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최명기라고 합니다. 같은 말이라도 기분 나쁘게 들리는 사람들의 특징에 대해 말해볼게요. 첫 번째 그런 사람들의 특징은 불친절합니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없어요.
예를 들어서 우리는 누가 이렇게 얘기를 했는데 그 사람이 기분 나쁘지 않게 하려고 하면 뭔가가 노력해야 해요. 이게 기분 나쁠지 머릿속으로 생각해야 하고요. 이게 기분 나쁠 것 같다고 생각되면 다른 말로 돌려서 말을 하든지 참아야 하는데 그분들은 이해가 안 가는 거예요. ‘왜 내가 저 사람 마음을 편하게 해 주기 위해서 내 입과 내 성대와 내 뇌를 왜 사용하지? 왜 그런 내가 손해 가는 일을 하지?’ 그렇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불친절합니다.
두 번째 태도는 대체로 복수심이 많아요. 많은 사람의 마음속에서는 다툼을 싫어하고 갈등을 싫어하지요. 얼버무리려고 하거든요. 근데 이런 분들은 복수심이 있기 때문에 항상 내가 맞으면 남이 틀린 거고 남이 틀렸다는 걸 입증하지 못하면 내가 맞지 않은 거예요. 그러니까 말이 끝이 안 나요. 어느 정도에서 나는 얘기를 끊고 싶거든요. 근데 이분들은 그다음에 꼭 ‘그게 아니고요.’라고 하죠.
그리고 또 이렇게 복수심이 많은 분은 대체로 인간관계에서 기대치가 굉장히 높아요. 우리는 남이 나한테 욕하고 소리지만 않으면 넘어가잖아요. 이분들은 그게 아니에요. 상대가 나한테 친절하지 않으면 불친절한 거예요. 그러니까 항상 나의 입장에서는 저 사람이 왜 저러는지 모르겠지만 저 사람은 나의 객관적인 태도를 본 다음에 자신한테 극친절, 극존경, 극존칭을 안 했기 때문에 자기를 무시한다고 생각해서 거기에 대해 응징하고 기분 나쁜 말을 해야지만 상쇄가 돼요.
그리고 이런 사람들도 두 부류로 나뉘어요. 극단적으로 자신의 이런 태도에 대해서 긍지를 가지는 분들도 있어요. 굉장히 똑똑하고 지지 않는다고 생각하죠. 그래서 이런 분들의 자녀로 살면 너무 힘들어져요. 이런 분들이 친구여도 피곤해요. 내가 무슨 일이 있어서 그냥 넘어가려고 하면 너 손해 보는 짓 하고 있다고 나를 막 비난해요. 이게 어떻게 보면 타인을 내 자존감을 상승시키는 도구로 사용하는 것 같은 느낌이죠.
그런데 역으로 생각하면 이분들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못 하고 참으면 내 자존감이 낮아져요. 패배감이 있기 때문에요. 그래서 그분들의 한 부류는 불행한 삶을 살면서 자신이 굉장히 똑똑하고 이기고 있다고 생각하고요.
두 번째 부류는 본인을 피해자로 생각해요. 운전이랑 똑같은데요. 난폭 운전하시는 분들이 가장 많이 쓰는 말이 ‘왜 끼어들지?’예요. 자기가 끼어들고 나서요. 자기의 앞을 막으면 욕을 하기 시작해요. 절대로 자기가 운전을 이상하게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래서 난폭운전을 할수록 운전하면서 자기가 피해자라고 생각해요.
비슷하게 이분들도 삶을 살아가면서 자기가 피해자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두 쪽을 보통 같이 가져가요. 상당히 나는 똑똑하고 맞는 일만 하고 올바른데 결국은 사람들한테 욕만 먹고 산다고 생각하죠. 그러면서 자기가 욕먹을 짓을 한다는 것을 몰라요. 이런 사람들이 내 주변에 지인으로 있으면 내 인생이 망가지지요.
