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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한글 편지의 놀라운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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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0년경 미국에서는 세종대왕을 주인공으로 한 미드가 탄생할 뻔했습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미디어 시장을 가진 국가에서 세종대왕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미드라니 좀 상상이 안 되지만 실제로 이는 추진되었었습니다.

그것도 그저 그런 작가가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아주 잘 알려진 공상과학 드라마 스타트렉을 쓴 조 메노스키라는 유명 작가의 손에서 말이죠. 다만 여러 문제가 얽혀 있어 아직까지는 제작되지 않았으나 대신 세종대왕을 주인공으로 한 판타지 소설을 먼저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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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0년 10월 9일 한글날인 이날 한국과 미국에서는 ‘킹 세종 더 그레이트’라는 소설이 출간됐는데 이 작품 역시 조 매노스키가 썼습니다. 이제까지 한국인 저자가 세종대왕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은 많았으나 외국인이 그것도 미국의 유명 작가가 나서서 그를 주인공으로 작품을 쓴 경우는 처음이기 때문에 상당한 관심이 집중됐는데요.

그런데 그의 이력이 상당합니다. 미국의 스타트렉이라는 유명 TV 시리즈 중 더 넥스트 제너레이션, 딥스페이스 나이스, 보이저, 디스커버리 등 약 60편의 에피소드를 집필한 이력이 있을 만큼 상당한 커리어를 자랑하는데 그는 왜 세종대왕을 주인공으로 선택하게 됐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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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한글 그리고 세종대왕에게 완전히 매료됐기 때문입니다. 그는 매번 한글을 볼 때마다 500년이 넘는 시간을 거치면서 진화할 필요가 없을 만큼 완벽하게 만들어진 그 체계적인 정밀함과 우월함에 놀란다면서 이 모든 것이 한 명의 천재적인 지도자에 의해 창제되었고 그 이야기가 아직 세계에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에 충격을 받았다며 소설을 집필하게 된 계기를 밝혔는데요.

사실 그는 그처럼 세종대왕을 모르는 미국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 영어 미니 시리즈 제작을 목표로 세종대왕과 한글 창제기에 관한 4시간짜리 대본을 썼었습니다. 다만 고증과 관련된 문제들이 좀 있어 아직까지는 추진되지 못했는데 조만간 넷플릭스 등 OTT의 지원을 받아 꼭 제작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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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책 서문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피렌체의 통치자인 경우일까? 아이작 뉴턴이 영국의 왕인 경우일까?’라며 세종대왕은 최고의 발명가이자 과학자 그리고 왕이라고 평가합니다. 그만큼 세종대왕은 왕이면서 발명가였고 왕이면서 과학자였으니까요. 그리고 뭐니 뭐니 해도 그가 발명한 최고의 작품은 한글입니다.

그런데 그간 훈민정음이 창제됐을 당시 한글은 하인이나 노비 등 천한 백성들을 중심으로 보급됐다고 알려졌는데 최근 이러한 편견이 완전히 뒤집혀 버렸습니다. 얼마 전 역사상 가장 오래된 한글 편지가 발견됐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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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주위를 지나가길래 잠깐 들러서 어무이랑 아기랑 보고 싶었는데 상사가 집에도 못 들르게 하니 이런 민망하고 서러운 일이 어디 있소? 어무이 잘 모시고 아기 잘 키우고 계시오. 내년 가을에는 꼭 돌아오겠소.’

지난 2011년 대전 유성구에서는 조상 무덤을 이장하는 과정에서 놀라운 편지가 하나 발견됐습니다. 유성구 금고동에 위치한 안정 나 씨 종중 묘 중 15세기 후반 군관으로 봉직하던 ‘나신걸’이라는 조상의 묘를 이장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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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무덤을 열어보니 그 안에서 조선시대 미라 4기, 배냇저고리 등 약 150여 점의 유물이 함께 발견되었는데 그중 가장 눈길을 끈 부장품은 한글로 정성스레 쓴 편지였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530년 전인 1490년경 함경도 변방에서 근무하는 군관이 충청도 고향 집에 있는 부인 신청 맹 씨에게 보낸 이 편지는 두 장의 종이에 아내의 안부와 함께 농사와 소작 등 여러 가정사를 두루 챙기는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별 특별할 것도 없어 보이는 이 편지는 결과적으로 국가 보물로 지정되었는데 부부간의 애틋한 사랑이 담긴 이 러브레터는 놀라운 사실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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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번 접힌 상태로 발견된 이 편지는 1년 만에 복원되었는데 국가기록원은 지금까지 발견된 한글 편지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의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습니다. 이 편지가 복원되기 전까지 가장 오래된 한글 편지는 1555년에 작성된 순천 김 씨 묘에서 나온 편지인데요.

