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뒤에 기회가 찾아온다고 하죠? 세계 금융위기는 수많은 기업들의 운명을 크게 뒤흔들어 놓았지만 어둠이 걷히고 시장이 활기를 띠자 이전보다 판이 더욱 커졌습니다. 무엇보다 소득이 안정되기 시작하면서 자동차 시장도 덩달아 판매량이 늘어났죠? 특히 세계적으로 프리미엄 브랜드의 성장세가 어마어마했습니다. 앞서 볼보라는 너무나도 매력적인 먹잇감을 차지한 지리는 지속적인 투자는 하되, 경영에 일체 간섭하지 않겠다는 정말 파격적인 약속을 했는데, 사람들이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그 약속을 진짜 지켰습니다.
이미 안 좋은 경험을 여러 번 했던 우리 입장에서는 뭘 해도 안 좋게 보이는 건 사실이지만, 지리와 볼보 자동차는 지금도 성공적인 M&A 사례로 평가 받고 있죠. 그 사이 세계 프리미엄 컴팩트 SUV 시장도 후끈해지다 못해 레드오션이 되어 있었습니다.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는 모델 체인지를 거듭하며 시장을 장악했고, 랜드로버와 재규어, 렉서스, 링컨 등 글로벌 프리미엄 브랜드들도 뛰어난 상품성으로 무장한 경쟁차를 속속 투입시켰죠.
이런 틈바구니 속에서도 꾸준한 판매량을 유지하던 XC60은 마침내 2017년 제네바 모터쇼를 통해 2세대 모델을 선보였습니다. 2세대 XC60은 신형 S클래스의 얼굴을 이어받았던 벤츠 E클래스처럼 먼저 공개된 2세대 XC90을 빼닮은 모습이었습니다.
이른바 ‘토르의 망치’ T자 주간 주행 등으로 대표되는 볼보의 새로운 얼굴은 부드러운 곡선에서 비롯된 순둥한 이미지를 내려놓고, 다시금 직선을 앞세워 차분하고 미래지향적인 인상이었습니다. XC60의 헤드램프는 앞트임을 더해 XC90보다 좀 더 젊은 감각이었고, 이전에도 컸던 아이언 마크는 더욱 크기를 키웠는데, 그동안 달라진 볼보의 이미지와 그들의 자신감을 대변하는 듯했죠.
또 볼보의 모든 모델이 사용하는 모듈형 SPA 플랫폼을 사용해 전륜 구동이지만 쭉 뻗은 보닛, 앞바퀴와 차체 사이의 거리, 일명 프레스티지 디스턴스를 늘리면서 전륜 구동이지만 마치 후륜 구동인 듯 유려한 측면 디자인 역시 XC90에서 그대로 내려왔습니다. 여기에 전작에 치켜 올라간 캐릭터 라인과 경사진 D필러를 그대로였고, 세로형 리어램프 하단을 가로로 연장해 좀 더 와이드한 느낌을 더한 것은 XC60만의 차별화된 디테일이었죠.
또 볼보 최초의 한국인 디자이너 이정현 디자이너가 외장 디자인을 맡은 모델입니다. 당시 볼보의 디자인 총괄 토마스 잉겐라스가 XC60의 사내 디자인 경합에서 이정현 디자이너의 스케치를 초반에 점 찍었다는 일화가 인터뷰를 통해 소개되기도 했죠.
전체적으로 토르의 망치를 새긴 볼보의 신형 라인업들과 마찬가지로 불필요한 장식과 선을 최대한 절제해 군더더기를 없앤 깔끔한 외관이었습니다. 물론, 붕어빵 같은 모습 때문에 부정적인 시선들도 있긴 하지만요. 그래도 중형 SUV 체급에 걸맞게 다듬어져 전작보다 훨씬 세련된 도심형 SUV로 거듭났습니다. 튼튼해 보이면서도 투박하고 과격해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여성 고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죠.
단아한 외관이 문을 열고 싶게 만들었다면, 실내는 계약서에 사인을 하게 만들었어요. 독일 바우하우스의 디자인 철학 ‘기능은 형태를 따른다.’를 그대로 옮긴 듯 이전에 내세웠던 ‘스칸디나비안 럭셔리’는 기능적인 디자인이 강조된 반면 신형 볼보의 인테리어는 여기에 기술을 더해 한 단계 진보한 인테리어를 선보였습니다. 심플함의 다른 말은 단순함. 화려한 장식이나 휘황찬란한 LED 무드램프조차 없어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이 실내를 고급스러운 소재의 질감, 색상에 조화, 입체감을 살린 디자인으로 보완했습니다.
덕분에 마치 북유럽 가구로 꾸며진 고급 라운지에 앉아 있는 듯한 분위기였죠. 실내 곳곳에 스웨덴 국기를 장식 요소로 활용한 점도 깨알 같은 디테일이었고요. 기능의 개수만큼 많았던 버튼은 9.2인치 세로형 디스플레이에 모두 넣었고, 볼륨 다이얼과 자주 사용하는 공조 버튼은 하단에 일렬로 배치해 편의성을 높였습니다.
여기에 ‘어라운드 뷰 모니터’ 내비게이션과 연동되는 헤드업 디스플레이와 다양한 테마를 제공하는 ‘풀 디지털 계기판’. (그런데 이제 순정 내비게이션이 안 좋아서 그냥 장식이…) 인간의 척추를 본따 만들었다는 시트는 여전히 좋은 착좌감과 함께 앞좌석 통풍과 마사지 기능을 품었고, 뒷좌석 좌우 독립식 공조 장치 및 열선 시트 등 디자인만 닮은 게 아니라, 고급 편의 장비 역시 상위 모델의 것을 그대로 이식했습니다.
