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카, 차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듣기만 해도 설레는 단어죠. 저 역시 세단을 가장 좋아하고, 차를 한 대만 소유해야 한다면 세단이나 SUV 같은 승용차를 고르겠지만, 스포츠카 앞에서는 두근대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고 여유가 된다면 꼭 한 번은 소유해보고 싶은 차량입니다. 이번에는 어린 시절의 저를 현대차 대리점 쇼윈도 앞에 오랫동안 머물게 했던 한 국산 스포츠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현대차의 첫 번째 후륜구동 스포츠카이자, 등장과 함께 대한민국 남자들의 가슴을 뛰게 했던 차, 1세대로 아쉽게 끝났지만 한국차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던 이 차, 이번 시간에는 또 하나의 제네시스, 현대 제네시스 쿠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스포츠카를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지만 선뜻 구매하기에는 주저하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잼민이 시절, 저 역시 나중에 커서 차를 사게 된다면 폼나는 스포츠카를 첫 차로 사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정작 차를 살 나이가 되자 현실을 깨달았습니다. 아시다시피 스포츠카는 불편합니다. 문짝이 2개라 타고 내리기도, 뒷좌석에 손님을 모시기도 힘든 데다가 승차감이 특별히 좋은 것도 아니고, 트렁크가 거대해 실용성이 뛰어난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젊은 사람들이 많이 타고 속력이 빨라 사고가 많이 나다 보니 보험료도 더 비싸게 받죠. 이런 특성 탓에 차를 선택하는 데 있어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고, 많이 팔리는 차가 아니기 때문에 대중 브랜드 입장에서는 굳이 만들 이유가 없는 모델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차를 갖고 싶은 이유는 바로 멋들어진 스타일 때문입니다. 멋진 수트나 화려한 드레스가 일상생활을 하는 데 어울리지 않듯 스포츠카도 생필품이 아닌, 쉽게 가질 수 없는 취향 영역의 물건이기 때문에 그 의미가 더욱 남다르게 다가오는 것이죠. 누군가의 로망,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걸출한 자동차 기업들이 각종 레이싱 대회에 오랜 기간 거액을 쏟아붓고, 소수의 소비자를 위해 누가 봐도 몇 대 안 팔릴 것 같은 차들을 계속 만들어내는 이유예요.
현대차에도 ‘스쿠프’에서 ‘티뷰론’, ‘투스카니’로 이어지는 전륜구동 쿠페 라인업이 있었고, 국내 및 해외 시장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습니다. 다만 ‘스포츠카’라기보단 ‘스포츠 루킹카’ 말 그대로 ‘스포티하게 생긴 차’였기 때문에 가성비가 돋보이는 패션카로 인식됐을 뿐, 스포츠카의 필수 요소인 고성능 이미지를 주기에는 역부족이었죠. 여러 모터스포츠에서 성과를 내기는 했지만, ‘소형차 베이스’, ‘전륜 구동’이라는 한계가 명확했어요. 또 경제 황금기의 산물을 유지해 온 최대 경쟁자 일본 업체들과의 격차가 상당했습니다.
후발주자 현대차는 그 간극을 획기적으로 줄일 한방이 필요했고, 자체 개발한 후륜구동 플랫폼을 활용해 럭셔리 세단 ‘BH’와 함께 고성능 정통 스포츠카를 계획, 프로젝트 ‘BK’가 시작됐죠. 그리고 2007년, 미국 뉴욕 모터쇼에서 제네시스 세단 콘셉트 카를 먼저 발표한 데 이어, 같은 해 열린 LA 국제 모터쇼에서 양산형에 가까운 쇼카를 선보였고, 이듬해인 2008년, 정식 출시 모델이 그 모습을 드러냈죠.
차명인 ‘제네시스 쿠페’는 현대차 최초의 독자개발 후륜구동 럭셔리 세단, ‘제네시스’의 2도어 모델을 의미하는 ‘쿠페’를 결합해 간단하게 지었습니다. 세단이 프리미엄 이미지를 강조했다면, 이쪽은 경쾌함과 스포티함을 강조해 서로 상호 보완하는 전략이었어요. 다만 보통 차명을 공유하는 모델이라면 기반이 된 차량의 디자인을 살짝 수정해 한눈에 봐도 가지치기 모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데 반해, ‘제네시스 쿠페’는 이름만 제네시스일 뿐 외적인 부분에서 세단과의 연관성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전혀 별개의 모델이었습니다. 심지어 제네시스의 날개 엠블럼이 아닌 현대 로고가 그대로 박혀 있었어요. 애프터 마켓에서 제네시스 로고 붙이는 게 유행이었죠.
