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60대 중반의 노장 배우에 속하지만 오늘의 주인공 샤론 스톤은 영화에 활발히 출연하는 것도 아닌데 전 세계 일정 나이 이상의 모든 남성은 전부 그녀를 가슴 한 편에 품고 있습니다.
1992년 작 ‘원초적 본능’에서 왼쪽 다리를 오른쪽 허벅지에 올렸을 뿐이지만 그 장면 한화로 그녀는 단숨에 할리우드 뿐 아니라 전 세계 섹시계를 대표하는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관능미 그리고 세월이 지날수록 빛을 뿜는 완숙미 덕분에 3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그 아성을 무너뜨린 여배우는 없습니다. ‘금발은 멍청하다’는 미국의 속설을 완전히 깨부순 그녀는 전 세계 상위 1%에 해당하는 두뇌를 가진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요.
그런 그녀가 한국 엄마들만 가입하는 계모임에 가입해 의아함을 자아냈습니다.
안녕하세요, 디씨멘터리입니다. 지금은 많이 희석되기는 했으나 전 세계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중심지는 여전히 할리우드입니다. 영화 한 편 제작에 적게는 수백억, 많게는 수조 원에 이르는 천문학적인 돈을 거리낌 없이 투자하는 이유는 돈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시나리오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배우인데, 어떤 배우를 캐스팅하느냐에 따라 그 영화의 성패를 가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1992년 전 세계를 쥐고 흔든 ‘원초적 본능‘의 주인공에 샤론 스톤을 캐스팅한 것은 어쩌면 ‘폴 버호벤’ 감독의 도박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거의 무명에 가까웠던 샤론 스톤이라는 여배우를 주인공으로 캐스팅하는 모험을 감수했는데요. 이 영화 한 편에 투자된 제작비는 약 490억 원에 불과했지만, 이 영화는 약 3조 원이 넘는 수익을 올렸고 한국에서도 97만 명에 가까운 관객을 동원했으니까요.
어쨌든 이 영화 덕분에 샤론 스톤은 10년 가까운 무명 생활을 청산하고 전 세계 모든 남성의 가슴에 담겼습니다.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하얀색 미니 원피스를 입고 왼쪽 다리를 오른쪽 허벅지에 올리는 취조 장면은 인류 역사상 가장 섹시한 사진으로 꼽힙니다.
샤론 스톤에게는 재미있는 과거가 있습니다. 미국의 한 잡지는 지난 2003년 IQ와 출신 대학을 기준으로 할리우드에서 가장 똑똑한 배우 10명을 꼽았는데, 그중 1위가 샤론 스톤이었습니다.
보통 미국에서 금발 여성은 멍청하다는 편견이 있고 할리우드에서도 금발의 여배우에게 똑똑한 이미지의 역할을 잘 맡기지 않는데, 샤론 스톤은 예외입니다. 전 세계 최고 똑똑한 사람만 가입한다는 멘사는 IQ 156을 세계 상위 1% 천재로 꼽는데, 샤론 스톤의 IQ는 할리우드 상위 0.1%에 해당하는 154입니다.
관능미를 뽐내는 섹시 스타의 대명사로 꼽히는 그녀가 IQ 154라는 사실이 놀랍기 하지만, 그녀는 아일랜드계 미국인으로 명문으로 꼽히는 펜실베니아의 에든버러대학교에 장학생으로 입학했을 만큼 뛰어난 두뇌를 가졌습니다. 펜실베니아 새거타운 고등학교를 조기 졸업한 그녀는 무려 19살에 대학교에 입학했죠.
그러나 소규모 모델 대회에 수상하면서 모델 일을 하고 싶었던 그녀는 대학교 중퇴 후 뉴욕으로 옮겨 가 패션모델로 활동했습니다. 잘하는 것보다는 좋아하는 일을 선택했고, 그 선택은 적중했습니다. 모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프랑스판 ‘VOGUE’ 표지 모델로 등장하는 등 성공 가도를 달렸으니까요.
그러다 1980년대 우디 앨런의 눈에 들어와 영화 ‘스타더스트 메모리스’로 할리우드에 데뷔했지만, 1992년 원초적 본능에 캐스팅되기 전까지 10여 년의 오래 무명을 거쳐야 했습니다. 어쨌든 이 영화 한 편으로 그녀는 전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여성이 되었고 예전에도 당시에도 앞으로도 그런 영화는 없을 겁니다.
그런데 위에서 잠시 언급했듯 전 세계적으로 보더라도 상위 2%에 해당할 만큼 상당히 똑똑한 두뇌를 가진 그녀가 한국인 엄마 모임을 찾아왔습니다.
그룹 쿨 출신의 유리는 지난 2019년 ‘똑.독.한 코디맘 베이비 캐슬’이라는 프로그램에 등장해 LA 한인 엄마들의 브런치 모임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냈습니다.
그녀는 LA에 거주하며 아이들을 키우는 한인 엄마들의 모임에 참석했는데요. 당시 모임에 참석한 한 회원이 할리우드 배우 샤론 스톤과 함께 학부모 모임을 했었다고 밝혔습니다. 어떤 이야기일까요?
