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고대 도시’라는 단어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들을 법한 단어이지만 이는 실제로 존재했던 도시들입니다. 그중에는 문헌이나 기록으로만 존재하는 도시들이 있는데 지금까지 그 비밀을 온전히 밝혀내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때때로 이런 고대 도시들은 인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꽁꽁 비밀을 유지하다가 우연인지, 운명인지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는데요.
최악의 가뭄이 지구촌을 덮쳤던 작년 여름, 이라크 북부 모술댐 수위가 급격히 낮아지자 그 아래에서 고대 도시가 솟아올랐습니다. 이는 기원전 1350년쯤, 그러니까 약 3,400년 전 존재했던 것으로 알려진 ‘자키쿠’ 도시로 추정되는데 거대한 요새와 궁전은 물론, 문자판, 벽화까지 발견됐습니다.
기원전 1550년부터 약 200년간 지금의 메소포타미아 북부 지역과 시리아 대부분을 지배했던 미탄니 왕국의 중심지였던 자키쿠는 지진 때문에 갑작스럽게 함락된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렇듯 가뭄이나 홍수와 같은 예상치 못한 자연재해 덕분에 때때로 신기한 고대 도시가 세상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는데요.
하지만 이는 비단 서양의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한국에서도 1600년 전 고대 도시가 밤새 내린 가을비 덕분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있습니다. 계획도시란 말 그대로 정부가 철저한 계획을 세워 건설한 신도시로 정치, 경제, 산업입지 등 다양한 이점을 고려해 심사숙고 후 건설됩니다.
우리나라에는 분당, 일산, 창원, 과천 등의 유명한 계획도시가 있는데 가장 유명한 계획도시는 아무래도 세종시를 꼽을 수 있을 겁니다.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의 과도한 인구 밀집을 분산하고 국가 균형 발전을 목표로 약 47개의 중앙행정기관을 전부 이전해 그야말로 대한민국 행정중심 복합도시로 자리 잡았죠. 그리고 정말 흥미롭게도 오늘 소개해 드릴 고대도시가 바로, 이 세종시에서 발견됐습니다.
2007년 7월 20일 단군 이래 가장 큰 토목 공사를 시작하기에 앞서 이 지역에 대한 대대적인 발굴 작업이 선행됐습니다. 이미 1960년대 연기군 비암사에서는 국보 제106호로 지정된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이 발견되기도 했고, 조선시대에는 연기군 나성리 일대를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의 강물이 이곳에서 합류하는 곳이라는 의미로 ‘삼기’라 불렀습니다.
그래서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해동지도’ 등에는 이 지역을 실제 삼기라고 표기하기도 했죠. 이런 이유로 거대한 세종시를 건설하기 전 철저한 유적조사가 필수로 진행되어야 했고, 2010년 사건이 발생합니다. 2010년 10월 초에는 유독 강한 가을비가 이어졌습니다.
벼 수확에 정신없이 바빠야 할 농부들마저 집에서 하염없이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리던 그때, 부랴부랴 세종시를 찾은 인물이 있습니다. 고려대 고고미술사학과 이홍종 교수인데요. 전날 밤새 내린 가을비 때문에 유적이 물에 잠겼다는 보고를 받은 그는 서둘러 세종으로 내려왔는데, 유적 현장을 보는 순간 입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눈앞에 거대한 U자형 호수가 펼쳐졌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나성리에서 도시 유적이 있다는 것은 2005년 9월에 어느 정도 확인이 됐습니다. 항공사진과 고지도 등을 통해 유적 조성 당시의 지형을 추정해 지하에 묻힌 유적을 파악하는 ‘고지형 분석’을 통해 이미 확인됐죠. 연속으로 촬영된 사진들을 3D로 재현하면 세부 지형의 높낮이를 알 수 있게 되는데, 이를 통해 침식이나 퇴적으로 사라진 옛 물길이나 주거지 등을 가늠할 수 있죠.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이런 분석을 통해 옛 물길을 찾아내면 그곳에 유독 지진이 발생하거나 싱크홀이 발견된다는 점입니다. 아무래도 물길은 암반층이 상대적으로 얇아 지반이 약해 지진에 취약할 수밖에 없죠.
1995년 일본 고베 대지진 당시에도 사망자의 97%가 옛 물길과 습지에 몰려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어쨌든 2005년에 발견한 백제 유적 한복판에 밤새 내린 가을비 덕분에 U자형 거대한 호수가 모습을 드러낸 겁니다. 깊이 1.5m, 너비 70m에 길이 300m에 이르는 이것은 비가 내리지 않았을 때는 그저 구덩이로 여겼는데 비가 온 후 구덩이에 물이 채워지니 이는 도시 한복판에 조성한 호수공원으로 변한 겁니다.
백제인들은 도시 한복판에 호수공원을 조성해 즐겼던 것인데요. 출토 양상도 이 구덩이가 경관용 호수라는 판단을 굳히게 했죠. 보통 구덩이는 쓰레기를 묻는다거나 생활폐기물을 버리고 묻어버리기 때문에 쓰레기가 쌓였을 것으로 봤는데, 정작 구덩이에서는 토기 조각 몇 점만 발견됐습니다.
