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7년 6월 27일 뉴질랜드에서 개최된 제31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한국에 또 하나의 세계자연유산을 등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바로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인데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지역은 한라산, 성산일출봉, 거문오름 용암동굴계 등 3가지인데 잘 아시다시피 이들은 제주도의 상징과도 같습니다.
남한에서 가장 높은 한라산, 제주도 360개 오름 중 바다에서 우뚝 솟아올라 극적인 장관을 연출하는 성산일출봉, 그리고 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굴계로 손꼽는 거문오름 용암 동굴계까지 무엇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죠.
그중 거문오름 용암동굴계는 다른 2개에 비해 덜 알려지기는 했지만, 등재기준이 놀랍습니다. 유네스코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이와 유사한 동굴계 중 가장 우수한 것으로 평가되는 거문오름 용암 동굴계는 이런 종류의 용암 동굴을 이미 본 적 있는 사람조차 빼어난 시각적 효과에 감탄한다. 동굴 천장과 바닥에는 형형색색의 탄산염 생성물이 장식되어 있으며, 탄산염 침전물은 어두운 용암 벽에 벽화를 그린 것처럼 군데군데 덮여 있어 독특한 볼거리를 연출한다.’라고 쓰고 있는데, 아직 저도 가 본 적은 없지만 꼭 한번 가 봐야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 제주도에서 공사 도중 새로운 용암 동굴이 새롭게 발견됐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나요?
암벽이 우르르 무너지며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드러났죠. 거문오름 용암 동굴계는 약 30만 년 전 해발 454m에 불과한 작은 화산인 거문오름에서 분출된 용암이 지표를 따라 약 13km 떨어진 해안까지 흘러가며 만들어진 여러 개의 용암 동굴을 말하는데 이들은 각각 벵뒤굴, 만장굴, 김녕굴, 용천동굴 그리고 당처물동굴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그리고 전부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됐죠. 이 중 가장 규모가 큰 동굴은 만장굴로서 동굴의 길이와 규모는 세계적 수준이며, 만장굴과 김녕굴은 길이뿐 아니라 통로의 규모 면에서도 세계에서 손꼽힙니다.
또한 벵뒤굴은 미로형 동굴로서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통로의 형태를 보여줍니다. 용천동굴과 당처물동굴도 빼놓을 수 없는데 이들 동굴 내에는 용암동굴 내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석회질 동굴 생성물이 성장하고 있으며 이들 동굴 생성물의 규모, 형태, 분포 및 밀도는 가히 세계적인 수준이라 평가됩니다.
특히 종유관, 종유석, 석순, 석주, 휴석, 커튼, 동굴산호 등 다양한 동굴 생성물이 잘 보존된 이 동굴들은 전 세계적으로 용암동굴 내에 탄산칼슘으로 이루어진 2차 동굴 생성물이 가장 발달한 동굴로 평가되죠.
당처물동굴은 규모가 매우 작지만, 이 동굴 내에서 발견되는 석회질 동굴 생성물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인정되며 용천동굴의 큰 규모와 석회질 동굴 생성물은 세계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화려한 장관을 이룹니다. 그런데 이렇게 수많은 동굴이 이미 발견됐지만 제주도에서는 지난 3월 또 하나의 용암동굴이 발견됐습니다.
동굴이 발견된 것은 지난 3월 제주시 구좌읍 동복리입니다. 동복리 일대에서는 제주시가 배수로 정비를 위해 터파기 작업을 실시하고 있었는데 공사 도중 암반이 확 무너져 내리면서 동굴 입구가 발견됐습니다. 그리고 그 안이 뻥 뚫려 있는 모습을 발견한 공사 업체는 이를 즉각 지자체에 신고하면서 공사는 중단됐는데요.
세계유산본부는 동굴 발견 신고 즉시 공사를 중단시키고 전문가와 함께 현장을 확인했고, 그 결과 용암동굴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동굴 입구는 지표에서 약 2m가량 아래에 있고 입구 직경은 3m로 파악됐으며 동굴의 길이는 약 400m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이에 제주도는 배수로 공사는 무기한 중단하고 내년 실태조사를 포함해 정밀 조사를 계획 중이라고 하죠.
사실 동복리에서 이러한 용암동굴이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고 이렇게 긴 용암동굴이 발견된 것도 이례적입니다만 세계유산인 거문오름 용암동굴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는 것이 전문가 의견입니다.
동굴은 동복리 주변의 오름과 인근의 곶자왈 생성 시기 등을 고려하면 약 3만 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아직 드러난 것은 이것뿐이지만 전문가들은 주변에 추가 동굴이 발견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 한편 제주도 세계유산본부는 이 동굴을 제주도 지정 문화재 등록이 가능한 ‘나’ 등급 수준으로 판단했는데 아마 내년도 동굴 실태조사 및 정밀 조사를 통해 좀 더 정확한 정보가 밝혀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제주도를 한 번이라도 다녀오신 분이라면 느끼셨을 텐데 이미 제주도에는 수많은 용암동굴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거문오름 용암 동굴계뿐 아니라 한림읍에는 협재굴, 쌍룡굴, 황금굴, 소천굴, 초깃굴 등 많은 용암동굴이 존재합니다.
그중 협재굴과 쌍룡굴 그리고 황금굴은 용암동굴에서는 절대로 형성될 수 없는 석회질 종유석과 석순 등이 성장하고 있어 학술적 가치가 상당히 높은 곳이죠. 제주도에서 발견된 용암동굴만 약 160여 개에 이르는데 제주도를 형성한 무수한 화산활동과 그에 따른 용암 흐름까지 고려한다면 아직 발견되지 않은 동굴들이 지하에 무수히 많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런데 제주도에 워낙에 많은 동굴이 있고 세계자연유산까지 있다 보니 제주도에는 유네스코 전봇대도 존재합니다. 거문오름계 중 만장굴 옆 도로변의 한 전봇대는 유네스코 전봇대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겉보기에 평범하기 짝이 없는 평범한 전봇대지만 이게 없었다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이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2005년 5월경 한전은 이 주변에서 전주 이설작업의 하나로 전봇대 및 지하를 파헤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땅이 푹 빠지더니 그 아래에서 동굴의 흔적이 발견됐죠.
