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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장 포크레인 바가지에 걸린 1500년 전 돌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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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아무렇지 않게 냉장고나 냉동고를 열어 시원한 음료수를 마실 수 있지만 1875년 독일의 ‘카를 폰 린데’가 세계 최초로 냉각기술을 발명하기 전까지는 이런 시원한 음료는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전에는 어땠을까요? 물론 겨울에는 눈도 있고 얼음도 얼기 때문에 마음껏 시원한 음료수를 마실 수 있었겠지만 봄부터 가을까지는 아마 꿈도 못 꿨을 겁니다.

그런데 여기 전북 익산에서 공원을 조성하던 공사장에서 포클레인 바가지에 돌덩이 하나가 끌려 나왔는데 그 아래에서 1,500년 전 냉장고가 발견됐습니다. 전북 익산이고, 1,500년 전인 6세기면 백제가 번성하던 시기였는데 현대식 냉장고가 발명되기 1,300년 전에 우리 조상들은 냉장고라도 만들어 사용했던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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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분야의 차이겠지만 삼국시대를 구축했던 3개의 국가 중 백제의 기술력은 굉장히 세련되고 고도화되었던 것으로 인정됩니다. 다른 국가들과는 달리 백제는 수도를 여러 번 옮겼는데 현재 서울 강남 일대인 한성을 수도로 삼았다가 475년 지금의 공주 지역인 웅진으로 도읍을 옮겼습니다. 그리고 약 60년 뒤인 538년에는 현재의 부여인 사비로 다시 한번 천도했죠.

그런데 백제가 무엇보다 유명했던 것은 기술력입니다. 신라시대에는 3개의 보물이라 하여 ‘신라삼보’라는 것이 있는데 그중 경주의 명동과도 같았던 황룡사에 2개가 있었습니다. 황룡사장육존상, 황룡사9층목탑인데 약 80m 높이의 목탑을 쌓을 기술자가 신라에는 마땅치 않아 선덕여왕은 백제의 장인 아비지를 직접 초청해 지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만큼 백제의 장인 솜씨가 뛰어났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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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기술력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또 다른 유물은 1971년 무령왕릉 발굴 과정에서 발굴된 ‘금제 관 꾸미개’입니다.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무령왕 금제 관 꾸미개의 경우 그 화려함에 넋을 놓게 만드는데요. 아주 얇은 금판에 화려한 당초무늬와 불꽃무늬를 기본으로 관 전체의 구슬 모양의 꾸미개를 금실로 꼬아서 달았습니다.

불꽃이 타오르는 듯 화려한 모양새를 갖췄는데 이게 과연 1,500년 전 우리 조상이 만든 기술이 맞나 싶을 정도로 대단한 세공 기술을 자랑하죠. 이렇듯 백제는 한성백제 시기에는 고구려적인 성격을 강하게 보이고 웅진 및 사비로 천도하면서는 중국의 남조 문화를 받아들여 세련되고 우아한 문화를 만들어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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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중국의 문물을 받아들여 이를 백제화한 뒤 다시 일본에 전수해 고대 동아시아 공유 문화권을 형성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했죠. 그런데 얼마 전 백제의 선진 과학기술의 진수를 보여주는 유적 하나가 발굴됐습니다. 아마 서동과 선화공주의 천년 러브스토리는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이야기입니다.

백제의 전성기를 이끈 제30대 무왕이자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의 친부이기도 한 서동은 신라 제26대 진평왕의 딸 선화공주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서로 다른 국적을 가진 백제의 왕과 신라의 공주는 이어질 수 없는 인연이었기 때문에 서동은 선화공주와 결혼하고 싶은 마음에 경주의 아이들에게 동요를 부르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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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바로 신라 향가 중 하나인 ‘서동요’죠. 이에 전북 익산시는 서동의 탄생지인 금마면 서고도리 마룡연못 주변에 ‘서동역사문화공원’을 조성하기로 하고 2017년부터 굴삭기 등 중장비를 동원해 공원 조성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올 3월 포클레인 바가지에 돌 하나가 쑥 뽑혀 올라왔는데 그 아래에서 돌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유적이 발견됐습니다.

즉각 문화재청의 발굴조사가 시작됐죠. 그리고 마침내 이 유적은 백제시대의 대형 석축 저온 저장 시설임이 밝혀졌습니다. 쉽게 말하면 백제판 냉장고 2기가 발견된 겁니다. 발굴된 저온 저장고 2기는 풍화된 암반층을 직사각형으로 2m가량 파낸 후 사방에 잘 다듬은 돌들로 촘촘하게 쌓아 벽체를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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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다리를 타야 겨우 오를 수 있을 정도로 깊었죠. 바닥은 사질점토와 잡석을 섞어 매끈하게 만들어 습기를 차단했는데요. 두 저장고는 각각 1호기, 2호기라고 이름 붙였는데 1호기는 길이 4.9m, 너비 2.4m, 높이 2.3m이고 2호기는 길이 5.3m, 너비 2.5m, 높이 2.4m입니다. 당시 발굴을 담당했던 발굴자들이 이를 저온 냉장 시설이라 확신한 것은 더운 기온을 빼내는 통기구 때문입니다.

저장고마다 동쪽 벽 윗부분에 3개의 통기구를 설치했는데 쪼갠 돌인 판석과 길게 다듬은 장대석을 사용해 50cm 정도의 간격을 두고 밖에서 안으로 약 20도 기울여 돌출되게 설계했습니다. 즉, 찬 공기를 스며들게 하면 찬 공기는 바닥에 깔리고 더운 공기는 상승하게 되는 대류의 원리를 이용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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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장고 안에서 발생하는 더운 공기를 자연적으로 밖으로 배출하고 내부 온도를 차갑게 유지하기 위한 공법이었죠. 물론 이것이 얼음을 보관하기 위해 만든 석빙고가 아닌가 하는 주장도 제기됐지만 통기구만 있을 뿐 얼음 녹는 물을 빼내는 배수구가 발견되지 않아 냉장고로 결론지었는데요.