우리가 직장을 그만두거나 옮기는 이유를 통계를 내보면 월급이 적어서 보다도 상사와의 마찰, 동료와의 마찰이 굉장히 많습니다. 이런 사람을 상사로 만나게 되면 이분들이 주로 많이 쓰는 말들이 있어서 제가 조사해 봤습니다. 왜냐하면 수도 없이 환자분들이 얘기하시거든요. ‘이 말 때문에 괴로워요’
첫째, ‘무슨 생각으로 그러는 거야?’ 무슨 생각으로 그러는지는 관심이 없고 자기 생각이 맞으니까 그런 겁니다. 두 번째, 한숨 쉬면서 얘기합니다. ‘문제다…’ 그러면 듣는 사람은 가슴이 턱 막힙니다. 그런 다음에 이분들은 맨날 조금만 실수해도 ‘큰일이다’ 그런 다음에 자기 생각이 잘못 하고 있으면 가르쳐주면 되잖아요. 안 가르쳐주면서 쳐다만 보고 이렇게 말해요. ‘맞게 하는 거야?’
그리고 또 많이 하는 말, ‘왜 그랬니? 이유를 대봐.’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해서 이유를 듣는 게 아니라 상대방을 공격할 수 있는 거리를 많이 마련하기 위해서 이유를 듣습니다. 상대방이 이런 유형이면 자리를 피하거나 자존심은 상하지만 무조건 잘못했다고 하는 게 제일 좋습니다.
이런 분들이 또 마지막으로 좋아하는 말이 있습니다.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얘기야.’ 자기를 마지막에 좋은 사람으로 만들면서 상대방의 기분은 나빠지죠. 이런 걸 매일 상사로부터 당하다 보면 우리는 살고 싶지 않아집니다. 이 사람들이 이렇게 하는 이유도 있어요.
이분들은 화를 참는 게 너무 어렵습니다. 이분들이 남한테 기분 나쁘게 얘기하는 이유는 남은 나를 기분 나쁘게 하지 않았습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요. 그러나 자기는 어쨌든 기분 나쁘다고 느꼈습니다. 보통 사람은 그걸 참을 때 10의 고통이 생깁니다. 이분들은 그걸 참을 때 100의 고통이 생깁니다. 내가 기분이 나빴다는 걸 표현하지 않으면 본인이 괴로워서 아무것도 못 합니다.
그 이유에는 몇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첫 번째, 타고 태어난 기질이 있습니다. 투사의 기질입니다. 옛날에 대부분의 미라나 시체가 칼에 맞거나 화살이 맞거나 두들겨 맞아서 죽은 시체였다고 합니다.
사회가 안전을 보장해 주지 않았을 때는 그 투사의 기질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제공격이 유리했던 시절이 항상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자질이 유전 속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게 한때는 유용했던 유전자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화합을 이루어 나가는 사회에서는 유용하지 않은 거죠.
그리고 또 양육 과정에서 역시 존재하게 됩니다. 양육 과정은 얘기를 듣는 것과 행동으로 이어지는 걸로 나눠질 수 있는데요. 맞고 들어왔는데 야단치는 부모님이 옛날에 진짜 있었습니다. 애들을 밖에 내보낸 다음 ‘때리고 와.’ 그런 부모 밑에서 살게 되면은 이거를 정당화하게 되지요.
또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애를 때려서 제압하게 되면 아이의 입장에서 ‘아버지가 나한테 욕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덩치가 커다래지면서 선제적으로 내가 욕을 해야 해.’ 그런 게 합쳐져서 이런 사람을 만들게 되는 거죠.
그런 사람들이 내 주변에서 그렇게 기분 나쁜 말로 나를 공격한다면 현명하게 대처하기 위해 제일 좋은 방법은 마주치지 않을수록 좋습니다. 이런 분들을 만날 때 절대로 집에서 만나면 안 됩니다. 계속 말이 반복되고 계속 기분이 나빠집니다. 밖에서 만나야 합니다. 이런 분들한테 고통을 당할 때 계속 연속적으로 오랜 시간 고통을 당하면 안 되기 때문에 중간에 잠깐이라도 피해야 합니다. 화장실이나 전화 핑계로요.
