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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가 한글을 배울 수 있는 이유! 한글 보급 공신, 조선어학회

한국 디씨멘터리 어린이날 말모이운동 한글

한국인의 IQ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현대를 살아가는 한국인들 세대에서 평가에서 그렇지, 만약 조선시대에도 이런 테스트가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현대 한국인의 IQ는 선조들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므로 아마도 그때도 세계 1위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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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선조가 남겨주신 소중한 유산 중에서 가장 으뜸은 뭐니 뭐니 해도 우리 생활의 근간을 이루는 우리말 ‘한글’이죠. 그런데 한때 한글이 없어질 위기에 놓였다가 극적으로 되살아난 사건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우리 고유의 언어를 없애려 했고 또 누군가는 이를 되살리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는데요. 어떤 사건이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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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디씨멘터리입니다. 아마 많은 분께 ‘우리 조상이 얼마나 뛰어난 민족이 왔는지 꼽아보라’라고 묻는다면 많은 것이 꼽힐 텐데요. 세계에서 가장 큰 영토를 차지했던 칭기즈칸이 유일하게 정복하지 못한 민족이라거나, 그 어떤 고난이 와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 나라를 이어왔다거나, 전쟁을 겪고 70년 만에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가진 국가로 거듭났다는 것 등 우리 역사와 현재를 더듬어보면 자랑스러울 일은 많습니다.

근데 많은 분들이 예상치 못한 ‘인류 역사상 최초의 발명품‘이 있습니다. 보통 외국이라고 알고 있지만, 이는 우리 조상이 최초였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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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년 12월 17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키티호크 해안가에서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시험이 시작됩니다. 시골 마을의 두 형제가 인류 최초로 하늘을 날아 보기로 한 것이죠. ‘플라이어’라고 이름 붙인, 새처럼 생긴 275kg짜리 기계를 언덕 위에 올려놓고는 동력으로 날아갈 수 있는지 실험했습니다. 이날 이때까지 그 어떤 인간도 하늘에서 1분 이상 머물러 본 적이 없었고, 그 어떤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인류는 늘 하늘에 머물고 싶어 했습니다. 새처럼 하늘을 날 수 있는 자유만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인류는 오랜 시간 비행을 꿈꿔왔지만, 그 어떤 이도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라이트 형제 이전까지만 해도 말이죠. 그래서 라이트 형제는 인간의 활동 반경을 2차원에서 3차원으로 확장했다고 평가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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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여러분들이 일반적으로 아는 사실입니다만, 인류 역사상 최초로 하늘을 날았던 사람은 라이트 형제가 아니라 우리 선조입니다. 그것도 300년이나 앞서서 말이죠. 조선 후기 실학자로 잘 알려진 이규경은 우리 조선은 물론이고 중국과 전 세계에 존재하는 사물에 대하여 고증하고, 이를 해설한 ‘오주연문장전산고‘라는 책을 집필했습니다.

원래 이 책의 존재는 까마득히 잊혀 있었지만, ‘육당 최남선’에 의해 알려졌습니다. 그는 우연히 군밤 장수에게 군밤을 샀는데, 이 책이 포장지로 쓰이고 있었고 군밤 장수에게 가까스로 이 책을 입수해 필사본을 만들었습니다. 그 책의 ‘비거변증설‘이라는 항목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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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년에 왜국의 괴수들이 창궐했을 때, 영남 지역의 고립된 성 하나가 겹겹이 포위당해 금방이라도 함락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때 성주와 매우 친한 사람 중에서 평소 아주 색다른 기술을 지닌 이가 있었습니다. 그가 비거(飛車)를 만들어 타고 성 안으로 날아 들어가 벗을 태워 성 밖으로 30리를 비행한 뒤 착륙해 적의 칼날을 피했습니다.“라는 내용인데요. 이는 1592년 왜구가 조선을 침략해 발발한 임진왜란 중 가장 격렬한 전투가 펼쳐진 것으로 알려진 ‘1, 2차 진주성 전투’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당시 화약 군관이던 ‘정평구’라는 인물이 비거를 이용해 사람과 물자를 운송했다는 것이 비거변증설의 핵심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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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라이트 형제가 1903년에 플라이어로 하늘을 날기 300년 전에 이미 조선에서는 비거, 즉 ‘하늘을 나는 수레’가 정평구라는 인물에 의해 발명된 겁니다. 임진왜란에 대한 일본 측 기록인 ‘왜사기’에도 이 사실이 기록으로 남아 있는데요. 사실 이 하늘을 나는 수레는 아주 오랫동안 역사 깊은 곳에 파묻혀 아무도 그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습니다만, 임진왜란은 200여 년이 지나 이규경이 찾아냈죠.

