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저는 이기병이라고 하고요. 내과 의사 겸 책 <연결된 고통>의 저자입니다. 종종 우리의 고통이 모두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는지, 그리고 연결되어 있다는 걸 우리가 이해한다면 이 사회의 고통의 총량을 줄일 수 있겠냐고 질문을 던지고는 하는데요. 사회의 고통의 총량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은 의사로서 굉장히 도달하고 싶은 지점이잖아요.
그래서 그런 질문을 ChatGPT에도 물어봤어요. ChatGPT는 “모두 연결돼 있다.”라고 생각한다는 답을 주면서 어떤 얘기를 더 하냐면 “우리가 서로 상호작용하고 같이 살아가기 때문에 고통도 서로 영향을 미치며 공유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가족이나 친구 중 누가 고통을 겪고 있다면 그 사람의 고통은 그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 주변에 연결된 사람들의 모든 문제고, 그 고통으로 인해서 그 연결고리가 되는 여러 파급효과가 또 생길 수 있다.”라는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리고 우리가 연결돼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고통의 총량이 줄어들 수 있겠냐고 질문을 해 봤었어요. ChatGPT의 대답은 “그렇다.”라고 대답하더라고요. 제가 원하는 대답이어서 반갑기는 했는데요. “우리 모두는 고통을 겪기 마련이다. 그리고 고통을 혼자서 견뎌내고자 하는 경우도 있지만, 고통을 나눌 수 있다거나 주변에 사람들이 있을 때 고통을 해소하는 방식이 더 나아진다.”라는 얘기를 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은 우리 고통 자체가 단지 ‘나의 것’이라고만 생각하지만, 사실은 내가 속한 사회, 내가 속한 어떤 공동체, 내가 속한 어떤 문화에 영향을 다 받게 되어 있잖아요. 그래서 내 고통은 전체적인 맥락 안에 존재한다는 것은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책에서 저 스스로를 의료 인류학을 연구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했어요. 모두가 인류학이라는 분야를 낯설어하세요. 인류학을 했다고 하면 그건 뭐냐고 물어보시는데요. ‘인간에 대한 학문’이라고 말씀드리면 정확할 것 같습니다.
인류학이라는 것은 ‘인간의 하나의 종류’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고, 인간에 대한 모든 것을 탐구하고자 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굉장히 광범위한데, 그중에서 제가 하고 있는 건 ‘의료 인류학’이라고 하는 분야고요.
의료 인류학을 선택하게 된 계기였던 제 군대 얘기로 책을 시작합니다. 제가 공중 보건의로 가게 된 곳은 가리봉동의 외국인 노동자 전용 의원이라는 곳인데요. 하루에 거의 많으면 100명, 적으면 한 40명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외국인 환자들을 진료해야 하는 곳이었어요.
외국인 노동자분들이라고 한다면 질병이 훨씬 더 깊고 심각할 수 있어요. 왜냐하면 일반적인 병원에 가시는 게 되게 어려우니까요. 그리고 언어가 통하지 않는 사람과 대화를 계속해야 한다는 게 물론 환자도 굉장한 스트레스지만, 의사도 굉장한 스트레스거든요.
그때가 정말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과정을 거치면서 사실은 인류학을 공부하겠다는 마음을 갖게 됐는데요. 실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달까요?
저희가 배웠던 진단 프레임이 있잖아요. 제가 만났던 환자들 대부분이 사실 그 프레임에서 벗어나 있는 분들이었어요. 대표적인 예로 말씀드릴 수 있었던 게 조선족 환자들이었는데요. 얼핏 생각하시면 말이 통하니까 그건 별로 어렵지 않은 진료일 거라고 생각하실 것 같아요. 그런데 안 그렇더라고요.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 좀 있기도 합니다. 일단 저한테 왔던 환자들의 예를 한번 들어볼게요. “머리가 아프고 지끈거려요…” 그럼 머리가 아픈 환자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다음에 바로 이어서 “옆구리가 캐와요…” 캐온다는 표현 아십니까? 그러니까 쑤신다는 표현에 가깝기는 하고요.
더 나아가서 “가슴이 상쾌하지 않다…”, “숨이 차고 왈랑왈랑거린다…”라는 표현이 있어요. 왈랑왈랑은 두근두근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허리가 아프고, 가끔 허리에서 소리가 난다…”라고 하세요. 그리고 “소화가 안 되고 생목이 올라온다…” 생목이 오른다는 표현도 조선족 환자분들이 많이 하는 표현인데, 신물이 올라온다는 표현이거든요.
그리고 “엉치부터 다리까지 우리하게 맑지다…” 뻐근하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소변에 거품이 많고 오줌발이 시원하지 않다…” 등의 증상을 이야기하세요. 그런데 이걸 한 번에 말씀하신다는 게 문제죠.
처음에 의사가 “어디 아파서 오셨어요?”라고 물어봤을 때 보통 우리나라 분들은 가장 아픈 증상을 많이 이야기하잖아요. 그리고 거기에 저희가 살을 붙여나가면서 진단을 해나가려고 하고요.
그런데 이제 “가장 아픈 게 어디예요?”라고 했을 때 머리, 어깨, 발, 무릎, 팔 이제 배… 이러시면 이제 약간 좀 어렵죠. 너무 당황스럽고요.
