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4시, 어떠한 선전포고도 없이 남침해 온 북한군으로 인해 한반도에서는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위기에 처한 한국을 돕기 위해 수많은 국가가 한걸음에 달려와 주었는데요. 6.25는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국가가 단 하나의 국가를 위해 지원해 준 전쟁입니다. 이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 한국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1953년 7월 27일 정전 협정이 체결되며 한국은 자유를 지켜냈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 한국은 그때 우리에게 도움을 주었던 나라들을 도울 수 있는 위치가 되어 손길을 내밀고 있습니다. 이탈리아로부터 나라를 빼앗겼던 설움이 있는 나라가 있었습니다. 바로 에티오피아.
에티오피아에는 한 가지 한이 있었다고 하는데요. 자신들이 너무나 힘들 때 주변 국가들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아무도 그들을 도와주지 않은 것입니다. 에티오피아가 해방된 후 한국에서 6.25가 터졌습니다. 에티오피아에도 UN으로부터 지원 요청이 들어왔는데요. 이때 에티오피아의 셀라시에 황제는 한 치의 고민도 하지 않고 파병을 결정했습니다.
에티오피아는 유엔군으로 참전했던 유일한 아프리카 국가였습니다. 그리고 참전국 중 유일하게 한국과 어떠한 이해관계도 없이 참전한 국가였습니다. 에티오피아가 한국에게 대가 없이 도움을 지원한 이유, 자신들이 겪었던 서러운 과거를 한국이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였습니다.
파병이 결정되고 셀라시에 황제는 왕실 직속 병력을 중심으로 보병 1개 대대를 편성, 강뉴부대라고 이름을 하사했습니다. 에티오피아어로 강뉴는 혼돈에서 질서를 확립하다 또는 초전박살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출전을 앞둔 강뉴부대에게 에티오피아의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는 특명을 내렸습니다.
‘가거라. 살아 돌아올 생각은 하지 말고 전부 거기에 가서 모두 맹렬하게 싸워서 전사하거라! 만약 사지가 멀쩡하게 돌아온다면 짐의 이름을 걸고 절대 용서치 않겠다! 너희들의 죽음의 대가로 저들에게 자유라는 것을 저들의 손에 꼭 안겨 주거라. 우리 민족이 과거에 이탈리아인들에게 무엇을 당해 왔는지 말하지 않아도 그 고통은 뼛속까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 짐도 너희 모두도 잘 알고 있다. 그걸 알면서도 모른 척한다면 침략자들보다 못한 더러운 위선자일 뿐이다.’
일면식도 없는 나라를 구하라고 자신들의 목숨까지 바치라는 특명이 내려왔지만, 부대원들은 그 어느 때보다 전의가 불타올랐다고 합니다. 그들은 한국을 지켜주지 못한다면 잠을 잘 수조차 없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처음 겪어보는 끔찍한 추위와 열악한 한국 상황에 그냥 견디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강뉴부대는 정말 놀라운 활약을 보여 주었습니다.
253번의 전투에서 전승. 적에게 단 한 명의 포로도 내어 주지 않으며 정말 용명하게 싸워주었고 6.25에서 큰 공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강뉴부대는 한국의 평화만 지켜 준 것이 아니었는데요. 강뉴부대원들은 자신들의 월급을 모아 1953년 경기도 동두천에 보육원을 세워 전쟁고아들을 보살폈습니다.
1956년까지 한국에 주둔하며 한국의 회복을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는데요. 그들은 진정한 한국의 영웅들이었습니다. 한국을 지키라는 황제의 특명을 120% 완수한 강뉴부대는 전사한 전우들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렇게 돌아간 우리의 영웅들에게 꽃길, 아니 적어도 평화로운 생활이 이어질 거로 생각했는데,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슬픈 비극이었습니다.
에티오피아에 7년간 이어진 지독한 가뭄. 물가는 치솟게 되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74년 공산 쿠데타가 일어나 한국에 파병을 지시했던 에티오피아의 마지막 황제 셀라시에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정권이 바뀌면서 한국이 아닌 북한과 긴밀한 관계를 맺게 되었고 이때부터 강뉴부대원들의 비극이 시작되었죠. 공산주의와 싸워 한국을 지켜준 강뉴부대원들은 황제의 꼭두각시, 사회 체제에 총을 쏜 반역자라며 모진 핍박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심지어 재산까지 몰수되었죠. 우리의 영웅들은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도 가장 가난한 사람이 되어야만 했습니다.
1991년 맹기스투 정권이 붕괴되면서 다시 한국과 관계가 회복되었는데요. 이때부터 한국은 에티오피아의 마을을 보수해 주는 등 도움을 지속적으로 지원해 왔습니다. 특히 한국을 돕다가 고향에서도 고단한 삶을 살게 된 강뉴부대에게 집중적으로 도움을 건네는 사람들이 있었는데요.
외교통상부 소관 NGO 단체 ‘따뜻한 하루’ 그들은 2016년부터 식료품, 생필품 지원, 후손 장학금 지원 사업, 미망인 후원사업, 응급차량 지원, 참전 용사 생계위 지원 등 생존한 강뉴부대원들은 물론 그들의 후손까지 돕고 있습니다. 따뜻한 하루가 찾은 강뉴부대 생존자들은 여전히 대한민국을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아니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고 합니다.
한국전쟁 4차전 참전 용사인 데네께브레, ‘한국이 늘 평화롭기를 기도합니다. 제가 지금 많이 늙었지만 조금이라도 힘이 있다면 지금도 한국에게 무엇이든 해주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혹시 한국에 전쟁이 나면 지금도 가서 도와주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한국전쟁 2, 4차전 참전용사 벨라이 벨겔레, ‘아직도 가끔 그때가 생각납니다. 한국이 발전해서 제가 더 기쁩니다. 저는 살면서 한 번도 한국을 잊어본 적이 없습니다. 한국의 안전을 신이 지켜주기를 기도합니다.’
따뜻한 하루에서는 올해 강뉴부대 어르신들을 초청하여 그들이 지켜준 대한민국이 발전한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추진하고 있습니다. 6.25에 참전했던 강뉴부대원은 6,037명, 현재 남아있는 생존자 겨우 76명. 우리의 영웅들에게 감사함을 전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아낌없는 도움이 있었기에 지금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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