이규경은 서양에서 전래된 열기구와 같은 새로운 기능 수단에 대한 소문을 듣고는 우리 역사 속 비행 장치에 관심을 갖고 다양한 자료와 일화를 수집하고 있었죠. 그렇게 모은 내용을 ‘오주연문장전산고’의 ‘비거변증설’에 모조리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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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통해 비로소 진주성 전투에서 활약했던 비거의 존재가 전해진 것입니다. 그리고 지난 2016년 ‘이봉섭’이라는 인물은 이규경의 비거변증설을 기반으로 비거를 실제로 복원해냈고, <조선의 비행기, 다시 하늘을 날다>라는 책에 그 기록을 남겨 두었습니다. 관심 있는 분은 한번 읽어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만약 이 ‘비거’가 그대로 존재했다면 ‘세계 최초의 비행기를 만든 나라’라는 타이틀을 가짐으로써 한국의 우수성이 전 세계에 알려졌을 텐데, 실물이 아니 기록으로만 남아 있어 너무 아쉽기는 합니다.

하지만 우리 조상의 만들어낸 유산 중 세계 최초이면서 그 개발 원리와 과정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최고의 선물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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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우리가 매일 읽고 쓰는 ‘한글’이라는 유산이죠. 전 세계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문자가 존재하지만, 그 많은 문자 중 인간의 발음 기관을 본떠 만든 문자는 한글이 유일합니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반포하며 ‘아무리 부족한 이라도 하루면 모두 배울 수 있다‘며 훈민정음을 창제했다고 말했죠. 하지만 양반들은 한자를 사용하지 않고 새로운 글자를 만든 것에 상당한 반감을 표했고, 이 글자들을 무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실제로 연산군 때는 ‘훈민정음 사용 금지령‘을 내려 약 400여 년간 훈민정음을 제대로 가르치거나 배우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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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우리가 지금 부르는 ‘한글’이 한글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참 아이러니하게도 일제 강점기 시절입니다. 원래 훈민정음은 가볍게 ‘정음’ 또는 ‘언문’으로 불리거나, ‘여성들이 한글 보급에 힘썼다’하여 ‘암글’이라고도 불렸습니다. 그 후 일제 강점기가 시작되면서 우리 고유의 언어가 위기에 놓이자, 국어학자였던 ‘주시경’ 선생은 국어 연구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문명 강대국은 전부 자국의 문자를 사용한다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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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보아라, 지금 일본이 우리를 침략했으니 앞으로 우리의 근본을 무너뜨리려 할 것이다. 그 근본 중 가장 주요한 것이 문화이고, 그 문화를 지탱해 주는 것이 우리의 언어이다. 그러므로 저들은 제일 먼저 우리의 말과 글을 빼앗으려 할 것이다.”라며 국어 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했는데요. 실제로 일본은 조선어를 빼앗고 조선의 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러한 작업은 이미 일제 강점기 이전부터 시작되고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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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을사늑약 체결 후 1년 뒤, 통감부가 조선에 설치됩니다. 통감부의 가장 큰 목표는 조선어를 억제하고 일본어를 보급하는 것이었는데요. 따라서 국민학교에서 사용하는 일본어 읽기 책을 비롯하여 수학과 과학 등 주요 교과목의 교과서는 일본어로 제작해 새로운 지식을 일본어로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두고 1906년 6월 6일 ‘대한매일신보’는 이런 기사를 냅니다. ‘조선의 아이들에게 일본어로 된 교과서를 배우도록 하는 것은 어린아이들에게 일본 혼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다‘라면서 조선어를 배척하고 일본어로 지식을 익히도록 하는 일본을 강하게 비꼬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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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1910년 일제강점기가 시작되자 일본의 조선어 말살 정책은 더 노골적으로 진행됩니다. 결국 1911년 ‘일본어를 보급한다’는 것을 골자로 하는 조선교육령 반포되면서 거의 모든 교과서는 일본어로 쓰였고, 공문서도 일본어로 작성되면서 조선어는 일상 중 사용되는 ‘생활어’로 전락해 버립니다.