이런 상황에 어떻게 할 수 있을지 보기를 만들어 왔어요. 저는 이 중의 하나를 택했고요. 1번이 호흡을 가다듬고 ‘잘못 들은 거야…’라는 마음으로 어디가 아파서 오셨냐고 다시 묻는 겁니다. 2번은 타협을 하는 거죠. “제일 아픈 곳 한 군데만 말씀해 보시죠.”
3번은 여러 번 경험하면 화가 날 수 있는 상황이잖아요. 그래서 “장난합니까, 지금?” 이렇게 말하는 경우도 가능하고요. 4번은 포기하는 겁니다. “근처에 종합검진센터로 가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5번으로 최선을 다해서 과잉 진료하는 거죠.
저 같은 경우는 막 화가 많이 났었던 것 같아요. 한 10개국에서 환자들이 오시지만, 조선족 환자들이 한 60% 정도는 되셨었어요. 되게 많이 오시는 거죠. 그런데 그분들 중 한두 분이 이러는 게 아니라 좀 한결같이 그러시는 거예요.
처음에는 당황스럽고 화가 났는데, 한번 ‘왜 이러지?’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 거죠. 그런 생각을 하게 된 다음에 이제 저한테 의사로는 후배지만, 인류학으로는 선배인 친구가 하나 있어요. 그 친구가 제가 일하는 병원으로 인류학 연구를 하려고 왔었다가 저를 만났는데, 제가 상황을 얘기하다 보니까 이제 논문을 하나 던져주더라고요.
그게 ‘아서 클라인만’이라고 하는 정신과 의사이자, 의료 인류학자가 썼던 내용이었습니다. 제가 간과하고 놓치고 있었던 것들이 뭔지에 대한 지적이었는데요. 마음이나 내면의 문제들을 몸의 증상으로 표현해내는 것을 ‘신체화’라고 저희가 보통 얘기하는데요.
조선족을 연구한 이전 의료 인류학 논문이나 서적에 보면 신체화 증상이 역사적으로 조선족 환자들에게서 좀 더 많이 나타난다는 보고들이 있었고, 그 이유를 거슬러 올라가봤더니 아서 클라인만이라는 의학자의 논문이었습니다.
거기 보면 1966~1976년까지가 중국의 문화 대혁명 시기였는데요. 그 당시에 마오쩌둥의 통치 아래에서 홍위병들의 지도하에 인민대공사라는 걸 시도했었는데요.
그게 뭐냐하면 쉽게 말해 예를 들어서 내가 교사라는 직업을 갖고 있는데, 갑자기 인민의 명령이라고 하면서 다음날 바로 산간 지방에 가서 농사를 짓고, 밭을 일구라고 하면 해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거기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면 혁명에 합당한 사람이 아니라고 낙인이 찍히게 되는 상황이 되는 거죠.
그런 거를 경험한 사람 중에 이거를 견뎌내는 사람도 있고, 못 견디는 사람도 있을 거 아니에요. 그런데 못 견디는 사람들이 우울하고 마음이 불안해서 혹은 힘들어서 못 하겠다고 말하는 순간, 혁명에 합당한 사람이 아니라는 낙인 때문에 이 사람들이 그렇게 표현하지 못하고 불안하고 우울한 내면의 문제를 몸의 고통으로 표현하기 시작한 겁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까 이 사람들에게 이런 몸의 증상으로 나타나는 표현들이 그렇게 많아졌던 것인데요. 우리나라에 와 있는 조선족들이 1966~1976년에 20~30대였던 사람들이거든요. 그런 사람들이 2007년에 시작된 방문 취업 제도로 60대가 되어서 한국에 오신 거죠.
그런데 동포라고 스스로는 생각하고 한국에서의 환대를 기대하며 왔을지 모르겠으나, 저희가 조선족 노동자분들을 동포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이주 노동자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렇게 환대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40년 전의 트라우마가 마치 원치 않는 곳에 원치 않는 사람들과 원치 않는 일을 하러 가는 그 상황이랑 거의 유사한 상황이 연출되면서 나타나는 것이죠. 일종의 PTSD처럼요.
게다가 조선족은 소수 민족이라 문화대혁명 시기에도 차별받았다는 기록들이 있거든요. 그렇게 되면 그런 맥락 안에서 재현되는 고통의 문제가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까지 미치게 된 거죠.
그래서 신체화라고 하는 증상이 많이 일어나니까 진료할 때 증상들을 그렇게 많이 호소하는 건 아닌지 생각하게 된 겁니다. 제가 그분들의 역사나 상황에 대해서 전혀 이해가 없었기 때문에, 저의 무지함 때문에 그분들한테 화가 났던 것이 되니까 제가 무지한 거면 제가 공부를 하는 게 맞겠다고 생각하게 됐던 게 컸던 것 같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연결된 고통>은 제 긴 후회의 기록이라고 말씀해 드리는데요. 그때 제가 잘했으면 이 책은 안 썼을 것 같고요. 그때 얼마나 못했는가와 어떻게 실패했는가에 대한 걸 나중에 인류학을 공부하고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복기하면서 그렇게 썼던 내용들이 더 많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