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다시 만나게 돼서 반갑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유은정입니다. 나를 보호하면서 안전하게 손질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드릴게요. 저는 인간관계는 세 가지 분류로 나누라고 해요.
서클로 그린다면 가장 안에 코어는 한두 명의 내가 친한 사람, 내가 오랜 기간 동안 그 관계에 투자하고 시간과 에너지를 할애할 수 있는, 또 나의 어떤 민낯, 단점, 어려운 점 이런 것을 같이 나눌 수 있는 그런 한두 명의 친구들.
그다음에는 한 5명 내외 또는 더 많은 사람들은 10명 내외가 되겠죠. 같이 식사를 하거나 정기적으로 만남을 갖는 그런 분.
그냥 나머지의 그 가장자리는 대다수의 그냥 카톡이나 아니면 안부를 묻는 사이, SNS에서 만나는 사이 정도요.
그 군에 따라서 조금씩 대처가 다르다고 생각해요. 내가 이제 실망을 한 거잖아요, 관계에서. 그랬을 때 그 코어에 있는 한두 명에게는 저는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 만남은 나에게도 굉장히 소중한 만남이고 안 좋은 면이 좀 부각돼서 보일 때가 있거든요. 뭔가 내 상황이 안 좋았을 때, 또 더 상대방의 말이 상처가 되거나 내가 힘들어질 수 있기 때문에 약간의 거리를 두면서 내가 회복될 시간, ‘환기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을 해요. 섣불리 그런 친구들에게 손절했다가는 사실을 다시 붙이기가 쉽지 않거든요.
그러니까 지금 당장 내가 감정적으로 짜증이 올라오거나 그런다고 해서 당장 끊어 버리는 게 아니라 차라리 그렇게 감정이 올라오면 한 달 정도 시간을 두면서, 어느 정도 시간을 가지라는 거죠. 그러면 사실은 오래된 추억을 나눴고 즐거운 시간을 공유한 그런 사이라면, 진짜 절친이라면, 사실 그런 시간을 갖고 나서도 어제 만난 것 같은 느낌이 들 거예요. 좀 오랜만에 만났는데도 또 약간 섭섭한 마음이 있었는데도 다시 만났을 때 어제 만난 것 같은 거죠.
두 번째 부류의 친구들은 사실 자주 만나는 관계는 아니잖아요. 그러면 약속을 조금씩 미루거나 취소를 한번 해 보세요. 그러면 상대방도 ‘어? 얘가 좀 거리를 두기를 원하네?’ 그래서 내가 굳이 어떠한 액션을 취하지 않아도 조금씩 느슨한 관계가 되는 거죠.
또 대다수의 그 안부만 전하는 사이, SNS 친구들은 그냥 언급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 사람들한테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 자체가 없어요. 내가 갖고 있는 에너지와 시간은 한정돼 있는데 내가 좀 더 곁에 두고 싶은 사람, 좋은 인간관계에 그 에너지를 더 집중하는 것이 더 낫죠. 그리고 사실 안부 정도만 나누는 관계라면 그 사람들도 그렇게 많이 나에게 기대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그냥 서서히 멀어지기가 쉬울 것 같아요.
그렇다면 멀어지려고 마음을 먹어서 손절을 하려고 했는데 상대가 자꾸만 더 가까이 오려고 하는 상황에서 자꾸 죄책감이 올라오거나 그럴 경우 대처하는 방법을 알려드릴게요.
저는 스스로 질문을 먼저 해보라고 얘기를 해요. ‘내가 이 친구를 좀 멀리하거나 끊었을 때 과연 후회할 것인가?’ 대부분은 후회하지 않는다고 하거든요. 그렇다면 그 관계의 주도권은 내가 갖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죄책감을 가질 이유가 없는 거죠.
반대로 관계의 주도권이 상대에게 있다면 그것은 내가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이죠. 내가 그 사람을 가까이 두고 싶은 사람은 주도권이 상대에게 있겠지만 내가 이미 멀어지게 하고 싶고 좀 어떻게 보면 손절까지 가고 싶은 그런 대상이라면 관계의 주도권은 내가 갖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머무는 관계에 더 잘하고 싶으면 사실 떠나보내야 되는 관계도 꼭 있는 거거든요. 그런데 그것을 다 부여잡으려고 하는 것 자체가 우리의 인생사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해요. 너무 피곤한 삶이죠. 그렇게까지 애쓸 필요 없다고 얘기를 하고 싶어요.
그리고 가끔 주변의 친구들이 결혼도 하고 그러다 보면 이제 만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 되는 건데 한편으로는 알면서도 ‘얘가 나올 수 있을 것 같은데, 못 나온다고?’ 하는 섭섭한 마음이 드는 경우도 있죠. 저도 그런 시간이 있었어요. 잘 나가는 의사 친구들이 있는데 저는 미국 유학 갔다 왔잖아요. 물리적 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크게 연락을 안 하고 지내서 저절로 웅크린 시간이 됐었죠.