그리고 이런 분들한테 얘기할 때는 지나치게 동조를 해주면 나를 같은 편으로 여겨서 욕하고 계속 남을 비난하는 것을 반복하기 때문에 내 기가 빨립니다. 공감을 해준다는 건 상대방의 화를 가라앉혀 주는 건데 공감을 해주면 해줄수록 진짜 오래간만에 들어주는 사람이 생기니까 더 많이 늘어납니다.
그렇다고 해서 ‘네가 잘못했어.’ 하는 순간 지옥으로 빠지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명료하게 하시는 게 좋습니다. 그래서 안 들어주는 건 아닌데 김을 빼야 합니다. 그래서 어쨌든 심리적으로 멀어지든, 거리로 멀어지든, 시간으로 멀어지든 멀어지는 게 첫 번째 좋은 전략입니다.
두 번째, 이런 분들을 봤을 때 이해하려고 나의 뇌를 쓰지 마십시오. 보통 착한 사람들은 나쁜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심리학자나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와서 나쁜 사람이 왜 나쁘게 하는지를 설명하더라도 그게 수용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람들한테 ‘내가 너를 이해했어. 네가 이렇게 된 거는 네가 잘못된 양육을 받아서 그래. 네 탓이 아니었던 거야. 네가 이렇게 된 거는 네 타고난 기질인 거야. 너 정도면 잘 참고 있는 거야.’ 하면 상대방이 위로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네가 보기에는 내가 그렇게 이상한 놈이야?’ 할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을 이해한다 한들 그걸로 그 사람을 설명할 수도 없습니다.
단 이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한다면 이해함의 목적이 있습니다. 이해를 나를 객관화시키는 도구로는 이해해도 됩니다. 이 사람들이 얘기할 때 내 감정이 휘말리게 되면 괴롭거든요. 그래서 하나의 메커니즘으로 이해하는 겁니다. ‘너는 불친절하기 때문에 방금 이런 얘기를 한 거구나.’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겁니다. ‘네가 욕한 거는 네가 방금 공격을 받았다고 생각해서 욕을 하는 거구나.’ 그러면 논리는 우리를 감정으로부터 격리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내가 이 사람들의 대화를 좀 잘 견디기 위해서 얘기하는 건 중요하지만, 그 사람들은 완벽히 이해해서 수용하기 위해서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분석은 하십시오. 그러나 이해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분석하게 되면 이 상황이 불명료하고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는 게 아니라 명확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이 상황으로 인해서 내 감정을 덜 상하게 됩니다. 같이 맞받아 싸워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목적이 분명해야 합니다. 싸우게 되는 건 좋은 기회입니다.
단 막가파랑 싸운다든가 술에 취한 상대방과 싸우는 건 굉장히 피해야 합니다. 왜냐면 막가파하고 그 술에 취한 사람들의 공격력은 대단합니다. 진짜 칼 들고 찌르려고 할지도 모릅니다. 일단 상대방을 봐가면서 하는 건 별수 없습니다. 이런 사람이랑 진짜 싸워야 하겠다고 생각하게 되면 그때는 일단 지원군이 많은 상태에서 싸우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을 만약에 이기고 꺾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면 내가 나로 이 사람들하고 싸워서 이 사람들의 기를 꺾겠다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조용한 내용증명이 좋습니다. 내가 법적인 문제로 삼을지도 모른다고 알려주거나 혹은 하진 않아도 됩니다. 내가 당신으로 인해서 피해를 보았으니까 정신적 위자료를 청구할 가능성이 있다는 정도의 내용증명만 보내도 상당한 효과가 있습니다.
그러나 상대방이 내가 봤을 때 공격력이 그 정도는 아니라면 싸우는 것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그 싸움은 싸움으로 인해서 내 기분이 편해지는 게 아니라 멀어지게 되는 효과를 낳는 겁니다.
우리는 항상 마음속에서 생각합니다. ‘싸우지 않고 불편하지 않고 서로 깨끗하고 깔끔하게 멀어지는 방법이 있을까?’ 사실은 별로 없습니다. 항상 그게 냉전이 됐든 열전이 됐든 싸움만이 우리를 멀어지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싸우게 될 수도 있고 내 감정을 표현하게 될 수도 있으나 그 기회를 놓치게 되면 안 됩니다.
