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로 건너뛰기

구찌 CEO가 ‘경복궁’에 이어 함평의 ‘어린이집’에 후원금 지원하는 이유?

해외반응 일본반응 중국반응 한류 해외리얼반응 외국반응 해외언론 구찌 이영애 gucci

세계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명품 브랜드 ‘구찌’는 다양한 활동으로 브랜드 확장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한국 설을 맞아 이례적으로 ‘GOOD LUCK 구찌’라는 한글이 새겨진 옷을 출시했는데, 반응이 상당히 뜨거웠습니다. 

동묘시장에서 파는 짝퉁이라는 의견이 대부분이었지만, 사실 이 제품은 어엿한 정품입니다. 한국의 전통 명절인 설을 기념해 단독 상품을 선보인 것으로, 반팔 티셔츠가 무려 89만 원으로 책정됐죠.

해외반응 일본반응 중국반응 한류 해외리얼반응 외국반응 해외언론 구찌 이영애 gucci

물론 판매량을 늘리기 위한 마케팅 방식이겠지만,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로 꼽히는 구찌가 한글을 새긴 티셔츠를 출시했다는 것만으로도 꽤 긍정적인 반응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지난 10년간의 행보를 보면 구찌가 한국인 고객을 단순히 호구로 보지는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몇 달 전 구찌 CEO ‘마르코 비자리’는 직접 한국을 찾아와 돌담길이 예쁘게 깔린 경복궁을 보존해 달라며 후원금을 투척하고 돌아갔습니다.

해외반응 일본반응 중국반응 한류 해외리얼반응 외국반응 해외언론 구찌 이영애 gucci

안녕하세요? 디씨멘터리입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왕이 되자마자 새로운 궁궐을 어디에 지어야 할지 고민하다 결국 한양으로 도읍을 정했습니다. 그는 새로운 국가의 새로운 왕으로 태어난 만큼 백성들에게 권위를 내보이고 싶었는데, 그 권위의 상징으로 경복궁을 선택했습니다. 1395년 경복궁을 건설하고는 그곳에 살았죠. 

처음 경복궁은 390칸으로 지어 왕과 그 가족들이 살았는데, 근정전과 강녕전, 연생전 등 주요 건물들만 있었으나 차차 경회루도 짓고 건물 수를 늘렸습니다. 그러다 임진왜란 때 큰 불이 덮쳐 경복궁이 폐허가 되었다가 조선 말기 흥선대원군이 고쳐 지어서 다시 궁궐로 썼습니다.

해외반응 일본반응 중국반응 한류 해외리얼반응 외국반응 해외언론 구찌 이영애 gucci

이때 다시 지은 경복궁은 원래보다 훨씬 더 많은 7,000칸으로 넓혔는데, 이는 약해진 왕의 권력을 다시 강하게 만들겠다는 뜻이 담겼죠. 하지만 현재 경복궁에는 몇몇 주요 건물만 남아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시절 우리나라의 권위를 짓밟는다며 의도적으로 궁궐을 허물어버렸기 때문인데요. 

궁궐에 딸린 부속 건물들을 일본인에게 팔거나 관공서로 사용했는데, 대표적으로 지난 콘텐츠에서도 소개해 드렸던 자선당이 있습니다.해외반응 일본반응 중국반응 한류 해외리얼반응 외국반응 해외언론 구찌 이영애 gucci

1915년 일제는 식민 통치의 치적을 홍보할 목적으로 ‘조선물산공진회’를 경복궁에서 개최했는데, 이 과정에서 세자와 세자빈이 머물렀던 동궁, 자선당을 뜯어냈습니다. 이 건물을 일본인 사업가 ‘오쿠라’가 자신의 도쿄 저택으로 이축시켰죠. 그리고 몇 년 뒤 미국의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라는 세계적인 건축가가 여기서 하룻밤 묵었다가 한국식 온돌에 반해 전 세계에 한국식 온돌 시스템이 알려지는 계기가 됐습니다. 

