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한 대가 유유히 운동장을 돌고 있습니다. 이 모습이 신기했던지 학생들 역시 자동차를 따라 운동장을 돌고 있는데요. 차체 전면에 새겨진 문구로 보아 이 자동차는 고려대학교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데 차량 운전석에는 여학생이 타고 있지만, 그녀는 운전에 집중하지 않고 책을 들고 있습니다.
잠시 후 차량 앞에는 한 남학생이 등장합니다. 차량이 진출할 방향 정면에 버티고 선 그는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하는데 마치 도로를 가로막은 듯 여유 있게 걸어 나갑니다. 그런데 차량의 운전석 아래를 카메라로 비춰보니 사람이 없습니다.
운전에 관여하는 인간이 운전석에 타지도 않았는데 핸들도 마음대로 움직이고, 클러치도, 브레이크도 제멋대로 움직입니다. 사람이 멈추면 일정 거리를 두고 함께 멈추어 서는데 귀신이 곡할 노릇입니다. 운전자도 없는데 차량이 알아서 가다 서기를 반복하는데요. 여러분들은 믿어지십니까?
이 영상은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고려대학교에서 촬영된 무인 주행차량입니다. 그러니까 이제야 겨우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걸음마를 뗀 무인 주행 기술은 이미 30년 전 한국인이 세계 최초로 개발해 시운전까지 마친 옛날 기술인 겁니다. 도대체 30년 전 한국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요?
온갖 기행으로 유명한 일론 머스크라는 사업가가 있습니다. 그는 여러 개의 사업체를 소유하고 있지만 그중 전기차 기업인 테슬라는 특히 대단한 성공을 거뒀고 2020년 한때 테슬라의 주가는 700% 이상 급등하면서 기업 가치는 650조 원을 넘어섰습니다.
이는 굴지의 완성차 업체인 포드, GM, BMW, 폭스바겐, 피아트 크라이슬러를 사고 페라리를 살 돈이 남는 규모인데요. 사실 머스크는 제프 베조스나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와는 선천적으로 다른 인물입니다.
현재 주어진 시장 환경에서 최고의 상품을 출시해 부자가 된 이들과 달리 머스크는 현재를 파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꿈, 즉 미래를 팔았습니다. 어벤저스 아이언맨의 실제 모델이기도 한 그는 먼 미래의 이상향을 제시해 그 꿈을 사도록 하면서 큰 부를 거머쥐었는데요.
그런 이유로 그가 트위터에 남긴 트윗 한 줄로 실체도 명확하지 않은 비트코인이 급등하기도 하고 급락하기도 하는 등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죠. 현재 전 세계 자동차 업계의 화두는 전기차로 대표되는 ‘탈내연기관’과 인공지능을 접목시킨 자율주행차입니다.
자율주행이란 운전자가 운전대나 속도 등을 조작하지 않더라도 인공지능이 알아서 운전하는 것을 말하는 데 운전자 지원 수준인 레벨 1부터 완전자율주행인 레벨 5까지 나뉘게 됩니다. 현재 일부 기업은 레벨 3에 해당하는, 눈을 감아도 괜찮은 조건부 자율주행 기술 수준에 올라섰지만, 대부분은 여전히 손을 떼도 괜찮은 수준인 레벨 2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자율주행차가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에 한국에서 세계 최초로 개발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나요? 1993년으로 이동해 보겠습니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운전하다가 졸리면 잠을 자는 사이에 혼자 달리는 100km 이상으로 혼자 달리는 자동차는 없을까 하는 그런 공상입니다.
그러나 이게 공상이 아니고 현실이 되는 때가 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운전자 없이 달리는 무인 자동차가 오늘 시속 100km로 경부고속도로를 시험 주행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1995년 류근찬 당시 KBS 9시 뉴스 앵커는 당시 경부고속도로에서 시험 주행에 성공한 무인 자동차를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잠자는 사이 혼자서 100km 속도로 달리는 자동차’라고 말이죠. 그런데 아무런 준비 과정도 없이 즉시 고속도로 시험주행에 나선 것은 아닙니다. 이미 2년 전인 1993년 학교 운동장을 시작으로 서울 한남대교-올림픽도로 시범 주행에 성공했고 그 영상이 기록으로 남아 있죠.
도대체 어떤 선구자가 30년 전에 이런 과감한 실험을 진행했을까요? 주인공은 바로 한민홍 전 고려대학교 산업공학과 교수입니다. 한민홍 교수가 자율차를 개발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원래 그는 미국 텍사스 A&M 주립대 교수로 재직하며 무인 잠수정을 연구했는데 이는 미 국방부 산하 고등방위연구계획국 프로젝트였습니다. 그러다 80년대 후반 국내에 들어오게 됐는데 당시 국내에서는 이 연구를 진행할 수 없어 국방부의 의뢰로 탱크에 응용할 수 있는 연구를 추진했죠.
그러다 1991년 고려대학교 교수로 부임하면서 새로운 연구 과제를 찾아 군용 지프차를 개조하면서 본격적으로 자율주행차 연구가 시작됐는데요. 지프차를 개조해 자율주행차로 만드는 과정은 전 세계에서 최초로 시도되는 연구였던 만큼 그는 어려움이 많았습니다만 결국 성공해 냈습니다.