갔다 와서도 사실은 그 친구들은 이미 돈도 잘 벌고 병원도 다 하고 있는 원장이고 그때 저는 그냥 그렇게 생각했어요. ‘나하고 한 10년, 5년 갭이 있지만, 나는 그냥 나다.’ 또 내가 갖고 있는 장점 그런 것들도 얘기해 줄 수 있고요. 그 친구들은 또 사회생활에서 배우고 오랫동안 의사 생활하면서 깨달은 걸 저한테 가르쳐줘요.
그래서 우리가 다른 거, 다양성에 대한 걸 좀 더 오픈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기혼인 친구들끼리 같이 정보를 공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혼 친구와 미혼 친구가 같이 어울리면서 서로 얻는 것도 있거든요.
미혼인 친구들은 ‘나는 왜 이렇게 결혼도 못 하고 이렇게 살지?’ 하지만 기혼인 친구들을 보면서 ‘나는 결혼하면 이렇게 살아야겠다.’라는 걸 공부할 수도 있고요. 기혼인 친구들도 미혼의 어떤 자유로움을 또 부러워하기도 하지만 나의 안정된 점을 또 볼 수도 있고, 또 ‘내가 저 시절에는 또 저랬었지.’라는 걸 생각해 볼 수 있고요.
철학자가 이런 말을 했어요. ‘주름이 되어줘야 한다.’, ‘너는 나의 주름’ 우리가 옷을 입으면 이렇게 옷에 주름이 생기잖아요. 내 체형에 따라서 달라지는 거잖아요. 그러면 내 어떤 철저한 세계가 있잖아요. 그런데 상대방 타자와 내가 만나면서 나의 옷에 모양이 만들어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 세계에 다른 사람이 들어오는 게 내 세계가 달라지는, 변화가 되는, 주름이 달라지는 거죠. 물론 그 주름이 너무 깊게 패여서 상처가 되고, 관계 단절이 되면 안 되겠지만, 저는 그런 자극을 받으면서 살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어떤 사람을 내가 주변에 두느냐가 굉장히 나의 옷이 달라지는 거죠.
그래서 왜 20대는 자연미인, 자연미남이 있다고 하지만 40대, 50대로 갈수록 주변에 어떤 사람이 있느냐에 따라서 얼굴 표정과 외모에서 풍기는 게 달라진다고 하잖아요. 그것처럼 내가 주변에 좋은 사람, 내가 같이 있기에 즐거운 사람, 또 내가 배울 수 있는 점이 있는 사람을 두는 것은 나의 결정이에요. ‘자기 결정권’이죠.
너무 죄책감 갖지 말고요. 내가 어떤 사람을 서클에 둘 것이냐는 상대방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결정권은 나한테 있다는 것을 꼭 명심했으면 좋겠어요.
그렇다면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손절은 어떤 것일까요? 내가 만약에 웅크린 시간에 있거나 나의 상태가 좀 안 좋아요. 그러면 사실 그 친구를 만나서 일일이 설명하고 싶은 그런 마음도 안 들거든요. 만나는 것도 좀 불편하고요. 그렇다고 해서 감정 어린 마음으로 일방적으로 카톡이나 문자로 그냥 던지는 것은 상대방이 어떤 반응으로 받아들일지 모르기 때문에 그건 좀 삼가면 좋겠어요.
그런 시간일 때 첫 번째 서클에 있는 사람, 제일 중요한 서클에 있는 사람들에게 늘 화살이 갈 확률이 높아요.
가까이 있는 절친에게는 만나서 그냥 허심탄회하게 얘기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일방적으로 감정 어린 게 아니라, 상대 탓이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지금 이런 상황이라서 조금 나는 공부에 몰입할게.’, ‘나는 요즘에는 좀 이래서 내 시간이 필요하다.’ 이 정도의 메시지가 적당한데 너무 귀찮은 나머지 카톡으로 한다든지, 또는 조금 더 심한 경우는 화가 나서 차단을 한다든지, 그런 나중에 다시 만나려고 할 때 불편할 수 있겠죠.
그리고 정말 상처를 받아서 손절하는 경우도 있잖아요. 저는 평생 살면서 딱 한 명 있었어요. 그런데 그럴 때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이렇게 ‘저한테 똑같이 했던 대로 해야지.’라는 마음을 붙잡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렇게 하지 않는 게 중요해요.
저는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그 사람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저의 기준이 거기에 있어요. 미래를 보는 거죠. 이 친구와의, 이 관계와의, 어떤 미래. 내가 아무리 여러 가지, 이렇게도 얘기해 보고, 강하게도 얘기해 보고, 다 했는데도 그 사람은 바뀌지 않고 그대로라면, 나랑 맞지 않는 사람이고, 내가 더 중요한 사람이기 때문에, 멀어지는 선택을 하는 게 필요한 거죠.
그래서 저는 지금 딱 한 명 있었는데, 그 친구와 멀어진 건 정말 잘했다고 생각해요. 십몇 년 동안 그 친구한테 당한 걸 생각하면요. 제가 이번에 이걸 준비하면서 손절 기준에 비교해 봤을 때, ‘내가 잘했구나.’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손절하는 기준이 명확해요. ‘내가 반복해서 이야기한 것을 과연 지킬 수 있는 친구인가?’ 그랬을 때 그렇지 않다면 뒤도 돌아보지 않는 게 좋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