어쨌든 일제가 경복궁을 철저히 망가뜨린 후 남아있는 모습이 현재의 경복궁입니다.

해외반응 일본반응 중국반응 한류 해외리얼반응 외국반응 해외언론 구찌 이영애 gucci

그런데 지난 11월 9일,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구찌 CEO가 경복궁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는 문화재청이 추진 중인 경복궁 보존사업을 후원하겠다며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돌아갔죠. 최응천 문화재청장과 구찌 CEO 마르코 비자리는 경복궁에서 진행된 문화재청 구찌 코리아 사회공헌 활동 업무 협약식에서 한국의 문화재 및 유적지의 소중한 가치를 지켜나가자는 것에 뜻을 같이했습니다. 

마르코 비자리는 이 자리에서 “아름다운 한국의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한 약속에 구찌가 함께할 수 있어 기쁘다.”라면서 문화재청과 협력해 아름다운 한국의 유산을 보존하기를 바란다는 희망을 피력했죠.

해외반응 일본반응 중국반응 한류 해외리얼반응 외국반응 해외언론 구찌 이영애 gucci

그런데 원래 구찌와 경복궁은 역사적인 행사를 진행할 계획이 있었습니다. 구찌는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한국의 가장 상징적인 공간인 경복궁에서 패션쇼를 진행할 예정이었습니다. 조선시대 국가 의식을 거행하고 외국 사신을 맞이하던 경복궁 근정전 일대에서 사상 최초로 열리는 패션쇼였고, 몇 년 전부터 전문가를 초빙해 역사를 고증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는데요. 

지난 8월 보그 코리아의 청와대 패션 화보를 두고 비난 여론이 악화되어 무산될 뻔했지만, 구찌가 “세계적으로 경복궁의 유산적 가치를 홍보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며 설득해 가까스로 허가받았습니다.

해외반응 일본반응 중국반응 한류 해외리얼반응 외국반응 해외언론 구찌 이영애 gucci

다만 패션쇼 개최 2일 전, 한국에서 이태원 참사라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하면서 희생자를 애도하는 마음으로 패션쇼를 진행하지는 못했는데요. 

그런데 구찌는 한국의 전통문화에 상당히 관심이 많은 것으로 보입니다. 서울 용산 한남동에는 지난 2021년에 세운 구찌 가옥이 있는데, 이는 1993년 청담동에 이어 한국에 두 번째 세워진 단독 매장이죠. 매장명을 ‘구찌 가옥’이라고 지었는데, 이는 한국의 전통주택을 뜻하는 ‘가옥’에서 따왔습니다.해외반응 일본반응 중국반응 한류 해외리얼반응 외국반응 해외언론 구찌 이영애 gucci

그리고 오픈 당시에는 매장의 대형 LED 화면에 돼지머리와 과일, 약과 등을 올린 디지털 고사상을 차려 지극히 한국적인 전통을 따르기도 했습니다. 아마 돼지머리가 올려지거나 절을 하는 등의 모습이 서양인들이 보기에 조금은 꺼려질지 몰라도 한국식 전통을 존중해 주는 모습이 참 좋아 보였습니다.

해외반응 일본반응 중국반응 한류 해외리얼반응 외국반응 해외언론 구찌 이영애 gucci

그런데 구찌라는 브랜드는 경복궁 보존 후원뿐 아니라, 이미 10년 전부터 한국의 문화유산에 다양한 후원 활동을 펼쳐왔습니다. 브랜드 자체가 역사와 문화, 전통을 중시하는 풍조를 가지고 있기도 하죠. 