미국인 중에서도 부유한 사람만 모여 산다는 LA 베버리 힐스에는 ‘페닌슐라’라는 최고급 호텔이 자리하고 있는데요. 이곳에서는 주기적으로 한국인 엄마가 모여 브런치 모임을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다양한 육아 및 교육 정보를 공유하며 어떻게 하면 아이에게 좀 더 유익한 교육을 제공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데 하루는 그곳에 샤론 스톤이 등장했습니다.
물론 한국 엄마 중 그녀와 친분이 있는 여성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교육 정보를 나누는 곳에 할리우드 대표 섹시 여배우가 등장한 것이 조금 쌩뚱맞기는 합니다. 그녀가 이 모임을 찾은 이유는 교육열로 익히 알려진 한국 엄마들의 정보를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2004년 남편과 이혼한 샤론 스톤은 세 아들의 교육을 위해 세계에서 가장 정보력이 강하다는 한국 엄마들의 도움을 받기로 했습니다. 그녀는 당시 10살, 5살, 4살 세 아이의 엄마였는데 그녀는 아이를 영재로 키우고 싶어 했습니다. 또한 어린 영재들은 1:1로 개인 과외를 더 받아야 한다고 자신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후로도 몇 차례에 걸쳐 이 모임을 찾은 그녀는 비공식적으로 한국인 개인 과외 교사를 고용해 자녀들에게 개인 과외를 시킨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기도 한데요. 세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할리우드 대표 여배우가 한국인 엄마들에게 배우고 싶었던 것은 아마 교육 정보였을 겁니다. 이 분야에서 한국인을 따라갈 사람은 없으니까요.
한국 사회의 특징 중 하나는 그 누가 뭐래도 교육열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한국의 교육열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너무나 유명한 상황이고 이 교육열 덕분에 한국이 인류 역사상 최단 시간에 경제 성장을 이뤄냈다는 것에 반대를 표할 사람은 없죠.
대한민국이 경제성장 더불어 민주주의를 안정적으로 정착시킴으로써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유일한 국가임을 세계인은 알고 있습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연설에서도 ‘한국은 교육 제도가 정말 잘 갖춰져 있다. 아이들은 비디오 게임이나 TV를 보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수학과 과학, 외국어를 열심히 배운다. 이러한 교육열 덕분에 한국은 가난한 나라로부터 탈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라고 언급했죠.
또한 한국 학생이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것처럼 미국 학생들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 시스템을 개선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한국의 경우 부모들의 마음가짐이 남다릅니다. 자신이 아무리 가난하더라도 자식은 최고의 교육을 받기를 원하고, 자식이 훌륭한 미래를 누릴 수 있도록 발품을 아끼지 않습니다. 가장 좋은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개인 과외는 물론 가장 훌륭한 학교를 가는 방법을 찾아내죠.
과한 열정이 때로는 부작용을 불러오기도 하지만 자식에게 훌륭한 교육을 제공하고 싶어 하는 부모의 사랑만큼은 비난할 수 없습니다. 극성과 헌신은 종이 한 장 차이입니다. 극성맞은 엄마도 결국은 아이를 위해 헌신하는 마음이 기저에 깔린 것은 분명합니다. 무조건 비난할 수 없는 한국 엄마의 독특한 자식 사랑이죠.
우리 한국인 부모가 얼마나 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는 과거를 살펴보면 쉽게 보입니다. 아마 여러분도 1800년대 후반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 시절 혼란을 피해로 러시아 영토로 건너간 고려인에 대해서 들어보신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살고 싶어 도망쳤지만, 스탈린은 그들에게 일본 스파이라는 누명을 씌워 18만 명의 조선인들을 중앙아시아 황무지에 버리듯 강제 이주시켰습니다. 당시 얼마나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는지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숙청, 기근, 질병 등으로 약 2만 5천 명이 사망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고려인은 생존과 미래를 위해 비상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노동 그리고 자녀 교육에 모든 것을 걸었죠. 그들은 교육이야말로 유일한 신분 상승의 출구라는 생각에 자신은 굶더라도 자식의 교육은 끊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고려인 2세들의 대학 진학은 당연한 일처럼 여겨졌고, 그 결과 고려인이 소련 내 최고 학력을 갖춘 집단이 됐습니다.
특히 1953년 스탈린 사망 후 소련 인민으로서 공민권을 인정받은 그들은 정치 참여가 허용이 군사 학교에도 입학할 수 있게 됐는데요. 이때부터 고려인 젊은이가 대도시 고등 교육 기관으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리고 1960년대부터 사회 각 분야에서 고려인이 속속들이 두각을 보이기 시작했는데요. 50여 년 간 투자한 씨앗이 결실을 맺었다는 의미입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1989년, 강제 이주 반세기 지난 후 조사한 결과 고려인들은 55%가 교사, 의사, 기술자 등 전문직으로 진출했습니다.
주목할 점은 과거 고려인은 농민이 대다수였으나 50년이 지난 후 전문직 종사자로서 도시에 거주하고 있었다는 것이죠. 교육을 통해 직업 전환에 성공해 도시 거주인으로 거듭났다는 의미입니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흐른 지금, 고려인 후손은 대기업 임원, 국회의원, 검사, 변호사, 의사 등등 최상위층으로 신분이 바뀌었습니다. 만약 당시 강제 이주한 부모가 배고픔을 참아가며 희생하지 않았다면 이런 기적이 가능했을까요?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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