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만년 한민족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창작물이 한글이라는 것에는 반박의 여지가 없습니다. 한 국가의 정신 세계는 언어와 밀접한 관계가 있고, 그 언어를 표현하며 기록하는 것이 글이기 때문입니다. 언어는 그 나라의 얼이기 때문에 국가의 흥망성쇠와 연결되는 것이고, 문화 창조의 원동력이 됩니다. 한글이 국민의 글이 되었기 때문에 대중교육이 가능했던 만큼 결국 한글이 국력의 원천이 됐음을 부정할 수는 없죠.
그런데 한글의 우수성을 발견하고 한글 사용의 당위성을 부여해 한글 대중화를 이끌었던 인물은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인이 아닌 미국인입니다. 1800년대 말 조선을 방문한 이 외국인은 4일 만에 한글을 터득했지만, 불과 일주일 뒤에 조선인들이 이 한글을 무시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오히려 이 한글의 우수성을 하나하나 적어 미국 신문에 보내며, 국제사회에 데뷔시켰는데요.
이토 히로부미를 제거한 안중근 의사가 “한국인이라면 단 하루라도 이 외국인을 잊어서는 안 된다.” 며 존경을 표했던 서양인,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했던 이 서양인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안녕하세요. 디씨멘터리입니다. 1909년 10월 26일, 중국 만주 하얼빈 역에서 쥐 죽은 듯 조용한 군중 사이로 총성 4발이 울립니다. 오전 9시 특별열차를 통해 하얼빈에 도착해 러시아군의 사열을 받던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는 그 총성에 즉사했습니다. 안중근 의사가 쏜 4발 중 3발이 타겟에 명중하면서 그는 즉사했고, 안 의사는 그 자리에서 일본군에 체포됐습니다.
어차피 목숨을 버리기로 작정하고 저지른 일이기에 그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고, 오히려 법정에서 이토가 저지른 죄악 15가지를 조목조목 읊으며 일본인 판사를 꾸짖었습니다. 고종황제를 강제로 폐위시킨 죄, 명성황후를 시해한 죄, 교육을 방해한 죄, 동양평화를 깨뜨린 죄 등 15가지를 조목조목 읊은 그는 결국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안중근 의사가 뤼순 감옥에 이송됐을 당시, 취조실에서 일본인 사카이 경시는 끊임없이 안 의사에게 거사의 배후를 캐묻고자 다양한 질문을 쏟아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엔 “미국 사람 ‘하루바토’를 아는가?” 라는 생뚱맞은 질문을 던졌는데, 순간 안 의사가 당황했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뜸을 들이더니, “그를 만난 적은 없소. 그러나 한국인이라면 그를 단 하루도 잊어서는 아니 되오.” 라면서 단호히 대답했죠. 1909년 12월 2일, 통감부 기밀 문서에 담긴 내용입니다. 이 미국 사람이 누구기에 안중근 의사가 단 하루도 잊어서는 안 된다면서 당부했던 것일까요.
인터넷 주소창에 화면에 보이는 웹 주소(http://www.hulbert.or.kr)를 넣으면 헐버트 박사 기념사업회라는 기관의 홈페이지로 이동합니다. 일본 경찰 사카이가 하루바토라고 부르던 미국 사람이 바로 호머 헐버트 박사입니다.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합니다.” 라던 그의 바람은 그의 묘비에 새겨졌습니다.
보통 한국인을 기리기 위한 기념사업회는 꽤 자주 볼 수 있지만, 외국인을 기리기 위한 기념사업회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이 헐버트 박사는 1800년대 말에 조선을 방문해, 잊혀질 법도 하지만 아직까지도 그의 기념사업회가 있다는 것은 그가 조선에 끼친 영향이 적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헐버트 박사에 대해서 자세히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워낙에 방대한 일을 했던 분이기에 한 번 영상으로 끝낼 수 없어 앞으로 몇 차례 더 다룰 예정입니다.
1863년 1월 26일 미국 버몬트주에서 태어난 헐버트 박사는 미국 동부 아이비리그 중 하나인 다트머스 대학교를 졸업한 인재입니다. 헐버트가 한국에 오게 된 것은 1884년 가을, 대학을 졸업하고 뉴욕의 한 신학대학에 갓 입학했을 때, 그의 아버지가 극동의 코리아라는 나라에서 영어 교사 3명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들은 데서 비롯됩니다. 평소 세계 지도를 그려보는 것이 취미였던 그는 한반도의 위치와 코리아라는 이름도 정확히 알고 있었는데요. 그 소식을 듣는 순간 왠지 자석에 끌리듯 묘한 감정이 생겼는데, 그 때의 감정을 제대로 기술할 수가 없었다고 비망록에 적었습니다.
그는 조선의 학생들을 잘 가르치기 위해서는 자신의 조선어 공부는 의무라고 여겼고, 통역 없이 한국어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어 조선말과 글을 열심히 공부했죠. 그렇게 1886년 7월 5일, 제물포에 첫발을 내딛고 그날 서울에 도착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의 행보가 좀 특별했습니다. 서울에 도착한 지 8일 만에 고종 황제가 제공한 통역관 외에 사비를 털어 조선어를 가르칠 과외 선생을 두었습니다. 그는 새로운 조선의 어휘를 배울 때마다 바로 바로 써먹기 위해 노력했고, 조선의 전설을 들을 때마다 자신의 집을 지키는 기수에게 설명하면서 그가 이해하는지 테스트 했습니다.
