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부터 전국 각지에서 여우를 목격했다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한국 토종, ‘붉은여우’를 말이죠.
1980년의 기준으로 한국에서 완전히 멸종되었다고 알려진 토종 여우가 다시 한국 자연으로 돌아오게 된 기막힌 사연… 그리고 놀라운 근황까지 한 번에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6.25 전만 해도 여우는 한국 전역에서 볼 수 있는 정말 흔한 야생동물이었습니다. 대대로 한반도에 많이 서식해 온 여우,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인가 주변과 산기슭에서 쉽게 발견되는 동물이고, 농작물에 해를 끼치는 쥐와 참새 등의 천적이라 농사에 큰 도움이 되었다.”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농가의 가축을 잡아먹고 생선이나 사람의 먹을 것을 훔쳐 가는 얄미운 동물이었다고 하는데요.
오랫동안 같은 땅에서 함께 살아오다 보니 여우구슬 이야기, 구미호, 여우 누이 등 한국에는 여우를 모티브로 한 이야기도 참 많습니다.
이렇게나 많던 여우가 싹 사라졌습니다. 1960년대 초, 급격히 개체수가 감소하더니 1980년대 토종 여우 목격 건수는 1건이었죠. 1990년대 1건, 2000년대 2건… 그런데 이조차도 목격했다는 말만 있었지 어떠한 단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학계에서는 토종 여우가 우리나라에서 절멸된 것으로 분석하고 있었는데요. 즉, 한국 토종 여우의 씨가 말라버렸다는 것이죠.
그렇게나 많던 여우가 갑자기 사라지게 된 이유는 당시 여우 털이 고가에 판매되며 이를 노린 밀렵꾼이 급증한 것도 문제였지만, 가장 치명적인 원인은 어이없게도 쥐 잡기 운동이었습니다.
1960년대 식량난에 허덕이던 한국, 쥐는 한국인의 고달픔을 더 악화시켰습니다. 곡물을 훔쳐 먹는 것도 모자라 여기저기 질병까지 퍼뜨리고 다녔으니 쥐는 자연스럽게 박멸 대상으로 여겨졌는데요.
그렇게 전국적으로 벌어진 쥐 잡기 운동이 토종 여우를 멸종으로 이끌지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여우는 족제비나 너구리보다 민가에 가깝게 서식하던 동물이다 보니 쥐약에 오염된 먹잇감을 먹은 여우들이 하나둘씩 죽어 나갔던 것이죠.
한국 토종 여우는 한국 생태계의 중요한 연결 고리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은 토종 여우 복원 프로젝트에 많은 힘을 쏟았습니다. 여우를 목격했다는 곳에 정밀 조사를 실시했지만, 안타깝게도 성과가 없었다고 하는데요.
어쩔 수 없이 해외에서 같은 종을 수입해 복원하는 방향으로 계획을 수정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습니다. 예민한 성격인 여우는 짝짓기를 거부했고, 성공하더라도 새끼가 폐사하는 등 국내 연구진이 아무리 노력해도 도무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는데요.
그런데 놀랍게도 예기치 못한 곳에서 토종 여우 복원 사업의 해결책을 찾게 되었습니다. 2006년 경기도의 한 개 사육 농장 주인이 자신이 여우를 키우고 있다며 자수를 해 왔습니다. 이 밀수업자는 여우들을 러시아에서 밀수입해 와 비싼 돈에 팔아먹으려고 사육해 왔던 것인데요.
하지만 키우다 보니 배보다 배꼽이 더 커졌다고 합니다. 입맛이 까다로운 여우들은 비싼 소고기나 말고기가 아니면 입도 안 대고, 그 예민한 성격을 맞춰 주려면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정성 어린 보살핌으로 새끼 여우 4마리가 태어났고, 이 새끼들까지 건강하게 자라났는데… 여우가 많아졌으니 당연히 돈도 더 많이 들었겠죠. 사육비가 쭉쭉 새어나가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고, 농장 주인은 차라리 벌금과 처벌을 받더라도 이 녀석들을 나라에 넘기자는 결심하게 되었던 것이죠. 밀수업자의 일확천금 꿈은 자수엔딩으로 끝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걱정과 달리 밀수업자는 처벌받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기증받은 여우의 DNA를 검사한 결과, 밀수입된 여우들이 한국 토종 여우였기 때문이죠.
