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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걸고 베트남 탈출하더니 영국에서 한국유물만 찾고있는 베트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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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콘텐츠에서 조선시대 백정의 역사를 자세하게 다뤘었습니다. 후삼국시대부터 한반도에는 여진족, 거란족, 말갈족, 타타르족 등 북방 유목민들이 이주해 왔고 이들이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조금씩 우리 한민족에 피가 섞이기 시작했다고 설명해 드렸고 이들이 조선시대에는 도살업과 도축업에 종사하던 백정의 시작이라고 말이죠.

현재로 따지자면 이들은 자국에서 탈출한 난민인데 난민은 비단 수백 년 전에만 존재하던 것은 아닙니다. 가장 최근에는 탈레반을 피해 목숨 걸고 아프간에서 탈출한 난민들이 발생했고 2018년에는 제주도로 입국한 예멘인 500여 명이 난민을 신청해 찬반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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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가난하고 헐벗어 우리 앞가림하기에도 바빴던 1970년대에도 대규모 난민이 한국으로 왔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한국이 참전한 베트남 전쟁이 급박하게 돌아가던 1975년 ‘자유 진영’ 남베트남의 수도 사이공이 북베트남에 함락되면서 패망하자 작은 보트 하나에 목숨을 걸고 조국을 떠난 베트남인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을 선상 난민이라 하여 ‘보트피플’이라 불렀는데 이 당시의 한국에는 수많은 보트피플이 밀려왔습니다. 한국 해군 상륙함 2정이 988명의 베트남인을 싣고 부산항에 들어왔고, 사이공 남쪽 해상에서 표류하던 베트남 해군 상륙정에서 216명을 한국으로 데려왔습니다. 이들 외에도 보트피플은 꾸준히 한국으로 들어와 한국 사회에 흡수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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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 가장 극적으로 구출된 보트피플이 있습니다. 1976년 26명의 베트남인이 작은 낚싯배 한 대에 의지해 필사적으로 베트남에서 탈출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엔진이 고장나버렸고 이들은 하염없이 망망대해를 떠돌 수 없었는데요. 수분 고갈로 자신이 죽어 갈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바닷물로 입술을 축이며 버티던 그때 그들 앞으로 거대한 선박이 한 척 지나갑니다.

선미에 골든돌핀이라고 선명하게 쓰인 글자를 확인한 순간 선박에서 구조용 밧줄이 내려왔고 이들은 다행히 안전하게 구출될 수 있었는데요. 그들을 구출한 건 한국인이 선장으로 있는 골든돌핀호였는데 한국인 선장과 선원은 정성을 다해 그들을 보살폈습니다. 그리고 그 26명 중에는 이제 갓 18살이 된 ‘민청’이 있었고 그는 이 은혜를 절대 잊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하고는 영국으로 건너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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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학교 옥스퍼드 대학교는 약 39개의 컬리지와 프라이빗 퍼머넌트 홀 6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아무래도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건설했던 영국이기 때문에 유서가 깊은 만큼 컬리지마다 기숙사도 있고 부속 도서관이 별도로 존재하죠. 그중 보들리안 도서관은 옥스퍼드 대학교의 중앙도서관으로 1602년 공식적으로 문을 연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도서관이며 런던의 대영도서관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합니다.

대영도서관보다 약 150년 앞서 만들어졌는데 약 1,100만 권의 도서를 보유하고 있다고 하죠. 1610년부터는 출판되는 모든 서적은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하는 납본 도서관으로 정해져 영국 내에서 출판되는 모든 책은 한 부씩 보들리안 도서관으로 보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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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보들리안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빌리고 반납하는 도서관의 역할도 하지만 과거에는 일종의 박물관 역할도 했습니다. 그래서 대영박물관처럼 전 세계 곳곳에서 수집한 다양한 유물들을 보관하고 있기도 한데 한국의 역사 문화와 관련하여 중요하고 가치 있는 필사본, 희귀본, 그리고 유물들을 오랜 기간 소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자료들은 지하 수장고에 함부로 방치되어 있었고 학자들은 관심도 갖지 않았습니다. 1976년 베트남에서 탈출한 민청이 사서로 발령받기 전까지 말이죠. 위에서 언급한 한국 선박 골든돌핀호가 구출한 보트피플 민청이 주인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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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이 글자를 모르는 백성들이 쉽게 글자를 읽고 쓸 수 있도록 훈민정음을 창제해 반포한 덕분에 한문 서적들이 한글로 번역되어 수많은 한문 지식이 한글을 통해 백성들에게 전해졌습니다.

물론, 이후로 서양에서 들어온 영어로 된 서적도, 라틴어로 된 서적도, 프랑스어로 된 서적도, 전부 한글을 통해 번역될 수 있었는데 이렇게 훌륭한 한글이 국문, 즉 나라의 글자로서 공식적으로 인정된 것은 그로부터 450년이 지난 1894년입니다. 그런데 한글이 국문으로 공식적으로 인정되기 이전에 이미 서양의 성경을 한글로 번역한 인물이 있는데 바로 영국의 존 로스 목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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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한글로 성경을 인쇄하기 전 소책자 ‘예수성교문답’과 ‘예수성교전서’를 1881년 9월에 시험 인쇄했는데 이는 한글로 인쇄된 최초의 기독교 문서입니다. 각각 수천 권이 인쇄되어 만주와 일본을 거쳐 한국에 반포됐죠.

