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문화적 환경에 관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례가 하나 더 있는데요. 저한테 오는 환자분 중에 좀 기억에 남는 사람인데, 태국 사람이었습니다. 40대 후반 정도 되는 남자였고, 허니 디스크 판정을 최근에 받아서 약을 먹고 있는데, 변비가 심하다고 했어요.
변비가 있는 이유를 물어봤더니 자기는 원래 채소나 야채를 좋아하는데, 한국에서 먹는 채소나 야채는 다 맵거나 짜서 못 먹겠다고 얘기하더라고요. 섬유질이 부족해서 변비가 심해졌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여기까지는 다 알겠는데, 세 번째로 저한테 얘기했던 증상이 실신하는 것, 기절하는 겁니다. 내과 의사로서 긴장되는 대목이죠. 의식 소실이 있냐고 물어보니까 어떨 때는 있고, 어떨 때는 없다고 했어요.
있을 때는 뭐 한 몇십 초 이상 갈 때도 있었다고 해서 주로 언제 그러느냐고 물으니까 되게 민망해하면서 배변 중에 그런다고 하더라고요. 미추신경성실신 같은 부교감신경과 교감신경의 부조화 때문에 생기는 종류의 실신도 있어요. 제일 흔하기는 한데, 사실 젊은 남자가 기저 질환도 없이 갑자기 생기기는 어렵거든요.
또, 일하다가도 갑자기 쓰러진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무슨 일을 하냐고 물어봤는데, 처음에 이 사람이 대답을 안 해주더라고요. 왜냐하면 외국인 노동자 환자분들은 합법적이지 않은 상태의 노동인 경우에 자기 일을 말 못 합니다. 처음에 그런 경우일 거라고 예상이 돼서 두 번 물어보고 더 이상 안 물어봤어요.
그러고 나서 신경과에도 한 번 진료를 보냈었고, 간단하게 검사를 좀 하고 머리 MRI도 찍어보고 했는데 그쪽 문제는 아니었어요. 그렇게 검사를 좀 더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와중에 이 사람이 약속 날짜에 검사하려고 보니까 없는 거예요. 그래서 왜 없냐고 간호사님께 물어봤더니 일하는 데서 갑자기 오라고 한다며 죄송하다고 전해달라고 말하고 사라진 거예요.
그래서 제가 난감해하고 지나갔는데, 그 이후로도 약속했던 날짜에 계속 안 와요. 제가 일했던 병원은 이런 경우가 되게 흔했습니다. 이게 이분들이 불안정한 형태의 삶을 살다 보니까 약속 날짜에 못 오시는 경우가 되게 흔했는데요. 저는 이제 걱정이 좀 되죠.
그런데 결국에 이분이 나중에 연락이 왔는데, 그 실신 증상이 또 생겨서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하면서 저한테 연락한 거예요. 넘어지면서 모서리에 후두부를 세게 부딪쳤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나중에 저한테 그래서 다시 왔는데, 그때 제가 심장 초음파를 대보고 나서 이 사람의 질병이 뭔지를 사실 바로 알았거든요. 비대칭성 심실중격 비대, 비후성 심근증 중에서 심실의 모양 중의 중격이 많이 비대하게 되면 대동맥이 나가는 쪽의 혈류를 누르게 돼서 피가 나가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제가 처음에 이 사람이 요통이 있다는 이야기를 해 드렸었는데, 이 사람의 일이 결국 뭐였냐면 이삿짐센터에서 일을 했던 거였어요. 무거운 걸 계속 들어야 하는 거죠.
그래서 허리를 다쳤고, 디스크 치료를 받으면서 물리 치료사한테 배웠던 가장 중요한 허리를 보호하는 방식이 코어 근육을 사용하는, 배에다 힘을 주고 들어 올리는 ‘발살바’라고 하는 복압을 올리는 기법을 사용한 거죠. 그러니까 힘줄 때, 대변볼 때도 똑같겠죠.
그래서 이런 경우에 심장으로 들어가는 피가 줄어드는 상황이 오는 거죠. 심장 바깥 대동맥으로 빠져나가는 피가 줄어들면 결국 머리로 가는 피가 부족해지고 실신이 발생할 수 있게 되는 거였거든요.
숨을 못 쉬는 거랑 피가 안 가는 게 비슷하다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 격투기에서 초크 같은 기술에 걸렸을 때 숨을 참으면 1분도 버티지만, 초크가 걸리면 바로 기절하거든요. 왜냐하면 뇌로 가는 피가 안 가면 그냥 사람이 기절하는데, 이 환자분의 상황이 딱 초크가 걸리는 상황이랑 유사한 거죠.
그런 조건의 심장을 가진 사람이 하필이면 이주 노동을 와서 변비에 시달리게 됐고, 원하는 채소를 못 먹게 되니까… 게다가 무거운 걸 들어 올리려다가 허리를 다쳤고, 힘을 줘야 하는 형태의 노동까지 하잖아요.
