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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덕분에 발견한 8,000년 전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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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거북선이라는 단어에서 무엇을 떠올리시나요? 따지고 보면 조선 시대 왜군을 물리쳤던 전투함이지만 우리 민족에게 거북선은 그리 단순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물론 거북선이라는 이름 옆에 성웅 이순신 장군이 항상 함께 등장하는 것도 한몫합니다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거북선은 우리에게 단순한 배도, 전투함도 아닌 우리 민족의 우수성과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는 상징과도 같습니다.

현대 그룹 창업주 정주영 회장은 ‘우리는 1500년대에 이미 철갑선을 만들었소. 영국보다 300년이나 앞서 있었는데, 산업화가 늦어져서 아이디어가 녹슬었을 뿐’이라며 500원 지폐에 그려진 거북선 그림으로 500억 원의 차관을 영국으로부터 얻어내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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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우리나라 조선업이야 세계 최고로 명성이 자자하지만, 사실 거북선 이전에도 우리 조상들의 선박 건조 능력은 대단했습니다. 이미 조선 시대에 거북선을 제외하더라도 판옥선, 포작선, 협선, 사후선 등 그 종류가 상당히 많았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임진왜란 당시 거북선과 이순신 장군의 역할이 상당했지만, 선박 건조 능력이 일본보다 월등히 앞서 있었기 때문에 왜군을 물리칠 수 있었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요. 9세기경 당나라를 여행한 후 ‘입당구법순례행기’를 쓴 일본 승려 ‘엔닌’은 ‘신라 배는 작지만 날렵하고 강하다.’라고 썼고 고려를 세운 태조 왕건은 길이 30m가 넘는 거대한 전함을 직접 건조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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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나라 왕휘가 쓴 ‘범해소록’이라는 책에는 여몽연합군의 일본 정벌 당시 ‘크고 작은 함선들이 파도에 다 부서졌으나 유독 고려의 전선은 배가 견고하여 온전했다.’는 내용이나 ‘고려의 배는 강하기 때문에 고려에서 배를 건조해 다시 일본을 정벌하면 이길 수 있다.’라는 기록이 남아 있기도 하죠.

하지만 이렇게 뛰어난 선박 건조 능력을 갖춘 우리 조상들이지만 도대체 언제부터 이런 능력이 생겼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습니다. 일본만 해도 신석기시대, 즉 조몬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목선 100여 개가 발견됐지만 한반도에서는 이러한 유물이 나타나지 않아 조바심만 커져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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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9월 한국을 휩쓴 거대한 태풍 ‘매미’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2004년 4월 태풍이 휩쓸고 간 경남 창녕으로 이동해 보겠습니다. 2003년 9월 10일 한반도를 휩쓴 제14호 태풍 ‘매미’는 한반도 전역에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혔으나 유독 경남 지역을 초토화시켰습니다.

130명의 사상자, 1만 채에 가까운 주택이 파괴된 것은 물론 도로와 30개의 다리를 붕괴시키는 등 4조 2,225억 원의 재산 피해를 입힌 매미는 1959년 사라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큰 피해를 남겼습니다. 피해를 입은 것은 낙동강과 인접한 경남 창녕군 부곡면 비봉리도 마찬가지였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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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돌릴 수 없는 피해의 원인은 양수와 배수의 문제라고 결론지은 창녕군은 군청이 직접 나서서 태풍 때 완전히 침수됐던 비봉리 양, 배수장을 확장하기로 했는데요. 그리고 2004년 4월 매미보다 강한 폭우도 감당할 수 있도록 펌프 용량을 늘리고 그에 걸맞게 물이 머무를 유수지를 새로 파는 작업을 시작했는데, 굴착기 바가지에 조개더미가 줄줄이 끌려 나오기 시작합니다.

사실 패총이라고도 불리는 조개더미야 그냥 지나칠 수 있지만 고고학자들에게 패총은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왜냐하면 패총은 해안이나 강변 등에 살던 옛 조상들이 먹고 남은 뼈나 껍데기 또는 쓸모없어진 생활용품을 패총에 버렸기 때문에, 즉 패총은 옛 조상들의 쓰레기장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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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이나 강변이라면 자연스럽게 조개껍데기가 쌓일 수 있지만 창녕의 비봉리는 내륙 지방입니다. 내륙지방에서 발견된 쓰레기장은 정착 생활의 증거가 되기 때문에 공사는 즉각 중단되고 발굴이 시작됐죠. 이 소식을 접한 임학종 당시 국립진주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은 서둘러 조사단을 꾸려 비봉리로 내려갔습니다.

보통 패총이 발견된 곳에서는 조개껍데기에 함유된 석회질 성분으로 인해 토기와 같은 고대 유물이 비교적 온전하게 발견되는데 임 실장이 비봉리에 도착해 살펴보니 오래된 나뭇가지, 바닷조개, 빗살무늬 토기 등이 나왔습니다. 즉각 선사시대 패총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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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단은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습니다. 그간 패총이 해안가에서 발견된 적은 있었지만, 대부분은 세월의 흐름과 파도의 충격으로 훼손되었지만 비봉리는 저지대 습지 지역이라 선사 시대 유물의 원형이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해 11월부터 본격적인 발굴이 시작됩니다. 비봉리 패총은 총 5개 층으로 구분됩니다. 아래 3개의 층은 8,000년~6,500년 전, 위에 2개 층은 각각 6,500년~5,500년 전과 5,500년~4,000년 전으로 짐작되는데요. 수천 년의 시간을 견딘 유물 중 눈길을 끄는 유물들은 대부분 가장 위층에서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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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역사상 최초의 똥 화석과 망태기가 나왔고, 장신구도 발견되었죠. 사실 장신구가 나왔다는 것은 당시 우리 조상들이 먹고살기 넉넉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먹고살기 넉넉해진 후에야 몸단장을 신경 쓰니까요.

