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룡기업 보잉사에서 날린 선방을 멋지게 받아치고 본진인 미국으로 쳐들어가 업계 1위, 그리고 세계 1위에 올라섰던 한국 기업 ‘777’! 짝퉁의 천국 중국에서도 버텨낸 불도저 같은 기업인데요. 그런데 그들에게 회사가 휘청거릴 정도로 단단한 통곡의 벽이 나타났습니다. 그곳은 다름 아닌 우리 한국이었습니다.
1975년 창립된 손톱깎이 제조기업 ‘대성금속’ 1984년 그들은 천, 지, 인, 삼재의 의미와 서양에서 행운의 숫자로 불리는 7을 합쳐 만든 브랜드인 ‘777’을 출범합니다. 브랜드명이 점점 퍼지면서 인지도를 차근차근 쌓아가던 어느 날, 뜬금없이 미국에서 고소장이 도착했습니다.
그 고소장은 미국 대기업이 보잉에서 보낸 것이었는데요. 내용은 쓰리 세븐이 보잉의 상표권을 침해했다며 소송을 건 것이었습니다. 보잉이 777을 상표 등록한 것은 1990년, 자신들이 쓰리 세븐 브랜드를 출범한 것은 1984년. 훨씬 먼저 사용 중이었는데 갑자기 침해라니 정말 황당했죠.
결국 두 기업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고 모두가 대기업인 보잉에 소기업이었던 쓰리 세븐이 당연히 패소할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4년간의 분쟁 끝에 승리를 거둔 건 놀랍게도 우리의 쓰리 세븐이었습니다. 대성금속이 쓰리 세븐이라는 브랜드명으로 1984년부터 미국에 수출해 왔다는 영수증이 기적적으로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소식은 업계에서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이라 불리며 쓰리 세븐의 명성은 널리 널리 퍼져나갔는데요. 이 기세에 힘입어 1994년 쓰리 세븐은 중국에 진출했습니다. 사업 시작 전 시행한 철저한 시장분석에서 중국 제품이 자사 제품에 비해 품질이 너무 낮고 중국인들은 화려한 걸 선호한다는 걸 파악하기도 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중국이 홀딱 반할만한 작전을 세웠다고 하는데요. 이미 세계에서 인정받은 품질의 손톱깎이는 준비 완료, 문제는 디자인이었습니다. 손톱깎이 제품이 화려해지려면 케이스가 답이었는데 기존에 사용되던 수납과 휴대가 쉽고 고급스러운 가죽 지갑 디자인에서 특이한 모양과 색감도 화려하게 변경시켰습니다.
중국인 취향에 딱 맞춰 제품이 준비되자 마지막 필살기를 더했는데요. 솔직히 손톱깎이 겉모습만 보면 다 거기서 거기죠. 품질이 좋은 제품과 안 좋은 제품은 직접 깎아보기 전까지 구분이 힘든데요. 그래서 쓰리 세븐은 손톱을 직접 깎아주고 무료로 나눠주는 행사를 기획했습니다.
일단 무료라고 하니 중국 사람들이 엄청나게 몰려들었습니다. 중국 제품과 차원이 다른 쓰리 세븐을 써 본 중국인들이 직접 입소문을 퍼뜨리고 다니면서 쓰리 세븐은 정말 초 대박이 터졌습니다. 쓰리 세븐이 행사를 열었다 하면 일대가 마비되고 행사 진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인파가 몰리기도 했습니다.
쓰리 세븐의 심상치 않은 인기를 감지한 현지 상인들은 너도나도 판권을 얻기 위해 접촉해 왔고 경쟁이 점점 치열해졌는데요. 그런데 쓰리 세븐은 물 들어왔다고 해서 아무나 판권을 주지 않았습니다. 잘 나간다고 해서 무턱대고 판권을 뿌리면 시장 교란은 기본, 치열한 가격 경쟁은 플러스, 더 싸게 하다 보니 결국 제품의 가치가 떨어지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게 됩니다. 쓰리 세븐은 그런 미래를 한 수 먼저 내다본 것이죠.
그렇게 중국 시장 진출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는데 브랜드 가치를 유지하다 보니 생각지도 못한 부작용이 뒤따랐습니다. 판권을 받는 사람은 적은데 수요는 계속해서 늘다 보니 쓰리 세븐 손톱깎이는 없어서 못 판다는 말까지 나오게 되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불법 복제품, 짝퉁이 판을 치기 시작했죠. 쓰리 세븐이 중국 시장 짝퉁 현황을 조사한 결과 무려 90% 이상이 짝퉁. 하지만 쓰리 세븐은 짝퉁에 가만히 앉아서 당하지 않았습니다. 즉각 공안과 함께 단속 시작, 불법 복제품들을 적발하는 족족 압수했습니다. 그런데 이때 쓰리 세븐의 대표였던 김상묵 씨가 돌발행동을 보였습니다. 공안에 압수된 짝퉁을 모두 사들인 것인데요. 그는 짝퉁을 굳이 왜 샀을까요?