그가 어머니에게 쓴 편지에는 “조선의 전설은 아라비안 나이트 저리 가게 합니다. 지금 조선의 전설을 모으는 중이며 미국에 돌아가면 많은 전설을 들려드리겠습니다.” 라고 쓰기도 했습니다. 이런 노력 덕분일까요? 그는 어머니에게 쓴 편지에서 “첫 수업에서 그동안 배운 조선어 실력을 동원해 학생들의 이름을 조선식으로 불러주니, 학생들이 깜짝 놀랐다”고 소개했습니다. 조선어를 공부하던 중 한글의 우수성을 즉시 알아차렸고, 4일 만에 한글을 읽고 쓸 수 있게 됐으며, 일주일 만에 조선인들이 위대한 문자 한글을 무시한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는데요.
어쨌든 한글의 위대함을 깨달은 그는 곧 한글 창제 배경이 궁금해졌고, 한글 연구를 시작하면서 한국어의 배경, 한국 역사 연구로 이어졌습니다. 사실, 헐버트의 한글 연구는 한국 최초이며 독보적입니다. 내한 후 3년 밖에 안 되는 짧은 기간에 한글을 언어학적으로 연구했고, 그 결과를 ‘더 코리안 랭귀지(The Korean Language)’ 라는 제목의 글로 미국의 <뉴욕 트리뷴(New York Tribune)>에 기고했습니다.
이 내용은 영상 말미에 원문으로 읽어드리겠습니다. 어쨌든, 그의 한글에 대한 충격은 놀라운 수준이었는데, 1892년 1월에 창간한 조선 최초의 영문 월간지 <조선 소식> 창간호와 3월호에는 각각 ‘더 코리안 알파벳(The Korean Alphabet)’, 즉, ‘조선 글자’라는 제목의 연구 논문을 게재했습니다. 이는 한국에 입국한지 5년 만의 일로, 한글을 언어학적으로 연구해 체계적으로 정리한 최초의 논문으로 인정됩니다. 이보다 앞서 한글을 연구한 논문은 없고, 그러한 시도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논문 2개는 한글을 언어학적으로 분석하고 연구했을 뿐 아니라, 한글의 뿌리, 세종대왕의 창제 목적 등을 상세하고 논리적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는 문자의 기원을 연구할 때는 두 가지 단서, 즉, 내적 단서와 외적 단서를 분석해야 한다고 봤는데, 1월 호에는 외적 단서를, 3월 호에는 내적 단서를 중심으로 연구 결과를 공개했습니다.
헐버트 박사는 1월호에서 “언어는 자연적 산물이고 문자는 인공적 산물이다.” 라면서 문자의 분석 기법을 소개하면서 한글 창제 당시 한국의 다른 아시아 민족과의 관계를 세세하게 소개했습니다. 또한 당시 조선에 처한 현실과 환경도 구체적으로 묘사했죠.
그는 조선 초기 임금들은 낡은 관습을 쓸어버리고, 그 자리에 중국의 모방이 아닌 완전한 새로운 관행을 세우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투자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는 특히 세종대왕의 민본사상을 세밀하게 기술하면서 “한글을 창제한 세종의 목적은 백성의 삶을 개선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명백히 알 수 있다. 세종은 백성의 임금이었다.” 고 평가했죠. 그리고 1892년 3월호에 게재한 ‘더 코리안 알파벳 2(The Korean Alphabet 2)’에서는 한글의 기원을 유추했습니다.
그는 한글을 만주 문자, 티베트 문자, 산스크리트 문자와 비교하면서 한글의 형태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심도 있게 다뤘습니다. 헐버트는 한글이 각진 문자라는 점에서 볼 때 만주 문자, 티베트 문자, 산스크리트 문자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했습니다. 그는 “한민족은 글자를 조합하는 방식으로 창조하였으며, 대기음 및 된소리 표기법을 고안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완전한 표음 철자법을 발명했다는 점이다.” 라고 설명했습니다.
헐버트는 한글의 형태가 문살문에서 따왔다고도 전해지는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이 멋진 가설을 믿는다면, “우리는 한글이 그 어떤 문자보다도 간단하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발명되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왜냐하면 완벽한 문자란 최대한 단순하면서도 광범위한 표음 능력을 지닌 글자이기 때문이다.” 라며 한글의 단순성과 표음 능력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한글 연구에 젊은 시절을 바친 결론은 간단합니다. “한글과 견줄 문자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는 것입니다. “세종의 가장 빛나는 업적은 자손 만대에 걸쳐 긴히 도움을 줄 순수한 소리 글자를 발명한 일이며, 문자의 단순성과 소리를 표현하는 일관성에서 조선의 소리 글자와 견줄 문자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고 평가했죠.
헐버트는 한글을 200개가 넘는 다른 나라 문자와 비교해 보았다며, 어느 문자도 한글처럼 문자의 단순성, 발성의 일관성을 찾을 수 없고, 한글이야말로 현존하는 문자 가운데 가장 훌륭한 문자 중의 하나임에 틀림없다고 밝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