대시보드 정중앙에서 존재감을 뽐내는 바워스&윌킨스(B&W) 사운드 시스템 역시 성능이 동급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죠. (‘잠깐…이러면 XC90을 살 필요가 있나?’)다만, 차량 설정을 비롯해 내비게이션, 공조 장치 조작, 열선 및 통풍 시트 등 거의 모든 기능을 이 터치 스크린을 통해 조작해야 됐기 때문에 오히려 조작 편의성은 크게 떨어진다는 지적도 많이 받았죠.
물론, 직접 써보면 이렇게 생긴 차 가운데 가장 좋은 편이긴 하지만 주행 중 작동 여부를 눈으로 확인해야 된다는 단점 때문에 지금도 논란이 있는 부분입니다. 대신 터치스크린으로 통합하면서 나빠진 직관성은 높은 수준의 주행 보조 기능으로 보완했습니다. 그 사이 더더욱 똑똑해진 ‘시티 세이프티 시스템’은 이제 스스로 방향을 틀어 사고를 막는 수준에 이르렀고, 주행 보조 기능인 파일럿 어시스트가 추가돼 고속도로는 물론, 정체 구간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있었죠.
비슷한 구성을 사용하면서도 어떤 차는 욕을 먹었던 이유가 바로 이 지점 때문이었습니다. 플랫폼 뿐만 아니라 파워트레인 역시 완전 모듈화를 이뤄낸 볼보는 엔진 구성도 독특했습니다. 전 차종을 동일한 4기통 2.0L 엔진으로 단일화하고 여기에 유종, 출력을 다르게 세팅해 다양한 엔진 라인업을 구성했죠. 많은 분들이 볼보를 프리미엄 브랜드로 인정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도, 볼보가 이 4기통 엔진 하나로 전체 종을 커버하는 이른바 돌려막기를 하고 있다는 이유에서죠.
다만, 한 지붕 식구들의 플랫폼이 모두 같기 때문에 설계가 훨씬 용이해지고 상품성을 개선하기에도 훨씬 유리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부품 공유가 간단해 생산 비용과 개발 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고, 이는 판매에 있어서 많이 가격 경쟁력 확보로 이어질 수 있겠죠?
단점은…뭐…작은 거 사는 게 이득? 아무튼 XC60의 2.0L 모듈러 엔진은 8단 자동 변속기를 결합해 효율을 강조한 디젤 모델 D4와 고성능 D5, 넉넉한 출력의 가솔림 T5, T6, 강력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T8까지 다양한 라인업을 갖췄습니다. 기본 설계와 주요 부품을 공유하는 만큼 유종의 차이일 뿐 엔진의 느낌도 소음도 비슷했습니다. 디젤 치고는 부드럽고 조용했고 가솔린 치고는 거칠고 시끄러웠죠.
그래도 막상 주행이 시작되면 둘의 차이를 인지하기 힘들 만큼 모두 고급차에 걸맞는 부드럽고 매끄러운 주행 감각을 제공했습니다. 묵직한 승차감과 정숙성은 덤이었죠. 후륜은 리프 스프링, 즉, 판 스프링을 쓰는 독특한 서스펜션 구조 덕에 오해를 받기도 했죠. 일반적으로 철판을 여러 개로 겹쳐 충격을 완화하는 상용차의 판 스프링이 아닌, 멀티링크 구조의 좌우로 이어진 가로바 형태의 스프링이 적용된 방식입니다. 구조가 단순하고 공간 배치에 효율적이기 때문에 예전부터 줄곧 써온 방식이기도 하죠.
오히려 원가가 높아서 엔트리 모델인 XC40은 기존의 코일 스프링을 쓰기도 했습니다. 물론, 뒷좌석 승차감에서 약간의 손해를 봤지만 전동 파워트레인의 설계나 트렁크 공간을 확보하는 데도 이점이 있다고 하니, 일장일단이 있다고 할 수 있겠네요.
승차감도 누가 말 안 해주면 분명 모를 거예요. 2017년 출시된 2세대 XC60은 앞서 2세대 XC90이 닦아 놓은 길을 따라 출시 초 한 달 1천여 대 가까이 팔리며 단숨에 새 강자로 떠올랐습니다. 작년에만 2,539대가 팔렸는데, 이는 과거 1세대 XC60이 출시될 당시 브랜드 전체 판매량을 뛰어넘는 수치였죠.
‘심플 이즈 베스트’를 외치며 북유럽 디자인이 선호 받는 사회 분위기와 시의 적절한 마케팅이 시너지를 일으켜 독일 차에 가려 있던 볼보를 단숨에 떠오르는 브랜드로 자리 잡게 했죠. 가격은 전작보다 꽤 올랐지만 안전만큼은 차별하지 않는다는 콘셉트을 유지해 상위 트림이나 옵션으로 빼놓은 경쟁차에 비해 최하위 트림에서도 안전 및 주행 보조 장비만큼은 꽉꽉 채워 놓은 것을 감안하면 나름 괜찮은 구성이었어요.
문제는 ‘기나긴 대기 기간’ 신형 XC60은 역시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도 높은 인기를 끌었고, 유럽 공장의 공급 부족 사태가 지속돼 대기 기간이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기다림에 지쳐 다른 프리미엄 수입차로 눈을 돌리는 고객들이 생기기도 했죠. 입대 전에 계약해 전역 후 받는다는 우스개가 나돌기도 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