외관은 이전의 전륜구동 쿠페 라인업과는 분위기 자체가 달라졌습니다. 후륜구동의 구조적 특성에서 반영된 디자인과 확연히 커진 체급으로 단박에 시선을 사로잡았고, 상대적으로 낮은 보닛과 치켜 올라간 엉덩이로 가만히 있어도 달려 나갈 듯 스포티한 느낌을 만들어냈어요. 전면부는 날카롭게 빚은 헤드램프와 범퍼 디자인으로 고양이과 맹수를 연상시키는 인상이었지만 왠지 헤벌쭉해 보이기도 해 호불호가 꽤나 크게 갈렸습니다. 독특하기는 했지만 차가 좀 못돼 보였어요. 오히려 이전 투스카니만 못하다고 평가하시는 분들도 많았죠. 특히 멀리서 다가오는 젠쿱 보고 있으면 특히나 그랬죠.
돋보이는 부분은 측면이었습니다. 팽팽한 두 줄을 평행으로 배치해 ‘Z’자를 이루는, 기존의 국산차에서는 볼 수 없었던 강렬한 캐릭터 라인은 넓은 도어 패널과 상대적으로 좁은 창문 덕분에 자칫 둔해 보일 수도 있는 측면의 무게감을 덜어내면서 이 차를 보다 날렵해 보이게 만들었습니다. 비슷한 맥락으로 쿼터 글라스 아래쪽에 엣지를 넣은 것도 재미있는 디테일이죠. 여기에 여유로운 휠베이스와 상대적으로 짧은 프론트 오버행, 부풀어 오른 리어 펜더는 이 차의 힘이 뒷바퀴에서 뿜어져 나온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드러냈어요. 먼지를 휘날리며 등장하는 이 광고, 지금 봐도 참 설레네요.
그중에서도 ’19인치 대구경 휠’이 단연 압권이었습니다. 지금에야 중형 패밀리카에도 19인치 휠이 들어가지만, 당시에는 수입차에서나 볼 법한 사이즈였고 구하기 쉬운 데다 디자인까지 준수해 일명 ‘만능 휠’로 불리며 애프터마켓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어요.
전면부의 경박한 이미지와 달리, 후면부는 풍부한 볼륨에서 오는 묵직함이 두드러졌습니다. 두툼한 리어 펜더와 치켜 올라간 엉덩이, 대형 리어램프, 대구경 듀얼 머플러를 더해 한눈에 봐도 고성능 차량임을 알 수 있었죠. 나름 ‘제네시스’ 타이틀이 붙은 고급 모델임에도 LED램프 하나 쓰이지 않은 것은 아쉬웠지만요. 또 ‘패스트백’ 스타일로 후면 유리가 함께 열렸던 투스카니와 달리 승객석과 구분된 트렁크를 갖춘 것도 눈에 띄는 부분이었습니다.
실내는 푸른 조명을 메인으로 한 당시 최신 현대차의 디자인 특징을 반영해 도시적인 분위기로 꾸며졌습니다. 스포티한 외관에 비하면 디자인은 수수한 느낌이었어요. 그래도 탑승객의 몸을 감싸는 ‘버킷 시트’와 낮은 시트 포지션, 상대적으로 높은 대시 보드 높이로 스포츠카에 탔다는 느낌은 확실히 전달했습니다. 강렬한 레드 포인트 인테리어로 스포티한 느낌을 더할 수도 있었고요. 나를 바라보고 있는 창문 스위치 참 특이하죠. 탑승객을 향해 누워 있는 센터페시아 위에 오디오와 공조장치를 계단식으로 정돈해 조작 편의성을 높였고, 블루투스 오디오와 도합 10개 스피커의 ‘JB 프리미엄 사운드’를 마련해 음악과 함께 드라이브를 즐기는 젊은 소비자들의 취향에 발맞췄습니다.
이밖에 버튼 시동 스마트키, 차체 자세 제어 장치 VDC를 기본 장착하고 투스카니에는 없던 후방감지 센서, 풀 오토 에어컨, 사이드-커튼 에어백과 오토 라이트로 편의 및 안전 사양을 강화한 것도 좋은 부분이었습니다. 특히 차체가 커지면서 투스카니보다는 훨씬 나은 뒷좌석 공간을 제공했기 때문에 친구들이랑 놀러 다닐 때 예전만큼 부담스럽지는 않았죠. 물론 편했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꽤 널찍한 트렁크 공간과 뒷좌석 등받이를 폴딩 해 실용성을 높일 수 있는 것도 장점이었어요.
