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다리 한쪽이 없는 외다리 미용사, 28살 디자인살롱 원장 김태헌이라고 합니다. 직원 없이 혼자 운영하는 1인 샵입니다. 다리 한쪽이 없는 장애인이지만, 다리가 없어도 모든 걸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고요. 꼭 장애인이라고 못 할 거라는 그런 편견을 좀 없애고자 해서 출연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사고가 나서 두 달 있다가 눈을 떴어요. 그때까진 다리가 있었고, 골수염이 옮아서 다리를 절단하게 됐어요. 2019년 2월 28일에 사고가 났으니까 3년 됐네요, 이제. 다른 건 모르겠고 병원 생활이 가장 힘들었어요. 병원에 11개월 있었으니까 거의 1년 있었네요.
1인 샵이라 엄청 작아요. 월 매출은 600~800만 원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아요. 미용실은 거의 대부분이 기술 값이라 마진이 많이 남는 편이죠. 월세, 미용 약품값 제외하고는 70% 이상이 다 순마진이죠. 21살 후반부터 쭉 미용을 해오다가 매장 오픈은 올해 1월 1일에 오픈했어요.
아침에 오면 리뷰를 달아줘요. 손님들 머리하신 거 이렇게 일일이 리뷰를 달아드리고 있어요. 가게가 딱 10평인데, 10평을 다 쓸 수 있어서 넓어 보여요. 저는 직원이 없어서 출근해서 직접 머리하고 있어요. 손님은 하루에 15명 넘게 받을 때도 있고, 아침부터 시작해서 저녁 9시쯤까지 숨도 못 쉴 때가 있어요. 1인 샵은 2명 넘게 시술하지 않기 때문에 딱 2분씩만 받아서 계속 로테이션으로 종일 시술해드리고 있어요.
사고 나기 전에 21살부터 미용을 계속 해왔어요. 다리를 절단한 이유도 미용을 계속 하려고 한 거예요. 절단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는데, 어머니가 그러셨어요. “너 이 다리로 미용 못해. 절단하고 열심히 재활하면 미용 다시 할 수 있어.” 그 말 듣고 절단을 결정하고, 미용을 이만큼 사랑하는지를 그때 병원에서 알았어요.
21살에 만나던 여자친구가 미용하길래 그냥 해보자고 해서 시작을 했는데 제가 더 잘 됐죠. 자격증도 3개월 만에 땄어요. 학원도 일주일에 5번씩 나가고 정말 열심히 하다 보니까 원패스 했습니다. 재능이 있었던 거죠. 손님들도 10명 중에 8~9명은 만족시키는 것 같아요. 이거 보시면 알 거예요. 고객 동향이거든요. 보시면은 6개월 내에 재방문율 96%예요. 100명 중에 96명이 다시 온다는 소리거든요. 이건 제 자랑거리죠.
처음 오픈 비용은 다 합해서 한 2,200~2,300만 원 정도 들었던 거 같아요. 저는 미용실을 크게 해서 돈 벌려는 게 아니라 작게 차려서 그냥 내가 좋아하는 미용을 하자는 마인드여서 보증금 1,000만 원, 집기 같은 게 비싸요. 하나에 100만 원씩 하는 거고, 약재료도 한 200만 원 들었고 권리금은 300만 원 들었어요. 미용실에 필요한 수도 공사도 되어있었고 필요한 콘센트가 다 있는 거예요. 공사할 게 없었어요. 하다 보니까 2,200~2,300만 원 정도 들었던 거 같아요.
병원비로 돈이 다 나갔으니까 대출을 2,500만 원 받고, 지금 반은 갚았습니다. 미용실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몇 개월 만에 돈을 몇 천 정도 다시 모았어요. 올해 동안 쓸 거 다 쓰면서 적금도 했고요. 근데 이걸 또 깨뜨리기가 싫으니까 그냥 현금으로 쟁여두고 있는 것 같아요. 병원에 11개월 정도 있다 보니까 병원비가 억대로 나왔죠. 보험이 되긴 했는데, 성형외과가 비급여잖아요. 거기에도 한 몇천만 원 나갔죠. 미용실이 앞으로도 잘 됐으면 좋겠네요.