한전 직원은 즉시 작업을 중단하고 북제주군청 문화공보과에 이 사실을 알렸고 제주동굴연구소가 합동조사를 실시했습니다. 그런데 현장조사를 실시한 관계자들은 입이 쩍 벌어지는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전봇대 아래 동굴에서 동화에서나 나올 법한 환상적이고 황홀한 비경이 눈앞에 펼쳐졌기 때문입니다.
이 동굴이 바로 거문오름계 용암동굴의 대표 격인 용천동굴입니다. 당시 제주도는 먼저 발견된 당처물동굴과 만장굴을 세계 자연유산으로 신청하려고 준비 중이었는데 용천동굴까지 발견되면서 등재 준비에는 탄력이 붙었습니다. 더구나 용천동굴은 이전까지 알려진 동굴과는 성격 자체가 달랐습니다.
하얀색과 노란색, 붉은색이 어우러진 석회질 생성물이 동굴 절반을 덮고 있으며, 800m 길이의 호수가 동굴 내부를 흐릅니다. 천 년 전 동굴에 들어온 신라인들은 토기 20여 점과 철제 망치 1점을 포함 철기 3점, 멧돼지 뼈를 남겼죠. 동굴 속 어두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눈이 멀어버린 물고기도 살고 있습니다.
워낙 특별하다 보니 세계자연유산 실사팀은 용천동굴 하나만 보고도 나머지는 더 볼 필요도 없겠다는 평가를 내렸다고 하죠. 이 용천동굴을 발견하게 한 주인공 전봇대도 원래는 다른 전봇대들과 함께 지하로 매설될 예정이었지만 역사적인 상징성을 감안해 이 전봇대 하나는 매설하지 않고 상징으로 남겨뒀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제주라는 섬이 어떤 특징을 가졌기에 이토록 많은 용암동굴이 발견된 세계적인 명소가 된 것일까요? 이를 알려면 우선 화산섬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화산섬이란 해저 화산이 분출하면서 솟아난 용암과 화산재 등이 쌓이면서 생긴 섬을 말하는데 대표적으로 한국에서는 울릉도 및 독도, 제주도 등이 있고, 갈라파고스 제도나 아이슬란드, 하와이 등이 해저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섬입니다.
언뜻 제주도를 화산섬이라고 하면 단번에 한라산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은데 한라산이 해발 1,950m로 제주도의 상징이자 남한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연관 지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주도의 탄생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한라산 하나로 만들어진 섬이 아니라는 것이죠. 현재의 제주도를 만든 화산활동은 신생대 제4기라 하여 약 180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제주도의 화산활동은 수성화산활동과 함께 시작됐습니다. 그 이유는 물이 풍부한 대륙붕 위에서 화산활동이 시작되었기 때문인데 뜨거운 마그마가 차가운 물과 만나면 마그마는 급격히 냉각되고 부스러지며 물은 급격히 기화되고 팽창하여 폭발이 일어나게 되죠.
이런 화산분출 방식을 수성화산활동이라고 하는데 제주도의 수성화산활동은 1백만 년이 넘도록 지속되었습니다. 그 결과 제주도의 용암 대지 밑에는 무수한 수성화산이 여러 겹으로 겹쳐 쌓이게 되었고 엄청난 양의 화산재가 육지와 바다에 쌓여 약 100m 높이의 서귀포 층이라는 지층을 만들게 됐죠. 이것이 약 50만 년 전까지 일어난 일입니다.
이후 해수면 위로 제주도가 성장해 육상에서의 화산활동이 이어졌는데 약 45만 년 가까운 시간 동안 용암과 화산재가 쌓이기를 반복하면서 지금의 타원형의 제주도 형태를 갖추게 됐는데요. 이후 용암 분출이 섬의 중심부에 집중되어 일어나면서 현생인류가 출현하여 구석기 문화를 이루던 수만 년 전에는 한라산이 제주도의 한복판에 만들어지게 됐고, 제주도는 거의 완성되는 단계에 이르렀죠.
지구환경이 지금과 거의 동일해지고 현생인류가 신석기 문화를 이루던 약 7천 년 전에 마지막 수성화산분출이 제주도의 동쪽 끝과 서남단에서 일어났는데 이 분출로 성산일출봉과 송악산이 만들어졌죠. 그러니까 오늘 살펴본 다양한 용암동굴은 180만 년 전 바다 깊은 곳에서부터 시작된 화산 활동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제주도가 해수면 위로 떠오르고 난 이후 분출된 용암이 땅 아래로 흘러가면서 거대한 통로를 만들었죠. 대단한 연구 가치를 지녔지만, 제주도의 탄생 과정을 보면 결코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오히려 자연스러운 발견인데요. 이처럼 우리 땅 제주는 묘한 탄생 이야기를 가진 소중한 섬입니다.
다만 너무 아름다운 미관과는 달리 그 안에는 제주 4.3 사건과 같은 슬픈 역사도 있고 방문객과 원주민 간의 갈등도 존재합니다. 제주도를 단순한 휴양지가 아니라 용암동굴이 나올 때 신기하다고만 생각하고 말 것이 아니라 아주 긴 역사를 가진 소중한 우리 땅으로 인식하고 아끼는 마음을 모두가 가졌으면 합니다.
YouText의 콘텐츠는 이렇게 만들어 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