지난 2015년 구찌는 한국인 이영애 씨를 모델로 기용해 ‘구찌 크루즈 컬렉션’ 화보를 촬영했는데, 이 촬영 장소가 지극히 한국의 역사와 전통이 숨 쉬는 장소, ‘덕수궁’이었습니다. 사진 속 이영애는 덕수궁 중명전을 배경으로 화보를 찍었는데, 럭셔리 명품 브랜드와 덕수궁 중명전이라는 다소 이질적인 조합이 화제가 됐었습니다.해외반응 일본반응 중국반응 한류 해외리얼반응 외국반응 해외언론 구찌 이영애 gucci

그중 가장 눈에 띄는 화보 중 하나는 태극기 아래에서 찍은 사진인데, 이 태극기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태극기입니다. 이 태극기는 고종이 자신의 외교 고문을 지냈던 미국인 ‘데니’에게 하사한 선물이었는데, 1981년 한국에 기증됐죠. 

사실 이영애라는 배우는 구찌와의 화보 이외에도 꾸준히 한국의 문화를 알리기 위해 힘써오고 있습니다. 이런 활동의 일환으로 ‘내셔널 트러스트’ 홍보대사로 활동했었는데, 내셔널 트러스트란 시민들의 자발적인 기부를 통해 보존 가치가 높은 문화유산을 확보하는 사회 운동입니다.

해외반응 일본반응 중국반응 한류 해외리얼반응 외국반응 해외언론 구찌 이영애 gucci

영국에서 최초로 시작된 이 운동은 2013년 한국 내셔널 트러스트를 발족하면서 한국까지 확산됐는데, 당시 이영애는 “제 이름 석 자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고, 이왕이면 한국을 알리는 일을 하고 싶었다.”라며 “버려두기 안타까운 문화유산을 알리고 보존하는 일에 큰 보람을 느낀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이영애의 이러한 활동에 구찌가 적극 동참했습니다. 화보 촬영 장소를 덕수궁으로 선택한 것도, 데니 태극기 아래에서 화보를 찍기로 한 것도 모두 이영애의 선택이었는데, 그녀는 몇 년 전 구찌로 하여금 문화유산 보전 프로젝트를 후원하도록 유도하기도 했습니다.해외반응 일본반응 중국반응 한류 해외리얼반응 외국반응 해외언론 구찌 이영애 gucci

지난 2013년 한국 내셔널 트러스트는 문화유산 보전 프로젝트인 ‘나의 사랑 문화유산’ 캠페인을 시작했는데, 이는 시민들이 직접 참여해 유실될 위험에 처해 있거나 문화적 가치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문화유산을 찾아 소개하는 캠페인입니다. 

3개월간 공모가 진행됐으며 많은 응모작 중 ‘함평 자광 어린이집’이 수상했고, 구찌가 이 어린이집 보수를 위해 1,000만 원을 후원했습니다.

해외반응 일본반응 중국반응 한류 해외리얼반응 외국반응 해외언론 구찌 이영애 gucci

자광 어린이집은 한국전쟁 이후 1958년에 건축된 2층짜리 벽돌 건물로, 전쟁고아 보호시설인 ‘자광원’이 시초입니다. 물자가 부족한 상황에서도 꽤 세련되게 건축됐습니다. 

고아원에서 출발해 한부모 가정과 다문화 가정에도 주거 공간을 제공하고 있었는데, 한국의 현대 가족사의 단면을 보여주는 뜻깊은 장소죠. 이에 구찌는 자광 어린이집 보수에 1,000만 원을 쾌척하면서 향후 5년간 한국 내셔널 트러스트에 5억 원을 후원해 한국 문화유산 보전 사업에 힘쓸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는데요.해외반응 일본반응 중국반응 한류 해외리얼반응 외국반응 해외언론 구찌 이영애 gucci

그런데 여기 우리 한국인이 절대 잊지 말고 복원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대한민국 제2의 도시 부산에는 ‘UN 기념공원’이 있습니다. 이 공원에는 미 육군 장군 출신으로 한국전쟁 중 군법을 어긴 장군 한 분이 안장되어 있는데요. 이분은 한국인이라면, 특히 부산이 고향인 한국인이라면 절대 잊어서는 안 될 인물입니다.