이렇게 시험 인쇄에 성공한 로스는 수정을 거쳐 1881년부터 누가복음을, 1882년에는 ‘예수성교누가복음전서’라는 한국 최초의 기독교 성서를 발간해 오늘날 한국교회의 초석을 닦았습니다. 그런데 한국 최초의 기독교 문서, 즉 ‘예수성교문답’이라는 소책자 원본이 바로 보들리안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1885년 ‘솔로몬 시저 말란’ 목사가 기증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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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를 떠나 한국어가 공식 글자로 채택되기 전 만들어진 기독교 문서가 한국이 아닌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보들리안 도서관에 있는 겁니다.

이뿐만 아니라 보들리안 도서관에는 영조의 장례 행렬을 그린 ‘영조 국장 발인 반차도’를 포함해 영조가 자기 사위에게 준 책의 증정본, 1885년과 1886년 사이에 고종황제가 여러 문관과 무관에게 직위를 수여하기 위해 발행한 문서들, 강민이 고종황제를 위해 만든 해시계, 이방자 여사가 만들고 서명한 도자기, 희귀한 갑옷, 18세기 초 또는 19세기에 제작된 장식이 화려한 투구, 장군이 쓰던 화살통과 화살 등 우리나라 유물 3만여 점이 소장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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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자료는 개항 초기 조선을 방문했던 선교사들이 수집한 것들인데 잘 보존해 달라고 기증한 유물들은 이름표도 붙지 못한 상태로 아무렇게나 수장고 속에서 방치됐었습니다. 방대한 양의 한국 유물들이 제 이름을 갖게 된 것이 바로 민청 덕분입니다.

19세기 후반부터 한국 관련 기증품이 쏟아지듯 들어왔지만 거의 모든 유물은 지하 수장고로 직행해 버려지듯 보관됐습니다.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은 것이죠. 그러다 변화가 생긴 것은 2008년, 외부 후원을 계기로 한국 소장품을 확대하면서 민청이 담당자로 배정되면서 시작됐습니다. 18살에 구출되어 영국에 정착한 그는 더럼대학교에서 일본어와 중국어를 복수전공을 했고 이후 노섬브리아에서 문헌정보학 석사과정을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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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도서관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한 것이 계기가 되어 평생 대학도서관 사서로 일하게 됐는데 오랜 기간 도서관에서 일하며 동아시아 자료들을 다루면서 자연스럽게 희귀본, 필사본, 유물 등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그리고 2001년 옥스퍼드 대학교로 옮기면서 본격적으로 관련 연구를 시작했는데 그는 특히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한국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런 그의 눈에 지하 수장고에 제목이나 저자와 같은 세부 사항도 없이 단순히 한국책이라는 라벨만 붙어 중국 자료와 함께 보관된 것이 보였죠. 이에 보들리안 도서관은 물론 옥스퍼드 대학교 도서관 100여 곳과 박물관 4곳의 수장고까지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정리한 끝에 2013년 한국 국립중앙도서관과 함께 옥스퍼드 대학교에 한국관을 공식 개관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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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고문헌에 흥미를 느껴 시작했는데 그에 대한 세부 설명이 부족해 독학으로 한국 역사를 공부하며 작업에 매진했는데요. 그러면서 얼마나 희귀하고 중요한 문헌들인지 깨달으며 관심이 더욱 높아졌다고 하죠. 그 덕분에 잘못된 정보들도 바로잡혔습니다.

영조의 장례 행렬을 그린 영조 국장 발인 반차도가 대표적인데 그가 처음 이 그림을 발견했을 때는 ‘1890년 조 대비의 장례 행렬’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그는 의문을 품었죠. 도서관에 기증된 연도가 1902년인데 고작 12년 전 작품이라 보기에는 너무 해지고 닳았으니까요. 이에 그는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의 도움을 받아 공식 의궤와 비교한 끝에 이 그림은 110년 전 18세기 영조의 장례식이라는 점을 확인해 정보를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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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복잡하고 지난한 작업 끝에 나온 첫 성과가 바로 2011년 발간된 ‘한국의 보물들: 옥스퍼드 대학교의 보들리안 도서관과 박물관 소장 희귀본, 필사본, 그리고 유물들’이라는 책입니다. 당시에는 보들리안 도서관에서 한 달간 전시회도 개최했는데 이후로도 작업의 끈을 놓지 않고 2019년 한국의 보물들 2권을 출판했고 이제 39개 컬리지를 직접 방문해 한국 유물이 있는지 물어본 후 직접 방문해 확인한 뒤 한국 연구자들에게 문의해 그 정체를 확인하는 작업 중에 있습니다. 동시에 3권을 준비하고 있죠.

그 덕분에 전 세계 단 한 점 남은 한국어 문법 활용 사전 ‘Terminations of the verb 하다’의 존재가 알려졌습니다. ‘한국의 귀중한 자료를 보면 감동이 밀려온다’는 민청, 비록 국적은 다르지만, 한국을 위해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마다하지 않는 그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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