보통 착한 사람들은 싸우고 나면 죄책감 때문에 사과해서 또 말려들게 되거든요. 이런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자기 얘기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요. 그래서 싸우고 나면 약한 척하기도 하고 그래요. 그때 넘어가면 안 됩니다. 한번 힘들게 싸웠으니까, 싸워서 멀어지면 계속 멀어지셔야 합니다. 이겨서 내가 주도하는 좋은 관계를 그 사람들하고 가지고 갈 거로 생각하진 말라는 겁니다.
기분 나쁘게 말하는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는 화법이 있어요. 첫 번째, 말꼬리 잡기인데요. 이건 우리가 앞에서 얘기했습니다. 끝이 없습니다. ‘미안해’하면 ‘넌 네가 뭐가 미안한지 알아?’ 이렇게 말꼬리가 잡히고요. 침묵하면 ‘너 나 열받게 하려고 말 안 하는 거지?’ 이렇게요.
두 번째, 이분들의 화법에는 대부분 남 탓하기가 있습니다. 만약에 이분들이 얘기하다가 상대방이 울면 ‘야, 뭘 잘했다고 울어?’ 합니다. 그런 다음에 자기가 말을 해서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했어요. 그래서 상대방이 좀 심하다고 얘기하면 마음속으로 생각하죠. ‘내 말을 기분 나쁘게 들은 네가 잘못이야.’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뭐가 심한데?’ 이렇게 나오지 되는 거죠. 그래서 항상 남 탓을 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특징은 자기 하고 싶은 얘기만 잘합니다. 그래서 전화를 잘 끊습니다. 전화해서 자기 하고 싶은 얘기만 하고 끊어버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이제 얘기 듣고 기분 나빠서 얘기하려고 하면 잠깐 할 일이 있다고 일어나거나 안 듣습니다. 결국은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만 반복하고 남의 얘기는 안 듣는 거죠.
또 이런 분들이 항상 자신에 관해서 주장하면서 자랑하는 게 있습니다. ‘난 뒤끝이 없어.’ 저는 우리 속담에 ‘맞은 사람은 발 뻗고 자지만 때린 사람은 잠 못 잔다.’는 얘기는 거짓말입니다. 제가 보니까 나쁜 놈이 항상 더 잘 잡니다. 피해자는 수치심도 있는데 가해자는 자기가 화가 나서 화풀이했으면 자기 기분이 괜찮아지니까 괜찮은 겁니다. 그래서 자기는 뒤끝이 없다고 하죠.
상대가 이런 식으로 반응할 때 내가 대응할 방법 첫 번째는 말꼬리 잡기입니다. 내가 굉장히 나에게 이익이 된다고 생각하고 내 감정이 상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진정을 다 해서 져주는 것도 방법입니다. 감정이 상한다면 일어나야 합니다. 이분들이 하는 방법을 역으로 사용하는 겁니다. 나도 한번 이겨보고 싶은 거예요. 그럼 얘기하다가 딴 얘기 하자마자 일어나는 겁니다. 말을 멈추는 겁니다. 혹은 굉장히 오랜 침묵을 사용하십시오.
보통 말꼬리 잡는 사람들은 말을 안 하면 괴로운 거거든요. 거기에 계속 내가 말대답하더라도 나는 이기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때는 상대방이 내 침묵에 대해서 말꼬리를 잡을지언정 계속 침묵하게 되면 결국 이거는 끝나고 되고 그 침묵으로 인해서 나는 이긴 겁니다.
상대방이 말꼬리를 잡을 때 거기에 대해서 설명할수록 나는 약자가 됩니다. 그래서 침묵을 사용하든지 설명하라고 하면 ‘왜 내가 그걸 너한테 설명해야 해? 넌 네가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잖아. 그러니까 이 대화는 네가 내 말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을 때 하는 게 맞는 것 같아.’라고 하세요. 그래서 어찌 됐든 대화를 계속 그 사람이 원하는 대로 말꼬리가 이어가는 형태가 아니라 그 사람이 예상하지 못한 형태로 대화를 종결해야 합니다.