해외반응 일본반응 중국반응 한류 해외리얼반응 외국반응 해외언론 구찌 이영애 gucci

1953년 11월 27일 오후 8시 30분 시작된 ‘부산역전 대화재’는 한국전쟁으로 인한 폐허를 딛고 재건을 일구려는 부산 시민들의 희망을 삼켜 버렸습니다. 그해 초 발생한 국제시장 대화재에 따른 피해도 다 복구하지 못한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또 하나의 대형 화재가 발생했죠. 

사실 이 사고는 이미 예견된 사고였습니다. 부산은 일제가 대륙 진출의 전초기지로 만들기 위해 40만 명을 수용할 계획으로 만든 계획도시였는데, 전쟁 중 피란민이 몰리면서 인구수가 급격히 증가했습니다. 덕분에 1952년 부산 인구는 2배가 넘는 85만 명에 달했는데요.해외반응 일본반응 중국반응 한류 해외리얼반응 외국반응 해외언론 구찌 이영애 gucci

인구가 늘면 자연스럽게 판자촌이 늘고, 사회 기반 시설이 부족해지기 마련인지라 부산 곳곳에도 판자촌이 급격히 증가했습니다. 추운 겨울이면 판자촌 여기저기서 난로를 피워 난방을 대체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부산 영주동에서 사고가 터진 겁니다. 

영주동 산비탈에서 시작된 불은 강풍을 타고 순식간에 번지기 시작하더니, 당시 번화가였던 40계단, 동광동, 부산역 등지를 잿더미로 만들었습니다.

해외반응 일본반응 중국반응 한류 해외리얼반응 외국반응 해외언론 구찌 이영애 gucci

이 화재로 29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주택 332채가 전소됐습니다. 피해 규모는 현재 가치로 1조 8,0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여기에 집을 잃은 6,000여 세대, 30,000여 명의 이재민은 추위와 배고픔에 떨어야만 했죠.해외반응 일본반응 중국반응 한류 해외리얼반응 외국반응 해외언론 구찌 이영애 gucci

이때 파란 눈의 구세주가 나타났습니다. ‘리차드 위트컴’ 당시 유엔군 부산 군수기지 사령관입니다. 미 육군 준장으로 부산에 살던 그는 한국 정부가 전쟁을 치르느라 이재민을 지원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즉각 군수물자 창고를 개방해 식량, 옷, 침구류를 나누고 잠을 잘 수 있는 천막을 나눠줬습니다.

매일 23,100명이 먹을 수 있는 식량 등을 긴급 지원했죠. 그리고는 이튿날부터 공병부대를 투입해 화재 지역을 정리하고 일반 장병 4만 명이 기거할 수 있는 임시 천막촌을 준비했습니다.

해외반응 일본반응 중국반응 한류 해외리얼반응 외국반응 해외언론 구찌 이영애 gucci

사실 사령관이라고는 하지만, 이재민에게 군수물자를 함부로 전용하는 것은 심각한 군법 위반이고, 즉각 군복을 벗어야 할지도 모르는 범죄행위입니다. 

그는 즉각 미 의회 청문회로 불려 갔고, 국회의원들 앞에 선 그는 “전쟁은 총칼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 나라 국민을 위하는 것이 진정한 승리다.”라는 명연설을 남겼습니다. 비록 군수물자를 전용하기는 했으나, 이 연설에 감동한 의회는 그에게 면죄부를 주고 더 많은 구호품을 지원하기로 결정하기도 했습니다.해외반응 일본반응 중국반응 한류 해외리얼반응 외국반응 해외언론 구찌 이영애 gucci

사실 위트컴 장군이 부산에 남긴 유산은 적지 않습니다. 1950년 4월, 부산 중구 대청동 4가, 현재 부산 카톨릭센터 자리에는 메리놀 수녀회가 ‘메리놀 수녀의원’이라는 진료소를 열고 무료 진료를 시작했습니다. 질병으로 고통받는 가난한 환자들과 전쟁 부상자가 끊임없이 밀려들었죠. 

