타냅니다. 그러니까 고려시대 황제 앞에서 입던 옷이 원나라 조정에서도 유행했던 겁니다. 우리 조상들의 앞선 패션 센스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인데요.

공녀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은 기황후인데, 1333년 10대 어린 나이에 원나라로 끌려온 그녀는 원나라 황제 순제의 차와 음료를 담당하다 황제의 넋을 빼앗아 황후의 자리까지 올랐던 여인입니다. 그녀의 아들도 황태자에 책봉되기도 했죠. 기황후가 황후 자리에 앉은 후 원나라 조정의 궁중 여인들은 대부분 고려인으로 바뀌었고 이들 덕분에 고려 문화가 원나라 조정을 휩쓸게 된 겁니다.

이런 내용을 정리해 보면 중국의 한복을 ‘한푸’라 부르며 자기 옷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좀 웃기기도 합니다. 2020년 이후 중국에서는 한복이 한족의 의복인 한푸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옷이라는 주장이 반복적으로 제기되고 있는데 실제 한복이 한푸로 잘못 알려진 사례도 있습니다. 올해 2월 미국의 유명 패션지 보그가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에 한푸는 한족이 통치하던 시대의 역사적 의복 양식 가운데 하나라며 한복을 한푸라고 소개해 논란이 일기도 했죠.

하지만 조금만 알아보면 한복과 그들이 주장하는 한푸는 상당히 다른데요. 2022년 Family and Environment Research에 발표된 ‘한복과 한푸의 차이점 분석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에 따르면 한복은 치마와 저고리로 이루어진 투피스 형태로 바지와 속곳을 여러 겹 껴입어 전체적으로 풍성한 종 모양의 실루엣을 형성하는 게 특징입니다.

반면 한푸는 랩어라운드 형식의 원피스 형태로 슬림한 실루엣을 형성, 옷 한 두 벌을 둘러 착용하는 형식이 많아 일자 형태에 몸의 곡선이 드러납니다. 바로 이런 일자 형태와 다른 우리의 고려, 조선시대 한복에 그들이 매료되었던 것이죠.

옷의 형태가 다르다 보니 패턴 제도 법과 봉제 제작법도 다릅니다. 한복에는 고름이 많이 들어가 고도의 재봉 기술이 필요하지만, 한푸의 경우에는 고름이 없이 옷 자체를 둘러서 매는 보자기 형태입니다. 심지어 사용하는 원단에도 우리 한복이 명주, 실크, 말총을 활용했던 것과 달리 한푸는 천이 얇고 흘러내리는 원단을 사용했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한복의 그들에게 건너가며 지금의 한복 공정에 대한 빌미를 제공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현대의 문명인이라면 문화가 일방적으로 주는 것이 아니라 상호 교류한다는 것 정도는 아는 것이 맞을 겁니다.

일부 중국 네티즌들은 한복이 중국의 한푸에서 유래했다고 하지만 한, 당, 송, 명나라 옷을 보면 일반적인 옷의 형태가 조선의 여성 옷과 매우 다릅니다. 중국으로서는 자존심이 상할 일이지만 역사적 증거가 한류가 지금 못지않게 예전에도 거셌음을 보여주고 있죠.

굳이 역사적 자료를 들어 설명하지 않아도 한복은 당연히 우리 전통 옷이지만 한복이 중국옷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은 집요하게 제기되는 실정이기 때문에 이러한 꾸준한 연구가 필요해 보입니다. 이렇게 확실하게 남은 기록으로 중국은 지금 꿀 먹은 벙어리가 됐는데 앞으로 중국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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