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전편보다 나은 속편 없다’라는 말 들어 보셨나요? 보통 영화나 드라마, 소설 같은 문학 작품에서 주로 쓰이는 말이죠. 첫 편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던 작품은 이후 후속편을 준비하면서 막대한 부담감에 휩싸이게 됩니다. 첫 편에 대한 좋은 감정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 여기에 더 나은 점을 기대하는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기 때문이죠. 후속편이 기대를 충족해 더 큰 프랜차이즈 작품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있지만, 안타깝게도 후속편을 만들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고 사라지는 경우도 상당히 많죠. 자동차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야기지만, 이 업계에서도 드문드문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오늘은 한때 ‘시장의 지배자’, 그랜저를 위협할 정도로 존재감이 컸으나 지금은 놀라울 만큼 소비자의 시선에서 멀어진 ‘비운의 준대형 세단’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르노삼성의 세 번째 라인업이자 그랜저가 독식하던 국내 준대형차 시장에 새로운 선택지를 제공했던 차, 시작은 창대했지만, 후속 모델이 실패하면서 단 2세대로 끝나버린 차. 이번 시간에는 삼성맨의 차 르노삼성 SM7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SM7 이야기│고급 중형차의 새로운 패러다임]
1998년 첫 등장한 삼성자동차의 SM5는 국내 중형차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삼성은 현대차를 견제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부었고, 그 결과물로 나온 SM5는 ‘삼성이 만들면 다르다’는 말이 허언이 아니었음을 입증했죠. 당시 최신 쏘나타를 압도할 만큼 뛰어난 품질을 자랑했습니다. 지금까지도 많은 소비자에게 ‘명차’로 각인되어 있죠. 하지만 IMF 외환위기로 인해 많은 기업이 쓰러지게 됐고 제조업의 꽃인 자동차 산업 역시 무사할 수 없었죠. 당시 상황은 간단하게 요약하기조차 힘듭니다. IMF는 삼성차뿐만 아니라 국산 자동차 업체 전반의 운명이 크게 바뀐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삼성차는 프랑스 ‘르노 그룹’에 매각되어 ‘르노삼성자동차‘로 새롭게 출범했죠. 이후 IMF가 해소되고 내수 시장이 다시 활기를 띠자 중형차 판매량도 자연스럽게 상승하게 됩니다. 참 희한한 나라예요. 예전부터 소형차보다 중형차가 더 많이 팔린다는 게. 르노삼성은 주력 제품인 SM5의 신선함이 슬슬 떨어지자 후속 모델을 계획하게 되었습니다. 모기업 르노와 협력 관계에 있던 닛산으로부터 안정적인 기술 지원받은 르노삼성은 후속 역시 닛산의 신용 모델을 들여와 출시하기로 결정합니다. 더 많은 이익을 낼 수 있는 준대형차를 새롭게 출시할 계획까지 세우죠.
가장 큰 이유는 소득이 증가함에 따라 중형차를 타던 고객이 자연스럽게 차급을 올리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르노삼성은 이전에 SM5를 타던 소비자가 브랜드를 이탈하지 않도록 새로운 고급 차를 제공해야 했어요. SM5에도 그랜저XG와 직간접적으로 경쟁하던 SM525V 모델이 있었기 때문에 준대형차를 출시할 명분도 충분했습니다. 4개 회사가 참여해 경쟁이 치열했던 중형차에 비해 준대형차 시장은 그랜저와 오피러스 단 두 차종이 독점하고 있어서 틈새를 파고들 만했죠.
[SM7│2004~2008]
2004년 말 출시된 1세대 SM7은 전작 SM5의 베이스 모델이었던 닛산 세피로의 후속 티아나를 기반으로 제작되었습니다. 고전적인 90년대 세단에서 벗어난 세련된 디자인 및 편의 장비, 고사양 파워트레인을 갖추면서 그랜저와 경쟁하기에 부족하지 않은 상품성으로 무장했죠.
다만 두 달 뒤 출시된 2세대 SM5 역시 티아나를 기반으로 했고, 겉보기에 SM7과 큰 차이 없는 모습으로 등장하면서 이에 대한 지적이 꼬리표처럼 오랜 기간 따라다녔습니다. 실제로 원본인 티아나를 보면 SM5와 SM7 사이 그 어딘가에 있는 듯한 모습이에요. 하나는 고급형, 하나는 염가형으로 만들어야 했던 당시 르노삼성 실무진들의 고심이 어렴풋이 느껴지죠? SM5의 테일램프가 왜 이 모양으로 나왔는지 짐작이 가네요.
