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심 몸장 유튜버_이하 몸장)
한국가족상담연구소 김선영 대표님_이하 호칭 생략)
몸장) 안녕하세요.
몸장) 간단한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김선영) 안녕하세요. <엄마를 미워하면 나쁜 딸일까>의 저자 김선영입니다. 반갑습니다.
몸장) 오늘 제가 궁금한 게 가족 간의 관계에서, 특히 모녀 사이에 ‘나는 왜 엄마의 딸로 태어났을까?’ 라고 생각할 정도로 되게 애증 관계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이러한 문제는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일까요?
김선영) 생각보다 엄마와 딸이 굉장히 융합된 관계이기 때문에, 해결하기가 사실 쉽지가 않습니다. 엄마는 딸을 최선을 다해서 사랑하고 있어요. “엄마는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통제하고 있고, 엄마가 이런 잔소리를 하는 거야.” 라고 얘기를 하면서, 생각보다 엄마가 딸에게 어린 시절부터 여러 가지 규칙을 요구했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딸은 그 속에서 불편한 마음이 있어도 엄마에게 표현을 하지 못하고, 자기가 조금 참기만 하면, ‘우리의 관계는 괜찮아질 거야.’ 이렇게 생각하다 보니까요. 싫은 걸 싫다고 말을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관계의 패턴이 엄마 중심으로 해서 연결되다 보니까 그 융합에서 좀 벗어나기가 사실 쉽지가 않습니다.
몸장) 특히 이런 관계가 많이 있는 것 같아요. 겉으로 볼 때는 굉장히 괜찮아 보이는데 속으로 들어가면 막 서로 약간 미워하는 감정을 가지고 있고, 그게 왜 그런 거죠?
김선영) 네, 맞아요. 맞아요. 엄마가 주체가 되어서, 엄마가 원하는 그런 사랑이라고 정의하는 부분으로 자녀를 양육하고, ‘그 속에 네가 들어와야 넌 행복할 수 있어.’ 라는 엄마 안의 행복이라는 기준으로 자녀를 양육하다 보니까 자녀가 자기를 찾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몸장) 엄마의 기준으로 계속 이제 하다 보니까 자녀 입장에서는 자신만의 기준을 만들기 어렵다?
김선영) 네, 결혼해서까지도…
몸장) 결혼해서 까지도요?
김선영) 네, 결혼해서까지도 이 문제가 생각보다 좀 심각하게 발휘가 되고, 그리고 결혼해서 그 딸이 또 자녀를 낳았을 때, 자기 안에서 충족되지 못했던 어떤 욕구들이 현재 또 딸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그런 서로 대물림되는 여러 가지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몸장) 또 궁금한 게 네 이게 결혼하기 전에는 좀 이해가 가거든요. 그런데 결혼하고 나서도 어떠한 그런 압박을 받는다는 게 어떤 예시가 있을까요?
김선영) 예를 들면, 과잉 보호하는 경우가 있어요. 요즘은 이제 엄마들이 내가 어린 시절에 엄마에게 보호를 받고 싶었고, 엄마가 너무 바빴어. 바빴기 때문에 집에서 엄마가 밥도 해주고, 자녀를 기다려주고 이런 것들을 좀 바랐을 수 있잖아요. 그런데 내가 결혼을 했어요. 결혼을 하면, 딸에게 내가 받고 싶었던 걸 해주게 돼요. 그러면서 과잉 보호를 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나는 너를 최선을 다해서 사랑하고 있어.’ 라는 부분으로 이제 과잉 보호를 확대시키고 있고, 이게 아이한테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잘 모를 수 있어요.
김선영) 너무 불편한 게 있으면 엄마가 언제든지 달려와서 해결해 주고, 이런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요. 저 같은 경우에도 제가 어린 시절에 우리 딸을 좀 과잉 보호를 했거든요. 내가 어린 시절 부모에게 되게 받고 싶었던 보호나, 그런 어떤 따뜻한 부분들, 그 다음에 함께 뭔가를 해결해 주는 이런 것에 대한 욕구가 있어서요. 딸이 작은 울음, 울기만 하고 뭔가 불편하다고 해도 달려가서 딸의 욕구를 들어주고 있는 내 모습이 있더라고요. 그런데 나의 모습은 내가 객관적으로 봐도 난 최선을 다해서 사랑해 주는 거니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밖에서는 자신을 그렇게 받아주지 않을 수 있거든요.
몸장) 그렇죠.
그러면 좌절을 느끼고 이제 집에 들어와서 뭔가 자존감이 좀 없다든가, 사회성이 떨어진다든가 이런 게 왔을 때, 이제 인식을 해요. ‘아, 얘는 왜 내가 열심히 사랑해줬는데 이렇게 하고 있지?’ 라고 문제를 인식은 할 수 있지만, 본인의 문제로 인해서 딸이 그렇게 됐다는 걸 잘 모를 수는 있어요.
몸장) 아… 그럼 딸도 어떻게 보면 그 문제에 대해서 인식을 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겠네요?
김선영) 그럼요. 못하죠.