정답은 깡그리 태워버리기 위해서였습니다. 김상묵 대표가 굳이 돈까지 들여가며 짝퉁을 소각했던 이유, 중국 공안에서는 불법 복제품을 압수한 후 그걸 처리하는 게 아니라 다시 공매로 붙이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러면 업자들이 그 제품을 사들여 1년 정도 숨었다가 다시 시장에 풀게 되죠. 기껏 빼앗은 짝퉁이 다시 시장으로 흘러가게 만드는 것입니다.
공안의 이런 황당한 대처가 끝도 없는 짝퉁 전쟁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김상묵 대표는 자기 손으로 직접 짝퉁을 없애버린 것입니다. 당시 이 사건은 중국인들에게도 굉장히 충격적이었는지 중국 언론에서 톱뉴스로 걸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을 계기로 쓰리 세븐은 전략도 수정했습니다.
중국에서는 아묻따 고가! 프리미엄 전략으로 노선을 바꾼 것이죠. 세계적인 명품들이 판매되는 매장 옆에 쓰리 세븐은 매장을 입점시켰습니다. 날고 기는 명품들 사이에 껴있다가 괜히 죽도 못 쓰는 게 아닐까 했는데 이 작전이 제대로 먹히면서 쓰리 세븐은 명품 손톱깎이라는 이미지가 떡하니 박히게 되었습니다.
중국에서 위기를 완벽하게 대처하며 세계 최대의 시장, 미국에도 진출 성공! 이제 진짜 꽃길을 걷느니만 남았구나 했는데 쓰리 세븐은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아주 큰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1980년대까지 쓰리 세븐은 손톱깎이만 판매했습니다. 그런데 손톱깎이만 팔다 보니 매출에 한계가 있었는데요.
그래서 손톱 정리 도구를 모아 손톱깎이 세트를 만들었습니다. 이것도 팔다 보니 한계가 왔는데요. 그래서 김형규 회장은 사업의 다각화를 계획했습니다. 2005년 암세포 치료제를 연구하던 바이오 제약회사 크레아젠을 137억에 인수하게 되었죠. 회사를 더 크게 키워보기 위한 이 선택이 쓰리 세븐의 최대 위기가 되었습니다.
크레아젠을 인수하며 주식의 일부를 격려의 의미로 연구원과 직원들에게 증여했다고 합니다. 증여된 주식은 약 240만 주, 370억 원어치가 된다고 합니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려가는가 했는데 비극은 갑자기 찾아오게 됐습니다. 2008년 1월 창업주 김형규 회장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것이죠. 직원과 가족들은 슬퍼할 겨를도 없이 이때부터 큰 시련이 시작되었습니다.
여기서 하나 알고 가야 할 게 있는데요. 법률상 증여자가 5년 이내 사망하면 증여는 상속이 돼버립니다. 2006년 주식이 증여, 2008년 사망. 2년 만에 증여자가 사망하면서 증여 주식이 상속 주식이 돼버렸죠. 그렇게 나오게 된 상속세가 무려 150억 원. 터무니없이 많이 나온 상속세 앞에 가족들은 회사의 지분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허무하게 매물로 나오게 된 쓰리 세븐을 중외제약이 사들였습니다.
그런데 제약회사인 중외제약의 관심은 막판에 인수된 크레아젠뿐, 크레아젠만 쏙 빼고 주력사업인 손톱깎이는 다시 매물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TH홀딩스가 남은 전량을 매각하게 되었습니다. 불모지에서 세계 1위까지 찍었던 회사가 넘어진 이유라고 하기에는 참 씁쓸한 사건인데요. 다행히 쓰리 세븐이라는 회사는 없어지지 않았고 재도약을 꿈꾸고 있습니다. 꾸준히 새로운 손톱깎이를 선보이는 중인데요.
최근에는 보통 손톱깎이 외에도 아기들을 위한 유아제품, 노령인구를 위한 실버제품 등 또다시 손톱깎이계의 혁신을 만들고 있습니다. 불굴의 의지로 한국 브랜드를 세계에 알려준 쓰리 세븐! 그들의 재도약 신화를 소개하는 날이 반드시 찾아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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