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이런 경우도 있을 수 있죠. 자기감정에 따라서 나를 무시하기도 하고, 갑자기 친하게 굴기도 하고, 종잡을 수 없게 가지고 노는 거죠. 그런 사람은 아무리 나중에 다시 팔을 벌리고 나를 받아들이려고 해도 제가 멀어지는 그런 선택을 하게 될 거예요.
저는 관계의 어떤 중요성을 ‘good or bad’로 나눴으면 좋겠어요. ‘나한테 이 관계가 좋은가, 또는 나쁜가?’ 이게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기분에 기복이 심한 사람들은 언제나 그럴 거거든요. 그 부분은 안 바뀔 거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바운더리라는 개념은 거리를 둔다는 개념도 있지만 내가 그 사람을 바꾸려 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거예요.
우리가 일반적으로 손절이라고 하면 가위처럼 단도리 치는 느낌이 들잖아요. 그런데 그게 아니라 그냥 나랑 맞지 않다는 걸 인정해 주는 것, 그 사람 자체를 인정해 주는 것, 그리고 나를 인정해 주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서로 멀어질 수밖에 없는 거라고 생각하면 손절이라는 게 그냥 나쁜 게 아니고 서로 뭔가 이해하는 하나의 과정이라는 생각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요.
오리가 그 호숫가를 보면 서로 둥둥둥둥 떠서 가까이 오고 서로 살피잖아요. 그러면서 그다음에 그 자리에 머무는 경우도 있지만 다시 둥둥둥둥 떠서 자기 각자 갈 곳으로 헤엄쳐 가잖아요. 그게 갑자기 떠오르네요. 머무는 오리도 있지만 같이 어울리면서 또 그냥 흘러가는, 그런 스쳐 가는 인연도 있을 수 있으니까요. 그것을 잘 분별하는 게 참 중요할 것 같아요.
스쳐감에는 좋고 나쁜 게 없잖아요. 스쳐감이라는 단어를 대입해서 굳이 죄책감을 느끼지 말고, ‘아, 그냥 스쳐 지나간 거다.’라고 받아들이면 될 것 같아요. 하지만 부모나 아니면 직장 상사 같은 어떠한 하나의 그런 공동체에 있는 사람이면 스쳐 가기가 어렵겠죠. 그런 사람들과 손절하는 방법에 대해 말해볼게요.
이런 경우가 있었어요. 딸이 엄마와 관계가 나쁠 때, 집에 안 가고 싶대요. 자기 친정집에 가면서도요.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가지 마라. 그렇게 가서 척하려면 얼마나 힘들겠냐.’ 그랬더니 ‘어떻게 연휴에 안 갈 수가 있어요?’ 그러는 거예요. ‘그런데 네가 그렇게 힘들고 엄마와의 관계가 가서 기분이 좋은 게 아니라 그렇게 상처뿐이라면 이번에는 안 가도 되지 않냐? 한번 이야기해 봐라.’ 그랬을 때 이 친구가 이야기했더니 부모도 별다른 반응이 없었대요. 또는 ‘우리 여행 갈 거야.’이랬다는 거예요.
그래서 사실은 알게 모르게 ‘내가 갖고 있는 죄책감들이 많구나.’라는 걸 알게 됐고 한두 번 안 간다고 해서 부모님들이 그걸 그렇게 뭐라고 하지도 않았다는 거죠. 부모님들도 아시게 되는 거죠.
‘이 아이가 성인이 돼서 뭔가 액션을 취하고 있구나. 우리가 뭔가 행동을 다르게 해야 되나? 뭔가 우리도 아이를 성인으로서, 결혼한 가정으로서, 독립된 개체로서, 자녀를 낳은 부모로서, 이 친구도 부모가 됐으니까 존중해 줘야겠다.’ 이런 생각이 드는 부모가 있는가 하면 또는 끝까지 연락 안 하겠다고 하는 그런 부모님들 계세요. 최악의 경우죠. 사실은 그것도 받아들여야 되는 거죠.
부모의 반응이나 상대방의 반응에 책임은 내가 지는 게 아니에요. 나는 내가 원하는 행동을 이야기했고, 전달을 했는데,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도 있고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그것은 내가 예상을 해야죠, 그런 반응을. ‘우리 부모님은 이런 식으로 반응할 것이다.’라고 했었을 때 그 양쪽 반응 중에 한 가지예요, 사실은. 예상한 반응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더라고요.
이게 직장생활도 마찬가지예요. 예를 들어서 나만 괴롭힌다고 느껴지는 그런 상사가 있었어요. 그러면서 너무너무 괴로워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물어봤어요. ‘다른 사원들도 그렇게 그 사람 힘들어하니?’ 그렇대요. 그렇다면 나한테만 일 시키고, 나한테만 비난을 한다면 한번 찾아가서 물어보라고 했어요. 그렇게 혼자 고민하고 술잔을 기울이면서 욕하지 말고요. 그럴수록 더 관계는 힘들어지고 그 사람을 볼 때마다 가슴이 벌렁벌렁거려서 회사를 못 나가게 되니까요.
1:1로 만나봤을 때 두 가지 중의 하나일 거예요.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변하지 않거나요. 그리고 또 두 번째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이 회사에 이럼에도 불구하고 머물러야 되는 거냐, 아니면 이 회사에 있는 것이 커리어에 나한테 도움이 되기 때문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건가?’ 이걸 일단 내 입장에서 어느 것이 유리한지 먼저 평가를 해 보는 거죠. 대부분은 머물러야 되기 때문에 고민하는 거겠죠.