몸장) 그렇다면, 모녀 관계를 힘들게 하는 대표적인 문제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김선영) 네, 방금 말씀드린 엄마가 문제를 해결해 주는 상황이 좀 많고, 엄마가 약한 사람이 있어요. 그러니까 엄마가 아이처럼 약하고, 아이가 부모가 되어서 엄마를 위로해 주는 그런 상황도 꽤 많이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엄마가 항상 감정적으로 아이에게 힘들다고 얘기를 해요. 본인이 우울하고, 자신의 인생에 있어 즐거움이 없고, 엄마가 어떻게 살아야 될지 모르는 무기력 상태에 있다 보니까, 자녀에게 어떤 돌봄을 해줄 수 있는 그런 에너지가 잘 없는 엄마들도 있거든요.
몸장) 그런 경우에는 어떤 문제가 생길까요?
김선영) 엄마가 일단 죽을까 봐 걱정을 해요. 어린 시절부터 “엄마 밥 먹어.” 하면서 미음을 끓여서 주거나, 엄마가 또 수시로 우울증이 있어서 병원에 가고, 삶의 무기력한 상태다 보니까 또 진짜 실제로 질병도 찾아오기도 하고요. 그 상황 속에서 엄마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어떤 마음이 아이 안에 일찍 들어가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아이는 내 삶의 목표가 ‘엄마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로 자리를 잡아요. 그러다보니까 성인이 되었을 때, 의젓하게, 책임감 있게 엄마를 등에 업고 이렇게 같이 성장을 하니까 주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피드백을 많이 받아요. “너 참 잘 자랐다.”, “참 효녀다.”, “너 효녀다.” 이러면서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다 보니까 ‘너무 괜찮게 크고 있구나.’ 라고 스스로를 인식해요.
김선영) 그런데 이제 어른이 되었을 때 보면, 지금 현재 가족도 돌봐야 되는데, 부모님도 돌보고 있는 그런 모습을 보이면서, 과중한 그런 무게감으로 버거워하는 모습을 많이 보이는 엄마와 딸이 있고요. 또 편애가 주는 어떤 피해는 사실 당해보지 않는 사람은 알 수 없는 부분인데요. 편에는 엄마가 아들만 좋아하고, 딸은 어떻게 보면 살림 밑천으로 생각하면서, 딸에게는 무관심하고 소홀히 하는 경우가 예전 시대에 많이 있었어요. 예전 시대의 그런 구조 속에서 컸는데도 불구하고, 엄마들의 어떤 모습에서 두 가지 양상이 있는데요. 한 가지는 편애 속에서 본인이 어린 시절을 컸을 때, 부모에게 많이 화가 났어요. 그리고 또 하나의 딸은 ‘아들을 지원해주는 건 당연한 거야.’ 하고 당연히 여기는 딸이 있어요.
김선영) 그렇게 받아들인 딸이 부모가 되었어요. 엄마가 되었을 때, 본인이 아들하고 딸을 낳았으면 본인이 아들을 좋아하는 상황으로 가고, 딸을 그냥 살림 밑천으로 똑같이 생각해요. 본인이 당했던 자신의 어린 시절의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 인식 못하고, 똑같이 하는 경우가 있고요. 또 하나의 경우는 딸에게 집중하는 경우예요. 아들을 좀 하대하고요.
몸장) 반대로요?
김선영) 네, 반대로 딸에게 이제 자신이 이제 해주지 못했던 억울함을 딸에게 너무 집중하는 그런 형태로 좀 갈 수 있어요. 그러면 또 아들이 또 편애를 받는 입장이 좀 될 수도 있고요. 편애에 당한 입장은 굉장히 억울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비교 속에서 괴로워하는 그런 모습들을 보일 수 있습니다.
몸장) 이러한 관계의 패턴이라는 게 굳어진 양상이잖아요?
김선영) 네, 맞아요.
몸장) 그렇기 때문에 뭔가 고치기 어려울 것 같은데, 그런 관계를 고칠 수 있나요?
김선영) 고칠 수 있습니다. 저는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고, 왜냐하면 ‘내가 지금 어떤 행동을 하는데 어떤 부분 때문에 이런 행동을 했구나.’ 하고 문제 인식을 하면 됩니다. 그런데 이런 어떤 여러 가지 경우에서 자기 인식을 하는 게 사실은 힘들어요. 그래서 자기가 어린 시절 무엇을 받고 싶었는지에 대해서 인식하고, 그 감정의 자신을 만나줘야 되거든요. 결국은 불쌍했던 건 나고, 딸이 아니에요.
김선영) 그런데 우리는 딸을 안쓰럽게 보거나, 어린아이처럼 이렇게 키우는 경우는 어떻게 보면 불쌍했던 어린 시절에 자기가 있을 수 있거든요. 그 자기를 위로해 줘야 되는 거지, 지금 현재의 딸은 굉장히 괜찮은 구조라는 거죠. 자기와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걸 인식 시켜주고, ‘딸은 내가 아니고, 힘들었던 건 나였다.’ 그래서 나한테 에너지를 다시 쓰고, 그런 부분을 나를 돌보는 쪽으로 포커스를 맞춰서 인식해 주면 됩니다. 그렇게 인식해줘도 금방 행동이 변하지는 않아요. 그래서 ‘내가 또 그렇게 과잉 보호를 하는구나.’ 이제 그만하고 “네가 좀 해. 네가 스스로 해봐.” 라고 좀 기다려 보는 거예요. 버텨야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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