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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면의 본명은 롯데라면? 신라면을 둘러싼 농심과 롯데 이야기

우리나라 3대 라면을 꼽으라고 하면 진라면, 삼양라면, 신라면 정도를 말할 수가 있죠. 어디 브랜드에서 나온 상품인지 알 정도로 인기가 많아요. 삼양라면 하면 삼양식품, 진라면은 오뚜기, 신라면은 농심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하실 것 같아요.

그런데 신라면은 원래 농심이 아닌 롯데애서 만들었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이번 ‘아이돈노우’에서는 사나이 울리는 매운맛으로 유명해져 매운맛의 기준이 된 신라면과 롯데 사이의 기가 막힌 사연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일단 라면 얘기를 먼저 하려고 해요. 우리나라에 라면이 언제 처음 들어왔을까요? 때는 바야흐로 1960대 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보험 회사 사장인 한 남자가 남대문 시장에서 뭘 사 먹기 위해 장사진을 친 사람들을 목격해요. 사 먹으려고 한 것이 무엇이냐면, 바로 꿀꿀이 죽이에요.

분명 죽이잖아요? 그런데 이 안에서 담배꽁초도 나오고 단추가 나오기도 해요. 미군이 버린 음식을 끓여 먹으니 이런 게 나왔던 거죠. 워낙 먹을 것이 없었던 시절이라서요. 그 장면을 보고 쇼크를 먹은 이 남자는 문득 일본에서 먹었던 라면을 떠올리게 됩니다. 이후 회사를 때려치우고 라면 회사를 차린 이 남자, 우리나라에 최초로 라면을 내놓게 됩니다. 이게 바로 삼양라면입니다.

지금이야 라면이 인기가 많지만 처음 나왔을 때는 호응이 적었다고 해요. 꼬불꼬불하고 딱딱한 면발을 사람들이 옷감이나 실로 오해했기 때문인데요. 이렇게 최초의 라면이 고전을 면치 못하던 그때, 라면을 향한 구원의 손길이 등장했습니다. 바로 정부의 ‘혼분식 장려 운동‘이에요. 쉽게 말하자면 쌀이 귀하고 비싸니까 정부에서 쌀 외의 것을 끼니에 섞어 먹으라고 한 거죠.

정부가 라면 섭취를 권장하기 시작하면서 라면은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후속 라면 또한 우후죽순 등장하기 시작했는데요. 삼양라면의 아성에 곧 자취를 감추고 말았어요. 바로 이때, 삼양라면의 독무대였던 라면 시장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은 회사가 농심이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농심이 아니고 롯데공업입니다. 여기서부터 롯데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어요. 농심 창업주인 신춘호 회장의 형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바로 롯데 창업주 신격호 회장, 현 신동빈 회장의 아버지입니다. 원래 일본에서 활동하던 형 신격호 회장을 대신해 신춘호 회장이 국내 롯데를 이끌고 있었죠. 롯데가였던 신춘호 회장은 당시 큰 인기를 끌던 라면을 롯데에서 팔겠다고 선언하죠.

하지만 형인 신격호 회장이 ‘아니, 그게 팔리겠냐’ 이러면서 극구 반대했다고 합니다. 이때 신춘호 회장은 가출까지 감행하면서 롯데공업을 차리고 라면사업에 뛰어들었다고 알려져 있어요. 여기서부터 형제간의 갈등이 시작됩니다.

원래 신라면 전에 롯데라면을 출시했거든요. 사명도 롯데공업이었고요. 갈등이 격해지자 신격호 회장은 ‘왜 내 말 안 들어!’ 이러면서 동생에게 ‘롯데’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말라고 요구하기에 이릅니다. 결국 롯데공업은 지금의 농심으로 사명을 바꾸게 됩니다. 그렇게 제가 태어나기도 전인 1986년에 출시된 신라면!

신라면의 辛(신)을 맵다는 뜻으로 알고 계시는 분들 많으실 텐데요. 농심 신춘호 회장의 성에서 따온 것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만들 정도로 애정이 남달랐던 거죠.

그렇다면 신라면은 라면 시장에서 어떻게 살아남았을까요? 신라면의 인기 비결은 한국인이 좋아하는 매운맛을 구현했기 때문이었어요. 신라면이 나오기 전의 라면은 대부분 순하고 구수한 국물의 제품이었거든요.

신춘호 회장은 간부들을 불러서 “한국 사람들은 매운맛을 좋아하는데, 매운 라면이 없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이렇게 말했다고 하죠. 회장이 이렇게 말했으니 직원들은 매운맛 라면을 만들려고 했겠죠? 연구진들은 소고기 장국을 모티브로 깊은 맛과 매운맛이 조화를 이룬 라면을 개발하기 시작합니다.

전국에서 재배되는 모든 종류의 고추를 사들여서 매운맛 실험을 했다고 해요. 국밥 같은 요리에 주로 넣어 먹는 다진 양념의 조리법을 적용했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2년 뒤, 붉은 포장지에 辛(신)이라고 크게 적힌 라면이 나왔습니다. 현재 라면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여러분이 알고 있는 그 신라면이죠.

결과는 성공적이었습니다. 출시 3개월 만에 30억 원 매출을 달성했고, 1991년에는 국내 라면 시장 1위에 오르게 됩니다. 여기서 다시 롯데 일가의 이야기로 돌아 오자면요. 롯데의 신격호 회장은 동생 신춘호 회장이 개척한 사업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등 최소한의 예의를 갖췄습니다. 롯데에서 라면 나왔다는 얘기 들어본 적 없잖아요?

업계에서는 롯데가 라면 사업에 뛰어들지 않는 것은 동생에 대한 신춘호 회장의 배려였다고 말하는데요. 그러나 신춘호 회장이 사명을 농심으로 바꾼 이후 형제간 왕래가 끊겼고, 가족 모임에도 서로 참석하지 않았다고 알려집니다. 형 신격호 회장과 동생 신춘호 회장은 끝내 관계를 회복하지 못했고요.

형이 세상을 떠날 당시에도 동생이 빈소를 찾지 않은 점은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게 됐습니다. 앙금이 말끔히 씻기지 않은 롯데와 농심. 롯데 일가 사람들은 과연 신라면을 먹을까요? 궁금해지네요.

지금까지 ‘아이돈노우’ 이지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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