그랬을 때 1:1로 면담할 때 주어가 I가 돼야 하는 거예요. ‘그때 그렇게 말씀하신 거 왜 그러셨어요? 그때 그렇게 말씀하시면 너무 속상했어요.’ 그리고 감정적으로 속상해하거나 울거나 하지 말고 ‘지난번에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 제가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제가 어떻게 바뀌기를 원하세요? 제가 어떤 일을 더 하면 좋을까요?’라고 ‘I 메시지’를 이용해서 이야기한다면 좋을 것 같아요.
사실은 내가 생각했던 것이 약간의 오해일 수도 있고, 상대방이 원하는, 상사가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캐치 못 한 것일 수도 있고, 또는 내가 과도한 책임감을 갖고 있는 사람은 그것을 이만큼을 원하는 건데 이만큼 부풀려서 부담이 될 수도 있는 거고, 또 실제로 일이 너무 많아, 나한테만 시키는 것 같을 때는 제안을 해 볼 수도 있는 거죠. ‘사실은 이 일을 다 하려면 내가 주말까지 나와야 하는데 혹시 이 일을 누구와 나눠서 할 수 있을까요?’ 제안을 해 보는 방법도 있겠죠.
그렇다면 내가 이런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나 혹은 직장에서 내가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일 수도 있겠죠. 특히 이런 상황에서 불안감 때문에 나오지 못하는 선택을 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 불안감을 어떻게 컨트롤할 수 있을까요?
그게 벌써 ‘성장’이라는 거죠. 내가 혼자서 어떤 사람에게 인정받지 않고도, 사랑받지 않고도, ‘나는, 나다.’,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유지한다.’라는 게 사실은 굉장한 힘이 필요한 거예요. 내면의 힘이요. 그것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걸 못 하는 거죠. 그런데 물론 불안하고 힘들지만, 그 시간을 견디다 보면, 그 웅크린 시간이 지나가다 보면, 기회가 오히려 또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있는 기회가 돼요.
사실은 홀로 설 수 있는 힘이 성인이 가장 중요한 거거든요. 직장인이라면 저는 이렇게 말해요. ‘명함이 없어도 버틸 수 있는 힘, 그것이 진정한 직장인이 될 수 있는 길이다.’, 왜냐하면 나는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고, 내가 원하는 방향을 갈 수 있는 포텐셜, 잠재력, 내면의 힘이 있기 때문에요.
내가 그 잠시 명함이 없는 시간 동안에 부모와 떨어져서 홀로 있듯이 내 모든 걸 케어해야 되는 시간을 버틸 수 있는 힘을 20대 아니 30대라도 갖출 수 있다면 그 내공은 그 이후의 삶을 다 책임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상황이 변해도 그 사람의 존재 자체가 변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요.
마지막으로, 왜 이렇게 손절에 열광하는 걸까요. 제 책 나오고 나서도 ‘그럴 인연 끌고 갈 필요 없다.’ 이게 가장 많이 회자됐다고 그랬잖아요. 오늘 주제도 그렇고요. 저는 이제 우리나라가 제가 대학 시절 90년대 그때는 집단주의, ‘모두가 잘 돼야 내가 좋다.’ 가족도 마찬가지로 ‘우리 가족이 잘 살아야 모든 가족 구성원들이 혜택을 입는다.’ 이런 어떤 집단주의가 팽배했던 시절이었죠.
그러나 IMF, 그다음에 코로나 이런 것들을 겪으면서 현재의 삶은 많이 개인주의로 흐르고 있는 것 같아요. ‘내가 잘되고, 내가 행복해야 우리 조직도 행복한 거고, 우리 가족도 행복한 거다.’ 로 많이 바뀌었거든요. 그런데 그것을 우리가 모두 적응해가고 있는 거예요.
그렇지만 우리 세대는 집단주의에 물든 세대와 개인주의에 지금 도입한 세대가 혼합되어 있어요. 가족도 그렇고, 직장도 그렇고, 20년, 30년씩 차이가 있으니까요. 그렇게 우리나라의 사회가 급변하는 혼돈의 시기이기 때문에 그 시기에는 저는 자기 관리, 자기에 대해서 잘 알아가고 있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내가 어떤 포지션에 있고, 나는 지금, 이 위치에 있다.’
그런데 서로가 비난을 하기에 바빠요. 내 위치를 파악하는 게 아니라, ‘너는 왜 나의 이런 개인적인 결정을 무시하느냐?’ 또는 집단주의 쪽에 있는 분들은 ‘왜 너는 집단을 무시하고 너 혼자 이기적으로 그러느냐?’ 이게 서로 비난하기에 바쁜데요. 그게 아니라 이러한 것이 한 연장선에서 모두가 다 다른 포지션에 있다는 거죠. 나이와 상관없이 자기의 영향받는 배경에 따라서요.
그 부분의 다양성을 좀 더 인정해 준다면 서로 극혐을 하거나, 상처를 받거나, 화나거나, 그래서 손절하거나, 그런 것보다는 좀 더 느슨한 관계, 좀 더 저 사람에게 바라는 것, 기대하는 것 없이 물 흐르듯이 스쳐 가는 인연들도 받아주는 그런 관계가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오늘 우리가 올바르게 손절하는 방법과 기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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