단순히 가장 오래된 한글 편지라서 보물로 지정된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간 한국인들 사이에서 퍼져있던 잘못된 소문을 단숨에 불식시키는 내용이 여기에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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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우리는 지금까지 1446년에 반포된 후 조선시대 후기까지는 훈민정음이 환영받지 못했기 때문에 노비, 하인 등 천민 계급이나 여성들이나 한글을 썼지 양반들은 명나라의 분노를 살 것이라며 반대해 한자를 쓴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훈민정음이 반포된 후 약 40년 뒤, 현재로 치자면 군인에 해당하는 조선시대 무관이자 충청도에서 꽤 이름이 알려진 집안 자제였던 나신걸이 아내에게 직접 한글 편지를 썼다는 점에서 볼 때 그는 이미 한글을 완전히 깨치고 있었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훈민정음이 지혜로운 사람은 아침나절이 되기 전에 이를 이해하고 어리석은 사람도 열흘 만에 배울 수 있을 정도로 쉽다지만 이는 단순히 글자에 해당하는 부분이고 가족에 대한 그리움 등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려면 분명 어릴 적부터 훈민정음을 익혔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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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여기에서 의문이 생깁니다. 우리는 그동안 왜 조선의 상류층이었던 양반가들은 한자를 사용했고 노비나 하인 등 천민 계급과 여성들만 훈민정음을 익혔다고 알고 있었던 것일까요?

위 편지의 사례로 볼 때 훈민정음 반포 40년 만에 양반도 한글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고 분명 신분을 막론하고 썼을 것으로 추정되는데도 말이죠. 사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한글은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사랑받은 글자입니다. 조선시대 왕실에서 주고받은 한글 편지가 상당수 보존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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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으로 제22대 왕 정조가 8살 때 큰 외숙모 여흥 민 씨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조선시대 한글 편지 가운데 어린이 필체로 쓰여진 것은 매우 드물고 특히 임금의 글씨체여서 더 높은 관심을 받습니다.

주로 큰 외숙모의 안부를 묻는 내용으로 ‘서릿바람에 기후 평안하신 지 문안 알고자 합니다. 뵌 지 오래되어 섭섭하고 그리웠는데 어제 편지 보니 든든하고 반갑습니다. 할아버지께서도 평안하시다 하니 기쁩니다. 원손’이라고 적었죠. 차기 임금이 될 8세의 원손이 한 글자 한 글자 직접 한글 편지를 썼을 상황을 생각해 보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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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딸 ‘숙명공주’에게 유독 애틋했던 조선 제17대 왕 효종은 결혼한 숙명공주에게 3문장짜리 편지를 보냈는데 ‘시집에 가 정성을 바친다고 하더니 어찌 괴양이는 품고 있느냐? 행여 감기나 걸렸거든 약이나 하여 먹어라’라고 썼습니다.

사랑하는 딸이 고양이를 품고 있는 철없는 행동을 꾸짖는 것인데 공주의 취미생활을 두고 친정 아빠가 한마디 할 정도였다면 숙명공주의 지나친 고양이 사랑에 대해 시댁에서 이미 불만의 소리가 나왔을 겁니다. 그런 딸을 나무라면서도 감기를 걱정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친정 아빠의 모습인데요. 숙명공주는 유독 편지를 많이 받았는데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제18대 왕 현종은 누이 숙명공주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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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평안하옵신 일 아옵고자 바라오며 오늘은 정겨운 편지도 못 얻어 보니 그립기 그지없습니다. 이 황갑 일곱 개가 극히 적어 보잘것없으나 정으로 모은 것이라 보내오니 적다고 마시고 웃고 잡수십시오’라고 쓴 현종은 누이를 위해 귤 7개를 구해 함께 보냈습니다.

한글은 왕실에서만 쓰던 것은 아닙니다. 왕이 백성에게 내리는 교서도 한글로 쓰였는데 선조는 임진왜란이 터지자, 급박한 마음에 ‘백성에게 이르는 글이다’라고 시작하는 ‘선조국문유서’를 썼습니다. 당시 공식적인 글이나 문서는 한자로 작성하던 시대였는데 선조가 한글을 공식적으로 사용하면서 백성과 소통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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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선조는 조선의 백성 중 왜군의 포로가 되어 그들에게 협조하는 자가 많았는데 선조는 이 교서를 내려 백성들을 회유했습니다. 당시 김해성을 지키던 장수 ‘권탁’은 이 문서를 품에 지니고 적진에 침투해 왜군 수십 명을 죽이고 우리 백성 100여 명을 구해서 나왔는데 그가 품에 지닌 교서에서 선조는 ‘어쩔 수 없이 왜인에게 붙들려 간 백성은 죄를 묻지 않는다. 왜군을 잡아 오거나 왜군의 정보를 알아 오는 사람, 또는 포로로 잡힌 우리 백성들을 많이 데리고 나오는 사람에게는 천민, 양민을 가리지 않고 벼슬을 내릴 것을 약속한다’라고 썼습니다.

