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에서 7시간 떨어진 중앙아시아의 거인국 카자흐스탄. 전 세계에서 9번째로 큰 영토를 가진 카자흐스탄은 남한 전체 면적보다 28배나 크고 서유럽 전체 면적에 버금갈 정도로 광활한 영토를 가졌지만, 인구수는 고작 1,900만 명에 불과합니다. 남한 인구수의 1/3 수준이죠.
그래서 지구상에 인구밀도가 가장 낮은데 개발하지 못한 영토가 많다 보니 그 안에 얼마나 많은 지하자원이 매장됐는지는 확인도 되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내륙 국가다 보니 해상 운송이 불가능해 경제적인 발전을 이루는 것이 더디지만 이들은 오히려 어마어마한 석유와 지하자원을 통한 발전을 꾀해 중앙아시아 중 가장 선두에 섰습니다.
그런데 거대한 영토 아래 그 양을 추산할 수도 없는 카자흐스탄이 최근 한국에게 ‘하얀 석유’로 불리는 리튬을 개발해달라고 손을 내밀었습니다. 아마 카자흐스탄의 수도를 알마티로 아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진짜 수도는 아스타나입니다. 벌써 26년 전인 1997년에 알마티에서 아스타나로 수도를 이전했죠.
2019년에는 초대 대통령인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의 이름을 따서 누르술탄으로 도시명을 변경했다가 다시 아스타나로 되돌렸는데요. 하지만 수도 아스타나보다 더 번성한 도시는 아무래도 이전 수도인 알마티입니다. 카자흐스탄 최대 경제도시로 꼽히는데 아무래도 경제도시다 보니 인구가 증가하면서 자연스럽게 교통체증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데요.
이에 카자흐스탄 정부는 순환도로를 구상했고 제1 순환도로 격인 최대 6차로, 총길이 66km에 달하는 ‘알마티 순환도로’가 한 달 전 개통됐습니다. 그런데 이 순환도로를 수주한 주인공이 한국 기업입니다. 이 사업은 한국의 SK에코플랜트가 한국도로공사와 튀르키예 건설사들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참여했는데 총사업비가 무려 1조 원에 육박합니다.
그런데 이 사업은 도로 준공 및 운영 후 정부에 이관하는 BOT 방식의 카자흐스탄 최초의 인프라 민간 협력사업으로 향후 16년간 SK에코플랜트와 한국도로공사가 운영 후 카자흐스탄 정부에 이관하게 되며 교통량과는 관계없이 적정 도로 수준을 유지하면 발주처가 대금을 지급하는 AP 방식을 채택했습니다. 따라서 교통량 변동에 따른 위험이 적어 약 1,800억 원의 안정적인 운영 수입이 보장되죠.
그런데 한국이 건설한 알마티 순환도로가 거의 완성될 즈음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카자흐스탄이 한국에게 손을 내밀어 리튬 좀 찾아달라고 부탁해 온 것이죠. 작년 11월 27일 카자흐스탄 지질위원회는 한국지질자원연구원과 포괄적 업무협약을 채택했습니다.
이번 MOU는 카자흐스탄의 요청으로 이루어졌는데 왜냐하면 지금 카자흐스탄은 광활한 영토 아래 매장된 핵심 광물 중장기 개발을 서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기술 모델을 찾던 중 지질연을 협력 파트너로 직접 선택했죠. 사실 카자흐스탄은 어마어마한 자원 부국입니다.
위에서 잠시 언급했듯 해상 운송이 불가능하지만 석유와 지하자원을 이용해 경제발전을 이뤘을 만큼 귀중한 광물이 많은데 이를 직접 탐사하고 개발할 기술력을 갖추지는 못했습니다. 핵무기의 핵심인 우라늄 생산의 전 세계 40%를 차지하는 최대 생산국이면서 구리, 아연, 몰리브덴을 포함한 약 100여 종의 자원을 보유한 자원 부국이죠.
지난 2021년 10월 핵심 광물 개발을 위해 한국에게 기술지원을 요청했었는데 일본과 중국 등이 나서기도 했으나 파트너로 한국을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가장 먼저 탐사에 나설 광물은 다름 아닌 리튬입니다. 광산 2곳을 테스트베드로 선정해서 올해부터 탐사를 시작하게 되는데 이는 엄청난 일입니다. 왜냐하면 리튬이니까요.
지난 2월 27일 미국 플로리다에서는 제32회 글로벌 금속광업 컨퍼런스가 개최됐습니다만 이 컨퍼런스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완성차 업체가 몰렸습니다. 테슬라, GM, 포드, 스텔란티스, 리비안 오토모티브, 메르세데스 벤츠그룹 AG, 재규어랜드로버 오토모티브 등 전 세계 유수의 자동차 기업들이 몰렸는데 전부 고위급 간부들이었죠.
이유는 리튬에 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현재 전 세계 자동차 시장은 전기차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고 유럽연합은 2035년부터 아예 휘발유, 경유 등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내연기관차 판매를 금지하기로 했습니다. 곧 내연기관차의 시대가 가고 전기차 시대가 열리는 것이죠.
그런데 뭐니 뭐니 해도 전기차의 핵심은 배터리인데 배터리의 핵심 원자재는 다름 아닌 리튬입니다. 휘발유나 경유와 같은 화석연료를 태워 에너지를 얻는 것이 아니라 미리 충전한 배터리로 움직이는 전기차의 특성상 배터리 성능은 전기차입니다. 이러한 전기차에 가장 대중적으로 적용되는 배터리가 리튬이온 배터리로 2차전지의 일종입니다.