6월 매출은 6,157,500원, 정액권 포함은 770만 원, 이 매출에서 월세랑 기타 비용 110~120만 원 정도 빠지고요. 그리고 제가 적금을 좀 세게 들어요. 적금이 4개 정도 있어요. 내고 나면 진짜 20~30만 원 남을 때도 있어요. 돈 모으는 재미로 살다 보니까 30살 안에 1억 모으는 게 목표예요. 지금 95년생, 28살입니다.
미용 쪽이 좀 힘들어요. 인턴 때는 빨리 디자이너 되고 싶은 마음에 힘들어요. 계속 한자리에만 꾹 있다 보면 디자이너가 되겠지만, 계속 한 군데만 있다 보면 우물 안의 개구리가 돼요. 그 선생님의 기술력만 배우기 때문에 안 돼요. 저는 약간 옮겨 다녀야 하는 타입이었어요 잘한다는 선생님 있으면 그 선생님한테 가서 배우고, 그렇게 조합이 이루어져서 제 기술이 되는 거죠.
원장이 되면 다 할 줄 알아야 해요. 다 할 줄 아는 기준이라는 게 자기 자신과의 기준이고요. 만약에 손님이 어디 가서 머리를 망쳐서 왔어요. 그러면 이걸 수습할 수 있는 능력이 갖췄을 때, 그리고 스타일을 추천할 수 있어야 해요. 우리는 디자이너니까요. 갈팡질팡하는 손님들 엄청 많아요. ‘이거 어울릴까요?’ 하는 손님들한테 이끌려 버리면 디자인 상담만 30분 해요. 그래서 딱딱 집어서 자신의 기술을 손님들한테 각인시켜 놔야 해요. ‘이거 괜찮을 것 같다’, ‘이렇게 해드릴게요.’ 말이 솔직히 90%를 먹고 들어가죠. 뭐든지 캐치가 빨라야 해요. 내가 말 실력이 안 되면 미용 실력으로 채워줘야 해요.
계속 서서 하는 일이다 보니까 항상 힘들고, 항상 아프죠. 근데 재미있는 일,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니까 당장은 몰라요. 근데 일이 끝나고 긴장 풀리고 나면 느껴져요. 가끔 그 생각도 해요. ‘내가 인턴일 때 사고가 났었으면 내가 미용을 다시 할 수 있었을까?’ 아마 못 했겠죠.
사고는 일단 오토바이 사고가 났고요. 사고가 심하게 나면 그날의 기억이 다 지워진다고 하잖아요. 오토바이 타고 일어나니까 병원, 분명 겨울이었는데 일어나니까 여름이었어요. 그때 이제 병원에서 다 죽을 거라고, 아마 오래 못 살 거라고 그랬는데 기적적으로 깨어났다고 병원에서도 좀 유명한 케이스였어요. 깨어난 후에 인지를 못 했어요. 그냥 ‘내가 사고가 났구나…’ 마약성 진통제를 너무 강한 걸 맞다 보니까 이게 빠지는 데 몇 개월 걸렸어요. 그래서 점점 의식을 찾아갔죠. ‘크게 사고가 났구나…’
근데 생각해 보니까 전 지금이 더 행복해요. 다치기 전에는 그냥 미용실이나 빨리 차리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고, 그걸 못 이루고 사고가 난 거잖아요. 다리 절단하고 나서는 다시 미용사로 복직만 하자고 했는데, 지금 결론적으로 그 꿈을 2개 다 이룬 거잖아요. 미용실 원장과 미용사로 복직하는, 그 2가지 꿈을요. 그냥 남들보다 조금 불편할 뿐이죠.
사고 난 후에 깨어나고 나서도 다들 제대로 이야기를 안 해줘서 제 다리에 대한 상태를 몰랐어요. 어머니도 제대로 설명을 안 해주고, 교수님한테 다리 감각이 없는데 이거 돌아오냐고 물어보니까 그거는 시간을 두고 더 지켜봐야겠다고 하셨어요. 전 냉정하게 말해줬으면 차라리 그냥 알겠는데, 내 상태, 몸 상태도 몰랐고 모든 걸 뒤늦게 알았죠.