당시 닛산 차 특유의 스타일링을 그대로 이식한 외관은 적당한 볼륨감과 날카로운 선이 돋보이는 범퍼 디자인으로 꽤 스포티한 인상이었습니다. BMW의 디자인 포인트로 잘 알려진 ‘호프마이스터 킨크’ 형태의 C필러 등 수입차에서나 봤던 디테일도 신선함을 더했죠.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색채가 강했던 그랜저에 비해 확실히 젊은 감각이 돋보였습니다. 오묘한 디자인의 전용 휠과 크롬 장식, LED 테일램프 등으로 꾸미면서 고급 차라는 느낌 역시 충분히 전달했어요.
특히 번호판을 범퍼 하단에 배치하고 듀얼 머플러를 추가해 중후한 느낌을 더한 점이 SM5와 가장 큰 차이가 느껴지는 부분이었습니다. 보닛 끝에 자리한 오너먼트 엠블럼도 나름 제 역할을 충실히 했고요. 전장만큼은 출시 당시 경쟁차인 그랜저XG를 압도할 만큼 길었고 이후 등장한 그랜저TG에도 밀리지 않았습니다. 다만 전장을 순전히 앞뒤 범퍼를 늘려 확보했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베이스 모델인 닛산 티아나의 전장이 4,770mm, 휠 베이스가 동일한 SM7의 전장이 4,945mm였으니 범퍼의 길이만으로 한 체급을 뻥튀기했던 것이죠.
이어 담백한 디자인의 SM5가 뒤따라 나오면서 SM7에 튀어나온 범퍼가 더 부각됐고, 긴 프런트 오버행으로 ‘범퍼 신공’ 등의 별명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한술 더 떠 에쿠스를 능가하는 초대형 세단, SM9 라인의 예상도가 인터넷을 떠돌았죠. 이에 더해서 폭이 좁은 일본의 도로 환경이 반영된 티아나를 그대로 따랐기 때문에 전폭이 좁은 것도 단점이었습니다. 좌우 대칭 구조의 실내는 15년이 훌쩍 넘은 지금 봐도 참 세련됐죠. 이른바 ‘거실 인테리어’로 불렸는데 도시적이면서 정돈된 느낌을 선호했던 여성 고객들이 특히 선호했습니다. 화사한 베이지 가죽 시트와 우드 그레인으로 꾸며진 실내는 아늑함이 돋보였죠.
스포티한 느낌을 강조한 XE 트림은 푸른 스웨이드 시트와 밝은 갈색 우드 그레인을 포인트로 젊은 감각을 더하기도 했습니다. 저 3-스포크 스티어링 휠은 지금 봐도… (정말 못생겼네요) 국산 차 최초로 적용된 카드 타입 스마트키, 운전석 메모리 시트, 공기청정기, 후방 카메라가 포함된 DVD 내비게이션 등 고급차다운 편의 사양으로 무장했습니다. 탑승객을 향해 툭 튀어나온 센터페시아는 수많은 버튼을 품었지만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복잡한 느낌을 덜어냈습니다. 조작 편의성을 높인 것이 특징이었죠. 동굴형으로 자리 잡은 인포테인먼트는 내비 매립에 최적화된 디자인으로 애프터마켓 내비게이션을 시공하는 게 거의 국룰이었을 정도입니다.
SM5와 함께 당시 카오디오 매장의 매출과 애프터마켓 내비게이션의 품질을 올리는 데 큰 공을 세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특히 내비게이션을 선택하지 않아도 단색의 LCD 모니터로 오디오 및 공조 정보를 띄워 주면서 빈약한 느낌이 들지 않도록 디자인한 것도 좋은 부분이었습니다. 이 깔끔한 인테리어는 SM5도 동일했습니다. NF쏘나타의 투박한 인테리어에 망설이던 소비자를 르노삼성으로 끌어들인 강력한 무기가 됐죠.
실내 크기도 SM5와 동일했습니다. 뒷좌석 전동 블라인드와 열선 시트, 다기능 암레스트로 SM5와 차별화된 편의 장비를 탑재하기는 했지만, 준대형 세단임에도 뒷좌석 공간이 중형차와 동일하다는 부분에서 경쟁차인 그랜저와 비교되며 출시 당시부터 지적받았습니다. 이것 때문에 쇼퍼드리븐 수요는 거의 없었죠.