게다가 1938년까지 유지되었던 필수과목 ‘조선어’는 3차 개정 교육령이 반포된 후 ‘조선어 일본어 병용’에서 ‘고쿠고조요(國語常用)’, 즉 일본어 상용으로 바꿔 버렸죠. 아예 조선 땅에서 조선어를 쓸 수 없도록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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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불의에 절대 굴복하지 않는 한국인의 특성상, 이미 조선어를 지키기 위한 활동은 물밑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주시경 선생은 ‘말과 글을 빼앗기지 않게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질문에 명쾌한 해답을 제기했습니다. 그는 국어에 깊이 매진에 연구하다 보니 표기와 띄어쓰기 등이 통일되지 않아 글을 배워도 소통이 어려움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우리말들을 모아서 통일된 사전을 만들면 그것이 우리 국어의 기준점이 되지 않겠나?’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우리말을 모아 사전을 편찬하기로 계획합니다. 이른바 ‘말모이 사전’을 편찬하는 것이죠. 2019년 영화로도 개봉되었던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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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우리말과 글을 잃지 않으면 지배당해도 지배당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1911년 제자 김두봉, 이규영, 권덕규 등을 참여시켜 우리말을 모아 사전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불과 3년 만에 이 프로젝트의 책임자였던 주시경 선생이 복통을 호소하다 영면하면서 ‘말모이 사전’ 작업은 한동안 중단됐죠.