전반적으로 내장 컬러를 다양하게 적용하고 폭신한 우레탄 소재를 폭넓게 사용하는 등 가격에 걸맞는 품질에 갖춰 이전 투스카니보다는 훨씬 나아진 모습이었지만, 딱딱한 플라스틱 소재가 두드러지고 몇몇 디자인은 소형차와 별반 차이가 없어 외관과 마찬가지로 제네시스라는 이름이 붙을 만큼 고급스럽지는 않았습니다. 또 2008년에 출시된 나름 고급 차량임에도 순정 내비게이션 자체가 탑재되지 않아 말이 많았죠. 애프터마켓 장인들이 기가 막히게 해결해 주기는 했지만요.
주목할 만한 부분은 역시 파워트레인이었습니다. 뒷바퀴에서 흰 연기를 내뿜으며 드리프트를 할 수 있는 국산차의 등장에 많은 남자들이 설렜고, 자동차 전문 매체들의 호평이 이어졌죠. 후륜구동에 맞게 새로 배치한 ‘2.0L 쎄타’, ‘3.8L 람다’, 2가지 가솔린 엔진으로 구성했고 각각 6단 수동, 현대 파워텍의 5단 및 ‘ZF 6단 자동 변속기’를 매칭 했습니다. 두 모델 간 배기량 차이가 거의 2배에 육박할 정도로 컸지만, 3.8 모델은 자연흡기, 2.0 모델은 터보를 추가해 두 모델 다 스포츠카에 어울리는 경쾌한 힘을 제공했죠. 또 순정 상태로도 배기음을 즐길 수 있는 몇 안 되는 국산차였어요.
특히 고성능 써머 타이어를 순정 사양으로 제공하고 앞뒤 타이어 폭을 다르게 설정해 접지력을 높인 최초의 국산차이기도 했고, 고성능 수입차에서나 구경할 수 있었던 ‘브렘보 브레이크 시스템’과 이를 상징하는 붉은 캘리퍼를 순정 옵션으로 마련하면서 멋과 기능을 동시에 잡기도 했죠. 후륜구동계의 안정적인 무게 배분과 ‘LSD’가 더해져 뛰어난 주행 안전성을 확보했고 보다 날렵한 조향이 가능했습니다. 단단한 서스펜션과 하체 세팅으로 승차감은 안 좋은 편이었지만, 이 차는 승차감으로 타는 차가 아니었으니까요. 물론 현대 역시 처음 시도하는 차급인 데다 후륜구동 설계조차 독자 개발로 이뤄낸 지 얼마 되지 않은 회사였기 때문에 아쉬운 부분도 있었습니다.
주력 트림이 2.0L 터보의 늘어지는 자동변속기 성능, 달리기 성능만큼이나 중요한 브레이크 시스템도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또 당연하게도 2가지 파워트레인 모두 연비가 좋지 않았어요. 연료통에 구멍이 난 줄 알았다는 말을 오너들이 진지하게 할 정도였죠. 이후 2009년 출시된 연식 변경 모델은 자동변속기 모델의 ‘패들 쉬프트’를 추가해 운전의 즐거움을 더했고, 초기에는 탑재하지 않아 욕을 먹었던 순정 내비게이션과 후방 카메라를 추가하는 등 상품성을 보강했습니다. 다만 길 안내보다는 토크 게이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는지 모니터를 센터페시아 중앙에 박아버리는 만행을 저질렀죠.
이와 함께 풀옵션 트림 레이싱 윙 패키지, ‘RW’를 신설했는데, 이름처럼 수출형에만 장착했던 ‘순정 리어 스포일러’를 추가해 겉보기에 남다른 느낌을 주기도 했어요. 현대차의 첫 번째 후륜구동 스포츠카 ‘제네시스 쿠페’는 그 기대감만큼이나 잘 만들어진 차였습니다. 막연히 해외 브랜드의 침범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만 느껴왔던 고성능 스포츠카를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손에 넣을 수 있게 해 준 젠쿱은 젊은 미혼남, 자녀가 있는 유부남 할 것 없이 대한민국 남성 소비자들의 로망으로 자리 잡기에 충분했죠. 이후 ‘포뮬러 드리프트’, ‘원 메이크 레이싱’ 등 국내외 모터스포츠 무대에서 활약했고, 동호회를 중심으로 수많은 마니아들을 양산하면서 우리나라 자동차 튜닝 문화의 새로운 축을 담당한 기념비적인 모델이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