비록 부상이 덧나 사망하기는 했으나 그가 지닌 이 국문 유서를 후손이 보관해 오다 보물 951호로 지정되어 부산시립박물관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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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한글은 천민 계급들과 여성들이 주로 사용했다는 세간의 소문은 왜 만들어진 것일까요? 사실 여성들이 주로 사용했던 것은 맞습니다. 한글 창제 직후부터 조선 후기까지 한글을 적극적으로 영위한 계층은 사대부 여성, 그중에서도 왕실의 여성입니다.

창제가 세종대왕의 주도로 이루어졌고 왕실을 중심으로 한글을 이용한 문헌의 간행 사업이 이루어진 만큼 한글은 왕실에서 시작되어 백성들에게 확산되기는 했습니다. 반면 창제 전부터 훈민정음 창제를 반대한 이들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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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으로 집현전 부제학을 지내기도 했던 최만리는 당시 훈민정음의 창제를 반대하는 상소문을 써 ‘글자를 만드는 것이 중국에 흘러 들어가 비난받을까 두렵습니다’라며 ‘풍토는 다 달라도 문자를 따로 만든 국가가 있는데 이들은 오랑캐였다’라며 중국 글자가 아닌 고유문자를 만드는 것은 오랑캐가 되는 일이라며 극렬히 반대했었습니다.

여기에 창제 이후에도 사대부 남성들은 여전히 훈민정음을 반대했고 공문서 등은 한자로 쓰는 것을 유지했었죠. 하지만 아무리 고집이 센 양반가라고 하더라도 사대부 여성들과 소통을 위해서는 부득불 한글을 써야 했습니다. 남녀가 유별하기 때문에 직접 만나 데이트를 할 수 없어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마음에 둔 사대부 여성이 한글로 편지를 써오니 한글로 답장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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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기존 한자 중심 문화권에서 소외되었던 계층이 적극적으로 한글을 받아들여 양반가를 제외하면 대부분은 한글을 썼습니다. 워낙에 실용적이고 배우기 편하기도 했거니와 양반 남성보다 양반 여성과 일반 백성의 수가 월등히 많았으니까요.

그런데 왕실에서 적극적으로 한글을 썼지만, 한글을 탄압했던 왕도 있습니다. 연산군인데요. 폭정으로도 잘 알려진 연산군의 만행이 지속되자 한양도성 내부에는 그를 비난하는 투서가 난무했는데 하나같이 ‘옛 임금은 그러지 않았는데 지금 임금은 어떤 임금이기에 신하를 파리 머리 끊듯이 죽이는가?’라며 그를 비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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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투서를 쓴 범인은 찾아지지 않았고 편지는 언문으로 쓰여 글쓴이의 정체도 알 수 없었습니다. 이에 연산군은 ‘앞으로 언문을 가르치지도 말고 배우지도 말며, 이미 배운 자는 쓰지 못하게 하고, 언문을 아는 자는 한성의 오부로 하여금 적발하여 보고하되 알고도 고발하지 않는 자는 이웃 사람이 벌을 주도록 하라’라며 참형이나 곤장 100대와 같은 무시무시한 형벌을 예고했습니다.

다만 연산군도 자신에 대한 비판에 순간적으로 화를 참지 못하고 한글을 탄압했던 것이지 선대 임금이 남긴 위대한 업적을 멸절할 의도는 없었고 이를 강행할 의도는 더더욱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한글을 가장 사랑한 왕도 연산군이었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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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궁중 잔치를 위해 뽑았던 당시 노래 잘하고 춤 잘 추던 여인들에게 일부러 한글을 가르친 후 한글 노래 가사를 익히게 했는데 한글은 연산군이 직접 가르쳤죠.

한글을 좋아하던 아버지 성종은 어릴 때부터 연산군을 앉히고 직접 가르쳤는데 연산군 역시 한글의 효용성은 어릴 때부터 깨달은 겁니다. 자신에 대한 비판에 분노했던 것일 뿐 한글 그 자체에 대한 분노는 아니었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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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은 태어날 때부터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집현전 학자들의 극렬한 반대가 있었고, 연산군의 언문 탄압도 있었고, 일제강점기에는 한국어 말살 정책으로 멸절의 위기를 맞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고난을 이겨낸 후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글자임이 증명되면서 1997년 유네스코는 문자로는 유일하게 훈민정음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했죠.

가끔 한글과 한국어가 촌스러워 영어를 써야 배운 사람 티가 난다는 분들이 있습니다만 너무나 아쉬운 일입니다. 우리가 더 사랑하고 아껴주지 않으면 세계 최고의 과학 문자 한글이 어떻게 번성할 수 있을까요? 우리부터 한글을 더 사랑하고 아껴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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