당시 식생활을 엿볼 수 있는 유물들도 등장했는데, 재첩, 굴, 꼬막 껍데기는 물론 상어 척추, 가오리 꼬리뼈 등이 나왔고, 사슴, 멧돼지, 개, 늑대, 소, 고라니, 꿩, 오리 등의 뼈도 발견됐습니다. 그중 가장 충격적인 것은 바로 도토리였습니다. 비봉리에서는 총 90여 개의 저장 구덩이가 발견됐는데 바닷물에 도토리를 썩지 않도록 보관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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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는 떫은맛을 내는 타닌 성분이 있는데 아마 선사시대 조상들도 이 성분을 없애는 데 짠물이 효과적인 줄 알고 있었던 듯합니다. 또 일부 구덩이에서는 솔방울도 나왔는데 당시에는 솔방울도 먹었던 것으로 보이는데요. 비봉리 유적을 통해 약 8,000년 전 조상들이 무엇을 먹었는지 어떤 생활을 했는지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모든 유물이 거의 원형 상태로 발견되다 보니 조사단은 혹은 신석기인들이 실제 사용했을지도 모르는, 즉 상어 잡고 가오리를 잡을 때 탔던 배가 발견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생겼습니다. 그렇다면 배는 나왔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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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나왔습니다. 여름이 다가오고 조사단이 조금씩 힘들어지고 있을 때 임 실장은 꿈을 꿨습니다. 그는 꿈속에서 선명한 십자가를 봤고 그 끝에 돼지 꼬리 모양의 끈을 봤는데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에 조사단원들에게 ‘뭔가 납작한 판이 나오면 즉각 발굴 중단하고 알려달라.’라고 부탁했죠.

당시 그는 돼지 꼬리 모양의 끈은 배를 접안시킬 때 사용하는 밧줄로 해석했고 주변에서 물고기 뼈와 조개 등이 발견된 정황상 이곳은 수천 년 전 바닷가일지도 몰랐습니다. 그렇다면 배도 충분히 출토될 있겠다 생각했었는데, 그의 꿈은 적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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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4일 오후 3시쯤 지표로부터 6m 아래를 긁던 굴착기 기사가 ‘그만 파자.’라고 임 실장을 설득했으나, 그는 딱 한 번만 더 긁어보자며 채근했고 마지막 한 바가지 뜨는 순간 노란색 나무판이 등장했습니다. 그 순간 전율이 일었습니다.

그는 즉각 발굴단원들과 내려가 진흙을 손으로 퍼내기 시작했고, 한 시간에 걸친 작업 끝에 드디어 소나무 쪽배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길이 3.1m, 너비 62cm의 통나무 속을 파내어 만든 배가 드디어 등장한 겁니다. 소나무 조각을 떼어 내 전문가에게 자문한 결과 수령 200년 된 소나무로 판명됐고 이로써 한국에서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축에 속하는 귀중한 신석기시대 배가 나왔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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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까지 일본에서는 조몬시대 나무배 130여 척이 출토됐지만 국내에서는 최초로 신석기시대 배가 나왔고, 단숨에 세계에서 가장 귀중한 배가 됐죠. 발굴단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급파된 목조 보존 전문가 2명과 함께 주변 흙과 한꺼번에 나무배를 들어 올려 특수 제작된 나무 상자 안에 넣고 특수 차량에 실어 중앙 박물관으로 옮겼습니다.

발굴단은 이 배에 ‘비봉리 1호’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숫자 1이 붙은 것은 출토 지점에서 25m 떨어진 곳에 두 번째 배 ‘비봉리 2호’가 발견됐기 때문입니다. 2010년 2차 발굴 때는 약 9m 떨어진 곳에서 배를 젓는 도구인 노까지 출토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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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길이는 181cm의 자루와 물갈퀴가 거의 완전한 형태로 발견됐는데 그러니까 신석기시대 한반도에 살던 우리 조상들은 벌써 배를 만들어 바다 사냥을 나섰던 겁니다. 그렇다면 바닷가에서는 있을 패총과 생활용품들이 왜 바다와 60km나 떨어진 내륙에서 발견된 것일까요?

나중에 확인되기는 했지만, 습지의 여러 층에서 흙을 채취해 분석한 결과 바다에 사는 플랑크톤이 다량으로 발견됐습니다. 그리고 이 플랑크톤이 말하는 바는 명확합니다. 즉, 경남 창녕이 8000년 전에는 바닷물이 들어왔다는 것이죠. 경북대 황상일 교수 역시 ‘6,800년 전 이전에는 비봉리가 해안에 있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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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 년 전 그러니까 창녕의 비봉리가 해안이었을 때 한반도에 살던 우리 선조들은 이곳에서 사냥하고 도토리를 저장하고 배를 타고 바다 사냥을 다녔을 겁니다.

울산의 반구대 암각화에 그려진 고래잡이 그림이나 패총에서 발견된 상어 척추, 가오리 꼬리뼈, 일본과의 교역을 알려주는 흑요석을 떠올려보면 신석기시대 우리 선조들은 이미 원양어업과 장거리 교역이 가능한 튼튼한 배를 만들어 타고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이후로 한선, 거북선, 판옥선, 현재의 조선업에 이르기까지 우리 민족의 선박 건조 기술이 세계 최고인 것은 이미 신석기시대부터 시작된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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