다만 센서가 작동하면 전개되는 1차원적 ‘디파워드 에어백’ 일색이던 당시 국산 차와는 달리 충격량에 따라 에어백 작동 조건을 달리해 에어백으로 인한 상해를 줄이는 ‘스마트 에어백’ 및 ‘사이드/커튼 에어백’을 전 트림에 기본 적용한 것은 분명한 장점이었습니다. 다행히 파워트레인은 모두 6기통과 5단 자동 변속기로 구성하면서 SM5와 확실하게 결을 달리했습니다.
‘기술의 닛산’에 뿌리를 둔 모델답게 고급차다운 편안한 승차감을 갖추면서도 움직임은 경쟁차 중 가장 민첩했죠. 특히 명불허전 닛산의 명기, ‘VQ 엔진‘에 대한 평가가 상당히 좋았는데요. 주력 판매 모델이었던 2.3L 모델은 낮은 배기량이었음에도 쾌적한 성능을 제공했고, 6기통의 부드러운 주행 질감은 4기통 중형차와 확연히 구분됐죠.
물론 연비 역시 확실히 대형차다웠습니다. 상위 트림인 3.5L는 부담스러운 배기량과 연비로 판매량이 많지는 않았지만, 넉넉한 힘과 경쾌한 달리기 실력은 당시 최신 람다 엔진을 탑재한 그랜저TG보다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어요. 비록 ‘일반유 세팅(디튠)’을 하느라 ‘인피니티’에서 사용하던 같은 엔진에 비해 힘은 좀 떨어졌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뛰어난 성능을 제공했습니다. 덕분에 ‘초대 인터넷 슈퍼카’를 뽑으면 이 3.5L 모델이 빠지지 않고 등장하죠.
여기에 SM5에서는 선택의 기회조차 없었던 ‘차체 자세 제어장치(VDC)’가 기본 적용돼 더 안정적인 주행이 가능했습니다. 나중에는 연식 변경을 통해 고급 사양을 추가한 ‘플레저’ 트림, 한정판 ‘프리미에르 에디션’을 출시하기도 했습니다. 17인치 전용 휠과 위성DMB를 지원하는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뒷좌석 모니터, 뒷좌석 전동 리클라이닝 시트를 추가하는 등 쇼퍼드리븐에 어울리는 고급 장비를 갖췄습니다. 그러나 기존에도 편의 장비 문제가 아니고 공간이 문제였기 때문에 판매량에 큰 영향을 주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고급 차라는 인식을 더 확고히 심어줄 수 있는 옵션이었고, 비즈니스 세단이라는 용도를 떠올리면 납득이 가는 구성이었죠.
SM7은 쏘나타-마르샤, 그랜저-아슬란의 관계와 비슷했습니다. 하지만 두 차량의 결과가 처참했던 것에 비하면 SM7은 나름 성공적인 케이스였죠. 당시 시장의 상황과 더불어 판매 전략이 잘 맞아떨어졌다는 분석이 많았습니다. 고급형 모델인 SM7을 먼저 출시하고, SM5를 나중에 투입한 전략이 의외로 먹혀든 것이죠.
출시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계약 대수가 1만 대가 넘을 정도로 초기 소비자 반응은 폭발적이었지만, 이듬해 2005년 누적 판매량은 2만 6천여 대로 마무리해 높은 인기를 구가하지는 못했습니다. 우려했던 대로 SM5와 판매 간섭이 이루어지기도 했고 신형으로 탈바꿈한 그랜저의 네임밸류가 너무 막강하기도 했죠. 다만 국내 대형차 판매량 2위를 지키며 존재감만큼은 확실했고, 그랜저에 독주에 대응할 경쟁차가 생겼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습니다.
[SM7 뉴아트│2008-2011]
2008년에는 그릴과 램프, 범퍼 등 디자인을 대폭 수정한 페이스리프트 모델, SM7 뉴아트가 출시됐습니다. 전작에서 SM5와 이미지가 겹친다는 지적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기 때문이었을까요. 이전의 샤프한 디자인을 부드럽게 다듬으면서 인상이 크게 달라진 것이 특징이었어요. 다만 바뀐 디자인에 대한 반응은 호불호가 갈렸습니다. 준중형차인 SM3와 패밀리룩을 이룬 전면부는 안 그래도 컸던 헤드램프가 더 커진 데다 곡선이 가미되면서 더 올망졸망해져 대형차의 카리스마가 다소 희석됐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죠.