절단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저 진짜 매일 울었어요. 근데 그게 다리 하나 없다고 해서 운 게 아니라 다리를 절단하는 게 맞는데, 그냥 얼마나 아플까 걱정돼서 울었어요. 어차피 다리가 쓸모가 없기 때문에, 제가 생각해도 없는 게 낫다고 생각하면서 매일 살았어요. 절단 전에는 오히려 더 불편했어요. 침상에서 똥오줌 다 싸고, 엄마가 똥 치워주셨어요. 옆으로 눕고 싶으면 ‘엄마, 나 다리 좀 옆으로 좀 들어줘.’ 하면 엄마가 다리 들어서 옆으로 놔주고 그랬어요. 절단하고 나니까 옆으로도 혼자 누워지고 휠체어 타고 나갈 수도 있고, 내가 살아야 하니까 소소한 것부터 행복을 찾기 시작했어요. 절단하고 나니까 아프긴 한데 생각보다는 안 아팠어요.
부모님 덕분에 제가 이렇게 살아 있죠. 엄마가 거의 11개월 동안 집에 안 가고 계속 옆에서 자고 그러면서 간호해주셨어요. 많이는 못 드려도 한 달에 한 번씩은 용돈 드리고 효도하고 있어요. 열심히 사는 게 제 목표예요. 다리가 절단해서 거의 없다고 보시면 돼요. 걷는 거에 만족하는 거죠.
휴무일은 화요일이에요. 원래는 주 7일이었는데, 4월 마지막 주부터 화요일에 쉬기 시작했어요. 매일 일하면서 단 한 번도 쉬질 못했죠. 항상 걱정됐어요. 쉬면 그만큼 매출이 없어질 줄 알았는데, 쉬어보니까 쉬는 대로 손님들이 다음날에 오시고, 전날에 오시고 하더라고요. 진작에 좀 쉴 걸 그랬죠. 이게 내 사업장이라 어쩔 수가 없어요.
미용 처음 시작했을 때가 10년 전쯤이니까 월급이 140만 원부터 시작했거든요. 그때 느꼈어요. ‘이 140만 원, 정말 나의 피와 땀이 흐른 내 돈이구나!’ 그 돈부터 슬슬 아끼기 시작하게 된 거거든요. 내가 좋아하는 일이다 보니까 그 월급에 만족하게 되고, 그게 습관이 돼서 지금까지 돈 모으는 습관이 계속된 거 같아요. 그때 정말 깨우친 거죠. ‘돈은 이렇게 벌어야 하는구나’, ‘노력한 만큼 나오는구나…’ 원래는 가수 쪽으로도 꿈이 있었어요. 근데 너무 잘 부르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포기했죠. 노래를 못하지는 않아요. 무반주로도 어느 정도는 합니다. 반주 있으면 큰일 나요.
방금 손님처럼 ‘어, 이쁜데요?’ 하고 나가실 때가 미용하면서 뿌듯한 순간이에요. 그럴 때 미용하길 잘했구나, 내가 실력이 좋구나 싶고 그런 걸 느끼죠. 반대로 미용한 걸 후회하는 건 요즘이요. 몸이 안 좋을 때가 많거든요. 비 오는 날이나 그런 날에 허리 쑤시고 난리 나는데, 그런 날에는 또 진짜 내가 왜 미용밖에 할 줄 모를까 싶어요. 그게 장점이자 단점이죠. 절단한 다리 말고 반대쪽 다리도 십자인대 앞뒤 다 파열, 손가락도 휘어있는 거 펴고 수술 다 했어요. 비 오는 날이면 쑤셔요. 등에도 근육 이식한 흉터 남아있고 골반에도 쇠 박혀있고… 온몸이 다 지금 성한 데가 없죠.
손가락이 지금 휘어있고 힘이 없다 보니까 가위를 돌리기가 힘들어요. 떨어뜨릴까 봐, 가위는 떨어뜨리면 미용 생명 끝이거든요. 커트할 때 제일 긴장하죠. 장사한 지 7개월 차 됐는데 솔직히 몸이 가장 힘들고, 몸이 안 좋아도 만약에 예약이 잡히면 손님들과의 약속이니까 그게 제일 힘든 거죠. 몸이 좀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보다 불편하다는 것 때문에 힘들어요.
저의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고요. ‘나는 다리를 잃었지, 나의 정체성을 잃지는 않았다.’라는 마인드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걸 보는 모든 분들이 다리가 없어도 열심히 사는 저를 보고 힘을 얻었으면 좋겠어요.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