그러다 15년 후 1929년 ‘조선어학회‘가 108명의 위원을 모아 사전 편찬회를 조직하면서 재개됐는데요. 4년간의 열띤 노력 끝에 드디어 1933년 10월, ‘한글 맞춤법 통일안‘이 완성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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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통일안은 ‘빛을 비추다’라고 써야 하는데 빛의 받침에 ‘ㅊ’을 써야 하는지, ‘ㅅ’을 써야 하는지, 빛 다음에 ‘을’을 써야 하는지 아니면 ‘츨’을 써야 하는지 등 어법에 대한 통일안을 발표해 앞으로 만들어지게 될 사전에 무엇을 기준으로 내용을 어떻게 기록할 것인지 규칙으로 정해둔 것입니다. 즉, 한국어를 어떤 기준으로 쓸 것인지 이에 대한 나침반을 제시한 것이죠. 그리고 뒤이어 지역마다 다르게 사용되는 사물의 이름을 통일해 1936년 ‘조선어 표준어 사정안‘을 발표했는데, 9,547개의 어휘와 6,232개 표준어가 발표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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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표준어를 제정하고 나니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표준어가 아닌 것들은 전부 사투리가 되는 것이니까요. 게다가 사투리라고 조선어가 아닌 것은 아니니까요. 이에 조선어학회는 각 지방의 사투리도 수록되어야 지방에 사는 이들이 서로 다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란 깨달음 아래 지역마다 사용되는 사투리를 모아 사전에 수록하기로 합니다. 그후 ‘사투리 모으기 작업’, 즉 ‘말모이 작업’을 시작했죠. 당시 발간되던 ‘한글’이라는 잡지를 통해 전국의 사투리를 모집하기 시작했고, 전국에서 500여 명의 국민학생이 조선어학회에 자신이 아는 사투리를 친절한 해석까지 곁들여 보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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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아름답게 진행되던 말모이 운동은 비극적인 사건에 휘말리기도 했습니다. 이런 작업이 진행되는 줄도 모르고 일본은 무식하게 일본식 사상을 조선에 주입하기 바빴습니다. 어떻게든 조선의 ‘얼’을 빼앗는 것에 초점을 맞췄어요. 일본은 당시 4개의 주요 목표를 세워 두었습니다. 일본과 조선은 본래 하나의 나라라는 ‘내선일체‘, 일본과 조선의 조상은 동일하다는 ‘일선동조‘, 이름을 일본식으로 짓고 일본인으로서의 영광을 누리자는 ‘창씨개명‘, 그리고 천왕의 국가에서 신하된 백성으로 충성을 다 하자는 ‘황국신민‘ 정책을 펴면서 민족성 말살에 대한 다양한 수단을 간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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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차에 사건이 발생하죠. 1942년입니다. 한 기차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던 유학생 ‘박병엽’은 갑작스런 일본 경찰의 검문에 조선어로 대답합니다. 이를 수상히 여긴 일본 경찰은 그를 구금하고는 갖은 고문으로 그를 추궁하기 시작하죠. 당시 한국인 형사 ‘안정묵’은 그의 입에서 ‘정태진’이라는 이름을 얻어냅니다. 정태진은 당시 영생 여고에서 학생들에게 ‘조선어를 써야 한다’면서 애국심을 고취하고 있었는데, 결국 그가 속한 조선어학회를 수색하기 이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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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조선어학회가 비밀리에 ‘조선어 사전’을 편찬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들을 독립운동단체로 규정하여 조선어학회에게 내란죄를 뒤집어씌웁니다. 조선어학회가 편찬 중이던 2만 장이 넘는 원고를 모조리 압수했고, 이 죄목으로 전국에서 33명의 회원을 긴급 체포했는데요. 이게 바로 그 유명한 ‘조선어학회 사건’입니다.

하지만 조선총독부에 압수당하고 잃어버린 줄 알았던 원고 2만 장이 경성역에 위치한 조선 통운 창고에서 극적으로 발견되었습니다. 이 원고를 토대로 광복 후 사전이 다시 만들어지기 시작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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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2년 뒤 ‘조선말 큰 사전 1권’이 발행되었고, 이후 10년 동안 총 6권의 조선어 사전이 완성됐습니다. 주시경 선생이 그렇게나 바라던 한글 말모이 작업이 46년 만에 완성된 것이죠.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감옥에 끌려가 모진 고초를 겪어야 했던 인물들은 해방과 함께 다시 사전 작업에 참여해 큰 업적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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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큰사전의 머리말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습니다. “조선말은 우리 겨레가 반만년 역사적 생활에서 문화 활동의 말미암던 길이요, 연장이요, 또 그 결과이다. 우리말은 곧 우리 겨레가 가진 정신적, 물질적 재산의 목록이라 할 수 있으니 우리는 이 말을 떠나서는 하루 한 때라도 살 수 없는 것이다.“라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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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어학회 사건으로 감옥에 갇혔다가 모진 고문과 굶주림을 이기지 못한 ‘이윤재’라는 인물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말과 글은 민족과 운명을 같이 한다. 우리가 우리의 말과 글에 대한 글을 써두고 조선어 사전을 편찬해두면 불행한 일이 있더라도 후에 이것을 근거하여 제 글과 말을 찾아 되살아날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민족의 말과 글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은 나라를 사랑하는 길이 되고 또 민족 운동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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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분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일제강점기 시절 어쩌면 한글은 진짜로 말살되어 우리 민족의 혼이 없어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본이 그토록 바라던 조선의 ‘혼’을 그들에게 빼앗기지 않은 것은 어쩌면 한글이라는 소중한 유산을 지켜냈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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