이삿짐 노동을 하면서 이분이 계속 얘기했던 것 중의 하나가 화장실에 자주 가야 하니까 물을 자주 못 마시겠다는 거였어요. 그러면 피가 더 부족해지니까 심실이 더 잘 막히겠죠. 그래서 실신을 일으키게 되는 맥락들을 자기 삶에 하나하나 배치하게 되는 사례였던 거죠.
처음에 이걸 봤던 정형외과 의사는 요통으로 봤을 거고, 허리가 아프다는 거에 대해서 발살바 처방했던 물리치료사… 그 과정 자체는 어떻게 보면 다 맞는 이야기죠. 그다음에 제가 봤던 변비 치료에 대한 이야기, 그다음에 실신하는 것에 대해서 신경과 선생님도 봤고, 마지막에 신경외과에서 뇌출혈까지 확인하고, 마지막에 다시 저한테 온 사례죠.
다섯 명의 의사를 만났는데, 어느 것 하나 틀린 건 아니지만, 어느 것 하나 정확하게 이 사람의 맥락을 보지 못했던 상황이었던 거죠. 그래서 이런 식의 상황들을 집중력 있게 보는 게 필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됐던 케이스였습니다.
어떤 파편화된 형태의 의료만 집중해서 보다 보면 전체적인 그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인데요. 이런 식의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의료의 형태에 관해 고민해 봤는데, ‘돌봄’이라는 생각을 좀 해보게 됐어요.
상황에 맞춰서 딱 자기 할 역할만 하는 의료가 있다면, 그 반대편에는 마치 아이를 돌보는 엄마가 아이가 원하는 것만 들어주는 게 아니라 아이가 원해야 하는 것, 아이가 현재 원할 수 없는 것까지 바라보는 것이 있죠.
그런데 이게 의료인에게 그냥 ‘돌봄’ 의료를 하는 의료인이 되라고 말하면 당장 저부터도 자신 없거든요. 쉽지 않습니다. 저는 이게 그래서 어떤 한 사람의 의사가 행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요. 전반적인 의료 시스템 안에서 이런 의료가 행해질 수 있는 분위기나 환경들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AI와 챗GPT에 실재가 무엇이냐고 물어볼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데요. ‘유발 하라리’라는 학자는 실재에 대한 정의를 “고통받는 것만 실재한다고 생각한다.”라는 말로 남겼어요.
예를 들면 제우스 신전이 불타 없어진다고 해도 제우스는 고통받지 않고, 은행이 파산한다고 은행이 고통을 느끼는 건 아니지만, 병사가 전투에서 상처받거나 아니면 주식시장에서 버블이 꺼져 내 재산을 잃게 되면 나는 고통받잖아요.
고통받는 것만 실재한다면 우리가 자원을 투입하고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것들은 실재하는 것, 주로 고통받는 주체들에 대한 것이잖아요. 그런데 저희가 모두 최소한 조금씩은 다 아프잖아요. 보이지 않는 고통들이 또 되게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보이는 것 이외의 것들이 더 있다는 것도 말해주지 않는다고 없는 건 아니잖아요.
그런데 그런 이야기들을 이 사회 맥락에서 쉽게 할 수 없다는 게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저는 느껴요. 고통이라고 하는 것은 쉽게 얘기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고, 소비되기도 하고, 그리고 쉽게 잘려져 나가기도 하잖아요.
이걸 사회학자 김홍중 교수는 “고뇌의 공통 공간이 필요하다.”라는 말로 설명하는데요. “우리가 모두 고통받기 때문에 함께 고통을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가 반드시 필요하다.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동시에 나의 문제를 해결하게 되는 것이다.”라고 하는 말씀이고요.
그래서 함부로 재단되고 목소리를 잃어버린 고통이 나중에 내 것이 될 수도 있잖아요. 특히 우리 사회 바깥쪽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제가 주로 알고 있던 외국인 노동자들을 포함해서 나랑 상관없는 것 같은 이야기 중에서도 의미 있는 지점들이 있을 거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고요.
그래서 그런 식으로 이야기가 확장될수록 전체적인 고통의 양도 줄어들 수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내가 별거 아닌 것 같지만, 그런 역할을 주변에 해낼 수 있는 그런 구성원이자, 중요한 사람이라는 말씀을 드리고자 했습니다.
나에게 고통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결국 대부분 다 우리 주변 사람들일 거 아니에요. 그분들의 어떤 고통의 이야기, 그 맥락들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그분들의 고통이 줄어들 수가 있고, 그렇게 되면 나도 언젠가 그들에게 혹은 내 가족, 친구들에게 나의 고통을 나눌 수 있는 준비가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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