지프차 개조 작업은 학교 실험실과 고려대학교 안암캠퍼스 주변의 자동차 공업사를 이용했고, 전방 감지 카메라 및 GPS, 컴퓨터, 각종 센서 등의 부품은 전부 청계천과 세운상가의 부품 시장에서 찾아냈습니다. 그러고는 1년 만인 1992년 지프차를 상용화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는데요.
아시아 자동차의 ‘록스타’를 개조해 완성한 시제품은 고려대학교 운동장에서 약 500m 정도를 테스트 주행 구간으로 설정하고 센서 및 컴퓨터 등의 작동 상황을 점검하고 수차례의 보완 작업을 거쳤습니다.
가령, 주행 중 돌발 장애물이 등장하면 이를 감지하는 카메라가 회로를 통해 자동차의 두뇌에 해당하는 인공지능 컴퓨터에 전달하는 기능이 순조롭게 작동되는지 등을 중점적으로 보완했고, 정체 구간에서 앞차가 이동하면 함께 이동하고 멈추면 함께 멈출 수 있는 카메라 기능도 집중적으로 점검했죠. 문제점을 완전히 보완한 후 1993년 6월 마침내 도심 자율주행에 도전합니다.
사실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도전이다 보니 실험 전날 밤에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잠도 이루지 못했다고 합니다. 혹시 도로를 운행하다 오류가 발생해 인사 사고라도 발생한다면 자신의 연구는 물거품이 되어 버릴 테니까요. 그렇게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후 아침 일찍 고려대학교 안암캠퍼스를 출발한 자동차는 남산 1호 터널을 지나 한남대교, 올림픽대로를 거쳐 63빌딩까지 무려 17km 구간을 운전자 도움 없이 무사히 주행에 성공했습니다.
출발 당시에는 직접 운전대를 잡았다가 청계 고가에서부터 자율주행 모드로 설정했는데 차량은 카메라를 통해 수집되는 영상을 스스로 분석해 차선을 지키고 앞차와의 적당한 간격을 유지했습니다.
아무런 사고나 오류도 없이 안전하게 63빌딩까지 말 그대로 컴퓨터만으로 세계 최초의 자율주행차 시험 운행에 성공했습니다. 이는 현재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미국 카네기멜론대 내블랩보다 몇 년 앞선 성과였죠. 그런데 여기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지금은 워낙에 규제가 깐깐해졌기 때문에 도로에서 자율주행차를 운행하려면 반드시 국토교통부의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1993년 당시는 전 세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 최초의 자율주행차였기 때문에 이를 규제할 수 있는 규정조차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기술이 법을 앞선 것인데 이 덕분에 한 교수는 마음 놓고 테스트 주행을 실시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2년 뒤인 1995년에는 서울에서 부산으로 이어지는 경부고속도로를 약 100km 속도로 자율주행으로 달리는 쾌거를 올렸습니다. 그는 이 성공사례를 국제학회에서 발표했었는데 이를 들은 자동차 종주국 독일에서는 벤츠와 폭스바겐이 직접 찾아오기도 했고, 프랑스도 그를 찾았습니다. 프랑스는 정부 관리가 직접 협업을 제안해 와서 초기 기술을 제공해 한국 기술로 초기 자율주행차를 만들었지만, 벤츠와 폭스바겐은 업무협약까지 제안했지만 거절했습니다.
자칫 국내 기술이 해외로 유출될까 걱정됐기 때문인데요. 그렇다면 이미 1993년에 기술개발에 성공했음에도 왜 지금 한국은 자율주행 분야에서 세계 최고가 되지 못했을까요?
이는 한국의 고질적인 문제점이 도졌기 때문입니다. ‘규정’이라는 덫에 갇힌 겁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한 교수가 성공한 자율주행이 얼마나 시대를 앞선 것인지는 쉽게 이해하실 것으로 생각됩니다. 만약 그의 자율주행 연구가 지속됐다면 지금쯤 한국에서는 핸들이 없는 자동차가 개발됐을지도 모를 일이고 이 분야는 한국이 선두 주자가 됐을 겁니다.
그런데 정치권에서는 그렇지 못했던 것 같은데요. 당시 한 교수는 폭스바겐이나 벤츠 등은 전문가를 파견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이 이 분야를 선도하려면 반드시 집중적으로 연구가 필요하다며 정부에 프로젝트를 건의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국토교통부는 관련 법이 부재한 관계로 실생활에서 사용할 수 없다는 의견을 내비치며 거절해 버렸습니다. 정부의 지원 없이는 기술 개발도 발전도 이뤄질 수 없고 여기에 관련법이 부재하면 기업들이 연구를 진행할 명분도 없어지기 때문에 결국 그렇게 자율주행은 사장됐습니다.
30년이 지난 지금은 영원한 후발주자가 됐고 테슬라가 전 세계를 호령하고 유명세를 떨친 후에야 뒤늦게 지원에 나서고 있습니다. 과학전문가들은 만약 그 당시 연구를 지원했다면 그가 한국인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가 됐을지도 모른다고 입을 모읍니다.
일본의 나카무라 슈지는 중소기업에서 사장의 지원으로 LED를 발명했고 2014년 노벨상 수상자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일본은 지금 현재는 그리 쓸모없어 보이는 기술을 지원해 LED의 불을 밝혔고 한국은 관련법의 부재를 이유로 정부가 지원을 거절해 자율주행의 불을 껐습니다.
규제는 필요하지만, 과도한 규제는 기술 발전의 발목을 잡기 마련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노벨 수상자가 나오지 못하고 있는 이유를 곰곰이 되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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