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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 돌아 중종의 대를 이은 최후의 여인 창빈 안 씨… 묻힌 자리마저 행운이?

역사 조선시대 조선왕조실록 왕비 후궁 korea kingdom history

창빈 안 씨는 조선 제11대 왕인 중종의 후궁으로, 본관은 안산이며 덕흥대원군의 생모이자 선조의 할머니입니다. 그녀는 1499년 음력 7월 27일 금천에서 안탄대와 황 씨의 딸로 태어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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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아버지 안탄대는 집안이 가난했지만, 평생 겸손하고 근신하며 살았으며, 1506년 연산군을 몰아낸 중종반정에 참여하면서 원종공신이 되어 종 7품 적순부위의 품계를 받게 됩니다.

후일 자신의 딸이 후궁이 되지만 부귀영화를 사양하고 검소하게 생활하였으며, 딸에게 피해가 되지 않으려고 집 밖을 나가지 않을 정도로 조용히 살았습니다. 성품이 매우 순하고 부드러워 다른 사람과 다투는 일이 없었던 그는 사후 우의정에 추증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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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빈 안 씨는 1507년 9살의 나이로 내명부의 궁녀로 입궁하게 되는데, 뛰어난 미모는 아니었지만, 행동이 정숙하고 참하여 왕실의 어른이자 중종의 모후인 왕대비 정현왕후의 눈에 들어 그녀를 모시게 됩니다.

그리고 대비의 후원으로 20세가 되던 1518년 중종의 승은을 입게 되었고, 22세의 나이인 1520년 정 5품 승은 상궁에 오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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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창빈 안 씨는 중종과의 사이에서 3남 1녀를 두었는데, 1521년 첫째 아들 영양군 이거를 낳았고, 1526년 정신옹주를 낳았으며, 1529년 31세의 나이로 종 4품 숙원의 첩지를 받고 중종의 공식적인 후궁이 됩니다.

이후 1530년 선조의 아버지가 되는 덕흥군 이초를 낳게 되지만, 안타깝게도 둘째 아들인 이이수가 일찍 세상을 떠나게 되는 아픔을 겪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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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0년 종 3품 숙용으로 품계가 오르고, 이후 정 3품 소용의 지위에 오른 그녀는 성품이 단정하고 온화했기에 중종의 왕비 문정왕후의 신뢰와 인정을 받게 됩니다. 이후 1544년 중종이 승하하게 되고, 그녀는 3년 상을 치른 후 궁을 떠나 관례대로 승려가 되려고 했지만, 문정왕후의 만류로 계속 궁궐에서 살게 됩니다.

그리고 후일 창빈 안 씨가 사망한 후에도 문정왕후가 그녀의 자녀들을 돌보아주었을 정도로 그들의 사이는 각별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영향으로 문정왕후의 아들인 명종 역시 창빈 안 씨의 막내아들인 덕흥군의 집안과 사이가 좋았는데, 이것이 훗날 하성군이 즉위하는 계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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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빈 안 씨는 1549년 음력 10월 18일 궁에서 사가로 잠시 나갔다가 특별한 병증도 없이 51세의 나이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이후 세월이 흘러 명종이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나자 명종비 인순왕후는 창빈 안 씨의 손자인 하성군을 후계로 낙점하였고, 결국 1567년 덕흥군의 셋째 아들인 하성군이 조선 제14대 왕에 오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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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는 1577년 정 3품 소용의 지위로 세상을 떠난 자신의 친할머니를 정1품 빈으로 추존하고 창빈의 칭호를 내렸으며, 첫째 형 하원군 이정에게 제사를 지내도록 명했습니다. 이렇게 선조 이후의 조선시대 왕들은 모두 그녀의 후손들로 중종 대의 유명한 왕실 여인 중 최후의 승리자가 됩니다.

참고로 중종의 유명한 여인들은 정비이자 7일의 왕비로 유명한 단경왕후, 계비 장경왕후, 제2계비 문정왕후, 후궁으로는 경빈 박 씨, 희빈 홍 씨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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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빈 안 씨는 1549년 음력 10월 18일에 세상을 떠나 이듬해 3월 양주 장흥에 묻혔으나, 이곳이 풍수상 불길하다 하여 경기도 과천군 상북면 동작리로 이장하게 됩니다. 이렇게 동작리에 이장된 지 20년이 채 안 된 1567년 하성군이 왕위에 오르자 그곳이 명당이라는 소문이 퍼지게 됩니다.

그녀의 묘는 동작릉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게 되는데, 이곳은 약 400년 후 이승만 대통령의 명으로 6·25전쟁 전사자를 위한 국군묘지가 되었고 확장을 거듭하여 현재의 동작동 국립묘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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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도 국립현충원의 중심지는 창빈 안 씨 묘역으로, 그녀의 무덤 근처에 전직 대통령들과 장군들의 묘역들이 즐비한 것이 바로 명당의 반증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창빈 안 씨의 손자 선조는 이러한 영향을 받아 임진왜란·정유재란의 혼란한 상황 속에서도 풍수에 집착하였고, 당시 명나라 군대와 동행한 중국 풍수사들을 우대하고 맹신하면서 많은 폐해를 낳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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