아마 최근 한국 주식시장에서 미친 듯이 상승 중인 에코프로를 눈여겨보신 분들은 잘 알고 계시겠지만 리튬은 광석과 소금물의 상태로 지구상에 존재하는데 그 양이 아주 미미합니다. 그래서 리튬을 두고 하얀 석유 또는 하얀 황금이라 부르는데 중남미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칠레에 전 세계 매장량의 56%가 매장되어 있죠.
소위 ‘리튬 트라이앵글’이라 부르는 지역인데 이 리튬을 두고 볼리비아는 국유화를 선언했고, 아르헨티나는 이를 ‘전략 광물’로 지정해 모든 탐사 활동을 멈춰 세우며 민간기업의 채굴권을 정지시켰습니다. 칠레 역시 리튬 산업의 국유화를 위한 준비작업으로 국영 리튬 기업을 설립할 계획을 밝혔죠. 그뿐만 아니라 리튬 매장량 세계 10위인 멕시코는 법을 개정해 리튬 국유화를 선언했죠.
리튬이 매장된 국가들은 너도나도 국유화를 선언하는데 전기차 생산을 위해 필요한 금속은 2050년까지 1경 3천조 원 규모가 필요한 실정입니다. 그래서 리튬 가격은 2021년 대비 590%나 증가했고 현재 추세를 따른다면 리튬 수요는 2030년까지 7배 이상 급증할 것으로 미국 블룸버그 통신은 내다보고 있습니다.
한국의 상황은 더 심각합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국내 전체 리튬 수요의 89%가 배터리 생산에 쓰이고 있는데 이 수요는 2040년이 되면 2020년보다 42배 높아지게 됩니다. 한국에 매장된 리튬은 극소량에 불과해 국내 수요를 따라갈 수 없기 때문에 외국으로부터의 원활한 리튬 수급이 한국의 미래를 결정하게 되는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원 부국 카자흐스탄이 지질연에 리튬 좀 찾아달라고 도움을 요청한 겁니다. 이제 지질연은 카자흐스탄이 그간 축적한 지질과 광산 데이터를 제공받아 리튬 유망광구 2곳에서 탐사를 추진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카자흐스탄의 리튬 매장량은 어느 정도나 될까요?
사실 정확한 매장량 탐사는 완전하게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미국 지질조사국은 카자흐스탄에 매장된 리튬은 대략 5만 톤으로 예측했는데 이는 과거 구소련 당시 자료에 기반한 수치로 실제 생산할 수 있는 리튬은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물론 지질연이 카자흐스탄에서 엄청난 양의 리튬을 찾아낸다고 하더라도 이 리튬이 한국의 소유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만 이러한 동맹을 통해 한국의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 및 배터리 등에 필요한 원재료를 조금 더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은 충분히 기대할 수 있죠. 한편 지질연은 현재 한국에서도 리튬 탐사를 시작했습니다.
잠시 언급했듯 리튬은 소금물과 광석 상태로 매장되어 있다고 설명해 드렸었는데 한국에는 소금물 형태가 아니라 광석 상태의 리튬이 큰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사실 한국이 여전히 자원 빈국으로 불리는 이유는 1960년대 태백산 부근에서 조사한 이후 제대로 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리튬은 말할 필요도 없죠.
하지만 이제 드론과 AI 등 새로운 탐사 관련 기술이 등장한 만큼 이제 대대적인 지하자원 탐사를 시작할 계기가 생겼고 이에 지질연은 2019년 연말부터 휴광 및 폐광을 대상으로 리튬 탐사를 시작했는데요. 2022년에는 국내 33개 광산을 대상으로 리튬 광석 매장 여부를 조사했는데 그중 6곳에서 의미 있는 매장량을 확인했습니다.
특히, 경북 울진의 보암산에서 향후 자원으로 사용할 수 있는 리튬이 모여있는 광화대를 확인했고 울진 보암광산 주변으로 드론을 띄웠습니다. 이 탐사로 광산 주변에서 리튬 규산염의 한 종류인 리튬 레피돌라이트를 발견했는데 일부를 채굴해 확인한 결과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세계 최고 리튬 광산으로 알려진 호주의 그린부시 리튬 광산보다 품위가 2배 높다는 결과가 나온 겁니다.
광석의 품질을 나타내는 품위에 있어서 호주 그린부시 리튬이 2.8%인데 반해 울진 보암광산 리튬은 4.7%로 나타났는데요. 하지만 보암광산 주변으로 울진 금강송 보호구역이 자리하고 있어 직접 채굴을 위해서는 문화재청과 충돌할 수밖에 없는데 지금은 직접적인 채굴 없이도 매장량을 분석할 수 있어 지질연은 올해 내로 매장량 분석을 끝낼 계획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채굴 여부가 결론 날 것이고 한국은 광석을 수산화리튬 및 탄산리튬 등 2차 가공품으로 만드는 기술까지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2025년 반도체 산업을 뛰어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배터리 산업에서 우위는 아니겠지만 뒤처지지는 않을 희망을 품어볼 수 있게 됐습니다.
부디 카자흐스탄과 울진 두 곳에서 모두 희소식이 전해지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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