그런데 저장고 바닥에서는 실제 백제인들이 먹던 식재료의 흔적도 확인됐습니다. 1호 저장고에서는 참외, 들깨 등의 재배 작물과 딸기 속, 다래, 포도 속, 산뽕나무와 같은 채집 과일이, 2호 저장고에서는 참외, 밀, 조, 팥 등의 재배작물과 다래, 포도 속과 같은 채집 과일이 검출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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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사실을 종합해 보면 이 저장고 2기는 치밀한 설계에 따라 건축된 당대 최고 과학기술의 집약체로 오늘날 냉장고와 같은 기능을 했던 왕실 시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간 백제 지역에서 발견된 저온 저장고는 도읍이었던 공주 공산성과 부여 관북리 유적 등 궁궐로 추정되는 유적에서만 확인됐었으나 냉장 시설이 확실한 유적이 발견된 것은 처음입니다.

부와 권세를 갖춘 당대 상류층이 과일과 채소, 곡물 등을 낮은 온도에 보관하면서 수시로 꺼내먹었던 정황을 보여주는 시설이 온전하게 발견됐다는 점에서 백제의 왕실 문화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을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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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 현장에서는 2기의 저온 저장고 외에도 땅 위나 땅속에 기둥을 세우거나 박아 만든 고대 건물터 3동, 구상유구 1기, 조선시대 기왓가마 5기 등이 확인됐습니다. 또한 벼루 조각, 전달린토기 조각, 뚜껑 조각, 암수키와 인장와 등의 유물도 나와 장기적인 조사가 필요해 보입니다. 문화재청 역시 이번 성과를 바탕으로 유적의 보존 및 활용 방안을 수립할 계획으로 알려졌습니다.

사실 저온에 식재료를 보관하는 냉장고의 경우, 동굴과 같이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전혀 특별한 것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실 듯합니다. 하지만 이를 자연이 아니라 인간이 직접 설치하고 이를 활용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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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우리나라의 석빙고 문화를 보면 우리 민족이 얼마나 과학에 진심이었는지 알 수 있는데 심지어 그 기술은 2023년 현재에도 활용되고 있죠.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신라시대에 이미 석빙고라는 얼음을 보관하던 창고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축조된 빙고는 남아있지 않고 고려시대의 석빙고 유구도 발견된 바 없습니다.

조선시대에는 동빙고와 서빙고를 만들어 겨우내 꽁꽁 언 한강의 얼음을 저장해 사용했죠. 그래서 조선시대 삼복더위가 되면 벼슬아치들에게는 얼음을 나눠줘 더위를 이기도록 격려하기도 했는데요. 빙고의 축조 방법은 대개 일정하고 규모 또한 비슷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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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에 깊게 굴을 판 후 안쪽 벽을 석재로 쌓아 올리고 내부 밑바닥은 장방형으로 경사지게 했습니다. 얼음이 녹아 생기는 물이 경사진 면을 따라 빠질 수 있도록 배수구까지 설치했죠. 천장은 잘 다듬어진 돌로 짜 올린 무지개 모양의 문을 4~5개씩 연결해 궁륭형을 이루었고 그 사이마다 환기 구멍을 만들어 공기가 흐르도록 했습니다.

일정 부분에 있어서는 이번에 발견된 백제판 냉장고와 흡사한 기술력을 느낄 수 있는데요. 또한 건축물 위로 흙을 덮고 잔디를 입혔는데 조선시대에 만든 경주 석빙고의 경우 환기 구멍에 벽체를 세우고 뚜껑을 덮어 빗물이나 직사광선이 침투하지 못하도록 설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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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복잡한 기술이 접목된 석빙고는 우리 조상들이 자연의 순환 원리를 깨닫고 생활에 활용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소중한 과학문화유산입니다. 물론 한강의 얼음을 자르고 이를 빙고까지 운반하고 좁은 빙고에서 무겁고 차가운 얼음을 쌓는 일은 전부 일반 백성의 노동이었기 때문에 한강 인근의 젊은이들은 채빙 부역을 피해 도망을 다니기도 했다고 하죠. 그래서 도망간 청년들을 기다리는 어린 부인들을 일컫는 빙고청상이라는 말까지 생겼습니다.

그런데 현재 우리는 우리 조상들의 앞선 기술력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무풍 에어컨인데요. 무풍 에어컨은 이름과는 달리 바람이 전혀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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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에어컨은 실외기에서 냉매가 지나가는 관을 통해 큰바람 배출구로 차가운 바람을 불어넣지만 무풍 에어컨은 바람 배출구가 아니라 미세한 본체의 홀을 통해 배출하는 겁니다. 바람을 직접 불어서 내보내는 것이 아니라 바람을 새어 보내는 개념이죠.

국가과학기술연구회는 겨우내 내부 돌담 날개벽을 냉각시키고 이후 얼음을 넣어 7~8개월 동안 내부를 차갑게 유지할 수 있는 석빙고의 복사 냉방 원리를 이용한 것으로 무풍 에어컨을 설명했습니다. 이 무풍 에어컨은 삼성전자가 지난 2016년 세계 최초로 개발했는데 우리 조상들의 과학기술을 접목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과거의 기술 현재 우리나라 기업이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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