전쟁 후에는 피란민들이 밀려들면서 진료소에 입원 시설과 전문 의료 인력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이에 병원 측은 위트컴 장군에게 도움을 요청했는데, 그는 종합병원 공사 비용을 마련하고자 예하 미군 장병에게 월급의 1%를 기부하도록 유도해 이를 공사비로 기부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착공 8년 만인 1962년 11월, 지금의 자리에 종합병원을 준공할 수 있었죠.

해외반응 일본반응 중국반응 한류 해외리얼반응 외국반응 해외언론 구찌 이영애 gucci

당시 그는 장군이라는 직책이라고 해서 점잔을 빼거나 권위를 찾지 않았습니다. 병원 건립비용이 부족해지자 그는 한복 차림에 갓을 쓰고 부산 시내를 돌며 홍보 활동을 시작했는데요. 사령관으로 체면을 구기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고, 그의 이야기는 미국 격주간지 ‘라이프’ 1954년 10월 25일 자에 보도됐습니다.해외반응 일본반응 중국반응 한류 해외리얼반응 외국반응 해외언론 구찌 이영애 gucci

뿐만 아니라 윤인구 현 부산대학교 초대 총장은 종합대학으로 승격한 캠퍼스 부지를 확보하지 못해 애를 먹었는데, 이 사실을 들은 위트컴 장군은 미군 대한 원조를 통해 25만 달러에 달하는 건축자재를 지원 약속하며 즉각 이승만 전 대통령을 만났습니다. 

그리고는 그를 설득해 장전캠퍼스 50만 평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부산대학교가 성장할 수 있는 터전을 닦았죠.

해외반응 일본반응 중국반응 한류 해외리얼반응 외국반응 해외언론 구찌 이영애 gucci

부산역전 대화재, 부산대 장전캠퍼스, 메리놀 병원 건립, 조산원 설치, 양정동 및 청학동 이재민 주택 건설 등등 그의 유산을 찾아가는 길은 김재호 부산대학교 교수의 도움이 컸습니다. 현재 김재호 교수는 위트컴 장군 기념 조형물 건립을 위해 노력 중에 있습니다. 

원래 부산역전 대화재 1년 뒤, 그의 도움을 받은 이재민들은 그에게 감사하는 의미로 공덕비를 세웠었습니다. 공덕비에는 “위트컴 장군은 우리 화재민을 위하여 이곳에 학교, 산원, 교회를 짓도록 후원하여 주었다. 우리들은 영원히 그 공적을 찬양하는 바이다.”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으나, 어느 순간 이 공덕비는 사라졌습니다. 우리 민족이 은혜를 입은 외국인에게 남긴 감사의 표시였으나, 사라져 버린 것이죠.해외반응 일본반응 중국반응 한류 해외리얼반응 외국반응 해외언론 구찌 이영애 gucci

이에 김재호 교수는 그에 대한 감사함을 영원히 남길 수 있도록 UN 평화공원 내 ‘위트컴 장군 기념 조형물 건립’을 추진 중입니다. 

물론 한 기업이 통 크게 후원한다면 간단한 일이지만, 기업의 후원보다는 3만 명의 국민이 힘을 합쳐 건립하는 것이 더 의미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에 국민 1인당 1만 원씩, 3만 명 모금 운동을 진행 중인데,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했던 위트컴 장군을 위해 디씨멘터리 구독자가 힘을 모아보면 어떨까요? 

 


YouText의 콘텐츠는 이렇게 만들어 집니다.

유텍스트 YouText 글로 읽는 동영상에서 더 알아보기

지금 구독하여 계속 읽고 전체 아카이브에 액세스하세요.

계속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