그러니까 도시의 핵심 경관이었던 만큼 현재처럼 깨끗하게 수질관리를 했었던 것인데요. 전문가들은 나성리 유적을 백제의 지방 거점 도시, 현재로 치자면 광역시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고대 로마의 경우 베수비오 화산폭발로 사라진 폼페이나 헤르쿨라네움 등 여러 지방 도시가 발굴됐으나, 우리나라에서 고대 도시가 발견되는 것은 굉장히 희박한 일입니다. 이렇게 고고학자들이 지방 도시 유적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도성, 거점도시, 농촌으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이해할 수 있고, 도성 이외 지역들에 거주했던 귀족과 서민들의 생활상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인데요.
그런데 나성리 유적이 유독 흥미로웠던 것은 옛 도로 밑으로 건물터가 깔려있거나 중복된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는데, 이 말은 넓은 부지에 도로를 먼저 건설해 구획을 나누고 각각의 공간 건물을 지은 계획도시라는 점입니다.
먼저 도로를 건설한 후에 주택을 짓고 물품 보관을 위한 창고시설 등 기반 시설을 건설한 것이죠. 도로 외에도 귀족 저택, 제사 공간, 광장, 고분, 중앙호수, 창고, 가마터, 빙고, 선착장 등 각종 기반 시설이 한꺼번에 발견됐습니다. 나성리 유적이 지방 거점도시라는 점에 있어서는 이견이 없는데 보통 큰 도시 배후에는 식량 생산 기지 역할을 하는 농경 마을이 있기 마련입니다.
나성리는 배후에 기능별로 5개 마을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데, 식량 생산을 담당했던 송담리와 대평리 등 3개 마을, 물류 유통을 담당했던 석삼리 마을, 식량 저장기지였던 월산리 황골마을 등입니다. 그런데 이 나성리에서 발굴된 유적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다름 아닌 ‘요고’라 불리는 타악기입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실물이 나왔죠.
2010년 나성리 유적을 조사하던 한국고고학환경연구소는 희한하게 생긴 토기 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가운데가 오목하게 들어갔는데 양옆이 완전하게 남아있지 않아 그 정체를 알 수 없었죠. 그리고 5년 뒤에야 발굴보고서가 나왔는데 이 유물의 정체는 다름 아닌 흙으로 만든 ‘요고’였습니다.
요고는 장고와 비슷한 모양으로 가운데가 오목하고 양쪽에 넓은 울림통을 가진 타악기입니다. 요고는 5세기말 고구려 고분벽화에도 등장할 만큼 한반도에 일찍 소개된 외래 악기인데 인도에서 유래했습니다. 부처에게 공양하기 위해 연주하는 전통 악기인데 인도, 서역, 중국을 거쳐 한반도까지 유입된 것으로 보이는데요.
요고의 기원은 인도에서 시바신을 위해 연주하던 고대 타악기 다마루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지난 콘텐츠에서 오타니 컬렉션에 대해서 소개해 드렸는데 오타니가 수집한 중앙아시아 유물의 대부분은 둔황 막고굴에서 가져왔습니다. 그 둔황 막고굴 벽화에는 요고를 연주하는 그림이 200여 건에 달할 정도로 일상적인 타악기였습니다.
그러다 중국 남조에서 백제로, 백제가 일본으로 전파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일본에서는 이를 오고라고 부릅니다. 사실 나성리에서 요고가 출토되기 전까지 삼국시대의 요고는 존재는 인정하지만, 그 실물이 발견되지 않았고 다만 고구려 지안 고분에서 벽화에 요고를 연주하는 그림이 남아있을 뿐입니다.
그러다 전체 길이 약 45cm로 추정되는 요고 파편이 나성리 유적에서 발견된 것인데요. 잠시 언급했듯 요고는 불교와 함께 등장한 타악기이기 때문에 특히 불교가 번성했던 통일신라 이후에는 실물뿐 아니라 동종이나 석탑 등에 새겨진 경우도 있습니다. 통일 신라의 요고 실물은 총 2점인데 하나는 하남에서 발견된 목재 요고이고, 또 다른 하나는 충남 보령에서 발견된 토기 요고입니다.
어쨌든 지금으로부터 약 1,600년 전에 건립된 백제의 광역시는 약 100년가량 존속하다 사라진 것으로 보이는데 6세기 이후의 유물이 발견되지 않기 때문으로 아마도 고구려의 침입 또는 자연재해로 사라진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1,600년 뒤 발견된 나성리 유적은 세종시에 들어선 아파트와 상업시설로 인해 아예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새로운 계획도시를 만들기 위해 고대 계획도시가 사라진 겁니다. 문화재나 유적은 한 번 훼손되면 회복이 불가능합니다. 어쩔 수 없다는 점은 잘 알지만 좋게 생각하자면 어차피 세종시는 1,600년 전부터 계획도시가 될 운명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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