서울대학교, 환경부, 국립공원 생물종 보전원, 서울대공원 전문가들이 함께 연구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던 붉은여우의 번식을 농장 주인은 다년간 개를 키워왔던 노하우로 밀수입한 여우들을 자연스럽게 교배시켰을 뿐만 아니라, 그 여우들에게 태어난 새끼 여우 4마리까지 아주 건강하게 키워냈죠.
원래는 밀수입했기 때문에 당연히 처벌받아야만 했지만, 환경부에서는 번식 노하우를 알려주는 대신 그의 벌금과 처벌을 면해 주기로 했습니다.
농장 주인이 밝힌 노하우는 이랬습니다. 우선 여우가 스트레스받지 않는 환경을 조성하라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우의 정확한 특성을 파악해야 한다고 하는데요. 최첨단 장비를 한껏 들인 좋은 시설보다 진짜 여우가 좋아하는 환경을 만드는 게 핵심 포인트였다고 합니다.
농장에서는 여우가 좋아하는 깊은 굴을 팔 수 없으니, 과일 농장에서 사용하는 노란 플라스틱 박스를 이용해 여우들의 보금자리를 만들어줬는데요. 이곳에서 여우들이 다른 무엇보다 심리적 안정을 가졌다고 합니다. 이렇게 노란 과일 플라스틱 박스 덕분에 편해진 여우들은 알아서 번식도 하고, 새끼도 낳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그동안 여우를 복원하느라 얼마를 썼는데, 정답은 과일 박스였다니… 이 사실을 알고 나서 국내 연구진들은 좀 허무하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밀수업자의 노하우로 복원 진행은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환경부와 국립공원은 야생 훈련을 거쳐 2012년 8월부터 여우를 자연으로 방사했습니다.
하지만 처음 방사된 여우는 안타깝게도 일주일 만에 죽고 말았다는데요. 추워서 아궁이에 들어갔다가 죽게 된 암컷 여우, 다리에 큰 부상을 입고 돌아온 숫여우… 아직 야생은 그들에게 험난했습니다. 2013년 9월 말, 다시 소백산 국립공원 일대에 여우 3쌍을 방사했습니다. 2014년에는 10마리, 2015년에는 4마리 등 총 75마리가 자연으로 돌아가게 된 것이죠.
그리고 이 여우들이 한국 자연에 잘 적응했는지 전국 곳곳에서 여우 목격담이 들리고 있습니다. 2014년 강원도 펜션에 놀러 간 관광객들에게 생존 인증샷을 찍어 준 여우, 2015년 충청북도 닭 농장에서 닭을 잡아먹다가 딱 걸린 여우, 2022년에는 부산의 한 야산에서 서식하다가 목격되었습니다.
여우는 서식지에서 벗어나 산지, 농촌, 도심 등 다양한 곳으로 이동해 가면서 서식하는 특징이 있다고 하는데요. 이대로 순조롭게 여우 복원에 성공한다면 이제 과거처럼 언제 어디서든 여우가 더 많이 목격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드시죠? ‘여우가 아무리 귀엽다고 해도 육식 야생동물인데, 위험하지는 않을까?’ 하지만 여우는 먼저 자극하지 않는 이상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특히나 붉은여우는 사람을 기피하는 성향이 매우 강해 원래는 도심에도 잘 나타나지 않는다고 하는데요. 다만 자연에서 먹이가 떨어지는 겨울이 되면 도심을 떠돌게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마 토종 여우의 개체수가 늘어난다고 해도 산에 가거나 겨울이 아니면 마주칠 일이 거의 없을 것 같은데요.
혹시나 야생의 여우로 마주쳤다면 이걸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놀라서 소리 지르는 것 금지, 너무 귀엽다고 해서 먹이를 왕창 갖다 주는 것도, 지나친 관심도 지양해야 한다고 합니다. 또한 반려동물과 함께 있다가 마주쳤다면 여우에게 자극을 줄 수 있으니 냉큼 그 자리를 뜨는 것이 좋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국립공원연구원 중부 보전센터에 즉시 신고하기! 여우가 발견된 곳이 혹시나 위험하다면 환경부에서 즉시 포획해 이주 방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신고는 필수라고 합니다. 한국 토종 여우 복원 사업, 순조롭게 이어지고 있는 것 같은데요. 여우를 시작으로 한국 땅에서 자취를 감추게 된 우리 토종 동물들의 복원 사업이 쭉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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