특히 리어램프에서 독립해 트렁크 한가운데 자리 잡은 후진 등은 변화에 대한 강박이 엿보이는 부분이었습니다. 오돌뼈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어요. 그래도 ㄷ자 포인트를 더한 LED 리어램프와 범퍼 매립형 듀얼 머플러, 사이드미러 방향 지시등이 추가되면서 당시 디자인 트렌드는 충실히 따른 모습이었죠. 휠 디자인도 새롭게 손봤는데요. 기존의 휠 디자인도 세련됐기에 그대로 이용해서도 불만은 없었겠지만, 달라진 휠 역시 차와 잘 어울렸습니다. 개인적으로 새로 추가된 은색과 하위 트림 17인치 휠 조합이 참 깔끔해서 마음에 들었었죠.
페이스리프트 모델인 만큼 실내의 변화는 크지 않았습니다. 레이아웃은 그대로였지만 새로운 내장 컬러와 고강택 우드 그레인을 추가했고, 기존의 주황색 조명을 밝은 화이트 톤으로 바꾸는 등 소소한 디테일만 수정했는데요. 올드한 느낌을 꽤 덜어냈고 한결 깔끔한 인상을 줬죠. 또 USB 슬롯이 더해져 더 편리하게 음악을 감상할 수 있었고, 10개의 고급형 스피커로 이루어진 ‘BOSE 사운드 시스템‘이 추가된 것도 ‘뉴 아트’라는 서브네임에 어울리는 세일즈 포인트였죠. 앞뒤로 움직일 수 있는 ‘스티어링 휠 텔레스코픽’ 기능도 이 모델부터 추가됐습니다. 그전에는 이게 왜 없었죠?
파워트레인은 이전 모델과 변화가 없었고, 뛰어난 정숙성과 안락한 승차감도 여전했습니다. 전작에 비해 가격이 꽤 많이 올랐는데, 여러 편의 사양이 더해지기는 했지만 납득할 만큼의 가격 인상은 아니어서 단순한 고가 마케팅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위 트림은 가죽 시트가 직물 시트로 대체되는 등 일부 사양이 전작보다 안 좋아졌음에도 오히려 가격은 올랐죠.
1세대 SM7은 과거 SM5에서 이어졌던 좋은 이미지, 고객 신뢰도를 등에 업었고 이번에도 기본기가 뛰어난 닛산 모델을 베이스로 한 만큼 동급 경쟁 차와 비교해 확실한 경쟁력이 있었습니다. 르노삼성의 개발 여력이 동시대 현대 기아차 GM 대우에 비해 부족했던 것을 감안하면 주력 차종인 대를 연달아 내놓은 것치고는 시장의 반응이 호의적이었죠.
주어진 것을 최대한 활용해 최선의 결과를 이끌어낸 르노삼성 기술진의 ‘노고의 산물’이라고 하는 게 좀 더 적절한 표현일까요. 여담으로 이때의 르노삼성은 세련된 이미지가 상당히 강한 브랜드였습니다. 특히 SM7은 ‘성공한 샐러리맨의 차‘, ‘고소득 전문직의 차‘라는 인식이 있었는데요. 국내 굴지의 대기업 ‘삼성’이라는 타이틀 덕분에 삼성 계열사와 협력사 등 여러 이해관계에 있던 직원이 법인 차량으로 많이 이용했으므로 일정 부분 사실이기도 했죠.
또 부모님 차를 끌고 나온 듯한 그랜져의 고리타분한 느낌에 비해 SM7의 상대적으로 날렵하고 세련된 디자인이 젊은 소비자들에게 좋게 다가왔던 것도 주효했죠. 그중에서도 여성 고객의 선호도가 높았기 때문에 당시 소개팅을 나갈 때 수입차 못지않은 필승 아이템으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한편 초기형 3.5L 모델의 경우 10만 km를 전후로 엔진 오일이 과도하게 소모되는 고질병이 드러났고, 르노삼성에서도 결함을 인정해 증세가 심각한 차량의 엔진을 무상 교체해 주는 등 여러 말썽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후기형인 뉴아트는 다행히 이를 보완해 동일한 증상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하네요. 다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0년 이상 운행한 차량의 ‘리어 멤버’가 심각한 수준으로 부식되면서 주행 중 뒷바퀴가 주저앉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성이 제기됐습니다. 뛰어난 내구성으로 신뢰를 쌓아왔던 삼성의 명성에 슬슬 흠집이 나기 시작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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