두 번째 특징인 남 탓하는 환자들에 대한 정신분석가의 두 가지 상반된 대립이 있습니다. 두 타입의 한쪽 극단은 끝없이 상대방이 남 탓을 할 때마다 일관되게 따뜻한 태도도 수용해 주면 언젠가 상대방은 바뀐다는 것입니다. 코헛이라는 사람의 파입니다.
거기에 정반대 되는 컨버그라는 사람의 방법이 있습니다. 절대로 지지 말고 되받아줘서 상대방이 그거를 부인할 수 없게끔 해줘야 한다는 형태도 있죠. 그래서 극단적인 형태의 정신과 의사가 있었는데요. 마수드 칸이라는 사람인데 하루는 어떤 한자가 막 화를 내면서 분노를 표현하니까 뒤에 가서 그 환자 목을 잡아서 목을 졸라 버렸답니다.
그 사람은 나중에 면화가 다 박탈됐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알아보니까 나이가 들어서 양극성 정동장애 조증이었대요. 그래서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제가 얘기한 거는 그 정도는 아니지만 그 정도 강단이 있어야 한다는 거지요.
역으로 생각하면 상대방의 비난이 내가 부당하다고 생각할 때 물러나지 않고 나한테 진짜 신체적 위해가 닥치지 않는다면 내가 맞설 수 있는 강단이 있으면 확실히 나에 대한 상대방의 비난을 깨부수는 것도 방법이 됩니다. 그러나 내가 워낙 싸움하지 못 하고 실행하지 못하면 일단 수용하는 쪽으로 간 다음에 사태를 마무리하는 게 나한테 맞는 방법이 됩니다.
우리들은 다들 보통입니다. 그래서 이 방송을 듣고 있는 분들은 여기에 대해서 보통에 해당하는 가장 좋은 방법을 선택하십니다. 수용하다가 너무 화나면 뭐라고 했다가 또 너무 세게 나오면 수용했다가 그럴 수밖에 없죠.
자기 얘기만 하는 사람은 나도 똑같이 대하면 됩니다. 내가 전화해서 전화 안 받으면 나도 그 사람이 먼저 나한테 전화할 때까지 전화 안 하면 됩니다. 그러나 저는 만약에 이 정도로 내가 괴로움을 느낀다면 자기 얘기만 하고 싶은 사람하고는 관계를 끊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본인은 뒤끝 없다고 주장하는데 그게 진짜 나에게 엄청난 피해를 가져온다면 아까 말씀드린 내용증명이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지만 내용증명은 극단적인 방법이고 ‘당신은 뒤끝이 없으나 나는 굉장히 괴롭습니다.’라고 호소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방법이 효과가 있는 경우가 한두 가지 경우에 있습니다. 공감도 잘하면서 복수심도 강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내 편이라고 생각할 때는 진짜 내 얘기를 잘 들어줍니다. 공감을 잘하기 때문에 나를 위해서 싸워줍니다. 다만 사이가 멀어지면 그때는 끝내주게 나한테 복수를 합니다. 하지만 만약 평소에 이 사람이 진짜 나를 위해서 열심히 싸워주고 그런 사람인데 이 사람의 한두 마디가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는 거라면 내가 얼마나 괴로운지를 표현해 주는 것도 괜찮다고 봅니다.
다만 평소와는 다른 방법이 좀 있어야 하죠. 애들이 평소에 ‘엄마, 미치겠어. 진짜 엄마 그러면 나 죽어 버리고 싶어.’ 그래도 엄마들이 별로 충격을 안 받습니다. 반복되다 보면 그러려니 하죠.
그러나 일기장에서 그 얘기를 보면 엄마들이 찾아옵니다. 우리 애 큰일 난 거 아니냐고요. 그렇기에 뒤끝이 없다고 말하지만, 그 사람이 최소한도의 공감 능력은 있다고 생각되면 내 괴로움에 대해 표현하되 일상적인 대화는 가볍게 여기니까 편지라든가 의료적 객관적 소견이나 그 사람이 가볍게 여기지 못하는 형태로 전달하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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